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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82)화 (182/500)

182화. 용이기를 포기한 이무기(9)

나는 최화백이 예쁘게 깎은 과일 중 벌레가 파먹은 것만 청정하 앞에 내어주었다.

“이것도 먹어요, 그리고 이것도!”

청정하의 얼굴이 갈수록 떨떠름해졌다. 그것을 보고서 윤리오가 내 머리를 숙이게끔 했다.

“죄송해요! 리사, 왜 자꾸 아저씨를 놀리고 그래!”

그러면서 청정하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윤리오였다. 아무래도 조근 전에 청정하를 ‘오빠’라고 부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참고로 청정하는 윤리오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였다. 그런데 아저씨라니.

“남매가 아주 쌍으로…….”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와 윤리오가 아주 쌍으로 저를 놀리려고 든다는 거겠지.

나는 청정하의 구시렁거림을 무시하며 방긋 웃었다.

“리사는 그냥 맛있는 거 골라 주고 있는 것뿐인데?”

청정하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 와중에 청해솔이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청정하, 애가 생각해서 골라 준 건데 먹어야지.”

청정하가 장난하느냐는 듯한 얼굴로 청해솔을 쳐다봤다. 청해솔은 그 시선을 무시하고는 류화홍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칠칠치 못하게 다 흘리고 먹냐.”

“해솔아, 내가 닦을 수 있는데!”

“가만히 있어.”

청정하는 내가 골라 준 과일을 조금 먹는가 싶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여 놓칠세라 나는 대뜸 그를 불러 세웠다.

“아저씨, 다 안 먹고 일어나요? 내가 기껏 골라 준 거 그렇게 다 버리는 거예요?”

청정하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의 성격을 고려하면 내 말을 무시하고 가 버리겠지만.

“청정하, 앉아서 먹지 그래?”

청해솔과 도대체 무슨 거래를 한 건지 청정하는 제자리에 도로 앉았다. 아주 험악한 얼굴로 말이다.

그런 그를 보며 키득거리는데 저세상이 속닥거렸다.

“그만 놀려.”

“세상이 오빠, 저 자식한테 당한 걸 생각해 봐.”

저세상이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나를 응원했다.

“잘한다, 윤리사. 더 놀려, 더.”

정말이지, 알기 쉬운 우리 주인공님이셨다.

그렇게 청정하를 더욱 놀리려고 했는데 가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다과를 들고 계셨던 모양이구려.〗

“오셨어요, 가람?”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반갑게 알은 체를 했다. 가람이 그런 나를 보고는 싱긋 웃으며 물었다.

〖자리를 같이 해도 되겠소이까?〗

“당연히 되죠.”

가람이 청정하의 옆에 앉았다. 둘 사이에서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가람은 이거 먹어요!”

가람에게 맛 좋아 보이는 과일을 내밀었다. 하지만 가람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괜찮소이다, 리사 아씨. 쇤네는 이것을 먹겠소.〗

가람이 가리킨 것은 내가 청정하의 앞에 내밀었던 벌레 먹은 과일들이었다.

가람이 옆에 앉은 직후 시종일관 썩은 얼굴이었던 청정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자리에 일어난다.”

“더 먹지 그래?”

청해솔의 말에 청정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뚱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가람이 대신 먹어 준다고 하잖아. 방에 가서 쉴래.”

오, 처음으로 가람의 이름을 부른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어쨌든 청정하는 그 말을 끝으로 숙소에 들어가 버렸다.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단예가 청해솔에게 물었다.

“해솔이 언니, 저 분께서는 정말 언니의 보좌관이 맞나요?”

“맞아! 완전 싸가지 없는데!”

단아의 말에 청해솔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아이는 몰라도 되는 어른의 사정이란 게 있거든. 그래도 일은 착실하게 해 주고 있어.”

“하긴, 그러니까 누나 성격에 가만히 있는 거겠지.”

“우리 해진이가 머리가 좀 커졌다고 기어오르려고 하네?”

청해진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청해솔은 그런 동생을 향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해솔 아씨는 동생 분과 사이가 좋아 보이는구려.〗

“그런 편이죠.”

〖쇤네가 아는 청(淸)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에 청해솔이 씁쓸하게 웃었다.

“저도 제 동생이랑만 사이가 좋지, 나머지와는 아주 개판이에요.”

청해진이 맞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가 청해솔에게 한 대 맞았다.

“그보다 너희, 돌아가면 이매망량 입단 시험 준비해야겠네?”

“아…….”

청해솔의 말에 사이좋게 과일을 먹고 있던 윤리오와 윤리타가 입을 다물었다. 청해진 역시 마찬가지. 그 와중에 류화홍이 뿌듯하게 웃으며 말했다.

“리오도 리타도, 그리고 해진이도 모르는 거 있으면 이 형한테 물어보도록 해!”

