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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43)화 (143/500)

143화. 10살을 무시하지 마라!(1)

저세상의 검은 두 눈에 내 얼굴이 빤히 담겼다.

예상치 못한 질문 때문이었을까?

그의 두 눈에 비친 내 얼굴은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저세상에게서 고개를 돌린 후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해… 했지…….”

“진짜?”

“진짜야!”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두 눈을 부릅뜨고 저세상을 노려보는데, 단아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내밀었다.

“뭐야, 저세상? 지금 윤리사 괴롭히는 거야?”

“내가 윤리사를 왜 괴롭혀? 한단아, 너야말로 나 좀 괴롭히지 마.”

“내가 저세상, 너를 언제 괴롭혔다고?”

“아악……!”

단아가 저세상의 목에 헤드락을 걸기 시작했다.

우리 단아, 갈수록 레슬링 기술이 발전하구나.

나라는 뭐하니? 어서 우리 단아를 태릉선수촌으로 모시고 가라고!

놀랍게도 이 세계에도 올림픽이 존재했다.

다만, ‘마리아’로 있던 나의 세계와는 다르게 세계인의 축제라고 불릴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다.

즐길 사람만 즐기고, 볼 사람만 보는 그런 정도라고 할까?

어쨌든.

“셋째야, 그만하렴.”

“곧 담임 선생님 오실 거야, 단아야. 어서 자리에 앉아.”

단아는 단예와 단이의 말에 저세상을 놓아 주었고, 단아의 손에서 빠져나온 저세상은 날래게 자신의 자리로 몸을 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자, 얘들아. 모두 자리에 앉았니? 신우와 성운이가 떠났지만 수업은 계속 해야지?”

“네에.”

우신우와 우성운이 떠난 게 다른 친구들한테는 타격이 조금 있었나 보다.

왜인지 모르게 조금 처진 듯한 반 분위기에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턱을 괬다.

***

드디어 수업이 끝났다.

내내 처져 있던 반 분위기 때문에 아주 죽을 맛이었다.

도윤이는 집안일 때문에 먼저 교실을 나가 버렸고, 한태극네 세쌍둥이 역시 집에 일이 있어 교실을 먼저 나가 버렸다.

나는 저세상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책가방을 챙겼다.

“리오 오빠하고 리타 오빠, 집에 돌아왔을까?”

“왔지 않을까?”

올해 스무 살이 된 쌍둥이는 헌터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한창 준비 중이었다.

AMO에서 주관하는 헌터 시험을 통과해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길드에 입단할 수 있단다.

물론, 자격증만 있다고 해서 길드에 입단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각 길드가 내세우는 시험을 또 통과해야만 비로소 그 길드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했다.

어느 세계든 취업은 빡셌다.

아무튼 나는 저세상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집에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을 벌컥 열었는데 우리를 반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 아직 안 왔나봐.”

“오늘 늦으시나 보네. 헌터 자격증 시험 며칠 안 남았잖아.”

하긴, 그렇지. AMO에서 주관하는 헌터 자격증 시험이 일주일 후에 열린다고 했던가?

윤리오랑 윤리타, 두 사람 모두 막판 스퍼트를 낼 때였다.

나는 책가방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향했다.

“오늘은 세상이 오빠가 아빠한테 전화해. 리사는 손 씻으러 갈 거야.”

“아저씨한테 전화하고 손 씻으러 가지? 아저씨는 네 전화를 더 반길 텐데.”

“아빠는 세상이 오빠 전화도 좋아하거든?”

나는 저세상을 향해 혀를 날름 내밀어 주고는 그대로 손을 씻었다.

나와 저세상이 3학년이 되면서 선물로 받은 게 있다.

“네, 아저씨. 윤리사랑 같이 집에 왔어요.”

바로 휴대폰이었다.

윤사해가 선물로 준 건 아니고, 장천의가 선물해 준 거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저세상은 휴대폰을 고장 내서 버리려고 했지만…….

‘우와! 이거 S사에서 한정판으로 나온 모델인데! 그치, 윤리오? 이거 S사에서 한정판으로 나온 모델 맞지?’

‘응, 맞아. 돈 주고도 못 구한다는 건데, 천의 삼촌은 역시 다르네. 리사, 세상아. 나중에 삼촌 보면 제대로 감사 인사 드려야 해. 알았지?’

쌍둥이의 말에 고이 접었었다. 그때, 저세상 표정 진짜 웃겼는데.

문득 떠오르는 기억에 나는 키득거리며 화장실을 나왔다. 물기가 가득한 손을 깨끗하게 닦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밖에 나오니 저세상은 이미 윤사해와 통화를 끝마친 뒤였다.

“아빠가 뭐래?”

“리오 형이랑 리타 형 돌아올 때까지 문 단속 잘하고 있으래.”

“으음.”

문단속이야 사실 해 봤자지. 집 주변에 이매망량의 길드원들이 경호를 서고 있을 테니.

그보다…….

“세상이 오빠, 아빠가 밖에 나가지 말라고는 안 했지?”

