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가주 경합(4)
삐빅- 삐빅-
손목시계에서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업무를 막 시작하려고 했던 장천의가 눈살을 찌푸렸다.
“회장님?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천의는 손목시계를 가볍게 툭 건드렸다. 그러자 손목시계 위로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Error]
붉게 쓰인 글자.
장천의가 미간을 한껏 좁혔다. 그의 서류를 정리해 주고 있던 비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뭡니까, 회장님?”
“글쎄요, 저도 궁금하군요.”
태연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장천의는 내심 곤란해 하는 중이었다.
조금 전의 연락은 윤리사가 보내온 구조 신호인 게 분명했다.
조금 전에 울렸던 경고음은 아이에게 선물해 줬던 위치 추적용 팔찌. 그것의 알림이었으니까.
저세상에게도 준 것이지만, 그 아이에게 선물해 준 건 불량품이었다.
어쨌든 간에 장천의는 홀로그램 안에 쓰여 있는 글자에 곤란해졌다.
위치 추적이 불가능한 장소는 한 장소밖에 없었다.
남해.
청(淸)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는 그곳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위치 추적과 관련한 모든 것이 불가능한 장소였다.
장천의가 아래턱을 만지작거렸다.
“지금 청(淸) 가문에서는 가주 경합이 한참이지요?”
“네, 조금 전에 막 가주 경합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럼, 가주 님께 연락을 해 봤자 받지 않겠군요.”
CW(Clock Work).
국내 최고층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이자, 던전을 비롯한 각종 연구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길드’인 이곳의 주인인 장천의.
그는 국내외 모든 소식을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선점하는 자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장천의는 잠깐 고민하다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인가, 장천의 회장.
“좋은 아침입니다, 고객님!”
윤사해였다.
-자네 때문에 불쾌한 아침이 되고 말았으니 어서 할 말이나 하게.
“고객님, 오늘따라 왜 그렇게 저기압이십니까?”
-자네 때문 아닌가.
“자녀분들이 모두 집을 비워서는 아니고요?”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장천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하긴, 넷이나 되는 아이들이 다같이 집을 비운 건 처음일 테니까요. 그렇게 저기압인 것도 이해가 갑니다, 고객님.”
-우리 애들이…….
“남해 청 가문의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하러 간 건 어떻게 알았냐고요? 저 장천의입니다, 고객님.”
자신이 세상만사 모를 일은 없을 거라는 뜻이었다.
짜증 섞인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장천의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그렇게 애들이 보고 싶으시면, 청 가문에 찾아가겠다 통보하고 보러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청 가문과 풀어야할 일도 있잖습니까?”
-내가 그 치들과 풀어야할 일이 뭐가 있다고.
“팔라크의 둥지.”
윤사해라면 분명, 조금 전의 대답에 이마를 짚고 있으리라.
장천의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청의 소유였던 팔라크의 둥지가 DMO로 넘어간 일이 있었죠. 그때 힘을 써 준 것이 윤사해 길드장님인 걸 알고 있답니다.”
-망할.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돌아왔다. 장천의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어쨌거나 통보한 후 무작정 찾아가는 거, 고객님의 특기이지 않습니까? 애들 없다고 집에서 궁상떨지 마시고 보러 가십시오.”
-헛소리 말게.
조금 늦은 대답이었다.
-그보다 왜 연락한 건가?
“잘 지내시고 계신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VVIP 고객님의 안부를 걱정하는 건…….”
뚝, 연락이 끊겼다.
자리에 없는 척, 조용히 있던 장천의의 비서가 민망해할 정도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장천의는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윤사해가 전화를 끊은 후, 곧장 청 가문으로 내려갈 것을 알기에.
***
망할 청 가문, 망할 초랭이!
초랭이가 일으킨 회오리가 우리가 있는 물방울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착각이면 좋겠지만, 망할 탈쟁이 녀석이 한 말이 있었다.
‘앞으로 한 시간 내로 이번 가주 경합의 참가자들은 내가 있는 곳에 도달해야할 거야.’
‘그러지 못하면요?’
‘너희가 안에 들어가 있는 그 물방울이 회오리로 인해 터지고 말거야. 그럼, 너희는 그대로 회오리에 휘말리고 말겠지?’
나는 저세상을 방패 삼아 앞으로 내세운 뒤, 초랭이의 뒤통수를 한껏 노려봤다.
“뒤통수 뚫어지겠네.”
“……!”
나는 놀라 숨을 들이켜 마셨다.
초랭이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만 좀 째려보지? 윤사해 꼬맹이 아니랄까 봐 겁 없는 것 좀 봐.”
자기도 꼬맹이면서!
유랑단의 망할 탈쟁이께서는 나와 저세상을 향해 한껏 비웃음을 그리며 말했다.
“가주 경합 참가자 중 누군가 도착하면 어련히 알아서 풀려날 거야. 걔가 구해 주겠지. 그러기도 전에 내 손에 죽겠지만.”
