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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58)화 (158/500)

158화. 청(淸) 가문(5)

진짜, 어떻게 된 일이지? 난데없이 청해솔이라니!

나는 두 눈을 데굴 굴렀다.

알아볼 게 있어서 왔다고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당장 내일부터 가주 경합이 열릴 거라고 했다고!

청해솔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왜 하필 이때 맞춰서 가문을 찾아온 거야? 도대체 왜!

내 애타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해솔은 청해진을 향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청해진. 너는 늙은이들이 괴롭히면 나한테 말하면 될 걸, 왜 애들을 끌어들이고 그래?”

“누나, 가문의 어르신들이 나 괴롭히는 거 알고 있었어?”

“그럼, 몰랐겠니?”

청해솔이 한심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언제 도와달라고 말하려나 기다렸더니, 다짜고짜 가문으로 내려가지를 않나.”

청해진이 몸을 움찔거렸다.

청해솔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아저씨 이름을 팔아서 체험 활동을 밀어붙이기까지.”

그 소리에 윤리오와 윤리타가 버럭 소리 질렀다.

“뭐야, 청해진. 너 가문 사람들한테 우리 아빠 이름 팔았어?!”

“야! 내가 아버지 이름 팔아먹지 말라고 했지!”

청해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그게 말이야! 잠깐만, 그렇게 노려보지 말고 내게 변명할 기회를 좀 줘!”

“변명할 기회는 무슨.”

청해솔이 동생의 말을 비웃으며 말했다.

“우리 동생, 다 컸어?”

“하…. 하하…….”

“웃음이 나와?”

청해진이 입을 다물었다. 청해솔은 짜증스레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얘들아, 체험 활동 별거 없어.”

청해솔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청(淸)이 얼마나 위대했고, 그 후손이 얼마나 뛰어난지 자랑만 주구장창 하는 프로그램이거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려. 뭐, 청해진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마는.”

청해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조용히 서 있던 정하담이 입을 열었다.

“해솔 님, 원로 분들께 그 이야기가 들어가면 다들 화내실 겁니다.”

“화내라고 해요. 알 바인가.”

청해솔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나는 이만 간다. 청해진, 애들 잘 데리고 다녀.”

“누나, 잠깐만!”

청해진이 청해솔을 붙잡고는 걱정스레 물었다.

“진짜 가주 경합에 참가하려고 내려온 거 아니지?”

“아니라니까? 귀찮게 붙잡지 말고 어서 애들 데리고 저택 구경이나 가. 할 말 있으면 나중에 하고.”

청해솔은 그렇게 쌩하니 가 버렸다. 이내 사라진 그녀의 모습에 청해진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뒤늦게 청해솔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줬다.

“아, 얘들아. 방금 전에 봤던 사람은 내 누나야. 청해솔. 나랑 같이 청 가문의 사람이지.”

“다음 가주로 가장 유력하게 이야기되고 있는 분이십니다.”

그 말에 단예와 단이가 입술을 오므렸다. 청(淸) 가문의 가주 자리가 높은 자리란 걸 아는 모양이었다.

단예가 손을 들고는 말했다.

“하지만 언니 분께서는 가주 자리에 관심이 없어 보이던데요.”

“맞아. 우리 누나는 가주 자리에 관심 없어. 정말로.”

“하지만 윗분들께서는 해솔 님과 생각이 다르다는 게 문제입니다.”

정하담이 걱정스레 말했다.

“원로 분들께서 해솔 님께서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되신다면…….”

분명, 억지로 가주 경합에 참가하게 만들 터였다.

“뭐, 누나가 알아서 하겠죠! 자, 이제 진짜 저택 구경을 시켜 줄게! 다들 나를 따라와.”

“네, 해진 님.”

“따라오라면 따라가야죠.”

“윤리오, 윤리타! 놀리지 마!”

청해진이 쨍하니 외치는 소리에 윤리오와 윤리타가 키득거렸다.

나는 청해진의 뒤를 따라가면서 청해솔이 사라진 쪽을 흘긋거렸다.

당장 내일부터 가주 자리를 놓고 경합이 벌어진다고 들었는데, 괜찮을까?

