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가주 경합(3)
“세상이 오빠, 어떻게 생각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지. 해솔이 누나를 가주 경합에 참가시키려고 우리를 이용한 거잖아.”
저세상이 그렇게 말하고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
“리오 형이랑 리타 형도.”
“해진이 오빠도 이용했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저세상에게 물었다.
“어떻게 될 것 같아?”
“해솔이 누나가 가주가 된 후 가문을 뒤집어엎을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그래.”
나는 출렁거리고 있는 물방울의 바닥에 그대로 몸을 눕혔다.
청해솔이 가주가 되는 일을 막고 싶었는데, 결국 일이 이렇게 되고 말다니.
“망할 늙은이!”
“그러니까 말이야.”
저세상이 나를 따라 바닥에 드러누웠다.
“암만 청 가문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올 줄이야.”
저세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형들은 어때?”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윤리오와 윤리타, 청해진은 여전히 꿈나라였다.
아무래도 저 셋에게는 내게 걸었던 스킬보다 더한 것을 걸어 놓은 모양이었다.
하긴, 저 세 사람 모두 무시 못할 각성자니까 말이지.
더욱이 청해진은 마음만 먹으면 이곳을 탈출할 수 있는 청(淸)의 사람이기도 했고.
어쨌든 큰일이었다.
바깥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해가 뜬 건 분명했다.
바닷속으로 흘러들고 있는 밝은 빛을 통해 아침이 됐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지금쯤이면 단예와 단아가 내가 사라진 걸 알아차렸겠지.
나는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 아저씨가 뭐라고 하든 아빠한테 다 일러바칠 거야.”
“가주가 하는 말 못 들었어? 그러다 큰일 날걸?”
저세상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처럼 얼굴을 구겼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이런, 미친 선비 새끼가! 문을 이딴 곳에 열면 어떻게 해!”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아니, 잠깐만. 선비라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봤다.
짙은 분홍색의 머리칼을 반으로 묶은 남자가 보였다.
입고 있는 교복으로 보아, 많아 봤자 고등학생 정도의 소년인 것 같았다.
문제는 이곳이 바닷속이라는 것과.
“초랭이?”
소년이 쓰고 있는 탈이었다.
저세상이 멍하니 말했다.
“초랭이가, 왜 여기에…….”
초랭이라면 청해진을 죽이려고 한 그 망할 놈이잖아?
더듬거리며 말하는 목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초랭이가 고개를 들고선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는가 싶더니 두둥실 떠올라 우리 앞에 섰다.
“음? 뭐야, 너희 윤사해 꼬맹이들 아니야? 아닌가? 하긴, 윤사해의 꼬맹이들이 바닷속에서 그러고 있을 리가 없으니.”
나라도 초랭이의 입장이 된다면, 그와 똑같은 생각을 할 것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각성자의 딸과 그가 보호하고 있는 아이가 바닷속에서 이러고 있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어도 할 말이 없을 광경이기는 하지.
“하지만 눈을 그렇게 뾰족하게 뜨고 있는 걸 보면 맞는 것 같은데.”
뾰족하게 뜨고 있다니! 그냥 노려본 것뿐이거든!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맞는다고 한 순간, 눈앞의 탈쟁이가 어떻게 달려들지 모를 일이었다.
더군다나 바닷속에서도 자유롭게 숨을 내쉬며 말하고 있다니!
입을 잘못 놀렸다가 눈앞의 탈쟁이가 나와 저세상을 보호해 주고 있는 이 물방울을 터트려버린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 와중에 망할 탈쟁이가 물방울을 톡톡 건드리며 우리에게 물었다.
“야, 너희 내 말 안 들려? 아니면 말하고 있는데 내가 못 듣고 있는 건가? 얘가 방해하는 것 같은데 터트려 버릴까?”
저 미친놈이?
나는 질겁하며 외쳤다.
“들려요! 하지만 윤사해 길드장님과 저희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저세상이 진심이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세상이 오빠, 일단 살고 봐야지! 눈치껏 장단 맞춰!
다행히도 우리 주인님께서는 내가 바란 대로 눈치껏 장단을 맞췄다.
“마, 맞아요! 윤사해 길드장님과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그래?”
초랭이가 싱긋 웃었다.
“그럼, 쟤들이랑 같이 있는 이유는 뭘까?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도련님들께서는 아무리 봐도 윤사해의 아이들인데.”
망할!
도대체 오빠들은 언제 본 거야?
초랭이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히죽거렸다.
“내가 쟤들이랑 인연이 좀 있어서 착각할 리가 없거든. 게다가 한 명은 이전에 죽이는데 실패했던 청의 아이잖아?”
초랭이가 밝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너희, 윤사해의 자식들 아니야? 거짓말은 안 해 줬으면 하는데.”
