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51)화 (151/500)

151화. 백정(4)

윤리오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호흡이 흐트러지는 즉시, 백정의 두 검은 저를 베어낼 것이다.

백정의 검이 하나일 때도 그의 공격을 근근이 막아냈던 윤리오였다. 하나뿐인 여동생이 자신을 돕고 있다고 하더라도 버거웠다.

“윽……!”

비켜간 검이 윤리오의 어깻죽지를 찔렸다. 다행히 깊게 찔리지 않았다.

윤리오는 제 어깨를 찌른 백정의 검을 쳐낸 후, 그에게서 멀찍이 물러났다.

붉게 젖은 옷에 윤리타가 소리 질렀다.

“윤리오!”

“윤리타! 너는 청해진이나 지켜!”

쌍둥이 동생이 자신을 도우려고 한다면, 눈앞의 백정은 당장 그를 노리려고 들 터였다.

‘그렇게 둘 수야 없지.’

윤리오가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검을 고쳐 잡았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백정에게 찔린 곳을 중심으로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제 몸에 생긴 이상에 윤리오가 이를 으득 갈며 백정을 노려보았다.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별 짓은 하지 않았어.”

백정이 두 개의 검을 여유롭게 고쳐 잡고는 키득거렸다.

“나한테 내려진 빌어먹을 양반 님의 저주를 네게 살짝 옮겼을 뿐이지.”

백정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을 덧붙였다.

“내게 찔린 곳을 중심으로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했지? 나에게 걸려 있는 저주가 네게 모두 옮겨가면 얼어붙게 될 거야.”

상상만으로도 즐겁다는 듯이, 백정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각시 님이 이번에는 저주를 풀 방법을 제대로 알려 줘서 정말 다행이라니까?”

즐거움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윤리오는 사납게 얼굴을 구겼다.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백정은 그런 그를 보며 히죽거렸다.

“죽이지는 않을 테니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윤사해의 아드님? 네가 살아 있어야만 저주가 옮겨가거든. 하지만 옮기고 난 후에는 모르겠네?”

백정이 걸음을 박차며 두 개의 검을 치켜들었다.

“내가 네 아버지를 워낙 싫어해서 말이야. 저주가 모두 옮겨간 후에 실수로 죽여 버릴지도 모르겠어.”

순식간에 앞에 당도한 백정의 모습에 윤리오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허공을 빠르게 베어내며 저를 향해 내려오는 검이 보였다.

“손 하나가 사라져도 죽지는 않겠지? 응? 검은 못 들겠지만 말이야.”

노리는 건 제 손인 모양이었다.

윤리오가 빠르게 걸음을 뒤로 물리며 검을 치켜들었다.

캉, 카앙-!

쇠붙이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주변을 울리기 시작했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윤리오의 얼굴에 초조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윤리사의 도움으로 강해진 힘이라고 하나, 백정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더욱이 하나뿐인 여동생이 쥐어 준 힘은 한계가 있을 게 분명했다.

‘그 전에 백정을 죽여야 해.’

윤리오가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둘렀다. 카앙, 맞부딪친 힘에 손이 벌벌 떨렸다. 윤리오는 입술을 꾹 깨물며 버티고자 했다.

하지만.

“무리야, 윤사해의 아드님.”

“……!”

휘두르는 힘에 윤리오는 결국 검을 놓치고 말았다. 윤리오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저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백정의 검이 보였다.

날아간 검을 붙잡아 쳐내는 것은 무리다. 그 전에 백정의 검에 몸이 갈갈히 찢기고 말 거다.

‘그렇다면.’

윤리오가 백정의 품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그와 함께 날아갔던 검이 윤리오의의 코앞에 나타났다.

<[A, 숙련 불가] 주인의 부름>으로 인해 돌아온 자신의 검이었다. 윤리오는 떨어지는 검을 그대로 물고선 백정을 향해 다리를 박찼다.

백정이 쥐고 있던 두 개의 검 중 하나가 살갗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지만 윤리오는 멈추지 않았다.

물고 있던 검을 놓고, 이내 손에 쥐어진 것을 그대로 휘둘렀다.

“크윽!”

날카로운 검의 끝이 백정의 목 아래를 정확하게 베어냈다. 탈 아래로 숨겨져 있던 백정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이 빌어먹을 애새끼가!”

백정이 출혈이 일어난 부위를 꾹 누르며 윤리오에게서 물러났다.

윤리오가 백정의 성난 목소리에 비웃음을 흘리며 살갗을 파고든 백정의 검을 뽑아냈다.

뚝뚝, 핏물이 떨어지고 있는 백정의 검을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친 윤리오가 예쁘장하게 웃음을 지었다.

“빌어먹을 애새끼한테 한 방 먹은 기분이 어때?”

“하하……!”

백정이 신경질적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기분이 어떠냐고?

더러웠다.

저주를 옮겨야 한다는 생각도 잊고, 눈앞의 애새끼를 당장에라도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안 되지.’

