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처음 인사드립니다, 최애님(2)
점심에 다가서는 오전.
윤사해는 AMO의 로비를 제 집 안방처럼 걷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계속 이렇게 연락도 없이 찾아오시면 곤란합니다, 윤사해 길드장님!”
그의 옆에서 백시진이 안절부절못하고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렸다.
윤사해가 친구의 동생을 곁눈질로 한 번 보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연락은 했다네. 아무런 답을 받지 못해 직접 찾아온 것뿐.”
그 답을 조금만 더 기다려 줬으면 정말로 좋았을 텐데!
백시진이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삼켰다. 평소라면 윤사해 역시 AMO측에서 방문을 허락하는 연락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거다.
하지만 그는 급했다.
[AMO 강산에 본부장님 : 잠깐 실례를 좀 하겠단다-^^]
난데없이 날아온 메시지.
어떻게 해석을 해도 불안감만 가중되어 윤사해는 결국 AMO에 직접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윤사해가 백시진의 목소리를 듣는 체 마는 체하며 본부장실을 방문하려던 참이었다.
“백시진 팀장.”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윤사해가 얼굴을 찌푸리고서 고개를 돌렸다.
몇날 며칠을 야근에 찌든 것 같은 직장인이 보였다.
백시진의 상사, AMO 내에 모든 현장 팀을 감독 관리 중인 태지인 부장이었다.
태지인이 한 박자 늦게 윤사해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윤사해 길드장님. 본부장님을 만나러 오셨나 보군요.”
그가 일부러 제게 늦게 인사했음을, 윤사해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태지인, 그는 자신이 이매망량의 길드장 자리에 올랐을 때부터 저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자였으니.
하지만 윤사해는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렇다만 자리를 비우셨더군.”
“서로 길을 엇갈렸나 봅니다.”
윤사해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의미였다.
“아아, 서로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보군요.”
태지인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본부장님께서는 빛나리 초등학교에 가셨습니다. 윤사해 길드장님의 따님 분께서 그 학교에 재학 중이라고 들어서…….”
태지인의 목소리의 끝이 흐려졌다. 윤사해가 태지인의 말을 더는 듣지 않고 걸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윤사해가 AMO를 떠난 후, 백시진이 제 상사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본부장님께서 빛나리 초등학교에는 왜 가셨답니까?”
“그러고보니 자네 조카도 그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었지. 글쎄 말이다.”
태지인이 윤사해가 사라진 자리를 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 알 바는 아니지. 그보다 백시진 팀장. 시킨 일은 다했나?”
“저, 윤사해 길드장님께서 갑자기 AMO에 방문하는 탓에…….”
“못했다는 말이군. 어서 자리로 돌아가 처리하게. 점심까지 내게 올려야한다는 것 잊지 말고.”
백시진이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태지인은 그런 그를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윤사해가 사라졌던 곳과는 정확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
이게 꿈이야, 생시야?
“우리 작은 친구들, AMO가 어떤 기관인지는 다들 알고 있을까?”
내 최애님께서 강당 위에 앉아 강의를 하고 계신다. 그것도 여덟 살의 눈높이에 맞춰서.
교장 선생님께서는 소풍을 떠난 고학년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을 체육관에 불러들이고 싶었지만…….
‘곧 중간고사잖아요. 시험 진도를 맞추지 못한 반이 많나 봐요.’
아쉽게도 그건 불발됐다.
사실, 말이 아쉽다는 거지. 나는 지금 무척이나 행복했다.
최애님의 강의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적은 인원으로 볼 수 있다니!
나는 정말 복에 겨운 인간이야.
그렇게 감격에 젖어 최애님을 바라보는데, 우리 본부장님께서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친구들? 내가 낸 문제가 조금 어려웠나 보구나?”
아차차! 최애님이 내신 문제가 있었지!
가만 보자, AMO에 관해서 물으셨었지?
옆에 앉아 있던 단예가 손을 들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어림도 없지!
나는 한손을 번쩍 들고는 바로 답을 외쳤다.
“AMO는 각성자에 관한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곳이에요! 각성자 증명이 이뤄지기도 하고, 스무 살 이상의 성인들을 상대로 헌터 시험을 주관하기도 하는 곳이에요!”
우다다, 쏟아진 내 말에 최애님께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옆에서 손을 들려고 하던 단예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들의 시선에 뿌듯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리사. 이 세상에 ‘각성자’는 어떻게 생겨났고 왜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을까?”
앗, 모르는 질문.
나는 멋쩍게 뺨을 긁적이고는 고개를 저었다. 최애님께서는 그런 내가 귀엽다는 듯이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주고는 말했다.
“혹시 답을 알고 있는 친구가 있을까? 편하게 말해 보렴.”
그 말에 단예가 손을 들었다.
