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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64)화 (164/500)

164화. 가주 경합(6)

바다를 갈라 버리다니! 청해솔, 당신은 도대체!

하지만 감탄은 잠시뿐이었다.

“콜록, 콜록!”

목구멍으로 넘어간 바닷물이 너무 따가웠다. 나는 연신 기침을 터트리며 호흡을 고르고자 했다.

그때.

“리사, 아가.”

커다란 손이 내 등을 토닥였다.

“아빠…….”

눈물이 절로 그렁그렁 매달렸다. 나는 그대로 와락 윤사해의 품에 안겼다.

“아빠아!”

장천의, 이 자식! 제대로 일하고 있었나 보구나!

윤사해가 느닷없이 나를 찾아올 리가 없었다. 그것도 가주 경합이 벌어지고 있는 바다 한복판에 말이다.

나는 윤사해를 꼭 끌어안았다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떠올리고는 다급하게 그를 찾았다.

“저세상! 세상이 오빠는?!”

〖여기 있다.〗

저세상은 정신을 잃은 채로 웬 늑대의 등에 누워 있었다. 그 늑대가 누구인지 나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랑야! 하늘도 날 수 있어요?”

〖윤사해, 저 자식도 할 수 있는 일을 나라고 못할까?〗

하긴, 그것도 그러네.

나는 가볍게 수긍하고는 또 다른 사람들을 찾았다.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 해진이 오빠는?! 오빠들도 여기 있는데!”

“뭐……?”

윤사해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무래도 윤리오와 윤리타, 청해진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나 보다.

괜히 말한 것 같네.

***

“아, 젠장.”

초랭이가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순식간에 말리고는 험악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얼굴 위를 덮고 있던 탈은 벗겨진 지 오래였다.

초랭이는 하늘 위를 흘긋 쳐다보고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윤사해, 저 자식은 여기 왜 온 거야? 아니, 그보다 어떻게 온 거야? 누나, 혹시 나 몰래 윤사해한테 연락이라도 넣었었어?”

“아니.”

윤사해가 어떻게 온 건지는 청해솔, 그녀도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을 해결하는 게 먼저였다.

청해솔은 제 뒤에 있는 아이들을 흘긋거렸다.

아이들이라고 하기에는 덩치가 좀 컸지만 청해솔의 눈에는 아이였다.

어쨌거나 초랭이의 손에서 지켜야했다. 그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순간, 싸움은 버거워질 테니.

때문에 청해솔은 허공에서 얼음으로 만들어진 창을 꺼내들고선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청정하.”

초랭이가 일그러진 미소를 보였다.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

“그냥 한 번 찔러 본 거야.”

이운조가 보안을 해제해 주었던 청(淸)의 족보.

그 속에서 모조리 줄이 그어져 있던 방계 가문의 이름들. 그 중에서도 밑줄이 여러 번 그어진 이름이 있었다.

“청(????)의 마지막 가주.”

초랭이가 실소를 터트리고는 입을 열었다.

“말은 똑바로 해 줄래, 누나?”

그는 손에 쥐어진 부채를 가볍게 한 번 휘두르고는 말했다.

“후계자였을 뿐이야. 우리는 너희같이 이런 경합 따윈 안 벌이고 평화롭게 후계를 정했었거든.”

끝에 실린 목소리에서 청해솔은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초랭이는 그대로 땅을 박차며 부채를 휘둘렀다.

“너희 빌어먹을 선조가 다 망쳐버렸지마는!”

콰과광-!

휘몰아친 폭풍에 청해솔이 집어삼켜졌다. 제 뒤의 아이들을 지키느라 피할 수가 없었다.

초랭이가 뿌옇게 일어난 흙먼지를 향해 비아냥거렸다.

“안 힘들어? 뒤에 딸린 떨거지들이 너무 버거워 보이는데.”

“걱정해 줘서 고맙네. 그런데 어르신, 암만 탈이라도 나이를 거스를 수는 없나 봐?”

모래바람이 뒤섞인 뿌연 먼지가 순식간에 걷어졌다.

“너무 간지럽네.”

피가 철철 흐르고 있음에도 청해솔은 웃고 있었다. 초랭이가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그녀에게 다시금 달려들었다.

손에 쥔 부채를 활짝 펼치고는 청해솔의 코 앞에서 바람을 일으키고자 했다.

