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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39)화 (139/500)

139화. 이혼하면 남남이라더니(1)

각성자 등록을 위해 AMO에 다녀온 지 보름이 지났다.

각성자 등록증은 최애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확히 일주일 만에 날아왔다.

유예준 부장이 안쓰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찌됐든.

백시진이 직접 전해 준 내 각성자 등록증에 집안이 한 번 발칵 뒤집어졌었다.

윤사해가 쌍둥이 아들들에게 이야기를 전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리사가 왜 갑자기 각성자냐고. 이상 각성자인 건 아니냐고…….

어휴, 그 날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해진다.

다행히도 쌍둥이는 금방 진정했다. 대신, 나를 자리에 앉히고선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었다.

‘리사, 화난다고 가진 힘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돼. 알겠지?’

‘분별없이 드러내서도 안 되고. 윤리사, 너 내 말 듣고 있어?’

나는 걱정하지 말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더란다.

그래도 걱정이 안 놓이는지, 윤리오와 윤리타는 저세상을 붙잡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세상아, 학교에서 리사 잘 지켜보고 혹시 리사가 힘을 쓴다거나 하면 바로 나랑 윤리타한테 알려 줘야 해? 꼭 좀 부탁할게.’

그러니까 나를 감시하라는 거였다. 아무리 걱정이 돼도 그렇지!

‘오빠들이 걱정 안 해도 리사는 알아서 할 거거든?! 계속 그러면 미워할 거야!’

쌍둥이는 내가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난 후에야 입을 다물었다.

하여튼, 누가 윤사해 아들들 아니랄까 봐 걱정 한 번 유별나다 싶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간에 그날 이후로 시간이 꽤 지났다.

내가 각성자인 게 세간에 알려져 사람들이 귀찮게 구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해하던 윤리오와 윤리타는 이제 한 시름 놓은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기쁜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중이 처형당했다는구나.”

그 빌어먹을 땡중 새끼가 AMO에 수감 중이라는 건 들었다.

그런데 처형당했다니.

“진짜?”

“응, 리사. 두 번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란다.”

나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고는 윤사해를 꼭 안았다. 나와 함께 중의 처형 소식을 들은 윤리오와 윤리타는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우와, AMO가 그런 새끼들 사형시키기는 하는구나.”

“리오, ‘새끼’라니.”

“아.”

윤리오가 방긋 웃었다.

“사회의 쓰레기가 하나 사라져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치, 윤리타?”

윤리타는 대답 대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윤리오의 말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윤사해의 지적에 재빠르게 말을 예쁘장하게 고치는 윤리오의 태도가 기가 차는 듯했다.

그게 윤리오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윤리타, 똑바로 대답 안 하지.”

“악…! 아빠, 이것 좀 봐요! 윤리오가 나를 죽이려, 아아악……!”

윤리오에게 헤드락이 걸린 윤리타가 윤사해를 향해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윤사해는 사이좋은 아들들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어 주고는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윤리타가 잠시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가 또 다른 구세주를 찾았다.

“세상아! 도움!”

저세상은 외면했다.

“세상아, 너 마저……!”

누가 보면 연인에게 실연당한 줄 알겠다. 마지막으로 윤리타는 나를 애타게 찾았다.

“리타 오빠, 파이팅.”

물론, 나 역시 외면했지마는.

그렇게 윤리오와 윤리타가 정답게 투닥거리는 걸 구경 중인데, 저세상이 내게 다가와서는 속닥거렸다.

“잘됐네, 윤리사.”

“중이 사형당한 것 때문에?”

“그거 아니면 뭐겠어.”

심드렁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저세상은 이내 입꼬리를 올리고선 내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윤리사. 사실 중이 처형당한 게 아니라면?”

“뭐?”

“중의 사형 소실은 거짓이고, 사실 그는 유랑단에 풀려난 거라면 어떨 것 같아?”

나는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저세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자조적으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그 순간,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AMO에 가는 게 그렇게나 좋아, 윤리사?’

‘너무 좋아하지 마, 윤리사. 나중에 실망하기 싫으면.’

여러모로 수상쩍었던 이야기.

나는 미간을 한껏 좁히고는 입을 열었다. 그에게 AMO에 대해 무엇을 아는지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내가 그딴 식으로 통보하지 말라고 했지, 에일린!”

욕실 안쪽에서 윤사해의 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일린?

어디에선가 들어본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와 저세상은 서로 눈을 맞추고는 곧장 욕실로 다가갔다. 윤리오와 윤리타도 함께였다.

-통보라니? 나는 비행기 타기 전에 생각나서 알려 준 것뿐인데?

“그게 통보가 아니면……!”

-하지만, 자기야.

자기야?!

아무래도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나누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문에다 귀를 가져다 붙였다.

-그렇다고 말도 없이 찾아가면 화낼 거잖아. 안 그래, 자기?

“그 망할 ‘자기’ 소리 좀……!”

스피커폰을 해제했나 보다. 윤사해의 성난 목소리만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문가에서 귀를 뗀 뒤 고개를 들었다.

“리오 오빠, 리타 오빠. 아빠 지금 누구랑 전화하고 있는 거야?”

“어머니 같은데.”

“맞아, 아빠 주변 사람 중에 ‘에일린’이라는 사람은 엄마뿐이야.”

그리고 그건 정답이었다.

욕실에서 씻고 나온 윤사해에게 우리는 달려가 그에게 물었다.

“아빠, 엄마야?!”

“아버지, 어머니 한국에 들어오신대요?”

“무슨 일로 오시는 거래요, 아빠?”

