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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66)화 (166/500)

166화. 마음이 내키는 대로(1)

같이 자지 않겠냐고? 누구랑?

저세상이랑?

“싫어!”

너무 단호하게 말했기 때문일까? 윤사해가 다소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나 잠버릇 심하잖아. 자다가 세상이 오빠 발로 차면 어떻게 해.”

“그래도 괜찮아.”

난데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윤사해 역시 마찬가지.

“세상아.”

윤사해가 저세상에게 곧장 다가가서는 그에게 물었다.

“몸은 좀 어떠니?”

“괜찮아요.”

“괜찮기는.”

윤사해가 저세상의 이마에 손을 얹더니 그대로 그를 안아들었다.

“아직 열이 펄펄 끓는구나.”

“진짜 괜찮은데.”

윤사해의 품에 안긴 열 두 살의 아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부끄러운 모양이지.

아니, 그것보다.

“세상이 오빠, 뭐라고 했어?”

“나는 괜찮다고.”

저세상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네가 자다가 나를 발로 차든, 손으로 때리든 아무런 상관없다고.”

저자식이 갑자기 왜 저래?

아무래도 저세상은 바닷물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 뇌가 염분으로 전 게 아니고서야 저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아저씨. 괜히 윤리사가 제 옆에 자다가 저한테 감기 옮으면 어떻게 해요.”

콜록거리지 않아서 몰랐는데, 저세상은 감기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었나 보다.

어쩐지 너무 심하게 끙끙 앓는다 했다.

저세상의 말에 윤사해 역시 걱정 된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일단 아저씨랑 좀 더 자자꾸나. 세상이는 오늘 푹 쉬렴.”

그 말에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저 망할 놈이 아빠랑 같이 잘 거라고?

나는 그대로 윤사해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리사?”

“나도!”

“응?”

“나도 같이 자!”

나는 빼액 소리 질렀다. 저 망할 놈을 아빠와 단둘이 자게 둘 수는 없었다.

윤사해가 저세상을 바라보았다.

“저는 상관없어요.”

그 대답에 윤사해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좀 더 자자꾸나.”

그렇게 나는 윤사해의 왼쪽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저세상은 그의 오른쪽 자리에 누워 눈을 꼭 감았다.

침대에 눕자마자 잠드는 걸 보니 꽤 많이 피곤했었나 보다.

하긴, 청 가문에서 벗어난 지 이제 하루가 지났다. 피곤할 만도 하지.

하지만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두 눈을 멍하니 끔뻑였다.

지금 시간은 오전 7시.

다시 잠들기에는 확실히 이른 시간이었다. 그때, 윤사해의 휴대폰이 우웅, 울렸다.

그는 저세상뿐만 아니라 나도 잠에 든 줄 알았는지, 아주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휴대폰을 들었다.

“해솔 양?”

-안녕하세요, 윤사해 길드장님. 댁에는 잘 들어가셨어요?

“덕분에.”

윤사해가 가볍게 대꾸하고는 청해솔에게 물었다.

“그보다 무슨 일인가? 지금 한창 정신없을 시기 아닌가?”

이제 막 청의 가주가 된 청해솔이었다. 그 콧대 높은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지만, 한창 바쁠 시기일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도 윤사해 길드장님께는 전화 드려야죠. 감사하고 또 죄송했습니다.

“자네가 왜 사과를 하나? 사과할 작자는 따로 있거늘.”

맞아!

나는 윤사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은 괜찮나요?

“세상이가 많이 아프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해솔이 말했다.

-전대 가주와 그의 명령을 받았던 가문 사람들을 팔라크의 둥지에 집어넣을게요. 영약을 하나 구해 줄 테니 부디 너그럽게 봐주시기를.

“영약을 구해 준다면야.”

팔라크의 영약은 L급의 희귀 아이템이었다.

그러니까 청해솔의 저 말은, 전대 가주를 비롯하여 그의 명령을 받고 우리를 잠재웠던 가문 사람들이 몇 번이고 던전을 공략하게끔 하겠다는 거였다.

‘무서워.’

나는 팔라크의 둥지 공략에 들어갈 전대 가주와 그의 사람들에게 무탈을 기원하는 기도…….

……는 개뿔, 꼴좋다며 속으로 키득거렸다.

“그럼, 빠른 시일 내로 만나서 이야기 나누도록 하지.”

-네, 안 그래도 부탁드리고 싶은 것도 있어서요.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뚝, 전화가 끊겼다. 하지만 윤사해의 휴대폰은 쉴 틈이 없었다. 다시 우웅,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한 거다.

“서 비서?”

이번에는 서차웅에게서 걸려온 전화인 모양이었다. 윤사해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또 무슨 일인가?”

-그게, 린 님께서…….

“린? 에일린을 말하는 건가?”

-네.

윤사해가 짜증 섞인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에일린이 왜. 길드로 장난 전화라도 걸었나?”

