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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48)화 (148/500)

148화. 백정(1)

윤사해의 다정한 목소리에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오빠들은?!”

“먼저 출발했지.”

헌터 자격증 시험은 오전과 오후, 각각 필기와 실기로 나뉘어 온종일 치러졌다.

홱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나는 후다닥,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었다.

“리사, 천천히 준비하렴. 아직 시험 시작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단다.”

“조금밖에 안 남았잖아!”

그대로 욕실로 뛰어 들어가려는데, 소파에서 느긋하게 앉아 있는 저세상의 모습이 보였다.

“세상이 오빠는 먼저 일어났으면 나 좀 깨워 주지!”

저세상이 어깨를 으쓱였다. 얄밉기 그지없는 모습에 화가 났다.

하지만 저세상에게 심술을 부리기에는 준비할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

다행히도 실기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헌터 자격 시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험장 내에는 외부인들이 시험을 치르는 각성자들을 지켜볼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물론, 모두에게 공개되는 것은 아니었다.

AMO 측에서 초대한 사람 혹은 높으신 분들께만 공개되는 자리라고 들었는데…….

“윤사해 길드장님, 신분 확인되셨습니다. 자녀 분들과 입장하셔도 됩니다.”

나야 뭐, 저세상과 함께 윤사해의 손을 잡고 손쉽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기 무섭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오, 이게 누구야? 윤사해 길드장 아니야?”

“최설윤 길드장.”

“애들 사랑이 극진하기는 하다니까? 자기 자식들 시험 치른다니까 무거운 엉덩이 끌고 직접 오다니.”

최설윤의 붉은 눈이 윤사해의 곁에 서 있는 나와 저세상에게로 향했다.

“리사랑 세상이도 데리고 오고.”

우리는 최설윤에게 꾸벅이며 인사했다. 그런 나와 저세상을 윤사해가 자신의 뒤로 숨기며 말했다.

“그러는 자네도 조카를 데리고 왔지 않나.”

윤사해의 말대로, 구석진 자리에 휴대폰을 하며 앉아 있는 최화백의 모습이 보였다.

최설윤이 자신의 하나뿐인 혈육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 다음으로 아래아를 이끌 녀석인데 사람 보는 눈을 슬슬 길러야하지 않겠어?”

그런 의도 치고는 최화백은 헌터 자격증 시험에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긴, 『각성, 그 후』에서도 그는 의욕 없는 모습을 자주 보였었다.

의욕이 없다기보다는 생기가 없는 모습으로 표현됐었지만은.

그 순간, 생기발랄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여기 있었군요!”

저세상이 질색하는 얼굴을 보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CW의 대표인 장천의였기 때문이다.

한결같이 장천의를 싫어하는 우리 주인공님이셨다.

“최설윤 길드장님, 오랜만입니다. 고객님도 오랜만에 헌터 자격증 시험에 얼굴을 비추시는군요.”

그렇게 말하는 장천의는 마치 윤사해가 헌터 자격증 시험장에 방문할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윤사해도 장천의의 밝은 목소리에서 그런 낌새를 느낀 듯했다.

언짢은 기색을 얼굴 밖으로 드러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윤사해의 얼굴은 관심 밖이라는 듯 장천의가 나와 저세상을 보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리사 양이랑 세상 군도 안녕하십니까? 리오 군이랑 리타 군 응원하러 왔나 보군요.”

저세상이 대놓고 대답하기 싫다는 얼굴을 보여서 내가 대신 방긋 웃으며 장천의에게 답해 주었다.

“네.”

“기특하셔라. 리오 군과 리타 군이라면 분명 손쉽게 시험을 통과할 것입니다.”

누구 아들인데 당연히 그래야지!

“그보다 다들 그거 들으셨습니까? 근처에서 칼부림이 있었다는군요.”

“칼부림?”

“네, 최설윤 길드장님. 듣기로는 백정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백정.

들린 이름에 두 귀를 쫑긋 세웠다.

“아하, 그래서 보이는 AMO 요원들이 몇 없었구만?”

다른 녀석도 아니고 백정이 나타났단다.

AMO의 사람들이 헌터 자격증 시험을 뒤로하고 바쁘게 움직일 만도 했다.

어차피 이곳에는 내로라하는 한국의 전력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시험장에 침입하지 않을 거다. 침입한다고 해도 금방 제압될 테고.

나는 어른들이 ‘백정’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이, 통유리 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유리 창 위로는 시험장을 비추는 여러 개의 CCTV 창이 떠올라 있었다.

윤리오랑 윤리타는 어디 있지?

열심히 두 눈을 굴리고 있을 때에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오 군과 리타 군이라면 A-12 구역을 보십시오.”

