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나는 아직 어린아이(4)
나는 교실로 들어가는 친구들을 피해 단예와 함께 으슥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단예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저세상이 왜 저 꼴인데? 그 자식들, 저세상이 자기들보다 두 살 많다는 거 잊은 거 아니야?”
“리사, 이 세상은 나이가 전부인 세상이 아니잖아?”
나는 입술을 꾹 닫았다.
단예의 말에서 틀린 구석이라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은 나이가 많다고 전부인 세상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각성자인가, 아닌가.
그에 더 파고들어 가면 얼마나 강한 각성자인가, 그렇지 않은가로 나누어지는 세상이었다.
“그 녀석들은 저세상이 자신들보다 형인 것에 관심 없어. 그저, 비각성자인 게 중요하지.”
“그래서 괴롭히고 있는 거라고?”
내가 이해가 가지 않다는 얼굴을 보이자 단예가 말했다.
“원래 이런 세상이잖아? 앞으로 더 심해질 거야.”
“하지만 비나리 고등학교는…….”
“각성자든 비각성자든 차별하지 않는다고 했지.”
교칙으로 정해진 사항이지만, 원래 그런 건 지키는 학생이 몇 없었다.
단예나 단이 같은 모범생이라면 몰라도 말이지.
그러니까, 나 역시 교칙을 잘 지키는 학생은 아니란 거였다.
“단예야, 친구들끼리의 장난으로 징계 위원회가 열리지는 않겠지?”
“……리사,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은 안 돼.”
“단예야,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내가 친구를 때리는 그런 못된 아이로 보여?”
단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친구를 때리는 그런 못된 아이로 보이나 보다.
크흠, 나는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어쨌든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리사.”
단예가 내 손을 꼭 끌어 잡았다.
“그냥 윤사해 길드장님한테 말하는 게 어떨까?”
“아빠한테?”
“응, 윤사해 길드장님께서 나서면 학교 선생님들이 세상이 오빠한테 더 신경 쓸 거야.”
“그것만으로는 안 돼.”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세상뿐만 아니라, 저세상과 함께 학교에 들어온 비각성자 친구들이 있잖아.”
비나리 고등학교에 입학한 비각성자는 다섯 명이라고 했다.
그 다섯 명 모두가 저세상과 같은 처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비각성자 친구들도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해. 아니, 그러기 전에 그 녀석들 인식을 고쳐 줘야지.”
저세상을 괴롭히고 있는, 그 못된 자식들의 인식을 말이다.
“리사,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폭력으로 해결할 생각은 없어, 단예야. 그럴 힘도 없고 말이지.”
물론, 단아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저세상의 일을 알려 주면 금방 사태가 해결될 거다.
단아한테는 말 그대로 ‘힘’이 있으니까 말이지.
하지만, 단예의 말대로 폭력으로 상황을 해결하려는 건 좋지 못했다.
그러니까.
‘머리를 쓰자, 윤리사. 비각성자를 괴롭히는 것만큼 어리석고 멍청한 짓은 없다는 걸 모두한테 알려 주는 거야.’
그렇게 비각성자를 괴롭히는 녀석들이 욕을 먹게 만드는 거다.
강자가 약자를 괴롭힌다는 인식은 좋지 않다.
동등한 위치에서, 되도 않는 힘을 부린다고 인식이 되게끔 만드는 게 좋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저세상과 같은 반이면 좋으련만, 그게 아니니 방법이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골똘히 머리를 굴리는데 단이가 우리를 찾아왔다.
“단예야, 리사야. 여기 있었어? 곧 수업 시작할 거야.”
“알려줘서 고마워, 첫째야. 리사, 수업 들으러 올라가자.”
“응.”
좋아, 생각은 나중에 하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잖아? 생각하다 보면 방법이 생각나겠지.
그렇게 나는 단예와 단이와 함께 교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두 사람이 4반으로 올라가기 전.
“단예야, 단이야.”
나는 두 사람을 붙들러 세우고는 말했다.
“저세상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세상을 향한 괴롭힘이 심해지면 그 망할 녀석들 좀 말려 줘. 이렇게 부탁할게.”
“걱정 마, 리사.”
“그래, 리사. 네가 그렇게 부탁하지 않아도 첫째랑 내가 알아서 잘 중재하도록 할게.”
“응, 두 사람만 믿을게.”
나는 애써 웃음을 짓고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단예랑 단이도 내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4반으로 올라갔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긴 건 단아였다.
“윤리사, 그거 들었어? 오늘 정상 수업 한대! 완전 끔찍해!”
“그럴 줄 알고 체육복을 들고 왔지. 단아는?”
“나도 한단예랑 한단이가 체육복 챙기라고 해서 챙기기는 했어. 하지만 정상 수업이라니!”
단아가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물었다.
“윤리사, 우리 그냥 학교 쨀래?”
“단아야…….”
한태극이 들었다면 뒷목을 잡았을 소리였다.
“그런데 단아야. 도윤이는?”
“백도윤은 담임 선생님이 불러서 교무실에 갔어. 곧 올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교실의 앞문이 열렸다. 도윤이였다.
