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그리 편하지 않은(4)
“알았어, 아빠! 고마워! 오늘 하루도 리사랑 오빠들 생각하면서 파이팅이야!”
-그래, 리사. 세상이랑 싸우지 말고 화홍이 오빠 말 잘 듣고 있어야 한단다.
“응!”
뚝, 윤사해와의 전화가 끊겼다. 그러기 무섭게 저세상이 내게 물었다.
“아저씨가 안 된다고 하지?”
“아니? 친구들 초대해서 놀아도 된다는데?”
“뭐? 그럴 리가! 휴대폰 줘 봐! 아저씨한테 내가 물어볼래!”
“싫어! 아빠 바빠!”
나는 황급히 류화홍에게 스마트폰을 넘겼다.
저세상이 뚱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지만, 류화홍에게 폰을 빼앗아 다시 윤사해에게 전화를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애들한테 물어보게!”
“애들이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된다고 할걸!”
나는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늦은 저녁이 되자 윤리오와 윤리타가 돌아왔다. 나는 둘에게도 파자마 파티에 대해 알렸다.
“파자마 파티……?”
“그걸 우리 집에서 하겠다고?”
윤리오와 윤리타는 난색을 표했지만, 윤사해가 허락했다는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수긍했다.
그렇게 맞이한 다음날.
다행히도 친구들은 모두 좋아라하며 환호했다. 특히, 도윤이와 단아가 엄청 좋아했다.
“앗싸! 집에 혼자 안 있어도 된다! 아빠한테 혼자서 집 볼 수 있다고 했지만 엄청 무서웠거든!”
“백도윤, 겁쟁이구나? 나는 혼자서 집 볼 수 있는데!”
“셋째야, 거짓말은 안 된단다.”
“내가 언제 거짓말 했다고!”
단예는 단아의 외침을 가볍게 무시했다. 대신, 나를 보며 물었다.
“오후에는 도윤이와 세상이 오빠랑 같이 DMO에서 운영 중인 생태 학습장에 간다고 했지?”
“응! 단예랑 단아랑 단이랑도 가고 싶었는데!”
한태극네 세쌍둥이는 오후에 일이 있어 생태 학습장에는 함께 가지 못하게 됐다.
내 말에 단예가 미소를 지었다.
“나도 아쉽단다, 리사. 하지만 저녁에는 꼭 갈게.”
“맞아, 리사. 파자마 파티라니. 친구들이랑 하고 싶었던 거야.”
단이도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저세상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흘러갔고 주말이 찾아왔다.
***
토요일의 이른 아침.
해가 뜨기도 전의 새벽부터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 얘들아.”
백시준이었다.
현관문을 열어 준 윤리오가 졸린 눈을 비비고는 백시준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버지는 조금 전에 나가셨어요.”
“그래? 많이 바쁘다더니 정말이었나 보네.”
나는 거실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백시준은 곤히 잠든 도윤이를 안고 있었다. 이를 본 윤리오가 백시준에게 두 팔을 내밀었다.
“도윤이 제가 안을게요.”
“그래 주겠니? 정말 고맙단다. 여기 도윤이 짐인데…….”
“짐은 리사가 들래!”
나는 후다닥 달려 나가 백시준한테서 도윤이의 가방을 뺏어들었다.
“리사? 일어나 있었어?”
“응! 안녕하세요, 아저씨!”
“그래. 안녕, 리사.”
백시준이 내게 인사하고는 도윤이의 뺨을 콕콕 찔렀다.
“도윤아, 백도윤.”
“우움.”
“아빠 다녀올게? 리사랑 형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야 해.”
“네에.”
잠결에 나온 대답 같았다.
백시준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는 도윤이를 윤리오에게 넘겨주었다.
“도윤이는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아저씨.”
“그래, 고마워. 우리 아들 좀 잘 부탁할게.”
백시준은 몇 번이나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집을 떠났다.