청해솔을 포함하여 그녀 뒤에 있는 아이들마저 바람에 갈가리 찢기도록 만들고자 했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윽……!”

날카로운 창의 끝이 어깻죽지를 찔렸다. 초랭이가 눈가를 살짝 찡그리고는 부채를 휘둘러 청해솔의 창을 박살내 버렸다.

그래봤자 물로 이루어졌던 것. 청해솔은 간단하게 복구시켰다.

청해솔이 태연하게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초랭이는 그 모습에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여유롭기 그지없는 태도.

마음 같아서는 저 모습 그대로 산산이 부서뜨리고 싶었지마는.

‘윤사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빌어먹을 도깨비가 마음에 걸렸다. 그의 곁에 있는 진짜 도깨비야, 저를 해칠 수 없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물러나야 하나.’

치욕스럽지만 이 자리를 벗어나야하나 싶었다. 그걸 또 어떻게 알았는지 청해솔이 고개를 살짝 까닥거렸다.

쩌저적-!

얼어붙은 공기가 날카롭게 끝을 벼려 초랭이를 꿰뚫었다. 초랭이, 그가 반응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 되네.”

양 팔과 양 다리가 꿰뚫린 초랭이를 보며 청해솔이 웃었다.

“도망갈 것 같아서 붙잡으려고 했거든. 따로 계산 없이 한 건데, 설마 청(淸)의 힘이 내 의지대로 움직여 줄 줄은 몰랐어.”

“이 까짓 것, 그냥 간단하게……!”

풀 수가 없었다.

꿰뚫린 곳을 중심으로 몸이 얼어붙기 시작한 탓이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야 심장까지 드는 한기에 가쁜 숨을 몰아쉬었을 거다.

하지만 초랭이는 제 심장을 유랑단의 수장에게 가져다 바친 지 오래였다. 때문에 그는 사납게 얼굴을 찌푸리며 몸부림쳤다.

“괜히 발버둥치지 마. 잘못하면 양 팔과 양 다리가 부서져 버릴 거야.”

아주, 산산이.

나지막하게 덧붙인 말에 초랭이가 몸부림치는 것을 멈췄다. 대신 이를 으득 갈며 청해솔을 노려보았다.

“내가 누나를 너무 얕본 것 같네. 그저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더니.”

“그랬어?”

청해솔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를 너무 얕봤네, 어르신. 이렇게 보여도 청(淸)의 피를 가장 강하게 타고났다며 어릴 적부터 늙은이들의 관심을 차지했었거든.”

그러면서 청해솔은 말했다.

“그리고 나, 날 때부터 천재였어.”

“우와, 그런 말을 스스로 하다니. 안 부끄러워?”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잖아? 사실인 걸.”

초랭이는 아주 오랜만에 상대가 진심으로 재수 없었다. 그는 찌푸렸던 표정을 풀고선 담담히 말했다.

“놀지 말고 죽이지?”

어차피 청해솔이 제 목을 자른다고 해도 자신은 죽지 않을 터였다.

‘수장님께서 어련히 내 목을 거둬서 다시 몸을 만들어 주겠지.’

초랭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심드렁한 얼굴을 보였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청해솔이 내뱉은 말에 초랭이가 미간을 좁혔다. 그때 나선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대신 죽여 줄까 하는데, 해솔 양.”

윤사해였다.

***

윤사해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실려 있었다. 아무래도 제 아들들이 깨어나지 않는 데에 초랭이가 한 몫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윤사해를 진정시켜 주고자 그의 품을 파고들었지만.

“내가 대신 죽여 주지.”

아무래도 더 자극시킨 것 같다.

윤사해의 말에 청해솔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길드장님.”

그녀는 초랭이의 앞을 지키듯 막아서기도 했다. 윤사해가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목소리를 내뱉었다.

“해솔 양, 저 녀석을 그대로 AMO에 넘기면 모르는 사이 빠져나가고 말 거네.”

“알아요, 윤사해 길드장님. 하지만 AMO에 넘길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청해솔이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가주님, 가주 경합의 최종 승자는 저죠?”

난데없이 가주라니?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순간 허공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해솔아.”

가주였다.

나와 저세상을, 그리고 오빠들을 물방울 속에 가뒀던 망할 가주.

도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청의 가주는 사뿐히 바닥에 발을 딛고는 청해솔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청(淸)의 주인은 너란다, 해솔아.”

