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백정(2)
시험장의 전력이 완전히 복구됐다.
하지만 시험을 치르는 각성자들을 보여 주는 CCTV 화면들은 하나같이 꺼져 있었다.
AMO의 요원 하나가 이것도 곧 복구될 거라고 했지만.
“…….”
CCTV 화면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윤사해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시험을 치르고 있는 아들들이 걱정되는 거겠지.
나는 윤사해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아빠, 오빠들은 괜찮을 거야.”
“응, 리사.”
윤사해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리 답해 주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어두컴컴한 화면만 송출 중인 CCTV화면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AMO고,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각성자들이 여럿 모여 있기도 했다.
말했듯,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시험장 내부를 침입할 리는 없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나는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통유리 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이는 건 울창한 숲뿐.
윤리오와 윤리타, 그리고 그들의 친구인 청해진. 셋은 지금 몬스터들을 사냥하느라 정신없겠지.
그 모습을 보고 싶지만 빽빽하게 자란 나무 탓에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했다.
문제는 그 방법을 사용하면 눈이 더럽게 아플 거라는 것.
‘청해진은 어차피 윤리타랑 움직이고 있을 거야. 같은 팀이니까.’
그러니까 청해진은 제외하고 윤리오와 윤리타만 인지해 보자! 그래도 눈은 아프겠지만 말이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사용을 알리는 문구 위로 여러 개의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나는 푸르게 빛나는 창들 안에서 윤리오와 윤리타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윤리타는 청해진과 함께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인 건 분명했다.
반면 윤리오의 팀은 험악했다. 두 명이 멱살잡이 중이었고, 나머지 두 명은 그들을 말리고 있었다.
윤리오는 뭐하는 중이냐고?
***
구경 중이었다.
윤리오는 팔짱을 낀 채, 팀장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중인 두 사람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멍청이들.’
허공에 떠올라있는 응시자 명단을 보니, 다른 팀은 이미 ‘팀장’을 정한 듯했다.
“내가 한다니까?! 여기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나잖아!”
“팀장의 자리를 나이로 정해요? 저는 B급 각성자예요!”
“나도 B급 각성자야!”
진짜 멍청이들이다.
윤리오가 머리를 짚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굉음과 폭음으로 보건대, 이미 다른 팀들은 몬스터 사냥에 한창인 듯했다.
‘이러다 시험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윤리타와 청해진이 저를 놀려댈 게 분명했다. 그 둘은 분명 시험을 합격할 것이므로.
리사와 세상이는 어떻고.
지금쯤, 자신을 응원한답시고 시험장에 찾아왔을 거다. 시험에 떨어지는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었다.
때문에 윤리오는 방관을 그만두고 앞으로 나섰다.
“저기요.”
여전히 팀장의 자리를 놓고 아웅다웅 다투고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당신들 B급 각성자라고 했죠?”
말리고 있는 두 사람은 C급 각성자라고 했던 것 같다. 관심 있게 듣지 않아서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
“저는 A급 각성자에요.”
윤리오의 말에 모두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한 명백한 의심. 윤리오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보여 드릴까요?”
윤리오의 손에 검이 들렸다. 날카롭게 벼린 끝에 모두의 의심이 거둬졌다.
쭈볏거리며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그들의 모습에 윤리오가 말했다.
“좋아요, 제가 팀장을 맡는데 다들 동의해 줘서 고마워요.”
우리가 언제 동의했는데!
하지만 불만을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윤리오는 C조의 팀장을 맡게 됐다.
“이제 사냥을 나가죠. 다른 팀들보다 뒤처진 것 같으니까요.”
이번 실기 시험은 지정된 포인트를 모두 모아야 끝이 났다.
몬스터 한 마리당 기본 10포인트.
강한 몬스터를 사냥할수록 얻을 수 있는 포인트가 늘어났다. 다만, 같은 각성자를 공격하면 30포인트가 차감됐다.
‘같은 각성자와 싸우면 포인트가 차감된다니, 마음에 안 들어.’
오히려 가장 많은 포인트를 줘야하지 않나?
윤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팀원들과 함께 사냥에 나섰다.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했다.
“저희, 따로 움직이죠.”
“뭐?!”
“실기 시험에서는 팀워크가 가장 중요한 거 몰라?!”
그걸 아는 사람이 팀장을 맡겠답시고 싸워댔었다니. 윤리오가 코웃음을 치고는, 제 멱살을 잡은 남자의 손을 쳐냈다.
“알죠. 그러니까 따로 움직이자는 거예요.”
다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윤리오가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삼키고는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팀워크를 내다 버리겠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효율적으로 움직이자는 거예요.”
이번에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윤리오는 이마를 짚었다.
윤리타와 청해진과 함께 팀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이렇게 시답잖은 것으로 의논할 필요도 없이, 시험을 진작 끝냈을 건데.
윤리오는 팀원들의 얼굴에 떠오른 의문을 무시하며 말을 내뱉었다.
“저는 공격과 방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혼자서 움직일게요. 당신은 방어 위주로 스킬이 형성되어 있었죠?”
