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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92)화 (192/500)

192화. 나는 아직 어린아이(5)

“으악!”

“꺅!”

저세상은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생각했다. 피구란 것이 원래 이렇게 폭력적이었는지를.

주변에서 우후죽순 쓰러져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당황해하는 것도 잠시, 저세상은 제 뒤로 진 그림자에 미간을 좁혔다.

“한단예? 한단이?”

“단아가 세상이 오빠를 가장 마지막에 노릴 건가 봐요.”

“그래서 그때까지 세상이 형 뒤에 몸을 숨기려고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저세상이 빼액 소리 지르는 순간.

“죽어라, 저세상!”

공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저세상이 홱 고개를 숙였다. 한단예와 한단이 역시 간발의 차이로 고개를 숙이며 공을 피해냈다.

“세상이 오빠를 가장 마지막에 노릴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그래, 아니니까 내 옷 좀 놓지?”

저세상이 데구르르 굴러온 공을 주워들었다. 한단아를 향해 던져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야, 받아!”

저세상은 저를 괴롭히던 아이 중 한 명에게 공을 던졌다.

“어? 어엇?!”

아직 이름을 외우지 않은 아이가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결국, 그 아이는 저세상이 던진 공을 놓치고 말았다.

“후훗…….”

한단아가 공을 줍고 말았다. 저세상이 주춤 뒤로 물러나며 빼액 소리 질렀다.

“야! 받으라니까 놓치면 어떻게 해?!”

“누, 누가 놓치고 싶어서 놓친 줄 알아?! 비각성자 주제에 나한테 명령내리지 마!”

저세상은 억울했다.

‘누가 명령을 내렸다고?!’

하지만 지금은 한단아가 던지는 공을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데 공이 날아오지 않았다.

왜 그러나 했더니.

“야.”

“나?”

“그래, 너.”

한단아가 매섭게 두 눈을 부라리며 그 아이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저세상한테 뭐라고 했냐? 비각성자 주제에 명령내리지 말라고? 비각성자가 뭐 어때서?”

“뭐 어떻기는? 비각성자는 우리에 비해 약하잖아? 형이 그랬어! 우리는 진화한 사람들이고, 비각성자는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저세상은 저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그야, 한단아의 소중한 사람 중 한 명이 비각성자였으니까.

“그러니까 그 말은, 우리 할배가 진화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거네?”

“그, 그건…….”

남자아이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입은 나불거렸다.

“네 할아버지가 비각성자이면 그런 거겠지!”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한단아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희준이 큰일이 나 버렸네. 우리 셋째는 할아버지를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어쩔 수 없지. 스스로 무덤을 파버렸는걸?”

저세상 뒤로 몸을 숨기고 있던 한단예와 한단이가 싱긋 웃었다.

저세상은 질색하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만 말고 한단아 좀 말려 보지? 쟤 저러다 사고 칠 것 같은데.”

“저희도 그러고 싶은데요.”

한단예가 눈웃음을 지었다.

“우리 셋째, 눈 돌아가면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아무도 못 말릴 거예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비명이 들려왔다. 저세상이 던진 공을 놓쳤던 아이, 지희준의 비명이었다.

“악! 아악!”

“누가 쟤 좀 말려!”

“단아야, 그만!”

한단아는 지희준을 향해 몇 번이고 공을 던져댔다.

백도윤이 기겁하며 한단아를 말리려고 들었고, 윤리사는.

“단아야, 자.”

“땡큐.”

한단아가 놓친 공을 손수 그 손에 쥐여 주었다. 저세상은 멍하니 입을 벌릴 뿐이었다.

***

속이 다 시원하네!

나는 뿌듯하게 웃음을 지었다.

지희준이라고 했던가? 비각성자가 진화가 덜 된 존재들이라느니 뭐니 나불댔던 그 아이는 결국 양호실에 실려가고 말았다.

단아의 공에 쌍코피가 터졌기 때문이었다.

체육 선생님께서 놀라 단아를 다그쳤지만…….

“저는 피구를 한 것뿐인데요? 걔 죽은 애였어요? 어쩐지, 몇 번이고 공을 던져도 라인 밖으로 안 나가더라. 제가 오해했네요.”

……라고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단아의 말을 들은 아이들은 모두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보였다. 하긴, 나라도 그랬을 거다.

이미 죽어 라인 밖에 나가 있는 지희준을 향해 라인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몇 번이고 공을 던졌으니 말이다.

그래도 십 년 묶은 체증이 말끔히 내려간 기분이었다.

나는 체육 선생님께 혼이 나고 돌아오는 단아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단아야, 잘했어.”

“그치? 나 잘했지?”

“응!”

내 대답에 단아가 활짝 웃었다. 그때 도윤이가 슬그머니 옆에 다가와서는 말했다.

“그래도 너무했어. 희준이 걔네 집안에서 가만히 안 있을걸?”

