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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53)화 (153/500)

153화. 백정(6)

윤리오가 이상하다.

병원에서 만났을 때부터 줄곧 그랬다.

웃어도 웃는 것 같지가 않은, 마음속에 커다란 짐 덩어리를 앉은 사람처럼 고민이 있어 보였다.

처음에는 혼자 학교에 간 저세상을 걱정한 건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사이좋게 저세상의 하굣길을 함께 했어도 윤리오의 기분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윤리오에게 직접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리오 오빠, 잠깐 밖에 나와 봐.”

“응?”

“어서!”

윤리오가 떨떠름한 얼굴로 바깥에 나왔다.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서 화단으로 이끌었다.

“예쁘지?”

화단에는 붉은 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어린 날, 윤사해의 손을 잡고 저세상과 함께 사 왔던 꽃들이었다.

윤리오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예쁘네. 우리 리사랑 세상이가 키워낸 꽃들이라서 그런가?”

나는 멋쩍게 코 밑을 슥 닦았다.

나와 저세상이 화단을 가꾸기는 했지만, 꽃을 돌보고 있는 건 윤사해였다.

윤사해가 돌보지 않았다면 저 꽃들은 지금까지 살지 못했을 거다.

뭐,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리오 오빠, 여자 생겼어?”

“뭐……?”

“아니면, 남자?”

괜찮아, 오빠. 나는 그런 거에 편견 없어.

내 말에 윤리오가 화들짝 놀라 소리 질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리사?!”

“하지만, 오빠. 얼굴에 고민이 가득한걸?”

윤리오가 몸을 작게 움찔거렸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헌터 자격증 시험이 도중에 중단된 것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잖아. 그렇다고 아빠나 리타 오빠랑 싸운 것도 아니고.”

“리사…….”

윤리오가 앓는 목소리를 내었다.

“우리 리사는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를까.”

나는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리타 오빠랑 다르게 말이지?”

윤리오가 애매하게 웃음을 지었다.

윤리타라면 진작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렸으리라 그렇게 생각해서 저러는 걸 거다.

사실, 그의 생각대로 윤리타는 집에 돌아온 후 끊임없이 윤리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다만, 나와는 다르게 직접적으로 말을 꺼내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윤리오가 화단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리사, 오빠는 오빠가 무서워.”

“왜?”

“그냥…….”

윤리오가 괴롭게 얼굴을 구겼다.

“검을 드는 게 너무 즐겁게 느껴져서 말이야.”

그게 왜 무섭다는 거지?

하지만 나는 곧, 윤리오의 말에 담긴 속뜻을 알아차렸다.

『각성, 그 후』에서 윤리오는 유랑단의 아홉 탈 중에서 가장 무도한 자였다.

약자건 강자건, 윤리오는 살려 달라 울부짖는 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짓밟고는 했다.

검을 휘두르는 것이 인생의 낙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해서 윤사해를 향한 분노를 표출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던 그와 지금의 윤리오는 달랐다.

나는 윤리오의 옆에 같이 쪼그려 앉고는 말했다.

“즐겨도 괜찮아.”

“응?”

“리오 오빠는 옳은 일에만 검을 휘두를 테니까.”

나는 윤리오의 얼굴을 두 눈에 꼭 담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검을 드는 거, 마음 편하게 즐겨도 괜찮다고.”

윤리오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나는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윤리오를 꼭 끌어안았다. 윤리오 역시 나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리사는 오빠한테 있어서 가장 큰 보물이야.”

“리타 오빠랑 세상이는?”

“세상이는 두 번째, 윤리타는 백 번째.”

그러니까 보물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윤리타가 들었다면 너무하다면서 소리를 질렀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 없으니까…….

“리사도 리타 오빠는 백 번째 보물이야!”

나 역시 윤리오에게 애교를 부리며 마음 편안하게 윤리타를 놀렸다.

윤리오가 내 말에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기분이 풀어진 것 같아 다행이었다.

윤리오가 한결 가벼운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리사, 오늘 저녁으로 먹고 싶은 거 있어? 오빠가 만들어 줄게.”

“진짜?!”

“응.”

“배달 시켜 먹는 건…….”

“안 돼.”

쳇.

나는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렸다가 외쳤다.

“그럼, 떡볶이!”

“떡볶이?”

“응! 떡볶이에 순대 먹고 싶어!”

“수… 순대…….”

윤리오가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아무리 윤리오라고 하더라도 순대를 만드는 건 무리인 듯 했다.

하지만 윤리오는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알겠어, 리사. 윤리타한테 재료 사 오라고 할게.”

아니야, 오빠.

순대는 그냥 시켜 먹자.

하지만 윤리오는 기어코 윤리타를 심부름 보냈고, 사 온 재료로 순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순대를 만드는데 필요한 요리 기구가 집에 있다는 게 놀라웠다.

