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다시 인사드립니다, 최애님(1)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나들이 가기에 좋은 주말의 토요일 아침이나 AMO에 출근한 가련한 직장인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태지인 부장님.”
“유예준 부장?”
각성자 등록‧관리 부서의 유예준과 현장 관찰 부서의 태지인이 그랬다.
“유예준 부장, 자네가 주말에 있는 걸 보니, 윤사해 길드장이 각성자 등록 건으로 방문한다는 소문이 사실인가보군.”
“네에, 맞아요. 본부장님께서 직접 연락을 넣으셨어요. 윤사해 길드장님께서 주말에 각성자 등록 건으로 방문할 테니 준비하라고.”
유예준이 불퉁하게 말을 덧붙였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셨는지 궁금하단 말이에요.”
또한, 궁금했다.
많고 많은 날 중에 왜 하필 주말에 방문한다고 해서 사람을 이렇게 피곤하게 만드는 건지.
AMO의 여러 부서 중, 비교적 일이 적은 각성자 등록‧관리 부서의 유예준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태지인 부장님께서는 뭐 들으신 거 없으세요?”
“없다만.”
하지만 윤사해가 누구를 데리고 올지 예상이 가기는 했다. 최근, 강산에 본부장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던 아이.
만약, 제 짐작이 맞는다면…….
‘세상이 뒤집어지겠군.’
물론, 그렇게 내버려둘 윤사해가 아니겠지만 말이다.
“태지인 부장님, 사실 알고 있죠? 수상쩍게 웃으시는 걸 보니 윤사해 길드장님께서 누구를 데리고 오실지 아는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아서 말이야. 말해 줄 수는 없겠군.”
“그래도 알려 주시지!”
유예준이 그렇게 태지인을 닦달할 때였다.
“유예준 부장, 여기 있었군.”
주말 출근의 원인, 윤사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꼭 닮은 아이의 손을 잡고서.
***
윤사해에 의해 주말에 일하게 된 불쌍한 직장인이 누구인가 했더니 유예준이었다.
얼굴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지만, 곱슬기가 도는 하늘빛 머리칼에 그와 같은 눈을 지닌 사람은 AMO에 한 명뿐이었다.
더군다나 윤사해가 직접 ‘유예준’이라고 이름을 부르기도 했고.
“안녕하세요, 윤사해 길드장님. 날 좋은 주말에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유예준의 인사에 옆에 있던 남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요, 태지인 부장님?”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잘도 해서 웃었다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윤사해 길드장님을 욕하지 않았나?”
“제가 언제요!”
허억, 태지인이라니! 백시진 다음으로 죽었던 AMO의 주요 인사가 윤사해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윤사해 길드장님. 길드장님께서 각성자 등록 건으로 직접 모시고 오실 분이 궁금해서 저도 나와 봤습니다.”
“그런데 안 보이시네요?”
유예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각성자 등록을 할 사람이 나라고는 생각하지 않나보다. 하긴, 내가 유예준이라고 해도 그와 똑같이 생각할 거다.
“윤사해 길드장님?”
“여기 있지 않나.”
“……따님 분이요?”
“그래.”
유예준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그것도 잠시, 그는 윤사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었다.
“으음, 죄송하지만 윤사해 길드장님? 따님 분께서 정말 각성을 하셨다면, 병원에 데리고 가야하지 않을까요?”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됐다.
열일곱 이전에 각성자가 된 아이들은 ‘이상 각성자’라고 하여 병원 신세를 졌다.
연약한 신체가 힘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지.
윤사해는 유예준의 걱정이 이해가 된다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 유예준 부장. 이상 각성자는 하나같이 제 몸을 추스르지 못하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경우도 많고.”
윤사해의 말에서 단이가 떠올랐다.
팔라크의 둥지에서 얻을 수 있는 L급의 회복 아이템, 팔라크의 영약이 아니었다면 단이는 지금도 병상에 누워 있었을 거다.
어쩌면 세상을 떴을지도…….
에잇! 머릿속에서 지우자! 단이는 이제 건강하잖아!
쓸데없는 생각을 비우고자 고개를 젓는데, 윤사해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런데 유예준 부장, 자네의 눈에 내 딸아이는 어떻게 보이나?”
나는 보란 듯이 방긋 웃어 줬다.
말만 해요, 아저씨. 원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팔굽혀 펴기 10개 하는 걸 보여 줄 수도 있어요.
아빠가 허락할 것 같지는 않지만요.
그런 내 얼굴이 너무나도 생생해 보였나 보다. 유예준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엄청 건강해 보이네요.”
그러고는 난처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후우, 이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곤란해지겠죠? 본부장님께서 왜 그렇게 당부를 하시나 했더니.”
“본부장님께서 아저씨한테 뭐라고 하셨는데요?”
들려온 최애님의 이름에 나도 모르게 물었다.
유예준은 잠깐 당황한 듯 두 눈을 끔뻑였다가 내 질문에 답해 주었다.
“실수 없이 하라고 했답니다. 혹시 모를 오류가 있을 수도 있으니 두세 번은 더 검사해 보라고도 하셨고요.”