우다다, 쏟아진 질문 때문일까?

윤사해가 잠깐 당황한 얼굴을 보였다. 그것도 잠시, 그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너희 어머니 맞단다. 한국에 일이 있어 잠깐 들어온다는구나.”

그러고는 우리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일 아침 일찍 공항에 도착할 거라는데, 보러 가겠니?”

저세상을 제외한 우리 삼남매는 두 눈을 데굴 굴렀다.

엄마라니, 어쩐담?

***

미국,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의 여자가 끊긴 전화에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윤사해 길드장님께서 많이 화나신 것 같은데요.”

“괜찮아, 연락할 때마다 이러니까.”

여자의 이름은 에일린 리.

윤사해의 전 부인으로 현재는 미국, 각성자특별관리기국 ASMO의 워싱턴 지부장이었다.

“그런데 지부장님, 한국에는 정말 왜 가시는 겁니까? 아가씨랑 도련님들을 만나러…….”

“가는 건 절대로 아니야.”

에일린이 미소를 그렸다.

“내가 언제 애들 보러 한국 간 적 있니? 말했다시피, 개인적인 일로 방문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저도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말입니다.”

보좌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일린 리의 보좌를 맡은 지도 어연 10년.

그동안 그녀는 한국을 방문하고 올 때마다 여러 일거리를 들고 왔었다.

대부분은 한국의 유명 길드, 이매망량의 길드장인 윤사해와의 마찰로 일어난 일들이었다.

하지만.

‘나 임신했대.’

‘네?’

‘애 아빠가 누구인지는 알아. 우리 전 남편.’

‘네에……?’

‘낳자마자 바로 그 인간한테 보낼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네에?’

지난날을 떠올리자 두통이 일기 시작했다.

보좌관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에일린 리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넷째는 안 됩니다. 물론, 두 분께서 사랑을 불태우시는 걸 제가 어떻게 막겠냐마는.”

“뭐래?”

에일린 리는 별 미친 소리를 다 들었다는 얼굴을 보였다.

“어쨌든, 도착하면 연락할게.”

“윤사해 길드장님과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니까? 그리고 윤사해 씨, 어차피 나 마중도 안 나올 거야.”

“하지만.”

“쓰읍, 어쨌든 그렇게 알고 있어. 그럼, 나는 이만 간다? 걱정 붙들어 매고 계셔.”

에일린 리는 보좌관을 향해 대충 손을 흔들어 인사해 주고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인천에 도착한 후.

“에일린, 네 위치를 좀 신경 쓰지 그래? 보좌관 한 명 없이 한국에 오다니. 제정신인가?”

애증해 마지않는 전 남편과.

“아, 안녕하세요, 엄마……!”

그를 꼭 닮은 여자 아이의 마중에 에일린 리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

웃는 모습이 윤리타를 닮았다. 아, 그게 아니라 윤리타가 저 사람을 닮은 거지?

어쨌거나 신기했다. 저 사람이 나의, 아니. 윤씨네 삼남매의 어머니 되시는 분이라니.

“무슨 일로 마중을 다 나오셨대?”

“네가 또 무슨 헛짓거리를 하려고 들어오나 싶어서 온 것뿐이다만.”

“헛짓거리라니? 나 이렇게 보여도 국가 간의 중요한 일을 처리하려고 들어온 거야, 자기야.”

“그렇다면 AMO의 본부장님께서 진작 나한테 연락을 넣으셨겠지.”

파지직, 둘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 같다.

분명 저 둘은 계약 기간이 끝나 합의 이혼한 거라고 했지. 사실은 성격 차이로 이혼한 거 아니야?

살벌해지는 분위기에 침을 꿀꺽 삼키는데, 에일린 리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안녕, 아가. 몰라보게 많이 자랐네? 네 아빠한테 보낼 때는 겨우 눈만 뜰 줄 알던 꼬물이였는데.”

꼬물이……?

에일린 리가 무릎을 굽히고는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의 두 눈은 달빛을 머금은 듯한 예쁘장한 은빛이었다. 그 안에 내 얼굴이 가득 들어찼다.

나는 윤사해의 옷자락을 꼭 끌어 쥐고는 에일린 리를 쳐다봤다.

내가 시선을 피하지 않아서일까?

에일린 리가 다소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활짝 웃음을 지었다.

“자기한테 보내지 말고 내가 키울 걸 그랬나 봐. 리오나 리타처럼 별 다를 바 없는 애새끼인 줄 알았더니 아닌 것 같네?”

애새끼인 줄 알았다니요. 그게 당신 자식들한테 할 말인가요……?

이 사람이 정말 윤씨네 삼남매의 어머니가 맞나 싶었다.

윤리오가 물려받은 것이 분명한, 벚꽃잎을 닮은 머리칼을 보면 어머니 되시는 분이 맞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때 윤사해가 나를 안아 들고는 그녀를 향해 얼굴을 찌푸렸다.

“에일린 리,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경고를 보내듯, 보라색 두 눈이 위협적으로 번뜩였다.

“아이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네 아이들인 걸 제발 잊지 좀 말도록.”

에일린 리가 재미있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당연히 알지. 내 배 아파 낳은 아이들인데 내가 그걸 모를까? 그런데, 자기.”

무릎을 굽히고 있던 에일린 리가 몸을 바로 하고는 단숨에 윤사해의 코앞에 다가섰다.

“나도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나를 가르치려 들지 말라고.”

선남선녀가 싸우시는 광경이 참으로 흐뭇하지는 않고, 아무래도 엄마 마중을 괜히 나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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