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가주 경합(1)
저녁 도중에 다급하게 청해진을 찾은 사람은 정하담이었다.
청해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에게 물었다.
“하담이 형, 무슨 일이에요?”
정하담이 우리의 눈치를 보다가 청해진에게 다가가 속닥거렸다.
정하담의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청해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청해진? 무슨 일이야?”
윤리오가 걱정스럽게 청해진을 쳐다봤다. 청해진은 그 시선에 방긋 웃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것도 아니야. 먼저 저녁 먹고 있어.”
그는 그대로 식당을 나가 버렸다.
윤리타가 청해진이 사라진 자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지?”
윤리오가 젓가락을 들며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저렇게 급하게 나가는 걸 보니까 해솔이 누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신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괜찮겠지. 해솔이 누나니까.”
윤리오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청해솔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청류하, 그 재수탱이가 주제도 모르고 청해솔에게 까불었다가 얻어맞아 그녀를 좀 말려 달라고 청해진을 부른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이런 내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
“누나! 뭐하는 거야?!”
“청해진?”
청해솔이 잡고 있던 청류하의 멱살을 놓아 주었다.
“뭐야, 누가 청해진 불러왔어요?”
“죄송합니다, 해솔 님.”
정하담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청해솔이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제가 설마 얘를 죽이겠어요? 다음부터는 이런 쓸데없는 짓 하지 말도록 하세요, 하담 씨.”
“네, 해솔 님.”
청해솔에게 멱살이 잡혀 있던 청류하는 바닥에 주저앉아 기침을 터트리고 있었다.
정하담이 청류하를 부축해 주려고 했으나, 청류하가 매섭게 정하담의 손을 뿌리쳤다.
“꺼져!”
그 쨍한 목소리에 청해솔이 얼굴을 찌푸렸다. 청류하는 이를 으득 갈며 청해솔을 노려봤다.
“청해솔……!”
“시끄러.”
청해솔이 매섭게 청류하의 말을 끊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져있던 책을 주워들고는 그를 비아냥거렸다.
“가주가 되겠다는 새끼가 선조 분들께서 남긴 물건을 함부로 대하고 말이야.”
청해솔은 서적에 묻어 있던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말했다.
“그렇게 해서 가주가 될 수 있겠어, 청류하?”
“그 입 닥쳐!”
청류하가 씩씩거렸다.
“기고만장하는 것도 오늘까지일 테니까.”
“내가 언제 기고만장했다고?”
청해솔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녀는 미간을 살포시 좁히고는 짜증스레 목소리를 내뱉었다.
“몇 번이나 말하잖아, 청류하. 나는 가주 자리 줘도 안 가질 거라고.”
“그러니, 해솔아?”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해솔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 울창한 숲을 닮은 머리칼을 가진 남자가 서있었다.
“그것 참 곤란하구나.”
“가주님.”
청해솔과 청해진, 청류하가 고개 숙였다.
남자의 정체는 이번 대의 청(淸)의 가주인 청강운.
청해솔과 청해진, 청류하에게 있어서는 큰 아버지 되는 사람이었다.
청강운이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아니고서야 청(淸)을 이끌어 갈 사람이 없거늘.”
청류하가 그 말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청해솔은 담담한 얼굴로 목소리를 내뱉었다.
“가주님, 몇 번이나 말하지만 저는 가주 자리에 관심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주 경합 시기에 맞춰 가문에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청해솔은 입을 다물었다.
가주 경합으로 가문이 정신없을 때, 원하는 것을 찾고자 가문을 방문한 거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청강운이 청해솔의 옆구리에 끼어 있는 서적들을 보고는 말했다.
“서고를 방문한 걸 안단다.”
청해솔의 눈가가 살짝 찡그려졌다.
“예전에도 서고를 방문하고자 가문에 내려왔었지. 그렇지 않니?”
청해솔은 이번에도 입을 다물었다.
묵묵부답인 그녀를 향해 청강운이 다시금 물었다.
“찾는 것이 있는 모양이지?”
“가주님께서 신경 쓰실 필요 없는 문제입니다.”
“내가 어떻게 그러겠느냐?”
청강운이 선하게 미소를 그리며 말을 덧붙였다.
“나는 청(淸)의 가주. 이 가문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지. 그러니 해솔아.”
청강운이 성큼, 청해솔의 앞에 다가서며 말했다.
“가주 경합에 참가하거라. 참가만 한다면 내 네가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알려 주마.”
“가주님……!”