“괜찮을 거야.”

난데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뭐, 뭐야. 저세상, 너 독심술도 쓸 줄 알았어?

놀라 저세상을 쳐다보니, 저세상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해솔이 누나 걱정하는 거지?”

“응? 으, 응.”

“누나라면 괜찮을 거야.”

저세상이 나와 함께 발맞춰 걸으면서 말했다.

“그런 사람이니까.”

대책 없는 말이었지만, 묘하게 안심되는 말이었다.

때문에 나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윤리사가 청해진을 따라 저택 구경에 나섰을 때, 청류하는 씩씩거리며 회랑을 걷는 중이었다.

“망할, 청해솔! 가주 자리에 관심 없다는 게 거짓말인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렇지 않고서야 가주 경합이 열리는 시기에 맞춰 가문을 찾아올 리가 없었다.

청류하가 이를 으득 갈았다.

“도대체 큰 어르신은 그 재수 없는 녀석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야!”

큰 어르신이라 함은, 청(淸) 가문의 현 가주를 말했다.

“류하.”

나긋한 목소리에 청류하가 고개를 돌렸다.

청해솔과 똑같이, 바다를 닮은 색을 띠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들었어. 해솔이가 돌아왔다며?”

“하연.”

같은 가문 사람인, 청하연이었다.

그녀의 말에 청류하가 험악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소식 한 번 빠르군. 어디에서 들은 거야?”

“손님관에서 난동을 피웠다지? 아랫것들이 떠들더라고.”

“망할. 하여튼 천한 것들이란.”

청류하의 나지막하게 욕설을 지껄였다. 청하연은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큰일 났네, 류하. 어르신들께서는 어떻게든 해솔이를 가주 경합에 참여하게끔 할 텐데, 네가 가주가 되는데 큰 어려움이 있겠어. 어쩌니?”

“시끄러.”

청류하가 이를 으득 갈았다.

“가주 자리는 내 거야. 큰 어르신 마음이 어떻든 간에, 경합에서 내가 우승을 차지하여 다음 후계자가 될 거라고!”

“아무렴. 하지만, 류하. 어려운 건 사실이지 않니? 해솔이가 얼마나 뛰어난지, 너도 알잖아.”

알다마다.

청류하가 두 손을 주먹 쥐었다.

청해솔은 어릴 적부터 청(淸)의 모든 것을 물려받았다는 타고난 천재였다.

물과 대기.

청(淸)의 사람이라면 응당 다룰 수 있어야하는 것이나, 둘 모두를 자유롭게 다루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청해솔은 어린 나이 때부터 그 두 가지를 어렵지 않게 다뤘다.

바람을 불러 폭풍우를 잠재우는 건 기본이오, 물을 다뤄 해일을 손쉽게 일으키기도 했다.

청해솔과 동갑인 청류하는 그런 그녀와 끊임없이 비교됐었다.

열등감에 똘똘 뭉친 청류하가 험상궂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런 그를 향해 청하연이 나지막하게 물음을 던졌다.

“류하, 너를 도와줄 친구가 있다면 어떻게 할래?”

“뭐?”

“기꺼이 그 도움을 받을래, 아니면 무시할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청류하가 사납게 그녀를 다그쳤다.

“너 역시 가주 경합에 참가하잖아. 경쟁자나 다름없는 네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내가 참가하는 거야 부모님께서 억지로 시키신 일이라 그런 거고. 너도 알잖아, 류하.”

나긋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해솔이와 다르게 가주 자리에 정말 관심 없다는 걸.”

청류하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청하연을 빤히 쳐다봤다가 뚱한 얼굴로 입술을 씰룩였다.

“한 번 들어는 보지. 하지만 아랫것들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거라면 필요 없어.”

“다행히도 그건 아니야.”

청하연이 선하게 웃으며 청류하에게 물었다.

“혹시, 유랑단이라고 들어봤니?”

***

“윤리사, 뭐해?”

“재수탱이를 본 것 같아서.”

“재수탱이?”

“하담이 오빠 때리려고 한 사람.”

