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93)화 (193/500)

193화. 사소하다면 사소한 갈등(1)

체육 시간이 끝났다.

‘망할 윤리사.’

저세상은 윤리사의 뒷모습을 빤히 노려봤다.

윤리사는 한단아와 재잘거리며 교실로 돌아가는 터라 그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윤리사를 욕하는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쟤 진짜 짜증나지 않아?”

“쟤 옆에 있는 애도 짜증나. 한단아라고 했던가? 반장이랑 부반장 동생이라던데?”

“진짜? 반장이랑 부반장이랑 왜 저렇게 다르대?”

저세상의 얼굴이 사납게 구겨졌다.

하지만 그는 못 들은 척 무시했다. 괜히 나섰다가는 피해만 입을 테니.

자신이 피해를 입는 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윤리사. 윤사해의 딸인 그녀가 피해를 입는 건 싫었다.

그렇게 무시하려고 했건만.

“야!”

양호실에 실려 갔던 지희준이 성난 고라니처럼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 같았건만, 지희준의 발걸음이 다른 쪽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너희!”

지희준의 다리가 향한 곳은 윤리사와 한단아 쪽이었다.

‘저 바보.’

저세상이 골치 아프다는 듯이 한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희준이도 참 바보네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세상이 오빠?”

“한단예…….”

저세상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그런 생각이 들면 저 바보 좀 말리지 그래? 한단아한테 또 쌍코피 터질 것 같은데.”

“터지라고 해요.”

한단예가 싱긋 웃었다. 그녀 역시 지희준이 했던 말에 화가 조금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으악……!”

갑작스럽게 들린 비명에 저세상도 한단예도 곧장 지희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윤리사!”

“리사야!”

지희준이 윤리사와 대화를 하다말고 그녀를 밀쳐 넘어뜨렸기 때문이었다.

***

아오, 저 망할 새끼가?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갑자기 밀치는 게 어디 있어?!

찌르르 울리는 고통에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윤리사! 야! 괜찮아?!”

“응, 괜찮아.”

걱정할 필요 없다고 단아에게 말해 주려는데.

“지희준, 이 새끼야!”

단아가 지희준의 뺨을 향해 주먹을 휘둘러 버렸다.

“악!”

단아의 주먹 한 방에 지희준은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단아에게 맞은 것이 분한지 그는 씩씩거리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르륵, 흘린 코피를 닦아내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일어난 보람도 없이.

“억!”

이번에도 지희준은 누군가의 주먹에 의해 바닥을 나뒹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주먹의 주인은…….

“저, 저세상?”

저세상이었다.

저세상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씩씩거렸다.

“이 새끼가 누구를 밀쳐?!”

우와, 저세상이 저렇게 화난 모습 처음 봐!

『각성, 그 후』에서 그가 화내는 모습이 몇 번 나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두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지희준은 설마 저세상한테 맞을 줄 몰랐는지 당황한 얼굴이었다.

“야! 희준아!”

“지희준, 괜찮냐?!”

때마침 지희준과 어울리는 무리가 달려왔다. 아니, 선생님이나 달려올 것이지!

그래도 곧 선생님이 이 험악한 분위기를 중재하러 달려올 것 같았다. 그야, 도윤이가 제인 아일리를 데리러 갔을 테니까…….

그런데.

“도, 도윤아?”

“응, 리사.”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니?

나는 당황하여 도윤이를 쳐다봤다. 도윤이는 저세상의 옆에서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로 서 있었다.

나를 지키려는 듯이 말이다.

아이고, 도윤아! 나는 지켜 줄 필요 없어! 제인 아일리나 데리고 오란 말이야!

이러다가 입학 첫 날부터 패싸움이 벌어지겠다고!

‘진정하자, 윤리사!’

도윤이는 비록 반장의 의무를 저버린 것 같지만, 이곳에는 4반의 반장과 부반장인 단예와 단이가 있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리사, 괜찮니?”

“일어날 수 있겠어? 업어 줄까?”

“한단이, 저리 비켜! 윤리사는 내가 업어줄 거야!”

단예야, 단이야. 너희도 왜 이곳에 있는 거니? 그리고 나 업어 줄 필요 없는데?

바닥에 찧은 엉덩이가 아프기는 했지만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얘들아, 나 괜찮으니까…….”

저딴 녀석 신경 쓰지 말라고 할 새도 없이 지희준인지 뭔지가 말했다.

“뭐야, 저세상? 네가 저 녀석 기사님이라도 돼?”

기사님이라니! 무슨 그런 오그라드는 말을 꺼낸담?!

나는 곱아드는 두 손과 두 발을 펼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저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어쩔래?”

저세상,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놀란 눈으로 저세상을 쳐다봤다. 저세상은 평온한 얼굴이었다. 저세상의 말에 지희준이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비각성자 새끼가 꼴값을 떠네.”

