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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22)화 (122/500)

122화. 그리 편하지 않은(5)

“꺄아아악!”

째질 듯한 비명과 함께 순식간에 시야가 바뀌었다.

우당탕! 공중에 살짝 뜬 몸이 곧장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바닥에 부딪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아윽… 아파라……!”

류화홍이 쿠션 역할을 해 준 덕분이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당황해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 류화홍? 뭐야? 아가씨랑 도련님도 계시네? 그리고…….”

손에 화투패를 들고 있던 광혜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례지만 누구?”

도윤이를 보고 묻는 소리인 것 같았다.

“설명드릴 시간 없어요! 일단 애들 좀 부탁할게요!”

“잠깐, 화홍아!”

우리를 광혜원 앞에 데려다준 류화홍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이동한 곳은 이매망량이었다. 그리고 이매망량에는 광혜원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다.

“허허, 화홍이 저 녀석. 아가씨랑 도련님을 이렇게 내버려두고 가다니.”

광혜원과 마찬가지로 손에 화투패를 들고 있던 태운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가씨, 도련님. 오랜만입니다. 못 본 사이에 더 크신 것 같군요.”

살갑게 인사를 건네던 태운의 얼굴이 옆으로 밀렸다. 광혜원이 그를 옆으로 밀쳤기 때문이었다.

“아가씨, 도련님.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오늘 화홍이랑 같이 놀러간 거 아니었어요?”

“그게…….”

“문제가 조금 생겼어요.”

저세상이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마수 사육관에서 마수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수들이 날뛰기 시작했거든요.”

“뭐라고요?”

광혜원이 놀란 목소리를 내뱉더니 황급히 우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다친 곳은요?”

“없어요.”

“맞아요, 언니. 우리 멀쩡해요.”

하지만 광혜원은 안심이 되지 않는지, 몇 번이나 우리를 살폈다.

“혜원이, 그만하게. 아가씨랑 도련님들께서 많이 놀라신 것 같은데 쉬게 해 주자고.”

태운의 말에 광혜원은 그제야 우리를 놓아주었다.

“그래서 그쪽의 도련님은 누구실까? 우리 아가씨랑 도련님과 함께 나타난 것을 보면, 두 분의 친구이신 것 같은데.”

“저, 저는…….”

도윤이가 나와 저세상의 뒤로 몸을 숨기며 쭈뼛거렸다.

괜찮아, 도윤아. 저 아저씨는 무서운 사람 아니야. 용돈 많이 주는 좋은 아저씨라고!

나는 도윤이의 손을 꼭 잡고 입을 열었다.

“도윤이에요, 백도윤! 우리 아빠 친구 아들!”

“아하! 네가 바로 시준 씨의 아드님이시구나?”

태운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걱정말고 편하게 있으려무나. 여기는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거든.”

그러면서 태운은 도윤이의 손에 지폐 한 장을 쥐여 주었다. 황금색의 지폐를 본 도윤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덟 살, 초등학교 1학년생에게 5만 원은 너무나도 큰돈이었나 보다.

“혜원이, 화홍이는 정신없는 것 같으니 자네가 길드장님께 연락 좀 넣어 주게나. 나는 아가씨와 도련님들을 놀이방으로 모시도록 하지.”

“알겠어요, 부탁할게요.”

우리는 태운의 안내에 따라 이매망량에 마련되어 있는 놀이방으로 향했다.

며칠 안 왔다고, 놀이방에는 그새 새로운 장난감과 동화책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여기서 놀고 계십시오. 간식을 준비해서 오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는데.

하지만 태운은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놀이방의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도윤이 역시 내 옆에 앉고는 코를 훌쩍였다.

“도윤아, 괜찮아? 많이 놀랐지?”

“으응, 괜찮아.”

도윤이가 손을 들어 눈을 세게 비볐다.

“그러게 내가 마수 사육관은 안 된다고 했지? 가장 안전한 장소일 거라더니.”

“리사는 거짓말하지 않았어. 세상이 오빠도 사육관 내에 설치되어 있는 아이템들 봤잖아.”

“그래, 봤지. 하지만 결국 어떻게 됐지, 윤리사?”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화홍이 형이 아니었으면 큰일 났을 거야.”

어쩜 저렇게 얄미운 말만 골라서 할까? 하지만 저세상의 말대로 류화홍이 없었다면 큰 일이 났을 상황이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괜히 입술을 씰룩이는데,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도윤이가 조심스레 목소리를 내었다.

“화홍이 형, 괜찮겠지? 거기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데.”

나는 도윤이의 손을 꼭 잡았다.

“괜찮을 거야.”

확신할 수 있었다.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이 발동됩니다.】

【각성자, ‘류화홍’을 인지합니다.】

류화홍은 지금, 생태 학습장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고 있었으니까.

***

“아이고, 난리도 아니구만.”

