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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79)화 (179/500)

179화. 용이기를 포기한 이무기(6)

“빌어먹을.”

청사초롱이 불을 밝히고 있는 이곳, 유랑단의 공간에서 선비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이봐요, 이매. 혹시 최근에 초랭이 녀석 보신 적 있습니까?”

“아니요, 없는데요.”

굵은 나뭇가지에 늘어져 있던 이매가 고개를 젓고는 입을 열었다.

“초랭이는 갑자기 왜 찾으시는 걸까요, 선비 씨?”

“돌아오지 않고 있어서 말입니다.”

“흐음?”

“청(淸)의 본가인 남해에 보내 준 지 보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런데 보이지가 않는군요, 그 녀석.”

“죽은 거 아닐까요?”

“죽었다면 수장님께서 말씀하셨겠지요.”

초랭이 탈을 가질 적합자를 한 번 찾아보라면서 말이다.

선비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이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면 어련히 알아서 나타나지 않을까요? 초랭이 씨, 원래 그러셨잖아요.”

“그렇습니다만.”

왜 이렇게 기분이 찝찝한지 모를 일이었다.

결국, 선비는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선비 씨?”

“찾으러 가 봐야겠습니다. 혹시 모를 일이지요.”

그 망할 초랭이가 청(淸)에게 붙었을지도.

선비는 뒷말을 삼키고서 그렇게 사라졌다.

***

“으아악! 윤리사! 야!”

나는 뿌듯하게 아래를 쳐다봤다.

저세상이 목만 남겨 두고 빽빽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게 참 보기 좋았다.

“리사, 진짜 대단해! 세상이 형을 정말 머리만 두고 묻어 버렸어!”

“백도윤! 감탄하고 있지만 말고 나 좀 구해 줘!”

“으, 응!”

도윤이가 저세상을 구해 주고자 앉았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도윤이에게 말했다.

“도윤아, 세상이 오빠 구하면 나 오늘 너랑 안 놀 거야.”

“……!”

도윤이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나를 보더니.

“세상이 형, 미안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도윤?”

저세상의 부름에 도윤이는 내 뒤로 몸을 피했다. 그래 봤자 또래 중 가장 큰 도윤이는 가려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도윤이는 내 뒤로 몸을 숨기고서는 빼액 소리 질렀다.

“나는 리사랑 놀고 싶어!”

“야!”

저세상이 빼액 소리 질렀다. 나는 키득거리며 도윤이에게 말했다.

“저세상 묻는 것도 끝났으니까 놀러 가자!”

“응!”

도윤이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세상의 울부짖음은 머릿속에서 잊은 듯이 보였다.

그때, 단예가 저세상 옆에 앉고서는 말했다.

“세상이 오빠, 조금만 기다리세요.”

“한단예, 네가 구해 주려고?”

“제가요? 설마요.”

단예가 진심으로 물은 소리냐는 듯이 미소를 그렸다. 그러고서는 나긋하게 말을 덧붙였다.

“저는 리사가 기껏 해 놓은 것을 망칠 생각이 없어요. 물론, 첫째랑 셋째도 저랑 똑같은 생각일 거고요.”

“야!”

“걱정하지 마세요, 세상이 오빠. 오빠네 오빠들이 곧 구해 줄 거예요.”

전혀 신빙성 없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윤리오와 윤리타는 지금 선 베드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거든.

“이 망할 쌍둥이들! 기껏 바다에 왔더니 잠만 자냐?!”

청해진이 그 옆에서 씩씩거렸다.

“자는 게 아니라 선탠. 이번 여름에 난 구릿빛 피부를 얻을 거야, 청해진.”

“뭐라는 거야?! 윤리타, 너는 암만 그렇게 햇빛 아래에 있어도 구릿빛 피부 못 얻을걸?! 야, 윤리오! 너도 마찬가지니까 어서 일어나!”

