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나는 아직 어린아이(2)
“앗싸! 윤리사랑 같은 반!”
“그리고 도윤이랑도 같은 반이지.”
단이의 말에 단아가 대놓고 싫다는 얼굴을 보였다.
“단아야, 나랑 같은 반인 게 그렇게 싫어?”
“응, 싫어.”
고민도 않고 답하는 목소리에 도윤이가 상처 받은 얼굴을 보였다. 그 모습이 꼭 도토리를 잃어버린 다람쥐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나는 말했다.
“나는 좋아! 중학생 때는 3년 내내 도윤이랑 같은 반이 못 됐으니까!”
도윤이가 내 말에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 순간에 웃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세상이 오빠는 저와 첫째랑 같은 반이네요.”
“잘 부탁드려요, 세상이 형.”
저세상이었다.
단예와 단이의 살가운 인사에 저세상이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나도 잘 부탁해.”
어쨌든, 우리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도윤이, 단아가 배정된 1학년 3반은 2층. 저세상과 단예, 단이가 배정된 1학년 4반은 3층인지라 도중에 갈라지게 됐지마는 말이다.
“나중에 봐!”
나는 저세상과 단예와 단이에게 인사하고는 1학년 3반의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윤리사, 나랑 앉아!”
“그래, 단아야!”
도윤이는 우리 앞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가방을 푸는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1학년 3반 친구들! 담임을 맡게 된 제인 아일리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얼떨결에 인사했지만 나는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인 아일리가 담임이라니!
나는 황급히 도윤이를 쳐다봤다. 도윤이도 놀란 눈을 보이고 있었다. 제인 아일리가 제 담임이 될 줄 몰랐던 모양이다.
제인 아일리가 그런 도윤이를 짓궂게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거기, 백도윤 학생?”
“네? 네!”
“일어나서 자기 소개 해볼까요?”
“자, 자기 소개요?”
도윤이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그때 나와 단아가 약속이라도 한 듯 손뼉을 치며 소리 질렀다.
“우와아!”
“와아아!”
도윤이의 귓불이 붉게 물들었다.
도윤이가 제발 그만하라는 듯한 눈빛을 우리에게 보내고는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백도윤이라고 합니다. 빛나리 중학교 출신으로 A급 각성자입니다.”
앗, 각성자 등급도 밝혀야 하는 거야? 나는 당황하여 제인 아일리를 쳐다봤다.
하지만 제인 아일리는 웃는 낯으로 잘했다며 손뼉을 쳤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그다음은 도윤이 옆에 있는 우리 리사가 자기 소개 해볼까요?”
내게 바톤을 넘겨버렸다.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바톤을 넘겨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윤리사라고 합니다. 빛나리 중학교 출신으로…….”
나는 목소리의 끝을 흐렸다. S급 각성자라고 밝히는 것이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S급 각성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고민하다가 얼버무리기로 했다.
“위로 잘생긴 오빠가 두 명 있습니다! 이상, 잘 부탁드립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단아가 벌떡 일어났다.
“나는 한단아! 백도윤보다 더 강한 A급 각성자!”
짧고 강렬한 인사였다. 단아의 말을 끝으로 그 옆에 있던 이름 모를 친구가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저는…….”
그 친구가 자기 소개를 끝내면 또 다른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1학년 3반의 자기 소개는 그렇게 23명의 모든 친구가 자신의 각성 여부와 함께 이름을 밝힌 후에 끝을 맺었다.
그래, 그렇게 조례가 끝난 줄 알았는데 말이지.
“서로 인사 나누는 건 나중에 하고! 우리 중요한 일이 있어요! 임시 반장과 부반장을 뽑아야 하는데 혹시, 하고 싶은 친구 있을까요?”
새학년 새학기의 중요 행사가 남아 있었다.
손을 드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 나 역시 마찬 가지.
제인 아일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싱긋 웃고는 말했다.
“백도윤.”
“네?”
“그리고 윤리사.”
“네.”
“두 사람이 임시 반장과 부반장을 맡아줬으면 하네요. 괜찮죠?”
당연히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도윤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선생님.”
그야, 눈앞의 사람은 암만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우리 담임 선생님이었다.
내 생활 기록부를 책임져 줄 사람이라는 말씀.
이 세계도 생기부가 중요한가 싶었지만 뭐든 챙기면 좋을 일이었다. 그렇게 조례가 완전히 끝나려는 찰나에 방송이 울렸다.
―곧 비나리 고등학교의 47회 입학식이 강당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학생 여러분께서는…….
우웅, 울리는 방송에 나를 비롯한 모든 신입생이 잔뜩 기대에 부푼 얼굴을 보였다.
“자자, 다들 들었죠? 서로 친해지는 건 나중에 하고 강당으로 이동합시다!”
“네에!”
우리는 서로 무리를 지어 제인 아일리의 뒤를 따랐다.
나는 오른쪽에 단아를, 왼쪽에는 도윤이를 끼고서 강당으로 향했다.
도윤이한테 임시 부반장일 뿐이지만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하려는데 단아가 입을 열었다.
“백도윤, 나 부탁이 있어.”