수목원이 자리한 돔 형태의 건물 위에서 중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사람들은 마수들을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고, 우리에서 뛰쳐나온 마수들은 아가리를 벌리고서 그들의 뒤를 쫓았다.

사육사들이 흥분한 마수들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내 살상 명령이 떨어진 듯, DMO의 직원들이 마수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흐음, 역시 죽이는 것밖에 답이 없겠지.”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이 죽을 테니 말입니다.”

선비가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중은 갑작스레 나타난 그의 모습에 실실거리며 말을 건넸다.

“아이고, 선비. 자네 덕분에 살았어. 나 혼자였으면 마수들의 먹이에 손을 쓰기가 쉽지 않았을 거여.”

“마음에도 없는 인사는 필요 없습니다.”

“거, 참. 내가 얼마나 진심을 다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는데 그러는 것인가!”

탈 아래에 숨겨져 있는 선비의 얼굴은 험상궂게 구겨져 있었다.

그것이 보인다는 듯이 중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래도 조금 아쉽구려. DMO에서 관리 중인 마수들은 사육사와 깊은 유대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끌어낼 수 있는 힘이 별로거든.”

“당신이 부리는 힘에 제약이 있나 봅니다?”

“제약이라…….”

중이 비스듬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 내 힘의 원동력은 주인 잃은 마수의 분노인지라.”

때문에 아쉽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를 뛰쳐나온 마수들이 하나, 둘 빠르게 제압당하기 시작했다.

중의 눈에 DMO 소속의 헌터들보다 더욱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 잡혔다.

“호오.”

일전, 죽이고자 했지만 실패했던 여자였다.

제 마수에 의해 쓰러졌으나, 기어이 일어나 그것을 데리고 도망쳤던랬지.

“하늘로 솟아나, 땅으로 꺼졌나. 암만 찾으려고 해도 보이지가 않더니 잘 살아 있었군.”

그런데 이상하다.

그때는 느꼈지만, 왜인지 모르게 여자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이상하군…….’

도대체 저 얼굴을 어디서 봤을까?

중이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이던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희미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저 여자와 똑같이 곱슬기가 도는 하얀 머리칼을 지니고 있던 이.

백호를 부리던 도깨비의 연인!

분명 그녀였다.

중의 두 눈에 희열이 담겼다.

그래, 그들의 딸이었구나!

“하하! 아하하하!”

선비가 미쳤냐는 듯이 쳐다봤지만, 중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거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겠군.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겠어!”

***

생태 학습장의 소란은 사야의 등장으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사야와 함께 윤리오와 윤리타도 일을 거들었다.

윤리타는 격분한 마수들을 죽이는 것에 많이 머뭇거렸지만, 윤리오는 거침없었다.

어쨌거나 상황은 무사히 종료가 되었고, 나는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의 사용을 끝마쳤다.

그러기 무섭게 눈가가 지끈거리며 아파 오기 시작했다.

류화홍뿐만 아니라, 사야.

그리고 윤리오와 윤리타.

네 사람을 모두 살피면서 <[S, 숙련 불가] 너는 많이 좋고 나는 그냥 좋고>를 걸어 주느라 눈에 많은 피로가 몰린 것 같았다.

두 손을 들어 가만히 눈가를 덮는데, 간식을 가지러 나갔던 태운이 돌아왔다.

“아가씨, 도련님들~! 간식을 들고 왔답니다. 어서 와서 드세요.”

“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던 저세상과 도윤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태운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나는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가씨?”

“네에.”

나는 두 눈을 비비적거리고는 태운을 바라보았다.

태운이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소란스럽게 밖을 향해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혜원아! 혜원이 이 녀석아!”

“왜요! 무슨 일이세요?”

놀라 달려온 광혜원이 나를 보고는 경악에 찬 목소리를 내었다.

“아가씨!”

내 꼴이 말이 아닌가 보다.

“눈 그만 비비세요. 열은 언제부터 나신 거예요?”

“열 안 나는데…….”

“이마가 펄펄 끓고 있는데 무슨 소리세요?!”

광혜원의 말에 간식을 들던 저세상과 도윤이가 그대로 손을 멈췄다.

두 사람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기도 전에 광혜원이 나를 안아 올렸다.

“어휴. 우리 아가씨, 많이 놀라셨구나. 사람들은 괜찮을 거예요. 화홍이도 갔고, 그 근처에 사야 님도 계시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으응.”

“태운 님, 도련님들 좀 봐 주세요. 저는 아가씨 좀 보고 있을게요.”

“길드장님께 아가씨 상태 전해 드려야하지 않겠어?”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그러지 마. 아빠 안 그래도 바쁜데!

하지만 지끈거리는 머리에 나는 광혜원의 어깨에 조용히 얼굴을 묻었다.

이 빌어먹을 스킬! 부작용 한 번 엄청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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