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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27)화 (127/500)

127화. 꿈은 달콤하다(5)

윤사해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이매는 새잎이 돋고 있는 나뭇가지 위에 가볍게 걸음을 디뎠다. 그러기 무섭게 먼저 있던 객이 그에게 짜증스레 물었다.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겁니까?”

“뭐가요, 선비 씨?”

이매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그에 선비가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중, 그 녀석한테 순순히 협조하는 것 같더니.”

제 착각이었나 보다.

나불나불, 중의 계획을 윤사해의 자식들에게 알려 주는 것을 보고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그러는 선비 씨야말로 중 씨에게 가지 않고 저와 있어도 괜찮으시겠어요?”

“상관없습니다. 제 일은 이미 끝났으니까요.”

중이 선비에게 부탁했던 일은 사야를 공간에 가두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와 함께 있던 류화홍이 휘말리고 말았으나, 어쩄든 선비가 맡은 일은 끝났다.

“그리고 중은 지금 귀수산에 있습니다. 지금도 움직이고 있을 섬을 제가 무슨 수로 찾아간답니까?”

선비는 다른 이동계 각성자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좌표가 있어야만 그 장소로 이동이 가능했다.

때문에 시시각각 위치가 바뀌는 귀수산으로는 이동할 수 없었다.

물론, 가능한 방법이야 있기는 했지만 중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심드렁한 목소리에 이매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도 그러네요. 그럼, 중 씨는 혼자서 벌어질 모든 상황을 감당하셔야겠네요.”

이매가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부디, 윤사해가 중 씨가 있는 곳을 알아차리지 않으셔야 할 텐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

선비는 짧게 혀를 찼다. 그 순간, 윤사해의 집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리사! 젠장, 명패는 내가 아니면 사용이 불가능하다면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간혹 불량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잖아. 그보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리사 쫓아가야지!”

가만 보니 호랑이 한 마리와 아이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이매는 재미있다는 듯이 눈웃음을 짓고는 선비에게 말했다.

“중 씨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저희는 이만 돌아갈까요?”

“바라던 바입니다.”

이내 유랑단의 두 탈이 드러난 달빛 아래에서 모습을 감췄다.

***

끼이이익―!

잘 닦인 유리 바닥 위로 짐승의 발자국이 길게 그려졌다.

가까스로 제자리에 멈춘 금강호가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거렸다. 심지어 헤실거리기까지 했다.

마치, 잘했지 않느냐면서 칭찬해 달라는 모습에 나는 버럭 화를 냈다.

“망할 호랑이! 지금이 웃을 때야?”

-끼잉?

금강호가 왜 혼내느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크흑, 쓸데없이 귀엽게 생겨서는!

하지만 심장을 부여잡고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이매망량.

금강호가 강탈한 윤리오의 명패로 이동한 곳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이지? 명패는 분명 그 주인이 아닌 이상 사용이 불가능할 텐데?

에잇, 모르겠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나는 금강호의 토실토실한 뺨을 붙잡고는 다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너 코 좋지? 호랑이가 갯과였던가, 고양잇과였던가…….”

어쨌든.

“사야 언니와 화홍이 오빠를 찾아야해. 찾을 수 있겠어? 두 사람 다 지금 귀수산에 있어.”

-끼이잉.

금강호가 꼬리를 내렸다. 어깨도 축 늘어뜨렸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흔적을 쫓는 것이 여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우리 아빠.”

금강호가 꼬리를 바짝 세우는가 싶더니.

-크르릉!

“우왓!”

곧장 나를 등에 태운채로 바깥을 향해 뛰쳐나갔다. 무언가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그래, 호랑아! 밤중에 깔려 있는 안개가 조금 무섭지만, 달려라! 달려!

사야 언니 구해야지!

***

사시사철,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는 귀수산에는 언제나 비 냄새가 났다. 그리고 오늘은, 유독 그 냄새가 짙다고 사야는 생각했다.

다가오는 죽음을 직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매망량의 젊은 주인은 저를 찾지 못하리라. 그리고 제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

단지, 바라는 것은 소중한 마수가 안전하게 몸을 피하여 자신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흐음, 이매치고는 많이 늦는데?”

이 모든 일을 벌인 중이 입가를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사야는 악에 받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을까?’

금강호가 잡혀오든, 잡혀오지 않든 자신은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중에게 치명상 하나는 입히고 싶었다.

쏴아아-!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흐트러졌다. 사야는 흐트러진 차림새를 정돈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기회는 한 번뿐, 빠르게 몸을 움직여 단숨에 저 목을 노린다.

그러나.

“괜한 생각 말어. 자네가 움직이면 숨이 끊어지는 건 옆에 있는 친구일 테니.”

“…….”

중의 경고에 사야는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문득, 스스로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얌전히 이매망량에 있을 것을, 무엇 하러 밖으로 나가 제가 거둔 마수들의 시체를 확인하고자 했는지. 그 때문에 이렇게 잡혀…….

