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돌아와요, 아빠!(4)
“찾았대!”
“응?”
“아버지 찾았다고!”
윤리타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리사, 세상아!”
그 외침에 나와 저세상은 과장되게 안도했다.
“우와, 다행이다!”
“아저씨라면 무사할 줄 알았어요!”
그야, 윤사해가 구출되는 소식을 진작 알았기 때문이었다.
류화홍과 사야가 윤사해와 에일린 리를 발견하는 것을 봤고, 나는 그 소식을 저세상에게 전해 줬다.
윤리오와 윤리타한테는 말할 수 없었다. 말했다가는 잔소리를 얻어먹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잔소리도 그냥 잔소리가 아니지.’
장장 1시간은 기본인 잔소리었다.
윤리오와 윤리타가 우리를 보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상아.”
“네, 리오 형.”
“그런데 세상이 네가 아버지가 무사하다는 건 어떻게 알아? 그런 말은 안 했는데……?”
저세상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모습을 보고서 윤리오가 나를 불렀다.
“윤리사.”
아주 나지막하게 말이다. 나는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야! 나 스킬 사용한 전 없어! 그러니까 세상이 오빠는 그거지!”
뭐, 뭐라고 변명해야하지?
두 눈을 데굴 굴리는데 저세상이 다급하게 외쳤다.
“당연히 아저씨라면 무사할 줄 알았거든요! 아저씨잖아요!”
그 말에 윤리오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뒀다.
“하긴, 그렇지. 우리 아빠니까.”
휴우, 다행이다.
나는 나중에 윤리오와 윤리타 몰래 저세상에게 딱밤을 때리기로 다짐하며 윤리오에게 물었다.
“아빠한테 다른 말은 없었어?”
“있었지.”
윤리오가 씨익 웃었다.
“일주일 후에 귀국하신대. 늦어도 보름 안으로는 귀국하신다고 했어.”
“……정말?”
“응, 정말.”
환하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윤사해가 드디어 돌아온다니! 하지만 나는 이내 불퉁하게 입술을 씰룩였다.
“나랑도 통화하지.”
“아버지가 많이 바쁘신 것 같았어. 그래도 리사.”
윤리오가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아버지 곧 오신다니까 나가자.”
“응……?”
나가자니, 어디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리오가 그런 나를 보고는 씨익 웃었다.
“백화점.”
문득, 윤리오와 윤리타가 나누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윤사해를 황제 감금해 버리겠다는 이야기였지?
아무래도 윤리오는 윤사해를 정말 황제 감금시킬 생각인가 보다.
저세상이 윤리오의 말에 질린 얼굴을 보였고, 나는…….
“응!”
활짝 웃었다.
***
“윤사해 길드장, 무사히 발견했다고 하네?”
“그렇습니까? 아이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었을 텐데 다행이군요.”
CW의 주인, 장천의가 최설윤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윤사해의 실종 소식은 정부의 고위층을 비롯, 주요 길드의 주인들에게 알려진 상태였다.
이 세계는 강한 각성자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 가에 따라 국력이 결정됐다.
윤사해는 한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
“그대로 실종되셨으면 꽤 곤란해졌겠지요?”
“그걸 말이라고 물어?”
최설윤이 상상하는 것조차도 싫다는 얼굴로 말했다.
“당장 지하 길드 녀석들이 날뛰기 시작할걸?”
자신과 함께 그들을 억누르고 있었던 윤사해였다. 그런데 그가 사라진다면…….
‘생각하기도 싫네.’
지하 길드의 쓰레기들은 아주 좋다고 날뛸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섬나라가 주제도 모르고 이 땅을 넘보려고 들 거고.”
윤사해가 사라진다는 건, 동해를 유유자적 떠다니고 있는 귀수산의 주인이 사라진다는 말.
그 주인이 사라지면 일본은 동해를 넘어 이 땅을 위협할 것이 분명할 터였다.
그만큼 윤사해의 존재는 대단했다.
“최설윤 길드장님이 계시는데도 그렇게 될 거란 말씀입니까?”
“물론, 그 지랄들. 내가 아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거지. 윤사해 길드장이 없다고 해도.”
최설윤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에 장천의가 키득거렸다.
“뭐, 다행입니다.”
“그런데 윤사해 길드장은 왜 미국까지 갔대? 따로 소식들은 거 없어, 장천의 회장?”
“네, 없습니다.”
장천의가 싱긋 웃었다. 하지만 최설윤은 심각하게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혹시, 린 만나러 간 거 아니야?”
“에일린 리 씨를요?”
“응!”
최설윤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돌아올 때는 린이랑 같이 함께인 거 아니야?”
그 말에 장천의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최설윤 길드장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장천의 회장, 그 두 사람 애만 셋이야. 그것도 한 명은 이혼 후에 가진 애고.”
