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44)화 (144/500)

144화. 10살을 무시하지 마라!(2)

“아이스크림……?”

윤리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두 개의 하드를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윤리사, 너!”

나만 죽을 수 없지!

나는 저세상을 방패 삼아 내세웠다.

“세상이 오빠도 같이 먹고 싶다고 했어! 그래서 나온 건데!”

그리고 주변에 이매망량의 길드원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을 거고!

위험한 일이 생기면 그 사람들이 어련히 알아서 나서 주겠지, 라는 생각으로 나왔던 건데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

내 말에 저세상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야! 내가 언……!”

나는 휙 저세상을 쳐다보았다.

세상이 오빠, 눈치껏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집에 돌아가서 내가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거든.

다행히도 저세상은 내가 보낸 경고를 알아들었다.

두어 번 헛기침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인 거다.

“크흠, 흠. 맞아요. 같이 먹고 싶어서 나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저 아저씨가 튀어나와서 놀라서 넘어졌던 거예요.”

“맞아! 그랬던 거야!”

참고로 나와 저세상을 놀라게 했던 아저씨는 정신을 잃고 벤치에 널브러져 있었다.

상태가 꽤 심각해 보이는 게, 저대로 두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때문에 나는 윤리오의 관심도 돌릴 겸, 그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외쳤다.

“리오 오빠, 앰뷸런스!”

“그래…….”

윤리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단 앰뷸런스부터 부르고, 나머지는 집에 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자. 윤리사.”

오라버니, 아이스크림 이야기는 끝난 거 아니었나요?

그보다 왜 제 이름만 부르시나요? 저세상은요?

***

하늘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

어둠만이 펼쳐진 그곳을 밝히는 건 여러 개의 청사초롱뿐이었다.

그 사이로, 주름이 가득한 탈을 얼굴에 뒤덮어 쓴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정 씨.”

백정이 얼굴에 덮어쓰고 있던 탈을 벗으며 저를 부른 남자를 쳐다봤다.

“……이매.”

“일이 잘 안 풀렸나 보네요?”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백정은 까드득 이를 갈았다.

당장에라도 검을 꺼내 저 웃는 낯짝을 그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백정은 이매를 무시하고서 걸음을 옮겼다.

이매는 백정의 무시가 익숙한 듯 입꼬리를 올리며 키득거렸다.

“각시께 괜한 화풀이하러 가시는 거죠?”

정답이었다는 듯, 백정이 제자리에 멈춰 서서는 이매를 노려보았다.

이매는 눈웃음을 지으며 철부지 어린 아이를 달래려는 듯이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지 좀 마세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당신을 위해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요.”

“일할 거면 제대로 일해야지.”

짐승이 낮게 우짖는 듯한 목소리가 백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설은, 그 빌어먹을 새끼가 남긴 저주가 계속 심장을 파고들고 있단 말이다.”

그것 때문에 사냥감을 몇 번이나 놓쳤는지 모른다. 지금도 사냥감 하나를 놓치고 온 참이었다.

생각하니 화나는 일인지라 백정은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리고는 짓씹듯이 목소리를 뱉어냈다.

“그런데 망할 각시 님께서 저주를 지울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를 않고 있으니…….”

백정이 이매에게 성큼 다가와 고개 숙이고는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내가 화를 내지 않고 어떻게 베기겠어? 응?”

이매는 말없이 백정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베어진 탄생목은 다시금 자라났다.

“거름으로 삼을 걸 들고 왔단다.”

자신들의 수장이 정신이 나가 버린 ‘중’을 탄생목의 거름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AMO에 붙잡혔다고 들었건만, 어떻게 데리고 나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궁금하다고 하여 수장께서 알려 줄 일도 아니었고.

어찌됐든, 중을 거름삼아 다시금 자라난 탄생목은 새로운 각시를 탄생시켰다.

각시를 위해 바쳐진 아이들이 수 명이었지만, 모두 부모 없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을 위해 눈물 흘려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말이다. 대신 웃어 준 사람은 있었다.

윤사해의 딸을 탄생목의 제물로 바치고자 했던 할미.

밑동만 덩그러니 남았던 탄생목에 묶였던 할미는, 나무가 자라면서 형벌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그녀는 미치광이가 된 지 오래였다.

오죽하면 탈들도 얽히면 재수없어진다고 피해 다니고 있었으니.

만날 때마다 저를 보며 웃어대던 미친 여자의 웃음소리가 불현듯이 백정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것이 또 불쾌해 백정은 괜히 이매를 보며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쓸데없이 화 돋우지 말고 꺼져, 이매님.”

그는 그대로 이매에게서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빤히 보던 이매가 돌연 고개를 들었다.