“각성자라는 이름이 붙여진 건,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고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도대체 어떤 책이지? 최애님의 강의가 끝나면 단예에게 슬쩍 물어봐야겠다.
“그 이전에는 신묘한 힘을 다룬다고 하여 신인(神人)이라고 불렀다는데, 혹자는 세상 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던 거주자들을 가리켰던 말이라고 하더군요.”
이어진 단예의 말에 최애님께서 놀란 눈으로 말하셨다.
“우리 작은 친구가 똑똑하구나. 이름이 단예지?”
“네.”
“그래, 단예의 말대로 각성자들이 그렇게 불리게 된 건…….”
최애님의 목소리가 나긋하게 강당을 울렸다. 이어지는 설명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이 세계는 내가 ‘마리아’로 살았던 지구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나라가 존재하지만 모두 그 기원을 알지 못한다는 거였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문화를 향유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를 모른다는 말씀.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역사란 것이 존재한단다. 각성자를 신인이라고 부르던 시대를 기록해 놓은 역사서가 여럿 존재하고 있거든.”
또한 최애님께서는 말을 덧붙였다.
“이곳, 빛나리 초등학교의 도서관에도 그 책들이 구비되어 있을 거란다. 흥미가 있는 친구들은 한 번 찾아서 읽어 보렴.”
하지만 최애님의 말을 제대로 듣는 친구들은 몇 없었다.
당장 도윤이와 단아만 하더라도 졸린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단예와 단이는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최애님의 목소리를 경청 중이었지만 말이다.
물론, 나도 단예와 단이처럼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의외인 점은 저세상도 그러고 있다는 것?
‘나나 단예와 단이와는 다르게 동태 눈깔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멀쩡한 정신으로 최애님의 강의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강산에 본부장님께서는 강당을 한 번 둘러보고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셨다.
“내 이야기가 우리 작은 친구들에게 어렵게 느껴지나 보구나.”
아니요! 어렵기는 개뿔, 대치동 일타 강사도 최애님처럼 귀에 쏙쏙 들어오게 강의할 수는 없을 거예요!
최애님의 강의는 세상에서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들었지만, 우리 본부장님께서는 나를 보지 못하셨다.
“그럼, 재미없는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우리 친구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이야기를 꺼내 볼까?”
졸음에 고개를 꾸벅이고 있던 단아와 도윤이가 고개를 들었다. 다른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에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길드가 여러 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네에!”
“……!”
까, 깜짝이야.
길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아이들의 얼굴에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그래, 여덟 살이면 공무원의 매력을 알지 못하는 시기지.
최애님께서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이고 있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중에서도 네 곳. 4대 길드라고 불리는 곳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 볼까 하는데…….”
“강산에 본부장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최애님의 목소리를 가로 막았다.
어떤 자식이 눈치 없게!
“오, 윤사해 길드장.”
우리 최애님의 강의를 끊어먹나 했더니 우리 아빠였다.
뭐야, 아빠가 왜 거기서 나와?
강당 위에 모습을 드러낸 윤사해가 그대로 강산에 본부장님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제가 분명 우리 애한테 신경 끄라고 말씀 드렸을……!”
“우와, 윤사해 길드장님이시다!”
“진짜?! 와! 진짜다!”
아이들의 소란에 윤사해가 입을 다물었다.
뒤늦게 이곳이 빛나리 초등학교의 체육관 강당 위라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강산에 본부장님께서 당황해하고 있는 윤사해를 보며 싱긋 웃었다.
“마침 잘 왔네, 윤사해 길드장. 이제 아이들에게 길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줄 참이었거든.”
윤사해가 미간을 좁혔다.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강산에 본부장님은 그런 윤사해의 얼굴을 못 본 척 무시하고는 우리를 향해 물었다.
“자, 우리 친구들. 이 아저씨가 누군지 아는 사람?”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들고는 외쳐댔다.
“윤사해 길드장님이요!”
“윤리사 아빠!”
“무서운 사람!”
쏟아지는 대답에 윤사해가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뭐하자는 짓입니까, 본부장님?”
“이왕 이렇게 온 거, 자라나는 친구들에게 이매망량에 대해 소개해 주지 그러나.”
윤사해가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최애님께서는 태연하게 말하셨다.
“혹시 모르지. 저 아이들 중에서 훗날 이매망량을 이끌어갈 인재가 나올지도.”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딸아이 앞에서 자네가 일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려 줄 기회이기도 하고.”
윤사해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나는 그를 보며 방긋 웃었다.
아빠, 우리 최애님께서 귀한 시간을 아빠에게 넘기겠다고 하잖아. 안 받아들일 거야?
윤사해가 침을 꿀꺽이는가 싶더니 최애님한테서 마이크를 받아들었다.
“그럼, 이매망량에 대해 간단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