“뭔데, 단아야?”
“반장 자리 나한테 내 놔.”
“응……?”
도윤이가 크게 당황한 얼굴을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아는 한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윤리사가 부반장이라면 당연히 내가 반장이 되어야 해. 중학생 때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내 놔!”
참고로 내가 반장이었고 단아가 부반장이었다. 우리 두 사람만 다른 반에 배정돼서 그렇게 된 거였는데 말이지.
어쨌든 단아의 말에 도윤이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단아야. 반장 자리는 줄 수 없을 것 같아. 담임 선생님이 이미 나랑 리사를 반장이랑 부반장으로 정해 버린걸?”
“그러니까 포기하라는 거잖아!”
단아가 주먹을 치켜 들었다. 도윤이가 그에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도윤이는 단아의 주먹이 무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싫어! 리사랑 같이 학급 임원 일을 하고 싶으면 나중에 해!”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단아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나중에 반장 투표에서 정정당당하게 결투다!”
나는 옅게 미소를 그릴 뿐이었다.
도윤이와 단아한테는 미안하지만 반장 투표에 나갈 생각 따위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했다가는 난리 나겠지.’
그렇기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기로 했다. 강당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입도 벙긋 하지 않았다.
***
아이들이 모두 각자 할 일을 하러 떠나고 텅 빈 집안, 윤사해는 장천의를 만나러 나갈 준비 중이었다.
우웅, 진동이 울린 건 그때였다.
윤사해가 휴대폰 화면 위로 떠오른 이름에 미간을 좁혔다. 그것도 잠시, 그는 전화를 받아 들었다.
“에일린?”
-안녕, 자기!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사해가 짧게 혀를 차고는 말했다.
“무슨 일이야?”
-우리 딸, 오늘 고등학교 입학하는 날이잖아. 생각나서 전화 해봤지.
“그런 거면 내가 아니라 리사에게 전화를 할 것이지.”
-자기 같으면 할 수 있겠어?
태어나자마자 버리듯 윤사해에게 보낸 아이였다. 윤사해가 그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금에라도 애들이랑 친하게 지내보도록 노력해 보지 그래?”
-싫어, 나는 이대로가 좋거든.
7년 전, 에일린 리는 윤사해의 도움으로 저주가 악화되는 것을 막게 됐다. 그뿐만이 아니라 ‘애정’이란 감정을 온전히 느끼게 됐다.
저주가 풀린 거나 다름없는 몸.
하지만 에일린 리는 아이들 앞에 저를 내보일 생각이 없었다. 그러기에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응?
“리사 고등학교 입학만으로 전화한 거 아니잖아.”
-자기는 어쩜 그렇게 예쁜 구석이 없어?
“내가 너한테 예쁜 모습 보여서 뭐 하겠다고.”
심드렁한 목소리에 에일린 리가 웃음을 터트렸다. 곧 그녀는 윤사해에게 전화를 건 본론을 꺼냈다.
-곧 장천의 만나러 나갈 거지?
“그걸 어떻게…….”
윤사해가 놀란 눈을 보였다가 이내 미간을 좁혔다.
에일린 리, 그녀는 자신의 전 부인이기 이전에 각성자특별관리기국 ASMO의 워싱턴 지부장이었다.
원한다면 국내 정세 따위는 손쉽게 파악할 수 있을 위치.
하지만.
“에일린, 네 위치를 가지고 남의 뒷조사는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장천의와의 만남은 국내 정세에 큰 변화를 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야, 딸아이와 아들이나 다름없는 아이에게 줄 고등학교 입학 선물을 구입하러 가는 거였기 때문이다.
윤사해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에일린 리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오해하지 마, 자기. 뒷조사 한 거 아니니까!
“그럼?”
-자기도 알다시피 장천의, 그 양반이 워낙에 자주 돌아다녀야지!
더욱이 무슨 일인지 며칠 전 남들 몰래 미국에 방문했었다면서 에일린 리는 덧붙여 말했다.
-우리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여우에게 간을 홀라당 빼앗길까 봐 걱정돼서 전화한 거야!
믿을 수가 있어야지, 원.
윤사해가 차오르는 말을 꾹 집어 삼키고는 말했다.
“그것뿐이라면 그만 전화를 끊었으면 하는데. 장천의 회장과의 약속 시간이 다 됐거든.”
-아아, 잠깐만!
에일린 리가 다급하게 윤사해를 붙잡았다.
-자기 집으로 선물 보내놨어. 나중에 확인해.
“선물?”
무슨 선물이냐고 묻기도 전에 에일린 리가 말했다.
-그럼, 끊는다!
“잠깐만, 린……!”
뚝, 전화가 끊겼다. 윤사해는 미간을 좁히고는 에일린 리에게 다시 전화를 걸고자 했다.
하지만 삐삐, 소리 샘으로 연결된다는 안내음만 흘러나왔다.
결국, 윤사해는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고는 에일린 리에게 다시 전화를 거는 것을 포기했다.
“젠장.”
에일린 리가 도대체 무슨 선물을 보낸 건지 걱정이 되는 윤사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