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처음 인사드립니다, 최애님(3)
강산에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강당 위에 뻘줌하게 서서 자신의 길드에 관해 소개하는 윤사해의 모습은, 감히 영상으로 찍어 두고두고 놀려 주고 싶은 광경이었다.
저를 향해 몰려드는 아이들의 시선을 최대한 피하고 있는 것은 또 어떻고.
“푸훕…….”
결국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강산에는 숨죽여 웃음을 터트리고는 똘망똘망 두 눈을 뜨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멈춰선 곳은 강당 위에 서 있는 윤사해를 꼭 닮은 아이 앞에서였다.
“잠깐 옆에 앉아도 될까, 리사?”
“네? 네! 얼마든지요!”
아이가 기쁜 듯 두 뺨을 발그레 물들이고는 왼쪽으로 움직였다. 강산에는 아이의 옆에 앉고는 말했다.
“괜히 리사의 아빠를 곤란하게 만든 게 아닐까 싶구나.”
“아니요! 더 곤란하게 만들어도 돼요, 본부장님!”
“응?”
아차차, 아이가 제 입가를 몇 번 두드리고는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러니까! 아빠가 암만 이매망량의 길드장이라고 해도 본부장님보다 뛰어나지는 않으니까요! 그, 능력이 딸린다는. 아니, 부족하다는 건 아니고……!”
“하하, 무슨 말인지 잘 알겠단다.”
강산에의 말에 윤리사는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강산에는 아이가 보여 주는 웃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또래와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아이. 하지만 강산에는 윤리사가 또래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S급 각성자라…….’
윤사해 길드장은 과연 이를 알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강산에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윤사해라면 알고 있을 거다. 그러니 아득바득 자신에게서 아이를 숨기려고 한 거겠지.
강산에는 윤리사를 향해 방긋 웃어 주고는 제 오른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안녕, 세상아.”
윤사해와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는 아이가 고개를 꾸벅였다.
심연과도 같은 검은 두 눈, 오른쪽 눈가 아래에 자리한 점.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닮았다.
강산에는 아이의 얼굴에서 보이는 제 아들의 모습에 기분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세상이는…….”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니?
……라고 물으려던 목소리가 삼켜졌다. 이런 상황에서 꺼낼 질문이 아니기도 하며, 강산에는 알고 있었다.
저세상이 부모 없는 천애 고아라는 것을.
그렇기에 강산에는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가 애써 웃으며 목소리를 내었다.
“윤사해 길드장이 부족함 없이 잘 대해 주고 있니?”
아이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홱 시선을 돌렸다.
“네.”
무성의한 대답, 그에 강산에의 왼쪽에 앉아 있던 윤리사가 곧장 반응했다.
“야! 너 본부장님 얼굴 보고 제대로 대답해! 싸가지 없게 어른이 묻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하다니!”
“아악! 내가 뭐!”
자그만 손이 제 오른쪽에 앉아있던 아이의 귀를 있는 힘껏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강산에는 잠깐 멍한 표정을 보이다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리사! 세상아!”
윤사해의 강의가 중단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
“……자, 이매망량에 대한 안내는 이것으로 끝.”
나와 저세상 때문에 잠깐 끊겼던 윤사해의 강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
“아저씨! 그래서 이매망량에는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어요?!”
“저는 CW에 들어가고 싶어요!”
“나는 아래아! 길드장님, 아래아의 길드장님과 잘 아세요? 친구에요?”
곳곳에서 쏟아지는 질문들에 윤사해가 미간을 좁혔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꽤나 험악하게 보일 인상인데, 그게 지금은 두 눈에 보이지 않나 보다.
“아저씨이!”
“길드장님, 대답해 주세요!”
저렇게 윤사해를 닦달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고, 사해가 큰일 났구나.”
옆에 앉아 있던 우리 최애님께서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최애님의 말씀대로 질문에 제대로 답해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윤사해를 놓아 주지 않을 기세였다.
“자, 얘들아, 그만. 오늘 귀한 시간 내 주신 강산에 본부장님과 윤사해 길드장님께 우리 모두 인사.”
그 기세를, 나의 담임 선생님이신 백장미가 꺾어 버렸다.
백장미의 말에 아이들이 우우, 야유를 쏟아 냈지만 그러면서도 맑은 목소리로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곧이어 1학년 친구들이 각 반의 담임 선생님 인솔에 따라 체육관을 나가기 시작했다.
“리사, 나중에 봐.”
“우리 먼저 갈게.”
나와는 다른 반인 단예와 단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단예와 단이에게 말했다.
“응! 놀러 갈게!”
그렇게 둘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나는 윤사해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최애님의 곁에 찰싹 붙어 있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아빠가 삐칠 테니까!