“아아, 청류하인지 뭔지 했던 그 사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회랑에서 언뜻 청류하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청류하 혼자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는데. 뭐, 아랫사람 붙잡고 씩씩거리고 있나 보지.’

정말 그렇다면 그 아랫사람이 불쌍해지는 순간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청(淸) 가문의 저택은, 정말이지 더럽게 넓었다.

가는 길목마다 벤치가 왜 있나 했더니 돌아다니다 다리 아프면 쉬라고 놓아 둔 거였다.

세 시간은 넘게 돌아다닌 것 같은데, 아직 돌아보지 못한 곳이 많은 게 놀라웠다.

“얘들아, 다 쉬었어?”

“아니요!”

나는 쩌렁쩌렁하게 대답했다. 청해진이 그 대답에 키득거리며 웃었다.

“윤리오, 윤리타. 리사 많이 힘든가 본데?”

“당연하지. 너 같으면 안 힘들겠냐, 이 무식한 놈아? 세 시간 내내 집 구경만 시켜 주고 있잖아.”

“윤리오 말이 맞아. 도대체 뭔 집이 이렇게 넓어? 우리 집보다 넓은 집 진짜 처음 봤어.”

청해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신인들의 시대부터 이곳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계속 확장하다 보니 이렇게 넓어졌대.”

신인.

옛날, 각성자들을 부르던 말이라는 것을 나는 어렵지 않게 기억해냈다.

우리 최애님께서 받았던 특강에서 들었던 내용이니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야지!

“하지만 이제 한 곳만 더 둘러보면 돼. 얘들아, 조금만 더 힘내자.”

청해진의 말에 윤리오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보였다.

“한 곳? 둘러보지 못한 곳이 아직 많이 남은 것 같은데 진짜 한 곳만 더 보면 돼?”

“응, 나머지는 가문의 사람이 아니면 출입 불가능한 곳이거든. 자, 그러니까 이제 움직이자! 저녁 시간 맞추려면 지금 움직여야 해.”

나는 불퉁한 얼굴로 벤치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단아는 여전히 벤치에 늘어져 있었다.

“단아야, 일어나야지.”

“맞아, 셋째야. 조금만 더 걸으면 된다고 하니까 어서 일어나렴.”

“몰라! 다리 아파!”

단아가 불퉁하게 투덜거렸다.

“단아야, 다리 아파? 내가 업어 줄까?”

“백도윤, 네가 뭘 업어 준다고? 나 업다가 넘어질 것 같은데.”

“아니야! 안 넘어질 거야!”

도윤이의 쨍한 목소리에 단아가 픽 비웃었다. 단아의 다리는 퉁퉁 부어 있었다.

확실히 열 살, 아이들에게는 고된 일정이기는 했다.

청해진이 곤란하다는 얼굴을 보였다. 저녁 시간을 맞춰야 한다니 뭐니 하더니, 아무래도 청(淸) 가문은 저녁 시간이 정해져 있었나 보다.

에휴, 어쩔 수 없지. 저녁은 소중하니까 말이야.

나는 단아 앞에 서서 말했다.

“단아야, 조금만 힘내자. 밤에 다리 주물러 줄게.”

“뭐, 뭐를 주물러 준다고?”

“단아 다리.”

단아가 두 눈을 끔뻑이는가 싶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빼액 소리 질렀다.

“됐거든?! 윤리사, 네가 내 다리는 왜 주물러 줘? 내가 주물러 줄 거거든?!”

“으, 응?”

지금 뭐라고……?

나는 당황하여 두 눈을 끔뻑였다. 그러는 사이 단아는 청해진의 옷자락을 꼭꼭 잡아당기며 말했다.

“저기요, 오빠! 빨리 움직여요!”

“어? 응, 알았어. 자, 얘들아. 조금만 더 힘내자!”

단아가 청해진의 옆에 발맞춰 씩씩하게 걸어갔다. 나는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정말이지, 당황스러웠다.

어쨌거나 저택 탐방은 무사히 끝마쳤고 저녁 시간이 됐다.

“해진 님! 큰일입니다! 지금 해솔 님께서……!”

일이 벌어진 건 막 숟가락을 들려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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