〖사야!〗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에 상념이 멈췄다. 사야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작게 목소리를 내었다.

“……아버지?”

그럴 리가 없다. 사야는 잘못 들은 것이라 치부하며 얼굴을 구겼다.

하지만 곧이어 들린 반갑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그녀는 멍하니 입술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태랑! 랑야를 잡아!”

그 목소리와 함께 주변에 자욱하게 끼어 있던 안개가 순식간에 걷혔다.

사야의 두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건, 중을 향해 달려드는 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군데군데 붉은 기가 섞인, 백색의 털을 지닌 거대한 늑대.

모습을 바꾼 랑야가 금기를 어기고 중의 목을 노리려 하고 있었다.

“아버지!”

사야가 비명을 지르듯 랑야를 불렀다. 그 뒤로 다소 가벼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 원, 오랜만에 나와서 하는 일이 철부지 친구 녀석 포박하는 일이라니.〗

중을 향해 달려들던 랑야의 온 몸이 금줄로 구속되었다. 동시에 사야의 시야가 뒤바뀌었다.

분명, 중의 코 앞에 치욕스럽게 주저앉아 있던 자신인데 어느새 그와 거리가 벌려져 있었다.

사야는 두 눈을 끔뻑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태… 태랑 님…….”

랑야와 마찬가지로 윤사해와 계약 중인 도깨비.

공간을 다루는 것이 특기인 이가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사야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다, 사야. 옆의 친구는 괜찮으냐?〗

사야는 뒤늦게 류화홍도 함께 이동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때였다. 태랑의 옆에서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놔! 이거 놔, 태랑!〗

랑야는 어느새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태랑이 금줄에 묶인 그를 보고는 짧게 혀를 찼다.

〖이보게, 랑야. 진정하게. 자네는 어차피 저 치를 못 죽여. 제약을 어기고 억지로 죽이려고 들면 자네가 죽을걸?〗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랑야는 중을 노려보며 이를 드러냈다.

〖사빈을 죽인 녀석이다.〗

〖뭐?〗

〖분명해, 사빈을 죽인 녀석이야.〗

능글맞게 웃고 있는 저 얼굴,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 이 모든 것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유랑단의 아홉 탈 중 하나, ‘중’이라는 녀석은 제 연인을 죽인 인간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감히 제 딸아이를 노리려고 했다. 정인이 남긴 흔적이 선명하게 서려 있는 그 아이를.

랑야가 이를 으득 갈았다. 태랑은 물끄러미 그를 보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럼, 더더욱 못 놓아주겠군.〗

〖태랑!〗

랑야가 분에 찬 목소리를 내질렀다. 포박에서 벗어나면, 한 대 때리겠다는 얼굴.

그러나 태랑은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보게, 주인. 랑야는 이만 돌려보내는 게 어떨까?〗

윤사해가 가쁜 숨을 내쉬며 수풀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랑야가 그 모습을 보고서 소리를 질렀다.

〖윤사해! 지금 나를 돌려보냈다가는 네 부름에 두 번 다시는 응하지 않을 거다!〗

〖어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사야가 이 바깥에 버젓하게 살아 있는데 뭘 나오지 않는다는 거야?〗

〖입 닥쳐, 태랑!〗

윤사해는 두 도깨비의 투닥거림을 무시하고서 제 길드원을 살폈다.

“사야, 류화홍 헌터는?”

“잠깐 정신을 잃은 것뿐입니다.”

“그래, 고생했구나.”

윤사해가 작게 안도하고는 앞으로 나섰다. 그의 시선은 중에게로 향해 있었다.

닿는 시선에 중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능청스레 나불거렸다.

“어이쿠, 이제 나한테 관심을 가져 주는 건가? 귀하신 분들께서 저들끼리 떠들어대서 속상했단 말이여.”

“시끄럽네.”

윤사해가 얼굴을 구겼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이곳이 어디라고 발을 들였는가.”

중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내 아주 잘 알지. 귀수산이 아닌가? 이매망량이 위치한, 움직이는 산. 그리고 말이여, 윤사해.”

중의 뒤로 스멀스멀 검은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내 목숨을 정말로 귀하게 여긴다네.”

중이 짙게 웃음을 지었다.

그의 주위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이내 형태를 갖췄다. 모두 그로 인해 죽임을 당한 마수들이었다.

윤사해가 미간을 좁혔다.

“혼(魂)을 다루는 녀석은 할미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다룰 줄 안다네. 할미보다야 미천한 재주이지마는.”

중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어떤가? 내가 보인 나의 이매망량(魑魅魍魎)은.”

“어떻고 자시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윤사해는 제 그림자를 움직였다.

“같잖군.”

그의 손에 끝이 날카롭게 벼린 창 한 자루가 쥐어졌다.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지고, 두 사람이 격돌하기 일보 직전인 상황.

-크하아앙!

“윽……!”

웬 호랑이 한 마리가 튀어나와 중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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