청해솔이 드러나는 표정 없이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모두를 이끌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가주의 지위는 반갑게 받아들이죠.”

“뭐?”

“가문 내의 일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가주님께서 맡아 달라는 거예요. 저는 그 지위만 받아갈 테니.”

청해솔이 씨익 웃고는 초랭이를 바라보았다.

“가주만이 사용할 수 있는 ‘청(淸)의 맹세’를 쓰고 싶어서요.”

청(淸)의 맹세라면, 서로의 심장을 내걸고 하는 약속이었다.

초랭이 역시 이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건지, 그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냥 죽여! AMO에 넘기든 네 마음대로 하라고!”

“싫어. 네 말을 들어줄 의무 역시 없고.”

청해솔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초랭이에게 말했다.

“청(淸)의 가주된 자로 어르신과 한 가지 약속을 할게. 대가로 지불할 것은 우리의 심장.”

“누구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지.”

청해솔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초랭이의 귓가에 속닥거렸다. 그 목소리가 워낙 작아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초랭이의 낯빛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으로 보아 그리 달갑지 않은 이야기를 들은 건 분명해 보였다.

초랭이와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낸 청해솔이 고개를 들었다.

“약속은 체결됐고, 전 가주님.”

새롭게 가주직에 오른 청해솔은 전 가주를 향해 경고성 짙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 녀석은 이제 제 사람이에요. 괜히 해치려고 들면 재미없을 줄 아세요.”

전대 가주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아무래도 속으로 초랭이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나 보다.

음흉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그보다, 청해솔은 결국 청(淸)의 가주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나 막고 싶었는데 말이지.

그래도 『각성, 그 후』에서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각성, 그 후』에서 청해솔은 가문 일은 안중에도 없는 나태한 용왕이었다.

지금처럼 전대 가주에게 가주직을 맡긴다거나 그런 일도 없었다.

어쨌거나 다행이라 생각하며 나는 청해솔이 하는 양을 지켜봤다.

“윤사해 길드장님, 자녀분들에 관한 건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해솔 양, 자네가 왜 사과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윤사해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사과할 것은 저 치들이네만.”

날선 눈빛이 전대 가주에게로 향했다. 사람 하나 꿰뚫어 버릴 만큼 날카로운 시선이었는데도 전대 가주는 여유로웠다.

“이거 미안합니다, 윤사해 길드장님.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군요.”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사과였다. 윤사해 역시 그것을 알아차리고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그러나 전대 가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윤사해와 우리에게 제대로 사과를 건네야 했다.

〖실례인 줄 알면 제대로 사과해야지. 청의 꼬맹이야.〗

거주자, 랑야의 짜증 섞인 목소리 때문이었다.

랑야가 품에 저세상을 안아든 채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청이 하늘에서 한탄하겠어. 제 후손 중에 너같이 싸가지 없는 녀석이 있다니.〗

여유가 만만했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랑야가 거주자가 아니었다면, 전대 가주는 분명 불같이 화를 냈을 거다.

하지만 랑야는 거주자.

더욱이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오래 전에 인간으로 생을 마감한 청(淸)과 친분이 있던 사이인 것 같았다.

결국, 전대 가주는 땅으로 내려와 윤사해와 우리를 향해 고개 숙였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윤사해 길드장님. 자녀분들께도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청(淸)의 이름으로 보상을 약속하며…….”

“전대 가주님.”

청해솔이 전대 가주의 목소리를 끊었다. 그녀의 앞에는 초랭이가 주저앉아 있었다.

청해솔은 그대로 초랭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억울하게 멸문당한 방계 가문의 어르신한테도 사과드려야죠. 우리 같이 말이에요.”

전대 가주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건 초랭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가 사과 따위를 바란대?! 누나, 내가 순순히 약속했다고…… 읍!”

청해솔이 초랭이의 입을 간단히 막아 버리고는 여전히 꿈나라 중인 청해진을 안아들었다.

아주, 가볍게.

“윤사해 길드장님, 죄송하지만 가문 내에서 일어난 일은 비밀로 해주시겠어요? 빠른 시일 내로 찾아뵙고 사과드릴게요.”

윤사해는 얼어붙은 입을 녹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초랭이를 한 번 노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가주의 뜻대로.”

S

청해솔이 옅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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