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나는 아직 어린아이(1)
7년이 지났다.
그러니까 윤사해가 에일린 리와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가 돌아온 지 7년이 지났다는 거다.
그 시간 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윤리오와 윤리타가 이매망량에 입단했다.
청해진은 한 번 시험에 떨어졌다가 그 해의 겨울에 재시험을 통해 이매망량에 입단하게 됐다.
청해진의 누나이자 청(淸) 가문의 가주가 됐던 청해솔은 가문의 대내외 업무를 모두 전담하여 처리 중에 있다.
원래 가문의 대외 업무만 맡아서 처리한다고 했었는데 말이지.
돌아가는 꼴이 아주 가관이었던 모양인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가문의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게 됐다.
그녀의 보좌관인 청정하를 따라간 거주자, 가람은 어떻게 됐냐고?
‘뭐야, 너! 살아 있었던 거야?!’
5년 전, 한 결혼식에서 윤사해와 계약을 맺고 있는 거주자인 랑야에 의해 그 정체가 완전히 까발려지게 됐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가람은 거주자인 것이 밝혀져 청(淸) 가문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내게 됐다는 거다.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쩌나 했지만, 청해솔이 슬기롭게 행동했다.
자신이 가람의 계약자임을 세간에 밝힌 거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도.
어쨌든, 그렇게 가람은 청(淸)의 수호자라는 대외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아참, 5년 전의 결혼식이 누구의 결혼식이냐면 바로 류화홍의 결혼식이었다.
이매망량의 길드원이자 내 훌륭한 이동 수단인 류화홍 말이다.
상대는…….
음, 이건 나중에 말하자.
그리고 한단이, 한단예, 한단아. 내 오랜 친구인 세쌍둥이의 할아버지인 한태극이 대한애국당의 당 대표가 됐다.
내년에 열리는 대선을 노린다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각성, 그 후』에서 한태극은 대통령이 아닌, 대한애국당의 당 대표라고 계속 나왔었으니까.
도윤이는 잘 지내고 있다. 도윤이의 아버지이자 윤사해의 오랜 친구인 백시준은 1년 전 한국을 떠났지만 말이다.
이민을 갔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회사 업무 차 한국을 떠난 거라고 한다.
곧 돌아올 거라는데 도윤이가 지금 많이 기대 중이다.
그리고 나는…….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생각이 끊겼다. 이른 아침에 나를 찾아온 손님은 뻔했다.
“윤리사, 아직 멀었어?”
저세상.
『각성, 그 후』의 주인공님이시자 우리 집안의 막내 되는 녀석이었다.
나이로 치면 내가 막내지만, 제일 마지막에 우리 집안에 들어왔으니 저 녀석이 막내였다.
“야! 윤리사!! 이러다 학교 늦어! 입학식 첫날부터 지각할 생각은 아니지?”
“지금 나가!”
한국인 아니랄까 봐, 성질 한번 급하기는!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구기고는 문을 열어젖혔다. 순간 보이는 얼굴에 흠칫, 몸을 떨었지만 말이다.
저세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새삼스레 네가 너무 못생겨서.”
“너도 못생겼거든?”
저세상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그에 나는 거실을 향해 빼액 소리를 질렀다.
“리오 오빠, 리타 오빠! 저세상이 나보고 못생겼대!”
나는 중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저세상에게 ‘오빠’ 소리 붙이는 걸 그만뒀다.
그러니까 저세상과 내가 꼭 친남매라도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보는 친구들도 몇 있었고 말이지.
어쨌든 내 말에 저세상이 말했다.
“바보야, 형들 길드에 나간 지 오래거든?”
“누구보고 바보래? 비나리 고등학교 입학 고사 꼴등이 누구더라?”
저세상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윤리오와 윤리타가 졸업했던 명문 고등학교, 비나리 고등학교는 1년 전 비각성자도 입학할 수 있도록 교내 규정을 바꿨다.
그 덕분에 저세상도 비나리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됐는데…….
‘비나리 고등학교가 교내 규정을 바꾸는데 윤사해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이 됐다고 했었지?’
하여튼 간에 자식 바보 윤사해였다. 참고로 윤사해는 여전했다.
40대에 접어든 나이인데도 여전히 꽃같이 아름다웠고 강철과도 같이 단단했다.
뭐가 단단했냐고?
“리사, 세상아. 학교 가니?”
몸이.
반쯤 풀린 가운 안으로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근육이 보였다. 나는 잠시 넋을 놓았다가 황급히 이성을 챙긴 후 윤사해에게 물었다.
“아빠, 아직 출근 안 했어?”
아침 식사 때 윤리오와 윤리타가 찾지를 않아서 진작 이매망량에 나간 줄 알았다.
요 며칠 야근이 일상이었던 윤사해였으니까 말이지.
내 물음에 윤사해가 피곤한 낯을 문지르고는 말했다.
“오늘은 오후에 출근하기로 했단다. 아홉 시에 장천의 회장과 만나기로 했어서.”
아홉 시에 약속이라니! 장천의 그 양반은 왜 그렇게 이른 시간에 약속을 잡았대?
장천의, 이름 석 자에 저세상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예나 지금이나 장천의를 싫어하는 주인공님이셨다.
“그보다 오늘 입학식이지? 서 비서가 아마 외빈으로 축하 인사를 할 테니 만나면 알은체 좀 해주렴.”
“응!”
“네.”
서차웅은 변함없이 윤사해의 곁을 충실하게 보좌하는 중이었다.
가끔, 그가 너무 구르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했지만…….