아니라고 하면 물방울을 터트려버릴 기세였다. 나는 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맞아요. 하지만 세상이 오빠는 아빠가 후견인으로 있어 주고 있을 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에요.”
“야! 윤리사!”
저세상이 성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
유랑단의 아홉 탈은 모두 윤사해에게 악감정이 있었다. 그러니 그의 자식을 좋게 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저세상이라면 달랐다.
그는 윤사해가 몸소 후견을 자처한 아이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지.
“아아, 윤사해가 후견해 주고 있는 아이가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 걔랑 같이 산다는 것도. 그러니까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 안 그래?”
내가 유랑단의 탈쟁이를 너무 좋게 생각했지.
나는 짜증스레 눈가를 찡그렸다. 초랭이가 그런 나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네?”
“여기서 뭐하고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지금 가주 경합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걸로 아는데…….”
초랭이가 돌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우리에게 물었다.
“설마, 가주 경합에 너희를 이용하고 있는 거야?”
나와 저세상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었는지, 초랭이가 배를 잡고 폭소했다.
“진짜야? 와하하하하!”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그는 눈가를 닦아내며 키득거렸다.
“이번 대의 가주님께서는 정말 골 때리는 분이시네! 뭐, 언제나 그랬지마는.”
언제나 그랬다니.
의뭉스러운 말에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초랭이가 웃음을 멈추고는 우리에게 물었다.
“내가 왜 왔는지 궁금해?”
궁금하기는 했지만, 묻고 싶지는 않았다. 돌아올 대답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초랭이가 자기 혼자 북치고 장구 치면서 답해줬다.
“별 거 없어. 의뢰를 하나 받았거든. 가주 경합에 참가하는 후손을 처리해 달라더라고.”
가주 경합을 망치려 온 줄 알았다니, 그 후손을 죽이려고 온 거였어?
나는 놀라 소리 질렀다.
“안 돼요!”
“아니야, 돼.”
안 된다고, 이 자식아!
나는 초랭이가 받았다는 의뢰의 대상이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청해솔.
초랭이는 그녀를 노리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초랭이에게 그런 의뢰를 부탁한 사람은 아마…….
‘청류하, 이 미친 자식!’
『각성, 그 후』에서도 유랑단의 손을 빌려 청해솔을 몰아내려고 그러더니! 이 세계에서도 그래?
“너무 그런 얼굴로 보지 마. 방금 전에 재미난 생각이 떠올랐거든.”
초랭이가 떠올린 생각이 하나도 재미없을 생각이란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냥 죽여 버리는 건 재미없잖아? 아무래도 너희를 구하는 게 이번 가주 경합의 주요 내용인 것 같은데, 너희를 좀 이용해야겠어.”
역시나였다.
우리를 어떻게 이용한다는 건지, 굳이 물을 필요는 없었다.
“으악……!”
망할 탈쟁이 새끼가 우리 주변으로 물보라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초랭이의 손에 부채가 들려 있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저 아이템의 효과인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청(淸)의 사람도 아닌데, 그들의 영역에서 이렇게 물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저세상이 나를 꼭 끌어안았다. 아무런 힘도 없는 주제에, 나를 보호하려는 모양새였다.
바닷속에서 회오리를 일으킨 초랭이는 태연자약했다.
“으음, 보자. 가주 경합이 시작된 것 같네? 적당해.”
하나도 적당하지 않거든?!
그보다 가주 경합이 시작된 건 어떻게 알아차린 거야? 아니, 애초에 초랭이의 말대로 가주 경합이 시작된 건 맞는 거야?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사용해 청해솔을 살펴보려는데, 초랭이가 웃는 낯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앞으로 한 시간 내로 이번 가주 경합의 참가자들은 내가 있는 곳에 도달해야할 거야.”
“그러지 못하면요?”
나의 물음에 초랭이가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너희가 안에 들어가 있는 그 물방울이 회오리로 인해 터지고 말거야. 그럼, 너희는 그대로 회오리에 휘말리고 말겠지?”
뭐 저렇게 미친놈이 다 있지?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초랭이에게 물었다.
“의…… 의뢰는요? 의뢰가 있다면서요. 그건 어떻게 하고요?”
“글쎄, 어떻게든 되겠지?”
초랭이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활짝 웃었다.
“가장 먼저 내가 있는 곳으로 도착하는 참가자가 의뢰 대상이면 죽이고, 그렇지 않아도 죽이고. 그러면 되지 않겠어?”
되겠냐?
아무래도 초랭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미친놈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유랑단의 탈쟁이들 중 가장 미친놈이 초랭이었을지도.
어찌됐든 간에 지금 이 상황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한 가지였다.
아주 뭣 됐다는 거.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끼고 있던 팔찌를 꾹 눌렀다. 초랭이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아주 조심히.
부디, CW에서 능글맞게 웃고 있을 장천의가 나를 추적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