자는 게 아니라 선탠 중이었구나?

윤리오와 윤리타가 선보이는 구릿빛 피부라.

“멋지겠다!”

“응?”

“아무것도 아니야, 도윤아!”

나는 배시시 웃었다.

물론, 윤리오와 윤리타의 선탠은 실패할 게 분명했다.

두 사람 다 어떻게 된 체질인지, 피부가 타지 않더라고. 그건 나도 그랬기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정말, 축복받은 유전자란 말이지.

어쨌든, 우리 유전자에 감탄하는 건 나중에 하도록 하고. 지금은!

“수영하러 가자, 도윤아!”

“그래!”

마지막으로 물놀이 하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도윤이와 함께 바다에 풍덩 빠졌다. 깊은 곳으로 가서 수영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청해진이 혹시 몰라 우리의 발이 닿지 않는 곳으로는 갈 수 없게 조치를 해 뒀기 때문이었다.

“윤리사, 백도윤! 나랑도 놀아!”

단아가 나와 도윤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서는 씩씩거렸다.

“단아야, 그렇게 억지로 애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면 어떻게 해?”

“흥! 멀쩡한데 잔소리는!”

단아가 단이의 말에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렸다.

“단이야, 나는 괜찮아! 그러니까 우리 오늘 신나게 놀자!”

“그래, 리사.”

신나게 놀자고 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물장구치기 뿐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비치볼로 서로를 맞춘다거나 말이지.

어쨌든.

“아야! 단아야, 힘 좀 빼고 던져! 아프잖아!”

“그것도 못 잡는 네 잘못이야, 백도윤.”

우리는 신이 나게 놀았다.

“야아! 나 좀 빼내 달라고!”

물론, 저세상은 제외하고.

***

결과적으로, 저세상은 선탠을 끝낸 윤리오와 윤리타에 의해 구출됐다.

모래에서 빠져나온 저세상은 정말이지 한 마리의 맹수와도 같았다. 자신을 구해 주지 않은 백도윤부터 저를 놀린 단예까지.

아주 짐승처럼 물고 뜯고 늘어졌다. 물론, 말이 그랬다는 거지 저세상이 한 짓이라고는 물 먹이기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 고기 다 구워졌어!”

“네에!”

우리는 뱀 섬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청해솔은 가문 일이 바쁘지도 않은지, 류화홍과 최화백과 함께 술 파티 중이었다.

그녀의 보좌관인 청정하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리를 피한 것 같은데…….

‘가람이 옆에 있을 테니 괜찮겠지.’

괜찮고 자시고 그가 정말 초랭이라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멀쩡할 터였다. 그나저나 지금 내가 신경써야할 사람은.

“세상이 오빠, 삐졌어?”

저세상이었다.

모래에 머리만 남겨 두고 파묻혔던 저세상은 단단히 삐진 상태였다.

“오빠아.”

“아, 징그럽게 왜 이래?”

저세상이 질색하며 나를 밀어냈다.

“자, 얘들아. 고기 먹어.”

때마침 고기가 나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젓가락을 들고서 고기를 하나하나 집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 입 속에 집어넣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하나하나 집은 고기를 모두 저세상의 접시에 올려 줬다. 이내 수북이 쌓인 것에 저세상이 말했다.

“윤리사, 화 풀렸으니까 나 그만 챙겨 줘.”

“히힛.”

나는 뿌듯하게 웃고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때, 단아가 고기를 우물거리며 물었다.

“우리 내일이면 돌아가는 거지?”

“응.”

“싫다! 할배 얼굴 봐야한다니!”

한태극이 들었다면 섭섭해할 말이었다.

“나는 빨리 가고 싶어! 아빠 보고 싶단 말이야!”

도윤이가 고기를 우물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기념품 가게라도 있으면 선물 사 가는 건데!”

“그러게, 그건 좀 아쉽네.”

단예가 도윤이의 말에 맞장구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선물이라…….’

