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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60)화 (160/500)

160화. 가주 경합(2)

청사초롱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 이곳, 유랑단의 보금자리에 누군가 시끄럽게 찾아왔다.

“선비야~!”

좀처럼 모습을 보기 힘든 초랭이였다. 선비가 눈살을 찌푸렸다.

“뭡니까? 재수없게 왜 그리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저를 부르는 거죠, 초랭이?”

초랭이가 활짝 웃고는 말했다.

“남해로 가는 문 좀 열어 줘.”

“남해……?”

선비가 미간을 좁혔다.

“청 가문의 성역에는 왜 가려는 겁니까?”

“이유는 묻지 말고 빨리 열어 주기나 하지?”

“이봐요, 초랭이.”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가 선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당신이 무슨 꿍꿍이로 청 가문의 성역을 방문하려는 건지 관심 없습니다.”

“관심 없으면 어서 열어 주기나 해. 나 급하다고.”

“하지만.”

선비가 매섭게 초랭이의 입을 가로막고는 말했다.

“경각심을 좀 가지지 그러십니까?”

“무슨 경각심?”

초랭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가 이내 무언가 떠올린 듯,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아, 안 그래도 양반의 자리가 여전히 공석인데 중에 이어 백정까지 공석이 된 거?”

초랭이의 입꼬리가 비딱하게 올라갔다.

“그거야 그 녀석들이 멍청해서 죽은 거고.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알고 있지 않아?”

초랭이가 눈웃음을 지었다.

“나는 너희와 다르게 수장님께 이름이 아닌 심장을 바쳤다는 걸.”

초랭이가 제 심장이 있던 부근에 손을 올리고선 말했다.

“수장님께서 그 손으로 내 심장을 터트리지 않는 한, 나는 죽지 않아. 불멸이라고.”

그에 선비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신 걱정 한 적 없습니다.”

“네네, 그러시겠죠. 알겠으니까 이제 남해로 가는 문 좀 열어 주시겠어요? 우리 의뢰자 분께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결국, 선비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문을 열어 주었다.

“돌아오는 건 알아서 하십시오. 청 가문의 성역에는 유랑단으로 이어지는 길이 없으니까요.”

“기꺼이.”

초랭이가 씨익 웃으며 얼굴 위로 탈을 덮어썼다.

이내 사라진 그의 모습에 선비는 짜증스레 곰방대를 들었다.

***

“으음…….”

누워 있는 자리가 불편했다. 마치, 물을 가득 담은 비닐 위에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결국 졸린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헉, 뭐야?!”

놀라 소리 질렀다. 황급히 두 손을 들어 입가를 막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내 주위로 유유자적하게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있는 이곳은 바닷속이었다. 나는 멍하니 입을 뻐금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익숙한 사람들이 보였다.

“리오 오빠? 리타 오빠?”

청해진까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깔끔하게 무시하며 윤리오와 윤리타를 불렀다.

“리오 오빠! 리타 오빠! 정신 차려봐! 오빠!”

하지만 윤리오와 윤리타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울상을 짓고는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 발치에도 쓰러져 있는 사람이 보였다. 나는 곧장 그의 어깨를 흔들어댔다.

“세상이 오빠, 일어나 봐!”

하지만 저세상의 두 눈은 꼭 감겨 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얼굴을 와락 찌푸리고는 손을 들어 올렸다.

“야, 저세상!”

쫘악-!

그대로 저세상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 다행히 찰지게 저세상의 뺨을 때린 보람이 있었다.

“허억……!”

저세상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으니 말이다.

깨어난 저세상은 당황한 듯, 두 눈을 끔뻑이고는 내게 물었다.

“윤리사? 네가 왜 여기 있어? 한단이랑 백도윤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주변을 좀 봐.”

저세상이 내 말에 주변을 살펴보고는 내게 말했다.

“우리 언제 아쿠아리움에 왔어?”

현실을 부정하는 건지, 바보인 건지 모르겠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아쿠아리움이 아니라 바닷속이야. 우리 지금 바다에 들어와 있다고.”

“뭐……?”

저세상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우리한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윤리오와 윤리타, 청해진을 발견하고는 놀라 소리 질렀다.

“리오 형? 리타 형? 해진이 형까지 있잖아! 형! 형들!”

“소용없어. 내가 이미 불러봤다고.”

청해진은 부르지 않았었지만, 어쨌든 간에.

“세 사람 다 깰 생각을 안 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나도 그걸 알고 싶어. 세상이 오빠, 짐작 가는 거 없어?”

“있겠냐? 자다가 일어나니 바닷속인데.”

나는 뚱하게 입술을 씰룩였다.

“아주 세상모르고 잤나 보네?”

“그러는 자기는?”

“나는 아니거든.”

분명, 깨어 있었다.

그런데…….

“일어나 있었는데 하담이 오빠가 나를 기절시켰어.”