친절하기 그지없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윤사해는 유예준의 말에 언짢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최애님께서 내린 지시 사항이 꽤나 불만인 것처럼 보였다. 유예준이 그 표정을 보고선 말했다.
“하하,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거주자의 부산물로 하는 검사인데 오류가 일어날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검사는 한 번으로 끝낼 소리렷다?
“본부장님께서 꼼꼼하게 검사하라고 했는데 아저씨는 그거 무시하는 거예요?”
“무, 무시라니…….”
유예준이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때, 유예준의 옆에 가만히 서 있던 태지인이 입을 열었다.
“따님분께서 또래에 비해 똑똑하신 것 같군요. 좋으시겠습니다, 윤사해 길드장님?”
분명 목소리에 담긴 내용은 칭찬인데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보다 아저씨, 리사는 또래보다 똑똑하지 않아요. 단이랑 단예 보면 뒤로 넘어지시겠네.
왜인지 모르게 드는 불쾌감에 태지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태지인의 검은 두 눈이 나에게로 향했다.
마주친 시선에 나는 두 눈을 부릅떴고 태지인은 오묘하게 웃고는 등을 돌렸다.
“일이 있어서 이만.”
이내 멀어지는 뒷모습에 윤사해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윤사해 길드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무엇을.”
“에이~! 뭐겠어요?”
유예준이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흘긋거렸다.
“태지인 부장님 성격 아시잖아요? 따님분에 대해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 않으실 거예요.”
“그렇겠지. 그러니 태지인 부장의 앞에서 우리 딸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이고.”
윤사해가 태연하게 말하고는 나를 안아 들었다.
“어서 가지. AMO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거든.”
“왜?!”
“으, 응……?”
각성자 등록 빨리 끝내면 강산에 본부장님을 볼 수 있을 텐데, 왜 빨리 돌아가려는 거야!
라고는 말할 수 없고.
“리사는 AMO 구경하고 싶은데!”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처지가 조금 슬펐다.
윤사해는 곤혹스럽다는 듯이 나를 봤다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리사. 각성자 등록 끝내고 AMO를 잠깐 구경하자꾸나. 그래도 되겠지, 유예준 부장?”
“물론이죠.”
유예준은 간결하게 대답하고는 내가 각성자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시설로 우리 부녀(父女)를 안내했다.
“리사 양, 거울 앞에 서 보시겠어요? 이건 ‘업경(業鏡)’이라는 건데, 거주자의 부산물 일부로 만든 거예요.”
업경이라면, 저승 길목에 있다는 거울 아니야?
죽은 사람이 생전에 행한 선악의 모든 일을 보여 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여기에서는 각성자를 구별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니.
아니, 무엇보다 실제로 존재하는 걸 이렇게 두 눈으로 보게 되다니!
차렷 자세로 거울 앞에 서서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결과는 뻔하겠지만요. 하지만 절차란 게 있어서요.”
하긴, 부모 모두 각성자인 아이는 필연적으로 각성자니까 말이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면 각성자인 거고, 그러지 않으면 비각성자랍니다. 어떤가요, 리사 양?”
어떻고 자시고 유예준의 두 눈에도 보일 거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서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유예준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나네요. 이제 안쪽으로 오실까요? 서류를 작성에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리오와 리타 때와는 다르게 뭔가 바뀌었나? 그러지 않으면 그때와 똑같이 자네가 기입해 줬으면 하는데.”
“그러다가 걸리면 저나 윤사해 길드장님이나 서로 곤란해지는 거 알죠? 그리고 리사 양의 경우가 워낙 특별해서요.”
그러니까 어서 오라며, 유예준이 나를 불렀지만 나는 거울 앞에서 쉽게 걸음을 떼지 못했다.
거주자의 부산물로 만들어졌다는 거울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곳곳에 난 생채기로 상처투성이가 된 얼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는…….
바로 나라는 것을.
***
“아아, 가끔 그 거울이 미래를 보여 주기도 해요.”
각성자 등록과 관련하여 여러 장의 서류를 끝낸 후, 나는 유예준에게 물었다.
거울에서 내가 훌쩍 커 버린 모습을 봤다고. 그에 대한 답이 저랬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래요?”
“네, 각성자로서 가장 완전한 힘을 이뤘을 때라거나? 뭐 그런 걸 간혹 보여 주더라고요.”
“으움.”
미심쩍은 대답이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 봐도 거울에 비쳤던 나는 진탕을 잔뜩 구른 듯한 모습이었던 탓이다.
“리사, 거울에 비쳤던 모습은 그리 신경 쓰지 마렴. 미래는 얼마든지 바뀌기 마련이니.”
윤사해의 말에 나는 환하게 웃었다.
그래, 미래는 언제고 어떻게든 바뀔 수 있었다.
나는 윤사해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윤사해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안아 들었다.
그렇게 거울이 설치되어 있던 방을 나자마자.
“오, 이제 끝났나 보구나.”
나는 후광이 번쩍이고 있는 사람과 마주쳤다.
“안녕, 리사.”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아름다우시고 멋지고 다 하시는 우리 최애님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