“하나도 도움 안 될걸. 저 녀석, 이매망량의 입단 시험을 완전히 망쳤었는데도 공간계 S급 각성자라서 이매망량에 들어간 거거든.”

“야, 최화백!”

류화홍이 빼액 소리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해솔은 최화백의 말에 맞장구치며 류화홍을 놀려댔다.

“그때, 망했다면서 울고불고 난리났었지.”

“해솔아! 애들도 있는데 내 체면 좀 살려 줘!”

살려 줄 체면 따위는 없었다. 청해솔과 최화백은 그 이후로 신이 나게 류화홍을 놀려댔다.

이매망량의 길드원으로 처음 들어간 던전 공략을 어떻게 망쳤는지, 맡은 임무를 또 어떤 식으로 말아먹었는지를 말이다.

“리오야, 리타야. 미안한데 냉장고에서 맥주 좀 꺼내와 줄래? 술이 좀 고프네.”

“술도 못하면서 무슨 술이야? 얘들아, 류화홍 말 무시하고 앉아서 과일 마저 먹어.”

“네, 누나.”

윤리오와 윤리타가 키득거리며 자리에 도로 앉았다. 그때,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가람이 입을 열었다.

〖도령들도 유영 아씨와 많이 닮았다고 했더니, 아씨를 따르는 령(靈)이었소이까?〗

“유영 아씨요……?”

윤리오와 윤리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가람이 제 입을 한 번 때리고는 말했다.

〖아참, 쇤네가 자꾸 깜빡하는구려. 지금은 ‘사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하오. 모르오?〗

사희.

가람이 나를 만났을 적 꺼낸 이름이었다. 하지만 윤리오와 윤리타도 그 이름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네, 모르겠어요.”

윤리타가 윤리오의 말을 뒤이어 말했다.

“이매망량은 저희 아빠가 세운 길드에요.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길드인데…….”

윤리타는 ‘이매망량(魑魅魍魎)’에 대해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윤리오와 류화홍이 맞다면서 사이사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길드인 ‘아래아’의 길드원인 최화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매망량이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길드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하긴, 최화백의 고모인 최설윤이 아래아의 길드장이니까 말이지.

빈 말로도 이매망량이 더 대단하다고 할 수 없을 거다.

가람은 신기하다는 눈빛이었다.

〖세상이 많이 변했나 보오.〗

“엄청 변했죠!”

윤리오와 윤리타가 동시에 외치고는 키득거렸다.

아무래도 두 사람 역시 가람이 거주자인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이야기 다 끝냈으면 이제 정리하자. 애들도 졸린 모양인데?”

그 말대로 단아와 도윤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셋째야, 정신 차리렴. 들어가서 자자꾸나.”

“양치도 하고 세수도 해야지, 단아야. 도윤이도 어서 일어나.”

단예와 단이가 두 사람을 흔들자 도윤이와 단아가 나란히 앓는 소리를 내었다.

“싫어… 조금만 더 잘래…….”

“맞아, 단예야…….”

도윤이가 크게 하품했다.

“나중에 깨워줘…….”

쉽게 졸음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하지.’

오늘은 뱀 섬에서의 마지막 날이었으니까 말이다.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우리였다.

‘단아랑 도윤이가 제일 신나게 놀았었지?’

나 역시 저세상을 모래사장에 파묻느라 온몸이 지친 지 오래였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뱀 섬에서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가 보다고 나는 태연하게 생각했다.

어쨌든 쉽게 졸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단아와 도윤이 때문에 단예와 단이가 곤란하다는 얼굴을 보였다.

그런 아이들을 도와준 사람은 청해솔이었다.

“최화백, 도윤이 좀 들어. 단아는 언니랑 같이 방에 들어가자.”

청해솔이 단아를 번쩍 안아들었다. 단예가 단아의 겉옷을 챙기며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죄송해요, 해솔이 언니.”

“죄송하기는.”

청해솔이 단예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단예가 청해솔의 손길이 닿은 것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은 것이 오랜만인 듯했다.

처음 보는 단예의 어린 아이다운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씨익 입꼬리를 올리는데 저세상이 슬며시 내게 다가와서는 목소리를 내었다.

“내일이면 돌아가네.”

“그러게.”

밤하늘은 오늘도 밝았다. 아마, 윤사해는 지금쯤 환하게 떠오른 해를 보고 있겠지.

“아빠가 돌아와 있으면 좋겠다.”

“열 밤만 기다리래.”

“세상이 오빠는 그 말을 믿어?”

정말 믿었던 모양인지 저세상이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렸다. 우리 주인공님께서는 귀엽기도 하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진짜 열 밤 후에 아빠가 돌아와 있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열 밤이 지난 후 들은 소식은 의외의 것이었다.

“실종이라니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서 비서님?”

“그게…….”

“제대로 설명 좀 해 주세요! 아빠가 엄마랑 같이 어디로 사라졌다는 거예요?!”

윤사해와 에일린 리가 한날 한 시에 사라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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