“뭐?!”

저세상이 내 어깨를 붙잡고는 흔들었다.

“그 인간이 너를 기절시켰었다고?! 어디야! 어디를 때려서 기절시킨 건데!”

“어…… 어디를 때리지는 않았는데? 그냥 스킬을 사용해서 잠재운 것 같았어. 그러니까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그게 되겠어?!”

아니, 왜 이렇게 난리람?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저세상을 진정시켰다.

저세상은 내 몸을 꼼꼼하게 살펴본 후에야 안도하며 얼굴을 와락 구겼다.

“윤리사, 너는 각성자인 애가 그렇게 당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

“누가 그렇게 나를 재울 줄 알았나? 그러는 세상이 오빠는 세상모르고 자다가 여기로 왔으면서!”

그렇게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나지막하게 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닷속에서 웃는 소리라니, 귀신인 건가 싶어 나와 저세상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귀신은 아니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사이가 참 좋군.”

“아저씨는……!”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통해 봤던 사람이었다.

청해솔과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하던 청 가문의 어르신.

그가 우리를 올려다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윤사해 길드장의 자녀분들께 이런 무례를 저지르기는 싫었다만 미안하게 됐습니다.”

바닷속에서 어떻게 걷고 있고, 또 말하고 있는지는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비눗방울과도 같이 맑게 빛을 내고 있는 벽을 두드리며 외쳤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당장 꺼내 주세요!”

“그건 곤란합니다.”

망할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가주 경합이 끝날 때까지 조금만 참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어린 분들께 해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어?!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때 저세상이 말했다.

“아저씨가 가만두지 않을 텐데요.”

“아저씨라면 윤사해 길드장님을 말하는 거겠죠. 이 자리에 없는.”

저세상의 얼굴이 짜증스레 구겨졌다. 윤사해한테 연락할 수단이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그럴 방법이 없었다.

아니, 잠깐만.

나는 손목에 끼워져 있는 팔찌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위치 추적 기능이 달려 있는 CW산의 팔찌를.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저세상은 여전히 아래의 망할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지금에야 아저씨가 모른다고 하겠지만, 가주 경합이 끝나고 나서도 그럴까요?”

“그거 아십니까? 사람의 몸은 70%가 수분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저희 가문은 물을 장난감마냥 다루지요. 어린 분들의 몸에 흐르는 수분 또한요.”

그러니까 저 말은, 협박이었다.

괜히 윤사해에게 입을 놀리려고 하지 말라는 협박.

저 아저씨,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청 가문의 높으신 분이 분명한 아저씨가 나긋하게 목소리를 냈다.

“해솔이가 어련히 알아서 구하러 올 테니, 그때까지 그 안에서 얌전히 계시기를.”

아저씨는 그 말을 남기고서 뒤를 돌았다. 곧 멀어지는 뒷모습에 나는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아무래도 뺨을 맞을 사람이 한 사람 더 생긴 것 같다.

***

청해솔은 밤이 늦도록 들은 이야기에 대해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 해솔아. 네가 묻는 것은 또 다른 청 가문이겠지. 우리의 방계인, 그러나 멸문당한.’

‘아시면 빨리 알려 주지 그래요?’

청 가문의 가주에게는, 그 자리에 오르기 무섭게 가문의 모든 역사를 탐구할 기회가 주어졌었다.

‘그들은 대지의 모든 색을 타고 났었다고 하더구나. 붉은 동백꽃의 색을 지니고 있기도 했고, 봄날의 벚꽃과도 같은 색을 타고나기도 했지.’

하지만.

‘우리와 같은 바다의 색을 타고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네 동생과 같은 숲의 색을 타고나는 녀석은 있었어도, 바다의 색을 타고나는 녀석은 없었지.’

그에 청해솔은 물었다. 자신이 궁금한 건, 그들의 가문이 멸문당한 이유라고.

그 말에 청강운은 웃었다.

‘멸문당한 이유라. 당연히 청(淸)께서 주신 것에 감사한 줄 모르고 감히 그분께 반기를 들어서가 아니겠니?’

결국, 정확한 이유는 듣지 못했다.

가주와의 이야기를 되새기고 있던 청해솔이 짜증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으아앙! 윤리사! 윤리사아!”

“셋째야, 진정하렴.”

“그래, 단아야. 그리고 리사뿐만이 아니라 세상이 형도 사라졌잖아.”

“리오 형이랑 리타 형도 없어!”

청해솔이 들려오는 목소리들에 눈가를 찡그렸다.

“하담 씨, 거기 있어요?”

“네, 해솔 님.”

정하담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아이들한테 가 보세요.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하지만 정하담은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하담 씨?”

“죄송합니다, 해솔 님.”

그 사과에 청해솔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내 그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정하담이 왜 자신에게 사과를 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어르신들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청해솔이 이를 으득 갈았다.

“이 망할 늙은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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