암만 생각해도 초랭이는 미친놈에 더럽게 성격 나쁜 녀석이었다. 머리도 그만큼 나빴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그건 아닌 듯했다.
돌머리였으면 나와 저세상을 알아보는 건 둘째 치고, 이런 일을 꾸밀 리가 없었으니.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초랭이를 노려보고 있는 내 두 눈앞에는, 푸른 창이 옅게 빛을 내고 있었다.
청해솔.
우리 때문에 억지로 가주 경합에 참가하게 된 그녀의 모습이 푸른 창에 비춰지고 있었다.
언니, 오지 마.
오려면 가문의 망할 늙은이들 좀 데리고 와 줘. 우리 아빠를 데리고 와도 좋고.
물론, 내 간절한 목소리는 청해솔에게 닿지 못했다.
***
“해솔아.”
밝은 빛이 흘러들고 있는 수면을 올려다보고 있던 청해솔이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있어도 돼? 출발하지 않아도 되겠어?”
“그러는 너는.”
“나야 참가에만 의의를 뒀으니까. 바다에 갇힌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관심 없어서.”
청하연이 미소를 그렸다.
“하지만 바다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윤사해 길드장님의 자녀분들이란 게 조금 걸리기는 하네.”
청해솔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번 가주 경합은 시험은 하나였다. 남해 바닷속에 갇힌 여럿의 사람 중 한 명을 구해오는 것.
그들이 갇힌 바다에는 청 가문 내에서 기르고 있는 각종 해수어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말이 좋아 해수어지, 그것들은 모두 몬스터였다. 청의 후손들조차 가까이 다가가기를 꺼려하는 포악한 몬스터들.
‘그 사이에 애들이 갇혀 있다니.’
도대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런 일을 벌였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청해솔이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릴 때였다.
“그보다 해진이가 걱정이네. 분명 수면초를 사용해서 재워 뒀을 텐데, 그 상태로 빠지기라도 해 봐.”
암만 청(淸)의 힘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물에 빠져 죽고 말 터였다.
청해솔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웃으며 사람 기분 뭣같이 만드는 건 여전하네.’
청류하와는 다른 의미로 짜증나고 불쾌한 녀석이었다.
청해솔은 청하연에게서 신경을 끄기로 했다. 하지만 청하연은 계속해서 재잘거렸다.
“류하가 구해야 하는 인질이 분명 ‘리사’라는 아이였지? 윤사해 길드장님의 막내 따님.”
청해솔은 묻는 말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청하연은 청해솔이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류하라면 윤사해의 막내 따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구하지 않을 텐데 말이야.”
“과연 그럴까?”
청해솔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권력에 눈이 멀대로 멀어 있는 놈이잖아. 분명 윤사해 길드장님의 자녀분들을 모두 구해낸 후 떵떵거릴 걸?”
“뭐, 그렇기는 하겠네. 하지만 네 동생은 구하지 않겠지.”
청해솔이 한쪽 눈가를 찡그렸다. 청하연은 그런 그녀를 보며 싱긋 웃음을 지어 줄 뿐이었다.
‘짜증나.’
옆에 있는 청하연도, 앞서 가고 있는 청류하도 짜증났다. 또한, 화가 났다.
자신을 어떻게든 가주 경합에 참가하게끔 만들어, 가문의 윗자리에 앉히려 드는 늙은이들에게.
그런 늙은이들의 손에 저를 어릴 적부터 도와준 윤사해의 자식들과 제 하나뿐인 동생이 이용됐다는 게 치가 떨리도록 화가 났다.
‘뒤집어엎자.’
청해솔은 팔을 뻗었다.
저 멀리서 거대한 몸집의 해수어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내 다가온 것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채, 청해솔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금방이라도 해수어에게 집어삼켜질 듯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으나 청해솔은 태연했다.
그녀는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청(淸)하리다.”
울린 목소리와 함께 바닷물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희게 일어난 거품이 이내 파도를 만들어내 해수어를 힘껏 밀어 버렸다.
해수어가 나타난 시점부터 청해솔에게서 멀찍이 물러나 있던 청하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청해솔의 앞으로 길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양 갈래로 나뉜 바닷물에 청하연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청해솔은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한 후 앞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먹으려 했던 해수어가 울퉁불퉁한 바닥에서 펄떡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는 회오리가 보였다.
‘내가 한 일은 아닌데.’
그렇다고 자신의 뒤에 있는 청하연의 짓도 아니었다.
‘청류하, 그 자식인가.’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해수어를 상대로 일으킨 회오리라고 하기에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상대하고 있는 해수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저건 도대체 뭔지…….”
뭐가 됐든, 가 보면 알겠지.
청해솔이 심드렁한 얼굴로 기지개를 켠 후, 걸음을 박찼다.
곧이어 불어온 바람과 함께 청해솔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