“네? 네, 맞아요.”
“저분과 함께 움직여 주세요. 저 분은 공격 위주로 스킬이 형성되어 있었으니까요.”
네 명의 팀원들이 단숨에 두 개의 조로 나뉘어졌다.
“다들 불만 없죠? 그럼 이렇게 움직여요. 저는 혼자서 움직일 테니.”
“잠깐만……!”
팀원들이 불만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윤리오는 자리를 떠났다.
-키이이익!
-키에에엑!
저를 향해 이를 드러내는 B등급의 붉은 송곳니 늑대를 향해 가볍게 검을 휘두르면서 말이다.
‘혼자 다니니 훨씬 더 편하네.’
윤리오가 빠르게 쌓이는 C조의 포인트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익숙한 바람을 느낀 것은 그 순간이었다. 청명한 기운을 잔뜩 머금은 바람이 자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윤리오가 바람이 불어간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쿵-! 쿠궁-!
꽤 강한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듯, 굉음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었다.
윤리오는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걸음을 박찼다.
그의 앞에 휑한 공터가 드러났다. 그 가운데에 S등급의 저주받은 골렘이 양 팔을 치켜든 채, 그대로 속박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청해진이 불러일으킨 바람과 물에 의해.
윤리오는 그대로 높이 뛰어올랐다. 날카로운 끝이 아래로 향했고, 이내 골렘을 정확하게 반으로 갈랐다.
콰광-!
굉음과 함께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윽…! 뭐야……?!”
청해진이 콜록거리며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를 바람으로 몰아냈다.
그러다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는 윤리오를 보고는 버럭 소리 질렀다.
“야! 윤리오! 스틸하면 어떻게 해?!”
“스틸이라니? 나는 그냥 사냥한 것뿐인걸? 그리고 스틸이라고 해도, 그러지 말라는 규정도 없었잖아.”
저 얄미운 놈!
청해진이 씩씩거렸다. 그와 함께 골렘을 처치하려고 했던 윤리타가 키득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윤리오, 네 팀원들은? 혼자서 움직이는 거야?”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니.”
윤리타가 걱정된다는 얼굴로 윤리오를 바라보았다. 혼자 돌아다니다가 다치기라도 할까 걱정이 된다는 듯이 보였다.
쌍둥이 동생이 보내는 염려에 윤리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때였다.
수풀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몬스터라기보다는, 자신들과 같은 각성자인 것 같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시시덕거리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낯선 기운은 점점 가까워졌고,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흐음.”
예상대로 인기척의 주인은 사람이었다. 자신들과 같은 각성자.
헌터 자격증 시험에서 비각성자는 시험을 치를 수 없으니, 눈앞의 남자는 각성자인 게 분명했다.
문제는.
‘저런 사람이 있었다고?’
백여 명 정도의 응시자들 중에서 저런 남자는 본 적이 없었다.
윤리오의 두 눈에 경계가 깃드는 찰나, 남자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윤리오?”
“뭐야, 너는.”
날선 목소리가 튀어나갔다. 남자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키득거렸다.
“드디어 찾았네.”
그의 손에 주름진 탈이 들렸다.
양반을 해쳤던 백정 탈이.
***
“안 돼.”
백정이 윤리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리사? 왜 그래?”
나는 저세상의 물음을 뒤로하고 윤사해를 찾아 나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있었던 윤사해는, 지금 AMO의 요원 하나를 붙잡아 CCTV 화면 좀 해결해 보라고 멱살잡이 중이었다.
“아빠!”
“리사?”
윤사해가 멱살잡이 중이었던 AMO의 요원은 백시진이었다. 나는 그에게 인사할 틈도 없이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백정이 나타났어. 시험장 안에, 오빠들 앞에 백정이 나타났다고!”
나는 여전히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사용 중이었다. 눈앞에 떠 있는 시스템 창과, 그 밖으로 겹치는 현실의 풍경에 시야가 어지러웠지만 정신을 다잡아야만 했다.
윤사해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백시진!”
윤사해가 백시진의 멱살을 다시금 잡았다.
“지금 당장 시험장 내부로 통하는 문을 열게.”
“네?! 그건 안 됩니다!”
“내 손에 죽기 싫으면 당장 열어.”
윤사해가 보내는 살벌한 경고에 주위가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윤사해 길드장님 갑자기 왜 저러시는 거야?”
“백정의 이름이 들리기는 했는데.”
“백정? 그 자식 이름이 왜 여기에서 튀어나와?”
“나야 모르지.”
그들의 수군거림 사이에서는 간간이 나의 이름이 들리기도 했다.
“따님 분 말씀을 듣고 저러시는 것 같은데…….”
“저 아이가 백정이 시험장 내부에 나타난 건 어떻게 알고?”
다 아는 수가 있으니까 이러죠!
윤사해가 백시진을 위협하는 사이, 나는 초조하게 입술을 물어뜯었다.
윤리오와 백정의 검이, 서로 맞부딪치고 있었다. 아주 날카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