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용이기를 포기한 이무기(3)
“가람, 여의주를 도대체 왜 부서뜨릴 거라는 거예요?! 그거 가람한테 엄청 소중한 거잖아요!”
나는 급히 가람을 말렸지만, 그는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어쩌다 가람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냐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했다.
***
저녁에 맞춰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청해솔이 준비한 화려한 저녁상에 감탄했다.
“우와! 언니 대단해요!”
“이거 누나가 혼자서 다 만든 거예요? 우와!”
단아와 도윤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천천히들 먹어.”
청해솔이 웃으며 아이들에게 음식을 건넸다.
“……내가 만든 건데.”
청해솔의 보좌관이 중얼거렸지만, 아무래도 그 소리는 나만 들은 모양이었다.
“해솔이 누나, 진짜 맛있어요!”
“그래, 리타. 맛있게 먹으렴.”
서로 청해솔과 이야기하느라 정신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누나, 요리는 언제 배운 거야?”
“요리는 원래 잘했단다, 청해진.”
“에이, 거짓말! 내가 누가의 괴멸적인 요리 실력을 아는데?”
“죽고 싶지?”
청해진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한편 가람은 보좌관의 옆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청정하, 애들 먹은 것 좀 치워. 가람은 쉬고 계세요.”
〖괜찮소이다. 쇤네도 정하를 도와주겠소이다.〗
“괜찮으니 쉬고 계세요.”
청해솔이 그렇게 말한 후에야 가람은 그녀의 보좌관과 떨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가람에게 다가가 소곤거렸다.
“가람, 나 좀 봐요.”
〖좋소이다, 리사 아씨.〗
우리는 그렇게 후식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윤리사, 어디 가?”
그 과정에서 저세상이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능청스레 대답했다.
“잠깐 바람 좀 쐬러!”
내 대답에 저세상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나를 놓아 주었다.
대신 잔소리가 따라붙었다.
“밖에 서늘하니까 얇은 가디건이라도 입고 가. 너무 멀리 나가지는 말고. 형들 걱정할 테니까.”
“네네, 알겠습니다~!”
걱정이 참으로 많은 우리 주인공님이셨다.
어쨌든, 가람과 함께 밖에 나온 나는 곧장 그에게 물었다.
“가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몰래 그 남자를 쫓아다닐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같이 있는 건데요? 설마 정체를 들킨 거예요?”
〖리사 아씨, 질문이 너무 많소이다. 하나씩 물어봐 주시오.〗
“그럼, 어떻게 된 일인지 먼저 설명해 줘요!”
〖으음.〗
가람의 고운 미간이 찡그려졌다. 이내 그는 말했다.
〖해솔 아씨가 함께 다녀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소.〗
정말이지, 생략 된 부분이 너무나도 많은 대답이었다. 나는 답답하여 소리 지르며 물었다.
“그러니까 왜요?”
〖그건 모르오.〗
가람은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해솔 언니, 가람이 ‘거주자’인 거 알아요?”
〖‘거주자’가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쇤네가 용인 것은 알고 있소이다.〗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청해솔이 가람을 곁에 둘 리가 없었다.
‘하긴, 나라도 가람은 데리고 다닐 것 같아.’
미지 영역의 거주자는 인간을 해칠 수 없다. 하지만 가람은 그런 제약이 생겨날 때부터 이 섬에 갇혀 있던 거주자였다.
그러니까 가람에게는 아무런 제약이 걸려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
‘청해솔은 훗날에 가람의 힘을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곁에 둔 거겠지?’
나라면 그럴 것 같으니까.
어쨌든 간에.
“그럼 해솔이 언니 옆에 있던 오빠도 가람이 이무기인 걸 알겠네요?”
〖그렇소.〗
가람이 미소를 그렸다.
〖정하 아씨의 곁을 또 다시 지킬 수 있다니. 꿈만 같소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남자라니까요?
〖그리고 나는 정하 아씨를 위해 여의주를 부서뜨리고자 하오.〗
“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가람? 뭘 부서뜨린다고요?”
〖여의주를 부서뜨린다고 했소.〗
“왜요?!”
여의주는 모든 용이 가지고 있다는 신묘한 구슬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만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다고 하지?
『각성, 그 후』에서는 다르게 설명이 됐던 것 같지만, 어쨌든 귀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 여의주를.
“왜 부서뜨린다는 거예요?! 그거 가람한테 엄청 소중한 거잖아요!”
가람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답답하여 그를 소리 질러 불렀다.
“가람!”
가람의 입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으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사 아씨.〗
“네, 가람.”
〖쇤네는 정하 아씨가 또 구슬을 이용해 쇤네를 이 섬에 가둘까 두렵소이다.〗
그래서 여의주를 부서뜨리겠다는 거였다.
“가람…….”
그럴 거면 그 구슬을, 차라리 나한테 달라고 하고 싶었다. 우리 집안의 가보로 잘 보관할 수 있는데.
이런 나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가람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 여의주를 품고 있으면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로 올라가게 될 것이오.〗
가람이 말하는 ‘하늘’이 어디를 말하는지 나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미지 영역.’