“리사, 단예랑 이야기는 잘 끝내고 왔어?”
“응, 도윤아. 교무실 같이 못가서 미안해. 제인 선생님이 무슨 일로 부른 거래?”
“딱히 별 일은 아니고.”
도윤이가 칠판을 탕탕 두드리고는 친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얘들아, 오늘 체육 수업은 4반이랑 합동으로 진행할 거래!”
“4반이라면 한단예랑 한단이가 있는 곳이지?”
“그리고 저세상도 있지.”
단아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왜 하필 4반이랑 합동 수업이래? 그것도 고등학생이 된 첫 날에!”
심통이 잔뜩 난 모습이었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단아야, 좋게 생각하자. 4반이랑 합동 수업이면 이것저것 많이 할 수 있잖아.”
“맞아, 단아야.”
도윤이가 자리에 앉으며 단아에게 말했다.
“체육 선생님은 우리 반이랑 4반, 피구로 승부를 보게 하려는 것 같았어. 싫으면 축구.”
“피구가 좋아!”
단아가 언제 두 뺨을 부풀렸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단예랑 한단이, 그리고 저세상. 내가 꼭 맞춰 주겠어.”
“단아야, 힘 조절해야 하는 거 알지? 네가 던진 공 잘못 맞으면 뼈 부러져.”
단아는 신체 강화 계열의 A급 각성자였다. 각성자가 되기 전에도 힘 하나는 장사인 단아였다.
도윤이의 걱정에 단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걱정하지 마, 백도윤. 내가 어련히 알아서 힘 조절할 테니까!”
도윤이가 미심쩍다는 얼굴을 보였지만.
“뭐야, 그 얼굴은? 지금 나 못 믿는 거야?”
“아니! 믿어! 믿고말고!”
단아의 힘을 두려워하는 도윤이는 깨갱 꼬리를 내렸다.
나는 사이좋은 친구들의 모습에 눈웃음을 지었다.
‘그보다 4반이랑 합동 수업이라니.’
나는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잘하면 저세상을 괴롭히는 그 망할 녀석들한테 엿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줄 수 있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줘야 했다.
나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윤리사, 갑자기 왜 그렇게 웃어?”
“응? 내가 뭐?”
“빌런의 웃음을 보는 것 같았어.”
단아의 말에 나는 입가를 만지작거리고는 예쁘장하게 웃음을 보였다.
“지금은 어때, 단아야?”
“예뻐.”
고민도 없이 대답하는 단아에게 나는 활짝 웃어 주었다.
그렇게 다가온 3교시, 체육 시간.
“한단예, 한단이! 그리고 저세상! 내가 꼭 죽이고 말겠어!”
“단아야, 진짜로 죽이면 안 되는 거 알지?”
우리는 4반과 피구 시합을 하게 됐다.
***
저세상은 지금 이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먼저, 자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윤리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윤리사, 저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멀리서 봐도 아주 사악하지 그지없는 미소를 입가에 걸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세상이 형, 고기 방패 좀 서 주면 안 될까?”
“맞아, 어차피 곧 죽을 것 같은데. 우리 좀 지켜 주고 죽어 줘.”
자신이 비각성자인 것을 알고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걸어대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들이었다.
한단예와 한단이가 저세상을 흘긋거렸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곧장 나서겠다는 몸짓. 그에 저세상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나서지 말라는 의미였다.
한단예와 한단이는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가 홱 몸을 숙였다.
왜 그러나 했더니.
“이런, 미친!”
묵직한 공이 날아오고 있었다.
저세상이 황급히 공을 피해 몸을 숙였고.
“억……!”
저세상을 놀리던 남자 아이가 공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아 버렸다. 스킬 사용이 불가능한 피구 시합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세상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공을 던진 사람을 쳐다봤다.
“아, 쏘리. 저세상 맞추려고 했는데 손이 미끄러졌나 봐. 진짜 미안.”
한단아가 태연한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그 옆에서 윤리사가 한단아에게 무엇이라 속닥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단아가 그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가 싶더니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윤리사와 똑같은, 아주 사악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말이다.
저세상이 침을 꿀꺽 삼켰고.
“코피…! 코피 나잖아, 망할……!”
한단아에게 정통으로 공을 맞았던 남자 아이가 발광하기 시작했다. 한단아는 태연했다.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보다 공, 안 던질 거야? 안 던질 거면 우리한테 넘겨 주지?”
그 소리에 발광하는 남자 아이의 친구가 냉큼 공을 집어 들었다.
“잠깐!”
저세상이 황급히 그 아이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공은 날아간 뒤였다. 그리고 그 공은.
“나이스.”
한단아의 품에 정확히 안착했다.
한단아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저세상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한단예와 한단이 역시 긴장감 어린 얼굴로 제 쌍둥이 막내 동생을 쳐다봤다.
한단아는 가볍게 공을 두어 번 튕기고는.
“죽어라!”
있는 힘껏 공을 내던졌다.
정확히, 윤리사가 가리킨 사람을 향해서.
“으악!”
바야흐로, 애들 싸움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