“수고하셨어요, 리사 아버님. 아니, 윤사해 길드장님. 저희 스승님께서 갑작스럽게 요청하신 건데 흔쾌히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윤사해가 백장미의 인사에 손사래를 치고는 걸음을 옮겼다.
“리사.”
“아빠!”
후다닥, 윤사해에게 달려가 그 넓은 품에 꼭 안겼다.
윤사해가 곧장 나를 안아 들고는 엄하게 타이르는 듯이 목소리를 내었다.
“세상이랑은 왜 싸웠니?”
강의가 잠시 중단됐던 때를 말하는 건가 보다. 나는 불퉁하게 입술을 씰룩였다.
“안 싸웠어! 세상이 오빠 싸가지 좀 고쳐 준 거뿐이야.”
“싸가지…….”
윤사해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무슨 문제 있어, 대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활짝 웃는데 저세상이 다가왔다.
“아저씨.”
저세상의 뒤에서 도윤이가 고개를 빼곰 내밀었다.
“아, 안녕하세요, 삼촌!”
“삼촌……?”
윤사해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언짢아 보이는 기색에 도윤이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게, 아빠가 다음에 만날 때는 이렇게 인사하라고 해서…….”
“하아, 백시준.”
윤사해가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도윤이가 저를 부른 호칭을 굳이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도윤이의 옆에는 단아가 있었다. 단아는 말없이 윤사해를 노려보다가 황급히 도윤이의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우리 최애님께서 등장하셨다.
“강의 훌륭하더구나, 사해야. 그간 길드에 대한 홍보는 서 비서를 통해서만 봤는데, 네가 맡아도 되겠어.”
“본부장님.”
윤사해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그는 그대로 나를 내려주고는 날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잠깐 자리를 피해서 이야기 좀 나눴으면 하는데요.”
“마음대로.”
그 대답에 윤사해가 나와 저세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리사, 세상아. 남은 수업 잘 들으렴. 집에 가서 보자꾸나.”
“응!”
“네!”
나는 멀어지는 최애님과 차애님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윽고 담임 선생님이 그만 교실로 돌아가자며 우리를 재촉했다. 나는 교실로 걸음을 옮기며 방긋 웃었다.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이 발동됩니다.】
우리 최애님과 차애님이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영광스러운 장면을 내가 놓칠 리가 없었다.
비록, 대화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을 테지만 그 잘난 얼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눈에 몰리는 피로함 따윈, 최애님과 차애님의 얼굴만 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었고.
그렇게 후후,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트리는데 저세상이 얼굴을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윤리사, 너 왜 그렇게 웃어? 지금 굉장히 변태같아.”
닥쳐, 저세상.
***
모든 강의가 끝난 체육관 뒤편.
윤사해는 짜증스레 앞머리를 넘기고는 고개를 돌렸다.
“빛나리 초등학교에는 도대체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날이 잔뜩 서린 신경질적인 목소리였다. 그에 강산에는 웃는 낯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제자들 보러 왔지. 곧 스승의 날이 아니니?”
태연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가증스럽기 그지없었다. 윤사해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언제부터 스승의 날이 스승이 제자를 손수 찾아가는 날로 변했는지 모르겠군요.”
“제자가 스승을 찾아오든, 스승이 제자를 찾아가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니, 사해야? 서로 보고 싶어 하는 마음만 있으면 되지.”
말은 잘하는군.
윤사해가 얼굴을 찌푸리며 강산에를 노려봤다. 색이 옅은 검정 선글라스 아래로 능글맞게 웃고 있는 미소가 보였다.
윤사해의 얼굴이 더더욱 험악하게 구겨졌다. 강산에는 여전히 웃는 낯을 보일 뿐이었다.
눈앞의 남자가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면, 자신은 지금 죽었을 거다.
강산에가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입을 열었다.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렴. 양해도 구하지 않았니?”
양해?
별안간, 윤사해의 머릿속에 아침에 받았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AMO 강산에 본부장님 : 잠깐 실례를 좀 하겠단다-^^]
하, 그가 기가 차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걸 양해랍시고 제게 보냈던 겁니까?”
“그럼.”
상대가 윤사해가 아니었다면, 강산에는 굳이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사해야. 아니, 이매망량의 윤사해 길드장.”
강산에가 느릿하게 걸음을 뗐다. 이내 윤사해의 코앞에 멈춰선 AMO의 본부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목소리를 내었다.
“아이의 각성자 증명은 언제쯤 받으러 올 생각인가?”
윤사해의 얼굴이 험악하게 찌푸려졌다.
스승의 날이 어쨌다니, 같잖은 핑계를 잘도 대더니.
윤사해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