목소리를 따라 A-12 구역을 비추고 있는 CCTV 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말대로 청해진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윤리오와 윤리타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가… 감사합니다…….”

가지런하게 정리된 잿빛 머리칼에 선한 눈매의 붉은 눈을 가지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로저 에스테라.

『각성, 그 후』에서는 ‘교황의 총애를 받는 남자’라고 불렸으며, 윤사해와 대립각을 세웠던 인물이다.

설마, 로저 신부도 이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

그가 길드장으로 있는 가호(加護)는 인재 영업에 그렇게 힘을 쓰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로저 에스테라가 나에게 싱긋 웃음을 지어 주고는 등을 돌렸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몇 년 전, 에일린 리는 로저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한국에 입국했었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새삼스레 궁금증이 밀려 왔지만 의문은 금방 식었다.

그보다 헌터 자격증 시험이 각성자들 사이에서 꽤 중요한 이벤트이기는 한가 보다.

한국의 주요 4대 길드의 주인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다니!

그들뿐만이 아니라, 청(淸) 가문의 사람들로 보이는 거주자의 후손들도 몇몇 보였다.

청해솔은 없나? 동생인 청해진이 시험을 치르니 청(淸)의 이름을 내세우며 왔을 법도 한데.

하지만 청해솔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쉬움도 잠시, 헌터 자격증 시험의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시작됐다.

-지금부터 AMO 주관, 제42 회 헌터 자격증 시험 실기 시험을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실기 시험은 구현된 환경에서 팀을 이뤄 몬스터들을 처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각성, 그 후』에서 저세상이 치른 것과 똑같은 형태였다.

문제는, 이 시험은 개별이 아닌 팀별 활동이라는 것.

팀 간의 협동 및 화합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시험이었다.

-그럼, 이제 함께 시험을 치를 팀을 발표하겠습니다.

헌터 자격증 시험을 치르는 각성자들의 명단이 팀별로 나뉘어져 발표됐다.

윤리타와 청해진은 같은 팀이 됐지만, 안타깝게도 윤리오는 다른 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큰일 났네.”

“뭐가?”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저세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나는 그를 흘긋거리고는 말했다.

“리오 오빠는 리타 오빠나 해진이 오빠보다 사회성이 떨어지잖아. 새로운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

“리오 형에 대해 가차 없구나, 너.”

“가차 없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윤리오는 어릴 적, 서커스에 납치당했던 기억 때문에 타인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리오 형이라면 알아서 잘할 거야.”

글쎄다.

윤리오라면 같은 팀이 된 사람들과 어떠한 대화도 나누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일례로 나는 그가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친구도 청해진뿐이었고.

여러모로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한숨을 푹 내쉴 때였다.

시험장 내부가 정전되고 말았다.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윤사해가 우리를 찾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리사? 세상아!”

“아빠! 나 여기 있어!”

윤사해가 나의 목소리를 듣고 찾아왔다. 귀 한 번 좋은 우리 아빠였다.

“괜찮니? 어디 다친 곳은 없고?”

다친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시험장 안은 단순하게 정전이 된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윤사해의 걱정을 덜어 주고자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응! 없어!”

저세상도 걱정 말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잠시 전력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금방 복구가 될 테니 안내를 기다려 주십시오.

윤사해가 짧게 혀를 찼다.

“시험이 끝난 후, 본부장님께 따로 말씀을 드려야겠군.”

시험이 끝난 후, 시말서를 쓰게 될 AMO의 요원들이 안쓰러워졌다.

***

시험장 내부를 비추는 전등이 몇 번 깜빡이는가 싶더니 환하게 밝혀졌다.

“흐음.”

남자가 머리 위를 밝히고 있는 불빛에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AMO도 별 것 아니군.”

그의 정체는 백정.

팀별 시험이 치러지는 시험장 한 가운데에 선 그가 키득거리며 안을 둘러보았다.

원래라면 시험장 내부에 쉽게 들어올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근처에서 일으킨 사고로 AMO의 전력이 분산되고 말았다. 덕분에 백정은 손쉽게 시험장 안으로 침입할 수 있었다.

물론, 시험장 내부를 오랫동안 돌아다닐 수는 없을 거다.

사고를 수습하고 돌아온 AMO의 요원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릴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니.

그러니 제 어깨에 들러붙은 빌어먹을 저주를 윤사해의 아이에게 늦지 않게 옮겨야 했다.

각시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윤리오.

그 이름을 가진 녀석이라면, 자신의 저주를 감내할 거라고. 자신을 대신하여 서서히 죽어갈 거라고 말이다.

때문에 백정은 비릿하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윤리오… 윤리오…….”

몇 번이나 그 이름을 중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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