그러고 보니 윤사해가 선물을 보내 놨다고 했지? 집에 돌아가면 곧장 받아 볼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뭘까?’

설마, 윤사해 본인이 선물인 건 아니겠지?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사실 이미 돌아와 있는 거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윤리사, 고기 안 먹고 뭐해? 백도윤이 지금 다 먹고 있어.”

“뭐? 내 고기!”

저세상의 말에 나는 황급히 생각을 멈추고 젓가락을 들었다.

“얘들아, 천천히 먹어. 고기 바로 구워서 줄게!”

“네에!”

청해진의 말에 우리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고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방학 숙제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리사, 세상아. 일기는 매일 쓰고 있니?”

“응! 당연하지!”

“거짓말. 윤리사는 방학 끝날 때 몰아서 쓸 거래. 나는 매일 쓰고 있어. 너희는?”

“셋째 빼고 잘 쓰고 있단다. 도윤이, 너는?”

“나도 매일 쓰고 있어! 아빠가 와서 검사하고 있거든!”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단아야! 단이랑 세상이 형한테 물어봐!”

도윤이의 억울한 목소리에 저세상과 단이가 말했다.

“백도윤 진짜 매일 일기 쓰고 있어. 내가 봤는걸.”

“맞아, 단아야. 너와는 다르게 도윤이는 매일 일기 쓰고 있던걸?”

“이익……!”

단아가 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두고 봐! 나도 오늘부터 매일 일기 쓸 테니까!”

단아와 마찬가지로 매일 일기를 쓰고 있지 않는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얘들아, 고기 나왔다! 삼겹살은 이게 마지막이고 이제 소고기 구울 거야! 아, 혹시 감자나 소시지 먹고 싶어?”

“네에!”

말해 뭐해! 이번에도 우리는 우렁차게 대답했다. 오늘의 요리사인 청해진이 그런 우리의 대답에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래, 알겠어. 곧 구워 줄게!”

“네에!”

우리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고기를 집어먹기 시작했다.

“얘들아, 하늘 좀 봐 보렴.”

단예의 말에 우리는 고기를 먹다말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우와!”

그간 계속 비가 와서 그런 걸까? 하늘이 정말 티 없이 맑았다. 당장에라도 쏟아질 듯, 하늘에 촘촘하게 박혀 있는 별들이 보였다.

“예쁘다!”

도윤이의 말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예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리사 아씨.〗

“흐억!”

하늘의 별들보다 더 아름다운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

***

은하수가 펼쳐진 하늘 아래에서 청정하는 오랜만에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옆을 끈질기게 달라붙었던 ‘가람’이란 거주자를 쫓아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만 나오지?”

저를 감시하고 있던 녀석의 낯짝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청해솔, 그녀 역시 제 뒤를 따라붙고 있는 시선을 알아차렸을 거다. 다만, 자신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하면서 내버려뒀을 뿐이지.

“조용히 사라지려고 했더니 그렇게 부르실 건 또 뭡니까?”

“오, 이게 누구야. 선비잖아?”

청정하가 제 앞에 나타난 남자를 보고서 히죽거렸다. 남자가 고운 미간을 찡그렸다.

“도대체 지금 뭐하고 있는 겁니까, 초랭이?”

“안부 인사도 없이 그렇게 본론을 꺼내는 거야?”

“저희가 안부 인사를 나눌 만큼 친밀한 사이는 아니니까요.”

“하긴, 그것도 그렇지.”

초랭이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선비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보이는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성큼, 한 걸음 내딛었을 뿐인데 초랭이는 이미 선비의 코앞이었다. 그가 청록색의 푸른 눈을 휘게 접으며 선비에게 물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냐고.”

초랭이의 손에는 어느새 부채가 쥐여 있었다.

윤리사와 그녀의 오빠들을 위협하고, 청해솔을 위협했던 그 부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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