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처음 인사드립니다, 최애님(1)
AMO의 본부장, 강산에는 제 허리에는 올까 싶은 작은 여자아이를 빤히 쳐다봤다.
‘얼굴은 엄마 쪽을 닮았나?’
성격은 모르겠지만, 제 부모의 잘난 점만 빼다 닮은 아이인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저를 볼 리가 없으니. 입을 왜 막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야, 윤리사. 본부장님께 인사 안 할 거야? 그렇게 계속 입만 막고 있을 거냐고.”
강산에의 시선이 윤리사 옆의 저세상에게로 향했다.
사진으로 접했을 때는 몰랐지만, 묘하게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오른쪽 눈 아래에 있는 점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 집을 나가 연락이 끊긴 자신의 아들이 꼭 저랬으니.
어쨌거나 강산에는 흐뭇하게 웃으며 자신이 어쩌다 빛나리 초등학교로 오게 됐는지를 떠올렸다.
***
“너무 작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윤사해 길드장?”
강산에는 이매망량 측에서 제출한 자료를 윤사해의 앞에 툭 던졌다.
윤사해의 시선이 잠깐 그곳으로 향했다가 강산에한테로 옮겨졌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심하게 들려온 어조.
강산에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다리를 꼬았다.
“중을 발견한 과정 말이네.”
그녀는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아 올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행방이 묘연해진 길드원들을 찾는 과정에서 명패를 떠올렸고, 혹시 몰라 귀수산을 수색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을 발견하게 됐다.
눈으로 훑어보면 문제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윤사해라면 빠뜨리지 않았을 이야기가 있었다.
“선비에 대한 이야기가 없군? 자네 길드원들의 행방이 불분명해진 건, 그 녀석이 중과 조력했기 때문이었을 텐데.”
그 다음으로 이어졌어야 할 내용은, 선비가 행방불명된 길드원들을 어디로 데려갔는가에 대해 추측해 보았다는 것.
그러나 보고에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모두 빠져 있었다.
윤사해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목소리를 내었다.
“본부장님이라면 어련히 선비 녀석을 떠올리겠거니 했습니다.”
입 바른 소리를.
강산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윤사해는 그녀를 한 번 흘긋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중이 제 길드원들을 데리고 귀수산에 있을 거라고 확신하지는 않았습니다. 간혹, 명패에 불량이 나오는 경우를 산정해 봤던 것뿐이지요.”
“그런데 그 가능성이 얼떨결에 들어맞았다는 건가?”
윤사해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말했다.
“또한 랑야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찾고자 하는 대상의 흔적을 더듬을 줄 아니까요.”
여기서 미지 영역의 거주자를 들먹이다니.
랑야가 가진 능력은 강산에도 잘 알고 있었다. 윤사해의 말대로 그는 흔적을 더듬을 줄 안다.
문제는, 그 흔적이 도중에 끊기면 무용지물이라는 것. 그리고 행방이 묘연해졌던 이매망량의 길드원들.
사야와 류화홍은 DMO의 건물 앞에서 한 번 흔적이 끊겼었다. 강산에는 그 점을 지적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랑야를 들먹이면서 피하겠군.’
때문에 강산에는 다른 것을 지적하기로 했다. 사실, 그녀에게는 이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한 이야기였다.
“그럼, 이건 어떻게 된 일인가?”
윤사해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
강산에가 입꼬리를 올렸다.
“중과의 일에서 한 명의 이름이 빠져 있더군.”
직접적으로 언급은 안 했지만, 윤사해는 그녀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아 차렸다.
중과의 자리에 함께 있었으나, 보고에는 올리지 않은 이름.
윤리사, 자신의 하나뿐인 딸아이.
강산에가 아이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윤사해의 얼굴에 불쾌한 경계심이 어렸다.
“걱정 말게. 이매망량에 첩자는 심어 두지 않았으니. 단지 로저 신부의 보고에 자네 딸아이의 이름이 등장해서 말이야.”
“로저? 가호(加護)의 로저 에스테라 말입니까?”
“그럼, 내가 올릴 이름이 그 말고 더 있겠나?”
하긴, 그것도 그랬다.
중을 사로잡은 것이 로저 에스테라, 그라고 했으니.
“아무래도 중의 기억을 들춰 본 모양이더군.”
쓸데없는 짓을.
아직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AMO 가장 깊은 곳에 수감됐다는 중의 상태가 아주 엉망이라더니.
‘그 광신도, 여전한가 보군.’
로저 에스테라는 CW의 장천의와는 다른 의미로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남자였다.
윤사해는 그를 떠올렸다가 속으로 짧게 혀를 찼다.
“그래서 따로 할 말은 없나?”
윤사해는 말없이 강산에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앞의 여우가 제 딸아이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로저 에스테라가 올린 보고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기에 윤사해는 모르쇠로 일관하기로 했다.
“네, 없습니다.”
***
그 대답이 강산에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윤사해가 제 자식들을 아끼는 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공(公)과 사(私)에 구분이 있는 자였다.
업무에 있어서 필요할 때는 제 아이들의 이름을 거론한다는 말씀.
물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경고가 덤으로 붙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리고 그 이유가 강산에는 궁금해졌다.
