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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42)화 (142/500)

142화. 이혼하면 남남이라더니(4)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윤사해와 에일린 리의 만남을 지켜보았다.

장천의와 저녁을 마친 뒤, 윤사해는 들를 곳이 있다면서 류화홍을 불러 우리를 집에다 데려다주라고 했다. 전 부인에게 가려는 게 분명했다.

그걸 놓칠 내가, 아니.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곧장 류화홍을 닦달하여 윤사해의 뒤를 쫓았고……?

아니나 다를까?

에일린을 만나고 있는 윤사해를 보게 되었다.

“우리 자기,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대?”

“그 질문에 답해 줄 의무는 없겠지. 로저 에스테라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지, 에일린?”

“그걸 자기한테 답해 줄 의무는 나에게도 없지. 안 그래?”

파지직, 둘 사이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살벌하다, 살벌해. 얘들아, 그냥 우리 돌아가면 안 될까? 저러다 두 분이서 싸우실 것 같은데?”

류화홍이 울상이 가득한 얼굴로 칭얼거렸지만, 그 말에 반응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쌍둥이 오빠들도, 그리고 저세상도.

우리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윤사해와 에일린의 대화에 집중할 뿐이었다.

“제발, 에일린.”

“내가 뭐했다고 그래, 자기?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

“그렇다고 맞는 말을 한 것도 아니지. 좋게 말할 때 로저 에스테라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불어.”

“불지 않으면 어쩔 건데?”

……대화는 무슨,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진짜 저러다가 싸우지는 않겠지?

안 돼, 아빠. 참아. 리사는 아빠의 얼굴을 아홉 시 뉴스에서 보고 싶지 않아요!

다행히도 부모님께서는 주먹으로 나누는 대화 따위 하지 않았다. 그 전에 에일린이 먼저 꼬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꼬리를 내렸다기보다는, 일부러 져 준 것 같지만 말이다.

어쨌든 간에 에일린은 말했다.

“로저 신부와는 별 다른 이야기 안 했어, 자기야. 그래도 한 가지 살짝 말해 주자면…….”

에일린이 목소리의 끝을 흐리고는 윤사해의 귓가에 속닥거렸다. 우리에게는 닿지 않을 작은 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던 윤사해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에일린은 그 얼굴을 보고는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보였다.

“다른 궁금한 건 로저 신부한테 물어봐. 내가 자기한테 들려줄 이야기는 이제 없으니.”

윤사해는 할 말이 많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볼 뿐, 붙잡지 않았다.

에일린은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정확히, 우리가 몸을 숨기고 있는 장소를 향해.

어쩌지? 지금에라도 자리를 피해야 하나?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에일린이 우리 앞에 당도하고 말았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침을 꿀꺽 삼키는데, 에일린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드님들 열일곱이 넘었지? 각성자 됐다고 배짱이 많이 좋아지셨어? 그리고 너.”

에일린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네가 우리 자기가 데려왔다는 바깥 아이구나?”

저세상이 답지 않게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런 저세상을 윤리오가 황급히 제 뒤로 숨겼다.

그게 에일린의 눈에는 귀엽게 보였나 보다.

에일린이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몸을 돌렸다.

“다들 아빠 손잡고 어서 들어가렴. 자기, 나는 그럼 이만 가 볼게. 애들이랑 즐거운 시간 보네.”

에일린은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다음에 다시 보자는, 그런 인사는 남겨 두지 않고서.

마치, 거센 폭풍우가 지나간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직 폭풍우는 지나가지 않았다.

“너희.”

윤사해가 혼을 내려는 듯,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며 우리를 불렀다.

아무래도 윤사해도 에일린도 우리가 숨어 있었다는 걸 진작 알아차리고 있었나 보다.

어떻게 알아차렸지? 류화홍의 스킬로 윤사해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자마자 윤리타가 스킬을 사용해서 기척을 숨겼는데.

어찌됐든 들킨 이상, 계속 몸을 숨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 하하하…….”

윤리오와 윤리타가 어색하게 웃으며 윤사해 앞에 모습을 보였다. 나와 저세상은 그들의 뒤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류화홍 헌터니?”

류화홍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냐는 질문이겠지. 류화홍, 이 날쌘 오빠는 진작 몸을 피한 뒤였다.

혼자서 도망가 버리다니! 괘씸하기 그지없었지만 나는 그를 두둔해 주기로 했다.

“화홍이 오빠는 잘못 없어! 오빠들도 잘못 없어! 리사가 쫓아가자고 해서 이렇게 된 것뿐이야!”

“리사.”

“그치만, 리사는 아빠랑 엄마가 싸울까 봐 걱정됐는걸!”

나는 또랑또랑하게 말을 이어갔다.

“천의 삼촌이 그랬잖아. 아빠랑 엄마는 헤어진 후로 만나기만 하면 싸웠다고. 건물이 부서지는 건 기본이고, 아빠랑 엄마를 말리려던 사람이 전치 6주를 입는 것도…….”

“그만, 리사.”

윤사해가 듣기 괴로운지 내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후우, 한숨을 내쉬고는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나는 좋으라고 윤사해에게 달려가 그의 넓은 품에 안겼다. 윤사해가 그대로 나를 번쩍 안아들고는 입을 열었다.

“걱정 끼쳐서 미안하구나, 리사.”

나는 윤사해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괜찮아! 안 싸웠으니까!”

하지만 만약 싸웠다면…….