윤리오는 도윤이를 자신의 침대에 눕힌 후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김치찌개가 끓는 소리에 절로 군침이 도는 순간이었다.
“윤리오. 도윤이 언제 왔어? 네 침대에 웬 애가 있어서 엄청 놀랐잖아. 네가 애가 된 줄 알았다고.”
윤리타가 크게 하품을 하며 방문을 열고 나왔다.
“리타 오빠, 굿모닝!”
“좋은 아침, 리사. 오늘 일찍 일어났네?”
“응! 오늘 놀러가는 날이니까!”
윤리타가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나랑 윤리오 없이 잘 놀 수 있겠어?”
당연히 잘 놀 수 있지? 저세상도 있고, 도윤이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답해 주는 대신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그때 부엌 안 쪽에서 윤리오가 내게 물었다.
“리사, 세상이랑 도윤이하고 같이 생태 학습장에 간다고 했지? DMO에서 운영 중인.”
“응! 화홍이 오빠도 같이!”
“잘하면 만나겠네.”
“진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윤리타가 헝클어진 내 머리칼을 정리해주면서 말했다.
“오늘 순찰을 도는 곳이 그 근처거든. 윤리사, 화홍이 형 손 꼭 잡고 다녀야 해? 알았지?”
“생각해 볼게!”
“윤리사아?”
윤리타가 장난치지 말라는 듯이 내 뺨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나는 까르르 웃으면서 윤리타의 손등을 꼬집어 주었다.
“둘 다 장난 그만 치고 와서 밥먹어. 애들은 내가 깨울게.”
“네에!”
나와 윤리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대답했다.
윤리오는 저세상을 깨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도윤이를 깨우는 데는 실패했다.
“도윤이가 잠투정이 심하네. 깨우다가 한 대 맞았어.”
그 말에 윤리타가 쌤통이라는 듯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윤리오의 눈초리에 곧바로 입을 다물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사소한 해프닝과 함께 아침 식사가 마무리됐다.
도윤이는 윤리오와 윤리타가 집을 나서기 전 깨어났다.
“안녕, 도윤아.”
“아… 안녕하세요……!”
눈 떠 보니 우리 집에 와 있어서 놀란 듯, 도윤이는 내 뒤로 몸을 숨기고는 윤리오와 윤리타에게 인사했다.
쌍둥이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지만.
“리오 오빠, 리타 오빠. 안 늦었어? 빨리 가야하지 않아?”
나의 재촉에 찌푸린 얼굴을 풀고는 도윤이에게 말했다.
“도윤아, 리사랑 싸우지 말고 놀아야해.”
“우리 리사가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거든? 둘이서 손을 꼭 잡지는 말고, 네가 브레이크를 잘 잡아 줘야해.”
저게 무슨 소리야?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윤리타를 노려봤다. 윤리타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윤리오가 괜히 나랑 싸우지 말라는 듯이 윤리타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아야! 왜! 내가 뭐했다고!”
윤리오는 윤리타의 목소리를 무시하고서 입을 열었다.
“세상아.”
“네, 형.”
“네가 여기서 제일 연장자니까 애들 잘 봐야해. 알았지?”
저세상에게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저세상은 결의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풉.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나는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윤리오와 윤리타는 우리 셋에게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당부했다.
류화홍의 손을 놓치면 안 된다느니, 서로 싸우지 말라느니. 뭐 그런 것들.
“알았으니까 빨리 가! 사야 언니 기다리고 있겠다!”
둘의 잔소리는 나의 외침에 겨우 끊겼다.
귀에 딱지가 가라앉을 정도로 잔소리를 하던 쌍둥이는 각자의 손에 명패를 쥐고서 이매망량으로 떠났다.
윤리오와 윤리타가 떠난 후 몇 분이 지났을까?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류화홍이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도윤이가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류화홍은 도윤이의 놀란 얼굴이 보이지 않는 듯, 넉살 좋게 그에게 아는 척을 해 왔다.