그러니까 언제 재결합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소리였다. 그에 장천의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렇기는 하지요.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장천의 회장이 그걸 어떻게 확신해? 남녀 사이 모르는 거야.”
“모른다고 해도 그 두 사람은 아닙니다.”
장천의가 웃음을 흘렸다.
그는 에일린 리의 저주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애정을 비롯하여 그와 관련된 모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저주.
그 저주가 풀리는 일은 모든 시간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 윤사해가 죽을 때에도.’
에일린 리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저 그 소식을 듣고 태연히 물었을 뿐이다.
‘그래? 애들은? 애들도 죽었다고? 아, 윤리사였나? 우리 막내가 옛적에 죽은 건 알아. 그런데 아들은? 뭐야, 우리 둘째 아드님께서도 죽었어? 첫째 아드님은?’
지하 길드, 유랑단의 백정.
그가 됐다는 소식에 에일린 리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었다.
‘우리 자기, 그렇게 애들을 위한답시고 난리를 떨더니……!’
그 웃음은 왜인지 광기에 찬 것처럼 보였다. 그래, 언제나 그랬다.
“장천의 회장?”
“아, 네. 최설윤 길드장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설마, 혹시 여자 생겼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장천의가 화들짝 놀라 외치고는 말했다.
“그냥 고객님 생각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
“윤사해 길드장을?”
“네, 아이들이 많이 걱정했을 것 아닙니까? 화도 많이 났을 텐데, 고객님께서 그 화를 어떻게 풀어 줄 생각일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웃어댔을 테다. 하지만 조금 전의 장천의는 심각하게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아니, 아니었다.
‘감정이 없어진 사람 같았지?’
어쨌거나 최설윤은 장천의의 말에 키득거렸다.
“아련히 알아서 잘 풀어주지 않겠어? 아이들이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줄 거야.”
그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감금’인 것을, 최설윤도 장천의도 몰랐다.
***
CW백화점에 도착하자마자 쌍둥이의 돈 지랄이 시작됐다. 윤사해한테 좋아 보이는 건 뭐든 사기 시작했다는 거다.
“윤리오, 저 안마 의자 어때?”
“좋아, 아버지도 이제 나이가 있으시니까 안마 의자 하나쯤은 마련해도 좋지.”
아니야, 리오 오빠. 우리 아빠가 아무리 40대가 됐다고 해도 아무도 그 얼굴로 안 봐.
‘그리고 돈 좀 그만 써!’
나는 고급 브랜드 안마 의자를 일시불로 끊어 버리는 윤리오의 모습게 입을 쩍 벌렸다.
우리 집이 부자이기는 했다. 하지만 윤리오는 아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게에서 반찬거리를 사도 가격 하나하나를 확인하고 사람이었다는 거다.
그런데.
“가격도 보지 않고 그냥 일시불로 끊어 버리시네.”
“그러게…….”
안락하고 편안한 집에 윤사해를 감금시켜 버리겠다는 일환으로 열심히 돈을 써대는 중이었다.
윤리오와 윤리타의 금전 감각이 마비되어 버린 걸까, 걱정이 됐다.
“세상이 오빠,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가 지금까지 아빠를 위해 구매한 것 좀 말해 줄래?”
“먼저, 야외 온천탕을 비롯한 스파 세트. 그리고 이번 달에 나온 모든 신간 책…….”
신상 의류를 비롯하여 몸에 좋다는 보양식 등등, 지금까지 산 것으로만 해도 이곳 CW백화점의 VVIP가 됐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저, 고객님들?”
“네.”
“회장님께서 만나 뵈러 오고 싶다고 합니다.”
“회장님이요?”
윤리오와 윤리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의 삼촌, 백화점에 있으셨나 봐. 당연히 출장 가셨을 줄 알았는데.”
“그러게.”
이번에 놀란 건 우리에게 장천의의 소식을 알려 준 백화점 직원이었다. 편안하게 장천의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에 놀랐나 보다.
“세상이 오빠, 저 사람.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지?”
“응, 그런 것 같네.”
하긴, 윤사해가 지금까지도 우리가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말이지.
장천의가 도착한 건 그때였다.
“아이고, 도대체 누가 우리 백화점 매출을 이렇게 올려 주고 계시나 했더니 고객님의 자녀분들이었군요!”
“장천의 삼촌!”
윤리오와 윤리타가 활짝 웃었다. 그들과는 달리 저세상의 얼굴은 한없이 구겨졌다.
장천의를 만날 때마다 썩은 얼굴인 저세상이었다. 나는 그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표정 관리.’
저세상이 소리 없이 전한 내 말을 알아듣고는 얼굴을 폈다. 그 순간 장천의의 시선이 우리에게 닿았다.
“세상 군, 리사 양. 두 분도 오랜만입니다. 못 본 사이에 많이 크셨군요.”
그 인사에 나는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