“윤리사, 네 첫째 오빠는 도대체 못하는 요리가 뭐래? 헌터가 아니라 요리사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

윤리타는 다른 부분에서 놀란 것 같지만.

“윤리타, 그렇게 있지만 말고 좀 도와줘.”

“도와줄 거 없는 것 같은데?”

“떡 좀 씻어 줘. 된다면 양념도 만들어 줘. 떡볶이 양념 만드는 법 알지? 맵지 않게 만들어. 애들 먹어야 하니까.”

“네네, 알겠습니다.”

윤리타가 투덜거리면서도 윤리오의 말에 따랐다.

나는 쌍둥이가 요리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서는 저세상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나는 그의 옆에 앉고는 헤실거렸다.

“리타 오빠 말대로 리오 오빠는 헌터가 아니라 요리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저세상이 부엌 쪽을 흘긋거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 순대도 만드실 줄 알다니. 그보다 아저씨는 오늘도 늦으실 건가 보네.”

“그럴걸? 백정 때문에 AMO에 계속 불려가고 있으니까.”

백정에 의해 헌터 자격증 시험이 중단된 후로, 윤사해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망할 AMO! 윤사해가 백정을 처치해 줬다면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 숙여 인사해야할 것을!

물론, 내가 욕하는 건 AMO라는 기관 그 자체였다. 절대로 최애님을 욕한 건 아니었다.

어쨌든 AMO에 대해 속으로 열심히 욕을 할 때였다.

“야! 너무 달잖아!”

“아니, 자기가 달게 만들라고 했으면서!”

윤리오와 윤리타가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언제 싸웠냐는 듯, 두 사람은 평화롭게 대화를 나누며 저녁을 준비했지만 말이다.

“리사, 세상아. 저녁 다 됐으니까 어서 먹으러 와.”

“네!”

윤리오의 부름에 나와 저세상은 사이좋게 부엌으로 달려가 자리에 앉았다.

언제나 그랬듯, 윤리오가 만든 저녁은 훌륭했다. 그의 기분을 풀어 준 보람이 있었다.

“리사, 세상아. 어때? 떡볶이 맛있어? 내가 만든 거야!”

“한 거라고는 떡 씻기밖에 없으면서 잘도 말하네.”

“양념도 만들었잖아!”

“윤리타, 네가 그 양념 망쳐서 내가 다시 만든 건 기억에 없나 봐?”

윤리오와 윤리타가 다시 티격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를 배경음 삼아 숟갈을 들어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저녁이 끝날 때까지 윤사해는 돌아오지 않았다. 윤리오가 윤사해 몫의 음식을 식지 않게끔 보관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 음식이 모두 식고 난 후에야 윤사해는 돌아올 것이란 것을.

아무리 생각해도 망할 AMO였다.

***

윤사해가 여유로워진 건, 한 달이 지난 후. 백정에 의해 중단됐던 헌터 자격증 시험이 다시 치러졌을 때였다.

“리오, 리타. 축하한다.”

윤리오와 윤리타는 가볍게 시험을 통과했다. 그것도 수석과 차석이라는 성적표를 가지고.

이번에 치러진 시험에서 윤리오와 윤리타는 같은 팀이 됐다.

청해진은 두 사람과 동떨어져 조금 고생을 한 것 같지만, 어찌됐든 그도 시험에 통과했다.

윤사해의 축하에 윤리오와 윤리타가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 봐요, 아빠! 저희도 이제 어엿한 헌터라고요!”

“햇병아리기는 하지만 말이에요.”

“야, 윤리오! 이렇게 기분 좋은 날에 꼭 그렇게 말해야겠냐?”

“햇병아리인 건 사실이잖아?”

윤사해가 사이좋은 쌍둥이 아들들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백정의 일로 여러 번 AMO에 불려가면서 그간 피곤했을 텐데도 윤사해는 아들들의 시험에 참관했었다.

그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겠지.

“리오 오빠, 리타 오빠! 이제 헌터니까 나쁜 사람들 막 때려잡을 수 있겠네?”

저세상이 작은 목소리로 “좋겠다.”라고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좋기는 뭐가 좋아! 나쁜 사람들 막 때려잡으려다가 도로 처맞을 수도 있는데!

내 말에 윤리오가 부드럽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헌터라고 해도 아직 소속된 곳이 없어서 그건 힘들 거야, 리사.”

“하지만 이매망량에 입단한 후에는 윤리사, 네 말대로 마음껏 나쁜 사람들을 때려잡을 수 있지!”

윤리타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고는 윤사해에게 물었다.

“아빠, 하반기에 이매망량 입단 시험 열 거죠? 네? 그렇죠?”

열지 않는다고 하면 큰일 날 얼굴이었다. 그에 윤사해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무조건 열어야지.”

윤리타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윤리오 역시 얼굴에 싱글벙글 미소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런 둘에게 문제가 생기고 말았느니.

“윤리오, 윤리타! 제발, 플리즈! 나 좀 살려 줘!”

청해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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