‘류화홍한테 말해서 두 사람 가까이로 데려가 달라고 한 뒤에 내 말이나 들어라로 뺨을 때렸겠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나의 부모님을. 특히나 윤사해의 얼굴을 아홉 시 뉴스에서 보고 싶지 않았다.

하여튼 상황은 종료!

“다들 돌아가자꾸나.”

우리는 길고 길었던 하루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에일린 리가 한국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윤사해는 왜인지 모르게 심란하다는 듯이, 이따금 창밖을 바라보았지만 오래지 않아 멀쩡해졌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소식은 초등학교 3학년, 내가 열 살이 될 때까지 들려오지 않았다.

***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110cm를 겨우 넘던 키는, 어느새 130cm를 넘게 됐다.

“야, 윤리사.”

망할 저세상은 그런 나보다 머리 한 뼘은 더 커져 버렸지만 말이다. 도대체 언제 저렇게 커 버린 거지?

아니, 그보다 분명 내가 쟤보다 한 그릇은 더 많이 먹고 더 일찍 자는데 왜 나보다 큰 거야?

새삼스레 억울해졌다. 때문에 괜히 불퉁하게 말했다.

“왜, 뭐. 불렀으면 말을 해.”

저세상이 갑자기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순순히 이야기를 꺼냈다.

“우신우랑 우성운, 전학간대.”

“……진짜?”

아주 의외의 이야기를.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저세상에게 물었다. 내 질문에 저세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교무실 지나가다가 들었어.”

그러면서 저세상은 말을 덧붙였다.

“듣기로는 두 사람의 부모님 모두 DMO에서 근무 중인데, 지방으로 급하게 발령이 났다나 봐.”

뭐지, 좌천이라도 당했나?

하지만 나는 이내 심드렁해졌다.

우신우와도, 우성운과도. 1학년 이후로 별 다른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3학년이 되면서 같은 반이 됐지마는 이렇게 금방 헤어진다면야.

그리고 무엇보다.

“저세상, 그게 진짜야? 우신우랑 우성운이랑 전학 간다고?”

“우와, 그러면 우리 반 한꺼번에 두 명이 비게 되는 거네? 그럼 몇 명이 되는 거지?”

“스무 명이 된단다, 도윤아.”

“안 그래도 다른 반보다 인원이 적은데, 나중에 학교 행사에 참여할 때 곤란해지겠어.”

3학년으로 올라오면서 우리는 모두 같은 반이 됐거든!

단아와 도윤이, 그리고 사이좋게 반장과 부반장을 맡게 된 단예와 단이까지!

그러니까 우신우와 우성운이 전학을 가든 말든 나는 아쉬울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였다.

저세상이 같은 반인 게 불만이기는 하지만, 그와는 아마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쭈욱 같은 반이 될 거다.

학년을 끝마칠 때가 되면 윤사해가 학교로 찾아와 선생님께 사정하는 것을 알게 됐거든.

하여튼 간에 저세상의 말대로, 조례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담임 선생님께서는 우신우와 우성운의 전학 소식을 우리에게 알렸다.

감수성 풍부한 아이 몇이 울기는 했지만, 나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속 시원했다.

우신우와 우성운과는 생각해 보면 좋은 추억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악연만 깊었었으니…….

뭐, 그래도 이제 떠난다니까!

“잘 가, 신우야! 성운아!”

나는 있는 힘껏 손뼉 쳐주며 작별 인사를 해 주었다.

그렇게 끝인 줄 알았는데.

“윤리사.”

“……우신우?”

끝이 아니었다. 나는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그에게 물었다.

“아직 안 갔어?”

조례가 끝난 후, 우신우와 우성운은 곧장 가방을 챙겨들고 학교를 떠나 버렸었다.

설마, 갑자기 부모님의 지방 발령이 취소돼서 전학도 취소됐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나는 긴장감 어린 얼굴로 우신우를 쳐다봤다.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부모님께 말하고 다시 돌아왔어.”

휴우, 그런 건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그런데 나한테 할 말이 있다니,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우신우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내게 말했다.

“1학년 때, 고마웠어.”

“응? 뭐가?”

“모르면 됐어.”

아니, 그렇게 말해 줄 게 아니라 알려 줘야지!

하지만 우신우는 알려 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입술을 씰룩이며 또 다른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너무 늦었지만 사과할게. 엄마 없다고 놀려댄 거. 저세상한테도 미안하다고 전해 줘.”

우신우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나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네가 직접 전하지 그래?”

하지만 우신우는 뒷목을 한 번 긁적이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버렸다.

“야! 우신우!”

“몰라! 네가 전해 줘!”

아니, 저 무책임한 자식이?

붙잡고자 했지만 얼마나 날랜지, 우신우는 이미 복도를 돌아 계단을 내려간 뒤였다.

나는 헛웃음을 한 번 터트리고는 교실로 돌아갔다. 어쨌거나 마지막 부탁이잖아? 들어줘야지.

“세상이 오빠, 우신우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래.”

도윤이와 구구단 시합을 하고 있던 저세상이 눈가를 찡그렸다.

“갑자기?”

“1학년 때, 세상이 오빠한테 엄마랑 아빠 없다고 놀려댄 게 미안한 것 같던데?”

“직접 와서 사과할 것이지.”

“그러게 말이야.”

다시 생각해 봐도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는데, 저세상이 의외의 질문을 내게 던졌다.

“너한테는?”

“응?”

“너한테는 사과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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