저 자식이 비각성자 운운하네?

저세상이 비각성자인 건 맞지만, 그걸로 욕을 먹을 이유는 없단 말이다!

대놓고 자신을 놀리는 말에도 저세상은 그저 고요히 지희준을 쳐다볼 뿐이었다.

하지만.

“네 부모도 네가 이러고 다니는 거 아냐? 아아, 모르겠구나? 네 부모도 비각성자일 테니까.”

“뭐?”

저세상이 미간을 좁혔다. 나 역시 얼굴을 한껏 찌푸렸다. 여기에서 부모 이야기가 왜 나와?

지희준은 희죽거리며 말했다.

“네가 실패자인 이유는 네 부모도 실패자들일 테니까 말이지.”

저세상이 말릴 새도 없이 지희준을 향해 주먹을 날릴 말을 말이다.

“세상이 오빠!”

나도 모르게 오랜만에 저세상을 ‘오빠’라고 부르며 소리 질렀다.

“좋아! 다 죽이자!”

단아는 좋다고 웃으며 지희준과 그의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도윤이도 질 새라 함께 주먹을 들었다.

“얘, 얘들아?!”

당황하여 저세상과 단아, 도윤이를 말리려고 했지만.

“아야……!”

갑작스럽게 날아온 신발 한 짝에 그러지를 못했다.

나는 아래로 툭 떨어진 신발 한 짝을 물끄러미 보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리사, 괜찮니?”

“저 녀석들은 다른 곳에 가서 싸울 것이지 왜 근처에서 싸워서 피해를 주는 거람? 리사, 괜찮아?”

단예와 단이가 나를 걱정했지만 내 귀에는 두 사람의 걱정이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 머리를 맞춘 신발 한 짝을 들고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야! 지희준!”

지희준의 머리를 향해 신발 한 짝을 냅다 집어 던졌다.

지희준의 고개가 젖혀졌다. 저세상은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나 역시 지희준을 향해 달려가 발차기를 날렸다.

음, 어릴 적에도 이렇게 주먹질을 한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나는 그렇게 속 편하게 생각하며 지희준을 열심히 때렸다.

“오 마이 갓! 다들 지금 뭐하는 거예요?!”

잠시 뒤, 우리의 싸움은 제인 아일리에 의해 멈췄다.

쳇, 한 대 더 때릴 수 있었는데!

***

윤리사와 저세상이 패싸움의 한가운데 있던 그 시간.

“리오, 리타가…….”

“공략하러 들어갔던 던전을 완전히 망가뜨렸다고 합니다. 회복 불능의 상태로요.”

“그러니까 던전을 폐쇄해야한다는 말이군.”

“네, 그렇습니다.”

윤사해는 서차웅에게서 보고를 받는 중이었다.

윤사해가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암만 B급 던전이라고 해도 그렇지, 단 몇 시간 만에 공략을 끝내고 온 윤리오와 윤리타였다.

그런데 그 던전을 완전히 망가뜨려 버렸단다.

윤사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대체 누구를 닮은 건지.”

서차웅은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누가 봐도 윤사해의 아들들이 할 법한 행동들이었기 때문이다.

‘길드장님께서도 수 년 전에 던전 하나를 폐쇄시켰지 않았나?’

그리고 기억하기로는 폐쇄된 그 던전은 분명 윤사해의 딸인 윤리사가 갇혔던 던전으로 알고 있다.

어쨌거나 윤사해는 DMO에 어떤 식으로 보고를 올리면 좋을까, 머리를 감싸 쥐었다.

‘금이현 본부장, 요새 갱년기인지 기분이 오락가락하던데.’

말로 달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이었다.

‘어쩌면 좋담?’

윤사해가 그렇게 고민할 때였다. 우웅, 전화가 울렸다.

“음?”

화면에 뜬 이름은 제인 아일리.

윤리오와 윤리타의 영어 선생님이자 백시진의 아내가 된 여자였다.

‘무슨 일로 나한테 전화를?’

윤사해가 미간을 좁혔다가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리사 아버님?

윤사해는 그 말에 곧장 제인 아일리가 제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된 것을 알아차렸다.

“네, 선생님. 무슨 일입니까?”

-다름이 아니라 리사가…….

윤사해는 제인 아일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눈가를 덮었다.

“네, 곧 가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이번에 화면에 뜬 번호는 낯선 것이었다.

하지만.

‘설마, 세상이네 담임 선생님은 아니겠지?’

윤사해는 그런 생각으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불행하게도 맞아 떨어졌다.

-여보세요, 세상이 아버님?

“네, 그렇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세상이가…….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윤사해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네, 알겠습니다. 곧 찾아가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윤사해가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집어 삼켰다.

아무래도 집안의 소중한 두 막둥이가 고등학교 입학 첫 날부터 단단히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