“선비 씨, 그렇게 보고만 있을 거예요? 저러다 백정 씨가 각시를 해치겠다고요.”

길게 잎이 늘어져 있는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던 선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라고 하십쇼. 제가 상관할 바입니까?”

태연한 목소리에 이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

나와 저세상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혼이 났다.

윤리오한테 한 시간 가까이 잔소리를 들은 것도 서러운데,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된 윤리타에 의해 한 번 더 잔소리를 듣고 말았다.

우리 오빠들, 잔소리 대회 나가면 1등할 게 분명했다.

어쨌든, 한바탕 잔소리를 들은 후 나와 저세상은 딸기를 오물조물 입에 넣고 있는 중이었다.

윤리타는 윤리오에게 걸려 온 전화를 대신 받으러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윤리타가 말했다.

“백정의 짓이었다는데?”

“뭐?”

윤리타의 말에 윤리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윤리오의 신고로 도착한 앰뷸런스는 벤치에 널브러져 있던 남자를 싣고 떠났었다.

후에 조사가 있을 수도 있다며, 윤리오의 연락처를 받아가기도 했는데 그게 지금 연락이 온 거다.

“그리고 네가 구한 그 사람만 백정한테 당한 게 아닌가 봐. 연쇄적으로 꾸준하게 일어났다는 것 같아.”

“뭐가.”

“뭐기는 뭐야, 백정의 칼부림이지.”

윤리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윤리사, 저세상.”

나지막한 목소리에 저세상이 먹고 있던 딸기를 꿀꺽 삼키고는 빠르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꼭 말하고 외출할게요. 윤리사가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해도 무시하고요.”

망할 저세상 놈이? 이렇게 또 혼자서 빠져나가겠다는 거지?

나는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리고는 웅얼거렸다.

“아이스크림은 세상이 오빠도 먹고 싶다고 했었어.”

“윤리사.”

“하지만 세상이 오빠가 먹고 싶다고 해도 이제 말없이 안 나갈게.”

여기서 잘못 말했다가는 윤리오의 잔소리를 한 시간 가까이 또 듣게 될 거다. 그럴 수야 없지!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내 모습에 윤리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서렸다.

윤리오가 나와 저세상을 보며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애들 하굣길이 걱정이야.”

우리는 걱정 말라고,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윤리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 암만 봐도 네가 구한 그 사람, 백정 녀석이 사냥하다가 놓친 사람 같은데…….”

분명 백정은 가까이에 있었을 거다. 그를 우리가 구하는 것도 봤을지도 모르지.

윤리타는 분명 그걸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은 건 다른 소리였다.

“몇 년 얌전히 있던 탈쟁이 놈이 왜 갑자기 움직였는지 몰라.”

다소 불만이 어린 목소리에 윤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한 명씩 번갈아가면서 애들 데리러 가자. 우리 둘 다 시간 빼기는 어렵잖아.”

“그렇기는 하지.”

헌터 자격증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시험에 매진해도 부족한 시간인데, 우리를 신경 쓰게 되다니.

괜히 미안해져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는데, 머리 위로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걱정 마렴, 얘들아.”

언제 왔는지 모를 윤사해가 옅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버지.”

“아빠!”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윤사해에게 달려갔다. 윤사해가 단번에 나를 안아 들고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열 살이 되면서 몸이 꽤 무거워졌을 텐데도 여전히 나를 손쉽게 안아드는 윤사해였다.

“다녀오셨어요, 아저씨?”

“그래, 세상아.”

윤사해가 쭈뼛거리며 다가온 저세상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윤리오와 윤리타에게 말했다.

“리사와 세상이는 류화홍 헌터에게 맡기마. 너희는 걱정하지 말고 헌터 자격증 시험에 집중하렴.”

아무래도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듣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윤사해의 말에 쌍둥이가 그래도 걱정된다는 듯이 어물쩍거렸다. 그런 아들들을 윤사해는 부드럽게 웃으며 달래 주었다.

“이매망량의 다른 길드원들도 리사와 세상이를 지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렴. 그보다 리오.”

“네?”

“잠깐 이야기 좀 하자꾸나.”

윤사해가 나를 내려놓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왜인지 모르게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것 같다.

쌍둥이도 그걸 느낀 모양인지 서로 숙덕거렸다.

“윤리오, 너. 나 몰래 무슨 사고 친 거 있어?”

“있을 리가 있겠냐?”

하지만 윤리오는 스스로를 못 믿겠다는 듯한 얼굴로 윤사해의 방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윤사해가 저렇게 윤리오를 따로 부르는 건 처음 있는 일인데.

나는 딸기 하나를 입 속에 집어넣고는 우물거렸다.

뭐가 어찌됐든 간에 큰일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