그러면서 도윤이는 말했다. 지희준의 집안이 AMO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그 말에 단아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 봤자 우리 할배가 말발로 다 이길걸?”

또한, 한태극은 대한애국당의 당대표였다.

지희준의 집안이 AMO에 속해있는 어떤 인간과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태극에 비할 바는 아닐 게 분명했다.

어쨌든 우리는 피구 시합을 다시 재개했다.

“윤리사, 이쪽으로 공 던져!”

단아는 지희준을 다치게 한 패널티로 처음부터 죽은 상태로 시작하게 됐다.

나는 있는 힘껏 단아를 향해 공을 던졌다.

하지만.

“아, 저세상!”

저세상이 살짝 뛰어올라 내가 던진 공을 잡아 버렸다.

저세상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나를 향해 공을 던져 버렸다.

쐐액, 날아오는 공에 나는 도윤이의 뒤로 몸을 피했다.

“리사?!”

“미안, 도윤아.”

도윤이는 그렇게 나대신 저세상의 공을 맞고는 장렬히 전사했다. 나는 도윤이의 몸을 맞고 떨어진 공을 주워들었다.

“저세상, 감히 겁도 없이 나를 죽이려고 했겠다?”

“딱히 윤리사, 너를 죽이려던 건 아니야. 손이 빠져서 너한테 가 버린 것뿐이지.”

“그래?”

나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저세상을 향해 공을 던지는 척.

“도윤아, 받아!”

도윤이에게 공을 던졌다. 내가 던진 공을 겨우 받은 도윤이가 곧장 단아를 향해 공을 던졌다.

우리는 그렇게 공을 사이좋게 돌리면서 4반 친구들을 몰았다.

하지만 그러던 중에.

“저세상, 이 망할 자식아!”

저세상이 공을 가로채 버렸다.

우리들의 몰이에 어쩔 줄 몰라하던 4반 친구들이 와와, 환호성을 내질렀다.

저세상의 이름을 연호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저세상을 괴롭히던 무리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상황이 역전됐다.

나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다른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

저세상은 씨익 웃고는 다시 한번 더 나를 향해 공을 내던졌다.

저 망할 자식이!

“왜 자꾸 나를 노리는 거야?!”

“이번에도 손이 빠졌어.”

나는 얼굴을 와락 구기며 몸을 숙였고, 이번에도 애꿎은 친구가 나 대신 공을 맞고는 아웃당했다.

나는 데구르르 굴러온 공을 주워 들고는 저세상을 노려봤다.

“친구들의 복수를 해 주마, 저세상.”

“기꺼이.”

저세상이 어디 한 번 던져 볼 테면 던져 보라는 듯이 웃었다. 얄밉기 그지없는 미소에 나는 있는 힘껏 공을 내던졌다.

“아웃! 4반 공!”

내가 던진 공은 홈런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야! 윤리사! 어디로 공을 던지는 거야?!”

“미안.”

나는 단아에게 짧게 사과한 후 곧장 라인의 끝에 섰다. 이번에도 공을 잡은 사람이 저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우우! 저세상! 치사하게 윤리사만 노리냐?! 다른 애들도 노려라!”

“단아야! 다른 애들도 노리면 안 되지! 우리 같은 팀인걸?!”

단아와 도윤이가 만담을 시작했다. 지금이 전쟁의, 아니. 피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중만 아니었더라면 웃고 떠들었을 테지만.

“흐아악!”

나는 저세상이 던진 공을 피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진짜로 망할 주인공님이셨다.

***

결국, 저세상은 윤리사를 아웃시키는데 성공했다.

윤리사를 맞추고 말겠다는 일념만으로 공을 던졌던 저세상은 빠르게 피구에서 흥미를 잃었다.

그렇기에 저세상은 제게 굴러온 공을 다른 아이에게 넘겨주었다.

“야, 받아.”

“네가 주운 공이잖아?”

“나는 이제 맞출 사람 없어.”

저세상이 심드렁한 얼굴을 보였다. 저세상에게 공을 건네받은 아이는 그를 괴롭혔던 아이였다.

아이는 잠시 건네받은 공을 빤히 바라보다가 저세상에게 다시 돌려줬다. 그에 저세상이 미간을 좁혔다.

“왜, 비각성자가 건네준 공이라서 싫어?”

“그것도 있고, 네가 주운 공이잖아? 네가 던져. 저기 맞출 애들 많잖아.”

아이가 3반을 흘긋거렸다. 저세상은 말없이 아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공을 내던졌다.

그렇지만.

“앗싸!”

이번에는 정말로 손에서 공이 빠지고 말았다.

후다닥, 저세상이 놓친 공을 주운 3반 아이가 윤리사에게 공을 던져주었다.

“땡큐! 자, 그럼!”

“야, 윤리사!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줘!”

윤리사는 저세상의 애원을 못들은 척 씨익 웃었다.

“죽어라, 저세상!”

삐익, 휘슬이 불렀고.

“저세상, 아웃!”

저세상은 장렬히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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