-아니요.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목소리였다.

-지금 길드에 오셨습니다.

정말, 장난 전화 쪽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

에일린 리가 이매망량에 와 있다니.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동그랗게 뜰 뻔했다.

윤사해가 골치 아프다는 듯이 눈가를 꾹꾹 누르고는 말했다.

“지금 가겠네.”

-네, 길드장님.

윤사해가 내 이마와 저세상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방을 떠났다.

어쩌다 보니 결국 저세상과 단둘이서 자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나는 색색 더운 숨을 몰아 내쉬고 있는 저세상을 빤히 보다가 상체를 일으켰다.

밖에서는 윤사해가 윤리오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아버지. 애들은 제가 잘 보고 있을게요. 무슨 일 있을 것 같으면 바로 연락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믿음직한 말이었다.

“고맙구나, 리오. 그럼 다녀오마.”

그 말을 끝으로 밖은 조용해졌다. 상체를 일으켰던 나는 도로 침대 위에 누웠다.

엄마가 한국에, 그것도 이매망량에 있다니.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왜 왔대?”

나는 눈가를 찡그렸다.

***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윤리사뿐만이 아니었다.

윤사해가 역시 도대체 제 전 부인이 왜 이매망량에 온 것인지 궁금해하는 중이었다.

단숨에 귀수산에 들어선 그는 곧장 길드로 향했다. 대문을 열기 무섭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에일린.”

“안녕, 자기.”

길드 내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손을 흔드는 여자가 보였다. 윤사해는 짜증스레 얼굴을 구겼다.

“도대체 언제…….”

“한국에 들어온 거냐고?”

에일린 리가 윤사해의 말을 끊고는 입을 열었다.

“얼마 안 됐어. 새벽 비행기로 도착했으니까 한국에 도착한 지는 이제 3시간 정도 됐나?”

태연하기 그지없는 말에 윤사해가 눈가를 찡그렸다. 에일린 리는 그 얼굴에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청(淸)의 멍청이들이 우리 애들 가지고 장난쳤다며?”

장난이라.

윤사해가 입매를 비틀었다. 아이들이 처했던 위험을 단순히 ‘장난’으로 칭하는 그녀의 언사에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고는 에일린 리의 질문에 답해 주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한국에는 왜 온 거지? 아니, 그 전에 이매망량에는 어떻게 찾아 온 거지?”

“우리 자기, 나이 먹더니 까먹었나 보구나?”

에일린이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나한테서 안 가져갔잖아.”

가느다란 손가락에 걸린 줄이 보였다.

그 아래로 연결된 것은 명패. 이매망량의 출입을 자유롭게 해 주는 증표였다.

윤사해가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내놔.”

“그럴 수는 없지.”

에일린 리가 손에 들렸던 명패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는 웃었다.

“직접 가져가 보시든가.”

윤사해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그는 치미는 화를 겨우 삼키고는 에일린 리에게 으르렁거렸다.

“장난치지 말고, 내 질문에 어서 대답해.”

윤사해가 몸을 살짝 숙이고선 앉아있는 그녀와 눈을 맞췄다.

“에일린 리, 한국에 들어온 이유가 뭐야.”

에일린 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은색 눈을 예쁘장하게 휘며 입을 열었다.

“자기야.”

“그, 망할 ‘자기’ 소리 좀.”

“나 좀 도와줘.”

윤사해가 입을 다물었다.

***

저세상의 열은 저녁이 되고 나서야 내려갔다.

“세상아, 정말 괜찮아? 자리에 있으면 내가 알아서 수프 끓여서 가져다 줄 텐데.”

“괜찮아요, 형.”

저세상이 윤리오가 만든 특제 수프를 입에 떠 넣었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윤리타가 크게 하품했다.

“하암, 윤리오. 세상이 좀 그만 귀찮게 해. 애가 괜찮다고 하잖아. 그보다 나 좀 걱정해 줘. 계속 자도 머리가 너무 아파.”

“너무 많이 자서 그래.”

윤리오가 차갑게 대꾸해 주고는 말했다.

“리사, 더 먹고 싶으면 말해.”

“네에.”

아침 일찍 길드로 떠난 윤사해는 아직 소식이 없었다. 에일린 리와의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모양이지.

나는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더 안 먹어도 되겠어?”

“응!”

리오 오빠, 나 배 빵빵한 거 안 보여? 여기서 더 먹으면 터지고 말 거라고.

나는 윤리오를 향해 배시시 웃어 주고는 거실로 갔다.

저녁 7시가 훌쩍 넘은 시간인데도 밖은 밝았다. 정말 여름이 왔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다음 주부터 여름 방학이지? 이번 여름에는 뭘 할까? 단예랑 단이, 단아하고 도윤이랑 놀러 가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현관문이 열리며 윤사해가 돌아왔다.

아주 지친 낯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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