가람이 이 섬에 갇히기 전, ‘미지 영역’은 단순히 하늘로 칭해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술 것이오. 쇤네는 정화 아씨와 다시는 헤어지고 싶지 않소이다.〗
정말, 세기의 로맨티스트 나오셨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가람이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그를 말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거주자의 뺨을 함부로 때리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지.
‘때린다고 해서 스킬이 제대로 걸릴지도 모르겠고.’
그러니까 내가 이 상황에서 가람에게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알았어요, 가람. 하지만 조심하기에요.”
〖무엇을 말이오?〗
“가람의 정체 말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요.”
만약, 가람의 존재가 세간에 알려진다면…….
‘어떻게든 이용하려고 할 거야.’
더욱이 가람은 ‘거주자’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용이었다. 아, 여의주를 파괴할 거라고 했으니 그냥 이무기인가?
어쨌든 간에.
“그리고 정하 아씨도요.”
가람이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리사 아씨, 정하 아씨를 왜 조심하라는 거요?〗
“그 사람, 제가 아는 사람인 것 같거든요.”
청정하라고 했던가? 그는 청해솔이 가주가 될 당시만 해도 없던 사람이었다.
더욱이 청해솔은 『각성, 그 후』에서 그 누구도 곁에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녀가 난데없이 보좌관이라면서 데리고 온 남자라니.
더군다나…….
‘때를 맞춰서 초랭이가 사라졌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초랭이를 가주 경합에 끌어들인 청류하는 진작 재판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윤사해가 조용했다.
‘조용한 건 아니지.’
청해솔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청(淸) 가문을 아주 박살냈을 거다. 그 정도로 그의 분노는 무시무시했다. 그런데 그 분노가 초랭이에게는 향하지 않았다.
‘초랭이가 그때 무슨 짓을 했는지 알 텐데도.’
그러니까 나는 청해솔 곁의 남자가 굉장히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가람은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말했다.
〖정하 아씨는 착한 사람이오, 리사 아씨. 비록, 쇤네를 부를 때마다 얼굴을 찌푸리고 불쾌하게 여기고 있지마는 말이오.〗
도저히 착한 것 같지 않은데요.
나는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윤리사, 어디 있어? 리오 형이 너 찾아!”
저세상의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아무래도 대화는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만 들어가 봐야겠네요.”
〖그 전에 리사 아씨, 쇤네의 부탁을 하나 들어주실 수 있겠소?〗
“당연히 있죠!”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가.
〖쇤네 대신 여의주를 부서뜨려주시오.〗
곧장 후회했다.
아니, 뭘 부서뜨려달라고요? 여의주를? 제가요?
“싫어요! 가람이 부서뜨리면 되잖아요!”
〖쇤네는 부서뜨릴 수 없소이다.〗
그러니까 내게 부탁하는 거라면서 가람이 고개 숙였다.
〖부탁하오, 리사 아씨. 쇤네의 여의주를 탐하지 않고 부서뜨려 줄 사람은 리사 아씨밖에 없소.〗
저 역시 가람의 여의주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죠.
“윤리사! 진짜 어디 간 거야?!”
이 와중에 저세상은 쩌렁쩌렁하게 나를 찾고 있었다. 저러다가 안으로 들어가 ‘윤리사가 사라졌어요!’라고 말하면…….
‘절대 안 돼!’
결국, 나는 머리를 헤집고는 가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알았어요! 제가 부서뜨려 줄 테니까 어서 줘요!”
〖고맙소이다, 리사 아씨.〗
가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손에 자신의 여의주를 쥐여 주었다. 나는 붉게 빛나는 구슬을 품에 갈무리하고서 수풀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세상이 오빠! 리사 여기 있는데?”
“야!”
저세상이 곧장 내게 다가왔다.
“너 거기서 뭐하고 있었던 거야?”
“그게…….”
뭐라고 변명해야 좋을까? 있는 힘껏 머리를 굴릴 때, 느릿하게 모습을 드러낸 가람이 말했다.
〖아씨께서 길을 잃으실 것 같아 쇤네가 붙잡았었소. 다람쥐를 구경한다고 계속 숲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소이다.〗
“아, 맞아! 그랬어!”
저세상이 미심쩍다는 얼굴로 나와 가람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하지만 곧 그는 고개를 꾸벅이며 가람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그런 인사는 하실 필요 없소이다. 덕분에 리사 아씨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으니.〗
“리사 아씨……?”
저세상이 미간을 한껏 좁혔다.
저 망할 이무기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나는 황급히 저세상의 주의를 돌렸다.
“리오 오빠가 나 찾는다며? 빨리 들어가자!”
“아, 그래.”
저세상이 내 손을 잡고는 걸음을 옮겼다. 나는 순순히 그를 따라가며 물었다.
“그런데 리오 오빠가 나는 왜 찾는데? 후식은 안 먹는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아저씨한테서 전화가 왔거든.”
“아저씨?”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아빠?”
“응.”
그 대답에 나는 곧장 저세상의 손을 뿌리치고서 달려 나갔다.
“야! 윤리사! 같이 가!”
저세상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무시했다.
거의 일주일 만에 걸려온 윤사해의 전화였다.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