제 목숨을 갉아먹고 있는 양반의 저주를 떨쳐낼 절호의 기회였다.

한 순간의 분노로 기껏 잡은 기회를 저버릴 수야 없었다.

처음, 백정은 자신에게 새겨진 양반의 저주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몸을 움직이는데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 몸에 새겨진 저주는 천천히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 얼마나 분노했던가?

백정이 광소하며 검을 치켜들었다. 윤리오가 저를 향해 내리치는 검을 막아내며 다리를 움직였다.

근근이 백정의 검을 막아내던 모습은 어디가고, 윤리오는 그를 향해 반격을 가하고자 했다.

그 움직임이, 백정의 두 눈에 빤히 보이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어리석군.’

감히 자신에게 공격을 가하고자 하다니.

백정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검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일순, 치켜든 어깨가 고장 난 기계처럼 비걱거리며 제 말을 듣지 않았다.

백정의 두 눈이 동요로 흔들거렸다. 그 순간 떠오른 건 자신을 조소하며 죽어가던 남자였다.

‘글쎄, 별 짓은 안 했어. 내가 죽어도, 네가 얼어붙을 수 있게 만들었을 뿐.’

양반……!

백정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탈 아래로 번뜩이는 백정의 눈에 다가오는 윤리오의 검이 보였다.

***

【<[S, 숙련 불가] 너는 많이 좋고 나는 그냥 좋고>가 해제됩니다.】

스킬의 종료를 알리는 시스템 창을 보기 무섭게 온 몸의 힘이 풀렸다.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두 눈을 꼭 감았다. 시야가 계속 흔들려 눈을 뜨고 있기가 어려웠다.

“윤리사!”

저세상의 손이 뺨에 닿았다.

“야, 괜찮아?! 눈 좀 떠 봐!”

무리였다.

대답이 없는 나의 모습에 저세상이 발을 동동 굴리며 초조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윤사해는 최설윤과 함께 뒤늦게 열린 문을 통해 시험장 내부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돌봐 줄 사람은 저세상뿐이었다는 거다. 우리 주인공님께서 초조해할 만도 했다.

“리사 양, 어디 아프십니까?”

생각해 보니 장천의도 있었구나?

하지만 저세상은 장천의의 도움을 거절했다.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었는데 말이다.

“괜찮아요.”

“괜찮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슬그머니 두 눈을 뜨니, 장천의가 웃는 낯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곧이어 머리칼에 그의 손이 닿았다.

“만지지 마요!”

그 손을, 저세상이 쳐냈다. 저세상은 그대로 나를 꼭 끌어안으며 장천의를 향해 날선 경계를 보였다.

세상이 오빠, 나를 위해 주는 건 정말 고마운데 숨 막혀.

이 와중에 장천의는 나를 보호하고 있는 저세상을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저씨, 우리 주인공님께서 불편해하고 있는데 그만 가지 그래요?

하지만 장천의는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직접 나서 한 마디를 해 줘야하나 싶었는데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로저 에스테라였다.

로저 에스테라가 나를 보고는 방긋 웃었다.

“형제님의 하나뿐인 따님께서 갑자기 아프신 모양입니다?”

그는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는 웃음을 지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살짝 봐 드려도 될까요?”

나는 애매하게 웃음을 지었다. 로저 에스테라는 힐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각성, 그 후』에서 그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묘사를 본 기억이 없는데, 내 상태를 봐 주겠다니?

‘분명, 가호(加護)에서 힐러의 힘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는데?’

하지만 무엇이라 대답하기도 전에 로저 에스테라의 손가락이 눈가에 닿았다.

곧이어 로저 에스테라의 손가락 끝에서 피어난 따뜻한 기운이 눈가를 중심으로 번져갔다.

흔들리던 시야가 잡히는 건 금방이었다.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오래 사용한 부작용인지, 먼 곳을 보는 건 조금 힘들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두 눈을 뜨고 있을 정도는 돼서 나는 로저 에스테라에게 고개를 꾸벅거렸다.

“감사합니다.”

나의 인사에 로저 에스테라가 선하게 웃음을 지었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랍니다. 다른 불편한 점은 없으신지요?”

“네, 없어요.”

나는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장천의의 옷자락을 붙잡아 그에게 물었다.

“천의 삼촌, CCTV 화면 돌아왔어요?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 보여요? 두 사람 다 괜찮나요?”

“네, CCTV 화면은 돌아왔고 리오 군도 리타 군도 무사합니다. 리오 군은 조금 다친 것 같지만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다쳤을 거다.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으로 윤리오와 백정의 싸움을 모두 지켜봤기에 알 수 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다시금 장천의에게 물었다.

“백정은요?”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스킬이 종료되기 전, 윤리오의 검은 분명 백정의 가슴팍을 찔렀었다.

나의 물음에 장천의가 CCTV 화면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무사하지 못할 것 같군요.”

못한 것 같은 게 아니라, 못할 것 같다니.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백정이 시험장 내부로 들어간 윤사해와 최설윤과 만났다는 거겠지.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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