어쩌겠어? 정 못 견디겠다 싶으면 알아서 그만두겠지.
어쨌든 나와 저세상은 활짝 웃으며 윤사해에게 인사했다.
“그럼, 아빠! 저세상이랑 같이 학교 다녀올게!”
“그래, 리사. 찻길 조심하고.”
“이상한 사람도 조심하고!”
윤사해는 나와 저세상이 중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매일 저 소리였다.
“걱정하지 마, 아빠! 내가 아직도 어린 아이인 줄 알아?!”
“아빠 눈에는 여전히 어린 아이인걸?”
“이렇게 다 큰 어린 아이가 어디 있다고 그래!”
나는 윤사해를 향해 짓궂게 웃어주고는 그대로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저세상이 나를 따라 집을 나서기 전에 윤사해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녀올게요, 아저씨.”
“그래, 세상아. 리사랑 사이좋게 학교 다녀오렴.”
“네.”
저세상이 우리 가족이 된 지, 10년이 다 되었지만 그는 윤사해를 꼬박꼬박 ‘아저씨’라고 불렀다.
실수로라도 ‘아빠’라고 부를 만도 하건만 저세상은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
“세상이 오빠.”
“왜.”
“그냥 불러봤어.”
마음 같아서는 윤사해에게 ‘아빠’라고 부를 생각이 없냐고 묻고 싶지만 말이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질문은 절대로 던져서는 안 되는 질문이라는 느낌이 들어 매번 입 안으로 삼키는 나였다.
저세상이 내 말에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실없기는.”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때,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키 큰 미남을 발견했다.
“도윤이다! 도윤아!”
“리사! 세상이 형!”
백도윤, 나의 어릴 적 친구인 그는 내 기대대로 아주 보기 좋은 훌륭한 미남으로 자랐다.
도윤이가 나와 저세상을 보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리사도 세상이 형도 교복 잘 어울린다!”
“도윤이 너도 엄청 잘 어울려!”
“그래? 다행이다! 삼촌이 교복을 한 치수 크게 맞춰줘서 이상하면 어쩌나 했어.”
도윤이의 삼촌, 백시진은 얼마 전 제인 아일리와 결혼식을 올렸다.
백시준이 한국에 돌아오면 결혼식을 올릴 거라니 뭐니 하더니만 속도위반으로 그렇게 되고 말았다.
어쨌든 간에!
“하긴, 도윤이는 이제 열일곱 살이니까! 내 옆에 있는 열아홉 살 어르신과는 달리 계속 크겠지?”
“윤리사, 누구 보고 어르신이라는 거야?”
“누구기는? 저세상, 너보고 하는 소리이지!”
나는 저세상을 향해 혀를 낼름 내밀어주고는 다리를 움직였다.
“야, 윤리사. 같이 가.”
“나랑 같이 가고 싶으면 부지런히 따라오지, 저세상?”
“하지만, 리사. 네 다리가 너무 길어서 따라잡기 힘든걸?”
“도윤아, 지금 나 놀리는 거야?”
내 키는 160cm를 겨우 넘는 키였다. 윤사해도 에일린 리도 멀대같이 큰 키인데 나는 왜 이렇게 작은지 모를 일이었다.
아, 단아 앞에서는 키 이야기는 금물이었다.
단아는 160cm도 되지 않는, 아니. 150cm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키 크겠다고 별짓을 다 했는데 결국 크지 않은 단아였다.
어쨌든 우리는 사이좋게 비나리 고등학교에 도착했다.
교문 위에는 신입생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 또 다른 친구들이 있었다.
한태극네 세쌍둥이 손주들, 한단이와 한단예, 그리고 한단아였다.
세 친구들 중 단아가 나와 가장 먼저 눈이 마주쳤다.
“윤리사다! 야! 윤리사!”
“단아야, 나랑 세상이 형은 안 보이는 거야?”
“응! 안 보여!”
단아가 단호하게 대답해주고는 후다닥 달려와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나보다 머리 한 뼘은 작은지라 내가 단아를 안은 꼴이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단아는 나를 보고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윤리사, 너 뭐야? 교복 왜 이렇게 잘 어울려?”
“단아도 교복 잘 어울리는걸?”
“거짓말하지 마!”
단아가 빼액 소리 질렀다. 단아는 치마가 아닌 바지를 착용 중이었다. 그게 꽤나 잘 어울렸다. 짧게 자른 단발 때문인지도 몰랐다.
단아의 뒤로 단예와 단이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리사야, 안녕? 세상이 오빠도 안녕하세요? 도윤이랑 같이 등교했나 봐요.”
“백도윤이랑 같이 등교한 지 얼마나 오래됐는데 새삼스럽게 뭘 물어보는 거야?”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단예가 예쁘장하게 웃었다. 올해로 열일곱 살이 된 단예는 한 송이 꽃과도 같이 아름다웠다.
지금도 그랬다.
등교 중인 윗학년들을 비롯해, 우리와 똑같은 신입생 모두 단예를 흘긋거리며 뺨을 붉히고 있었다.
음, 아무래도 단예한테 날파리가 많이 꼬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단이는…….
“리사 오랜만이야. 교복 무척 잘 어울려.”
눈부셨다.
얘도 왜 이렇게 예쁜 거야?!
나를 제외하고 모두 선남선녀가 된 기분이었다. 아, 물론 저세상도 제외하고 말이지!
어쨌든 우리 모두는 정답게 인사를 나눈 후 비나리 고등학교 교문을 넘어섰다.
바야흐로, 열일곱.
『각성, 그 후』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1년 전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