윤리사, 윤사해의 하나뿐인 딸아이의 이름은 작년부터 일어난 여러 일에 빠짐없이 등장했었으니.
그 이유를 이번에는 윤사해가 숨기려고 드니 캘 수밖에 없지 않나?
강산에는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아이를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
세상, 시바.
최애님이 웃고 있어.
색이 옅은 검정색 선글라스 안으로 눈웃음을 짓고 있는 선한 얼굴이 보였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
크흡! 나는 비명이 나올세라 입을 더더욱 세게 틀어막았다.
저세상이 그런 내가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다.
“윤리사, 진짜 손 안 내릴 거야? 숨 안 막혀?”
숨? 최애님의 아리따운 자태에 호흡하기가 어렵기는 했다. 하지만 조용히 하거라, 주인공아.
최애님에 대한 나의 감상을 방해하지 말란 말이다!
“리사야? 왜 그래? 어디 아파?”
하지만 도윤이까지 저렇게 말하자 나는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최애님께서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거든.
우리 어르신이 나를 걱정해 주고 있어!
이대로 병상에 누워 간호라도 받고 싶지만, 나이 지긋하신 분을 고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선생님!”
“오, 장미 아니니.”
때마침, 담임 선생님도 등장하셨고.
1학년 2반의 담임 선생님인 백장미 뒤로 나이 지긋하신 분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누군가 했더니 빛나리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셨다.
저세상의 인사에 나와 도윤이도 얼떨결에 허리를 꾸벅이며 교장 선생님께 인사했다.
담임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 것도 잊자 않았다.
그보다 우리 최애님, AMO에 입사하기 전에는 교직 생활을 하셨다더니……!
다시 한 번, 감격에 젖어 입을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자들과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최애님의 모습에 두 눈을 빛내는 것도 잠시.
“세상이 형, 리사 오늘 왜 저래?”
“나도 몰라.”
도윤이와 저세상의 대화에 나는 감정을 추슬렀다.
진정하자, 윤리사. 괜히 최애님께 이상한 꼴을 보이면 안 되잖아?
우리 최애님께서는 오랜만에 만난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스승님, 저도 좀 봐 주시죠.”
“하하, 철만아. 장미는 내 마지막 제자 아니니. 네가 선배 된 입장으로 이해 좀 해 주렴.”
최애님의 말에 백장미가 기쁘다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꾸밈이라고는 없는 진실한 웃음.
우리 최애님께서 얼마나 참된 선생님이셨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보다 기별도 없이 학교에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저나 백장미 선생을 보려고 찾아오신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아아, 일적으로 긴밀하게 얽힌 분의 자제 분을 만나고 싶어서 왔었단다.”
윤사해다.
최애님이 가리킨 사람은 윤사해라고 내 직감이 강렬하게 외쳐댔다.
그 말은 즉, 나를 보러 왔다는 말씀이신가?
허억, 나는 콩닥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백도윤, 너 휴대폰 없어? 있으면 좀 줘봐. 아무래도 아저씨한테 전화해야할 거 같아. 윤리사 상태 이상하다고.”
“으응, 그런데 나는 폰 없는걸?”
저세상과 도윤이의 목소리는 무시하자. 나는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제를 향해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서 만났습니까?”
“응, 만났단다. 이제 돌아가려고.”
“벌써요?”
백장미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나 역시 아쉬웠다.
가지 마요, 최애님! 제대로 대화도 못 나눴는데 벌써 보낼 수는 없단 말이에요!
하지만 속 타는 내 마음도 모르고 최애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철만이, 아니. 빛나리 교장 선생님의 말씀대로 아무 연락도 없이 찾아온 방문객이니 어서 나가야지.”
교장 선생님! 뭐해요, 붙잡아요! 담임 선생님도요!
“그러지 마시고, 이렇게 된 거 아이들한테 짧게 강의라도 해 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교장 선생님, 나이스!
나는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최애님께서는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강의?”
“네, 선생님. AMO의 본부장이지 않으십니까? 고학년 친구들은 오늘 소풍날이라 학교에 없지만, 저학년 친구들만이라도 모아서 강의를 해 주십사 합니다.”
하지만 일이 바쁘시다면 그러시지 않아도 된다고, 교장 선생님께는 사람 좋게 웃으셨다.
그러면 안 되죠, 교장 선생님!
나는 한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해 주세요, 최. 아니, 본부장님!”
“응?”
“리사의 꿈은 AMO에 들어가는 거거든요!”
최애님, 당신 얼굴 보러.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데 옆에서 저세상이 눈치 없이 중얼거렸다.
“이매망량의 명패 얻는 게 네 꿈 아니었어?”
닥쳐, 저세상.
최애님께서는 말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시다가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그럴까?”
우리 최애님께서 그린 듯한 미소를 다시금 내게 보여 주었다.
신이시여……!
***
하지만 윤리사는 몰랐다.
[각성자, ‘윤리사’에 대한 탐색에 실패했습니다.]
[동일 등급의 각성자에 대한 스킬 사용이 불가합니다.]
AMO의 본부장, 강산에의 <[S급, 숙련 불가] 탐색꾼의 눈>에 비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