저세상이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리사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나는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린 후 저세상을 향해 팔을 뻗었다.

“세상이 오빠~!”

“아, 징그럽게 왜 이래?!”

그대로 들러붙고는 저세상의 뺨에 얼굴을 비비며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리사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리오 형이랑 리타 형한테 집에 돌아올 때 사 오라고 하면 되잖아!”

“안 돼! 오빠들은 절대 못 먹게 한단 말이야! 알면서?!”

지난 겨울, 나는 아이스크림을 잘못 먹고 탈이 심하게 났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스크림을 만나지 못하게 됐다.

그런데, 지금! 아이스크림이 생각나고 만 거다! 입 안에 사르르 녹는 그 단맛이!

“세상이 오빠, 안 돼?”

“안 돼.”

나는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주변에 반짝이 효과가 뿌려지기를 바라면서.

“리사가 이렇게 부탁해도?”

“절대 안 돼.”

저세상, 이 망할 놈.

어쩔 수 없지, 백 보 후퇴는 무슨! 나는 저세상, 네가 내 무엇에 약한 지 다 알고 있다는 말씀!

그대로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고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제 여기서 두 눈에 눈물만 그렁그렁 매달면…….

“아, 진짜! 윤리사 짜증나!”

“헤헷.”

성공이다!

저세상은 씩씩거리며 겉옷을 챙겨 입었다. 내 가디건을 챙겨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 주인공님, 처음 만났을 때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앙칼진 고양이 같았는데 말이야.

“집에 오는 길에 사 먹자고 하지!”

지금은 싸가지만 없는 앙칼진 고양이 같구나.

저세상의 말에 나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집에 돌아오니까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은 걸 어떻게 해!”

그렇게 우리는 티격태격거리면서 근처 편의점에 도착했다.

“아저씨랑 형들 거는?”

“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우리가 밖에 몰래 나와서 아이스크림 먹은 걸 들키지 않을까?”

“…….”

저세상의 얼굴이 일순 창백하게 질렸다. 윤씨네 삼부자에게 잔소리 듣는 상상을 했나 보다.

저세상이 머릿속에 떠오른 불길한 상상을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젓고는 내게 말했다.

“밖에서 먹고 들어가자.”

“당연하지.”

혼나는 건 나도 사양이었다.

나와 저세상은 사이좋게 하드를 하나씩 물고는 벤치에 앉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시원한 단맛에 나도 모르게 헤실거리는데 저세상이 입을 열었다.

“우신우랑 우성운, 이제 잊어.”

“응?”

나한테 말한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저세상은 내게 말한 것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했다.

“걔네 전학 간 것 때문에 마음 쓰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닌데?”

“그래? 아니면 됐어. 오늘 하루 종일 처져 있는 것 같아서 난 또 네가 괜한 걸 신경 쓰고 있나 했지.”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가 꾹 닫았다.

반 분위기가 내내 처져 있어서 나도 조금 축 처졌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그런데 그걸 저세상은 파악했단 말이지.

“저세상 불결해.”

“갑자기 뭐라는 거야?”

저세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허, 웃음을 터트릴 때였다.

불쑥, 우리 뒤에서 상처가 가득한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나와, 저세상의 사이로.

“흐아악!”

시바, 대낮에 귀신이라니!

“윤리사!”

저세상이 나를 꼭 끌어안고는 바닥을 굴렀다.

다행히도 나타난 건 귀신이 아니었다.

“사, 살려, 살려 주세요! 살려 줘!”

사람이었다.

곳곳에 베인 흔적이 가득한 남자.

나와 저세상은 서로를 꼭 끌어안고는 경계 어린 눈으로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남자는 제 앞에 벤치가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는지, 계속 우리를 향해 손만 뻗어댈 뿐이었다.

“살려 주세요, 제발! 제발 좀……!”

이라고 애원하면서.

우리를 해치려들 것 같지는 않아 경계심을 푸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사, 세상아?”

“리오 오빠!”

윤리오였다.

윤리오는 바닥을 구르고 있던 우를 한 번, 우리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남자를 한 번 번갈아가며 쳐다보더니 이내 이를 악 물었다.

“저 개새끼가……!”

윤리오의 손에 검이 들렸다.

“리오 오빠, 안 돼!”

“리오 형, 안 돼요!”

나와 저세상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윤리오의 다리 한쪽에 찰싹 붙고는 외쳤다.

“다친 사람이야! 앰뷸런스!”

“우리끼리 놀라서 넘어진 것뿐이에요! 진정해요, 리오 형!”

그제야 윤리오는 진정하며 검을 내려놓았다. 남자를 향한 분노 어린 눈길은 거두지 않았지만.

“윤리사, 저세상. 너희 여기에서 뭐하고 있었던 거야?”

윤리오가 나와 저세상을 살피며 물었다. 우리 둘은 두 눈만 데굴 굴렸다. 어쩌지?

“윤리사가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해서 나왔어요.”

야, 이. 망할 주인공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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