“안녕! 네가 도윤이구나? 우리 아가씨랑 세상이 친구! 길드장님 친구 분의 아드님!”
우다다, 쏟아지는 말에 도윤이는 입을 뻐금거리기만 했다.
나는 도윤이를 내 뒤로 숨긴 뒤 입을 열었다.
“오빠, 리사 빨리 생태 학습장으로 가고 싶은데.”
“저도요.”
나와 저세상의 말에 류화홍이 활짝 웃었다.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해 볼까요!”
***
우리는 출발과 동시에 생태 학습장에 도착했다. 류화홍의 이동 스킬 덕분이었다.
학습장에는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내 또래의 아이들이 많았다.
“으음, 어디를 먼저 가고 싶으세요? 저도 여기는 초등학생 때 현장학습 온 이후로 한 번도 안 왔어서 잘 모르겠네요.”
류화홍의 말에 우리는 표지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마수 사육관!”
“수목원에 가고 싶어요……!”
“던전 구현관이요.”
동시에 외친 대답들이 모두 달랐다. 류화홍이 어색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제 몸은 하나인데, 서로 통일해 주면 안 될까요?”
우리는 눈치를 보다가 손을 들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가위바위보!”
바로 공정한 승부였다.
승자는 나였고, 이에 따라 우리는 마수 사육관으로 향하게 됐다.
“안 그래도 중 때문에 흉흉한데, 마수 사육관은 왜 가려는 거야?”
“흉흉한 만큼 이곳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일 테니까!”
나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저세상을 달랬다.
“세상이 오빠, 중이 나타날까 봐 많이 무섭나 보구나? 걱정 마, 리사가 물리쳐 줄게.”
“내가 언제 무서워했다고! 그리고 네가 물리치기는 뭘 물리쳐?!”
저세상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면서 나를 질책했다. 나는 불퉁하게 입술을 씰룩였다.
“리사 아가씨, 세상아! 어서 와! 그러다 길 잃을라! 너희 잃어버리면 나 길드장님께 죽어!”
“네에!”
나는 저세상과 함께 류화홍에게 달려갔다.
도착한 마수 사육관 안에는 예상대로 온갖 안전장치가 즐비해 있었다. 중에 대한 대비인 듯 했다.
마수 사육관에서 볼 수 있는 마수들은 선천적인 기형을 안고 있거나, 심각한 부상으로 바깥에 풀어놓을 수 없는 마수들이라고 했다.
“우와! 쟤 성운이가 데리고 온 마수 아니야? 그치?”
“응, 맍는 것 같네.”
‘수치노(Suchino)’라는 종이라고 했다.
류화홍은 우리보다 더 신이 난 것 같은 얼굴로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야 님께 보내 드리면 좋아하겠다! 오, 마수의 먹이도 판다고? 강호 간식 사 가면 되겠다!”
나와 저세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끼리 구경하고 있자.”
“좋아.”
마침, 마수들의 식사 시간이었다.
우리 안에 들어간 사육사가 날 것 그대로의 음식을 마수의 그릇에 쏟아 넣었다.
“어……?”
마수 사육관에 있던 아이들이 우와, 소리를 내면서 우리 가까이로 향했다.
마수의 식사를 볼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으니, 저럴 만도 했다.
하지만.
“왜 그래, 윤리사?”
“아니, 저기에…….”
마수의 먹이 속에서 붉은빛이 도는 뭔가가 흩뿌려져 있었다.
돈가스 위에 뿌려진 치즈의 느낌으로, 다른 먹이를 토핑이라도 한 건가 싶었지만 내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크르르르.
-끼야악! 아아악!
게걸스레 먹이를 먹고 있던 마수가 하나 둘, 광분하기 시작했다.
우리 가까이로 다가갔던 아이들이 제 부모의 품으로 달려갔고.
“아가씨! 세상아, 도윤아!”
류화홍이 순식간에 우리를 안아 들었다.
와장창-!
마수를 가둬 두고 있던 우리가 부서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