청류하가 벼락같이 소리 질렀으나, 그의 입은 청강운이 보내는 시선에 다물어졌다.
청해솔이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며 그에게 물었다.
“제가 무엇을 궁금해하고 있는 줄 알고요?”
“내 네가 무엇을 찾고 있는 줄 모르나 그것이 무엇이든 답해 줄 수는 있단다.”
“아주 오래 전에 멸문당한 방계 가문에 대해서도 말입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청강운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청류하는 청해솔을 향해 한껏 비웃음을 보였다.
“방계 가문이라니!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들어와서는!”
“닥쳐, 청류하. 너한테 한 소리 아니니까.”
청류하의 얼굴에 걸렸던 비웃음이 일그러졌다. 청해솔은 그를 향해 조소를 보내 줬다.
하지만 들려오는 청강운의 말에 청해솔의 입에 걸려 있던 웃음 역시 일그러지고 말았다.
“해솔아, 나 역시 류하와 같이 궁금하구나. 네가 어디서 방계 가문에 대해 듣고 왔는지.”
청해솔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그러니 가주님, 대답해주시죠. 멸문당한 방계 가문에 대해서도 알려 주실 겁니까?”
청강운은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궁금해하는 건 뭐든 알려 주도록 하마.”
청해솔은 청강운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말했다.
“좋습니다.”
관심 없다고 하더니! 역시 거짓말이었지!
청류하가 청해솔을 향해 분에 찬 시선을 보냈다. 청해솔은 그 시선을 간단히 무시하며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제가 정말 내일 있을 가주 경합에 나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청강운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만으로도 좋단다. 그럼, 나를 따라오렴. 해솔이, 네가 궁금해하는 것을 바로 알려 주마.”
청해솔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청강운의 뒤를 따랐다.
청류하는 멀어지는 그들을 보다가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청해진!”
“네? 저, 저는 왜요!”
청류하가 청해진의 멱살을 잡고자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물보라가 일으켜졌다.
“청류하.”
청강운의 뒤를 따라가고 있던 청해솔이 두 눈을 번뜩이며 경고했다.
“내 동생한테 괜한 화풀이하지 마. 찌질하게.”
물에 흠뻑 젖은 청류하의 아랫 턱이 파르르 떨렸다. 청해솔은 허공에서 일어난 물보라를 가라앉히고는 말했다.
“하담 씨, 청해진 데리고 돌아가도록 하세요.”
“네, 해솔 님.”
청해솔이 청강운을 향해 고개를 꾸벅거렸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소란을 일으켰네요.”
“아니란다. 어서 가자꾸나.”
청강운이 작게 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청류하는 분노 어린 눈으로 청해솔의 뒤를 노려봤다.
***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이 해제됩니다.】
청해솔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그녀를 살펴보던 나는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의 발동을 취소했다.
청해진이 저녁을 먹다 말고 급하게 나간 이유는 간단했다.
예상했던 대로, 그 재수탱이가 청해솔에게 두드려 맞고 있어서였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그 인간은 왜 자꾸 청해솔에게 되도 않는 시비를 거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청해솔은 청해진의 등장에 청류하를 놓아 줬고, 웬 어른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곧장 청해솔에게로 인지의 대상을 옮겨갔지만, 커다란 저택에 들어선 청해솔은 그 어른과 아무 일 없이 이야기만 나눌 뿐이었다.
대화가 들리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때문에 나는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해제한 거다. 청해솔에게 딱히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았고 말이지.
그보다 청해솔과 대화를 나누던 그 어른은 청(淸)의 가주겠지?
설사, 가주가 아니더라도 가문 내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인 건 확실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를 통해 상대의 대화를 들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이불을 끌어올렸다.
지금 시간은 저녁 9시.
잠들기에는 무척이나 이른 시간이었지만, 장거리를 온종일 걸은 탓인지 단예와 단아는 이미 꿈나라에 가 있었다.
나도 크게 하품을 하고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렇게 잠들려는 찰나.
드르륵-!
장지문이 열렸다.
도윤이나 저세상이 방을 잘못 찾아왔나? 단이는 멍청하게 방을 착각하는 실수를 할 리가 없었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도윤아? 세상이 오빠?”
하지만 방에 들어선 사람은 도윤이도, 저세상도 아니었다.
“쉿.”
정하담이었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정하담을 쳐다봤다.
정하담은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한 후 손을 들었다. 손을 왜 드나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따악-!
맞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의식이 순식간에 멀어지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리사 양.”
죄책감 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망할! 아저씨, 깨어나면 뺨 맞을 줄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