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그리 편하지 않은(2)
매화가 가득 피어난 나무 아래, 중은 손등에 앉은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가만히 듣기만 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아이고, 야단났군.”
“무슨 일이세요, 중 씨?”
굵은 가지 위에 몸을 눕히고 있던 이매가 물었다.
“아니, 글쎄. 나에게 재미난 걸 선물해 주던 녀석이 AMO에 잡혀갔다는군!”
“재미난 거요?”
“여기, 이걸 한 번 보게나.”
중이 이매에게 붉은 빛이 도는 작은 구슬을 건네주었다. 이매가 이를 살펴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평범한 구슬 같은데요?”
“그렇게 보이지만, 마수 녀석들이 환장하는 물건이라네.”
중은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소주병을 들고서 병나발을 한 번 불고는 키득거렸다.
“이거 하나 쥐여 주면 다들 환장해서 제 사육사고 뭐고 앞뒤 없이 달려드는데…….”
그게 얼마나 보기 좋은지.
“그런데 이걸 만들어서 선물해 주던 녀석이 잡혀갔다니까, 뭐. 아쉽게 됐지.”
중은 쯧쯧, 혀를 차며 소주병을 비웠다. 이매가 눈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렇게 아쉬우면 선비 씨께 부탁해 봐요. AMO에서 그 분을 빼 달라고요.”
“헛소리.”
어둠을 밝히고 있는 청사초롱 가운데서 선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AMO의 경계가 얼마나 삼엄한지 아십니까? 그쪽은 수장님의 명령이 있지 않는 한, 절대로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아이고! 내 부탁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어!”
중이 너스레를 떨며 킬킬거리자, 선비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당신은 도대체 언제 제대로 움직일 생각입니까?”
“안 그래도 움직일 생각이었지! 선비께서는 성질 급하기도 하시지!”
저를 놀리는 듯한 목소리에 선비가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비열한 웃음을 보이며 중얼거렸다.
“사월 초하루, 아주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네.”
남은 시간은 일주일.
중은 자신의 이매망량(魑魅魍魎)을 모두에게 선보일 생각이었다.
음산하게 울려 퍼지는 중의 웃음소리에 선비는 잠깐 그를 노려봤다가 몸을 돌렸다.
***
“윤리사, 눈을 왜 그렇게 비벼?”
“피곤해서.”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너무 오래 사용했나 보다.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소파에 몸을 눕힌 나는 크게 하품을 하며 눈을 비볐다.
물론, 소파에 몸을 눕히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만 비벼. 그러다 눈병나면 어떻게 하려고?”
“학교 안 가고 좋지.”
저세상이 기가 차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그도 잠시, 저세상은 내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는 말했다.
“차라리 눈을 비비는 대신, 안마를 해 줘.”
“안마?”
저세상이 내 손을 놓아주고는 제 손을 움직였다.
“이렇게 두 손바닥을 비벼서 따뜻하게 만든 후, 눈두덩이에 올려봐.”
나는 저세상이 하라는 대로 해 보았다. 손바닥을 마찰시킨 후에 피곤한 눈가를 꾹 누르는데…….
“잠들지는 말고.”
눈가를 중심으로 확 퍼지는 따뜻한 기운에 온몸이 노곤해졌다.
나는 눈 위에 올렸던 손을 내리고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면 안 돼?”
“안 돼. 지금 자면 밤에 잠 안 잘 거잖아.”
잔소리 하고는.
나는 입술을 씰룩이고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기 무섭게 현관문이 열렸다.
“리사, 세상아.”
“우리 왔어!”
윤리오와 윤리타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와 저세상은 곧바로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리오 오빠! 리타 오빠!”
“다녀오셨어요, 형들?”
윤리오가 방긋 웃으며 무릎을 굽혀 우리와 눈을 맞췄다.
“학교 잘 다녀왔어? 집은 잘 보고 있었고?”
“응! 학교도 잘 다녀왔고 집도 잘 보고 있었어! 그치, 세상이 오빠?”
저세상이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윤리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리사하고 세상이 다 컸네. 둘이서 학교 갈 줄도 알고 집도 볼 줄 알다니.”
“다 컸기는?”
윤리타가 신을 벗고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아직 크려면 멀었어.”
너도 멀었거든?
나는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렸다가 입을 열었다.
“리오 오빠하고 리타 오빠는 오늘 어땠어?”
“오늘…….”
윤리오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윤리타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말없이 대화를 나누는데.
‘왜 저러는지 알 것 같단 말이지.’
아침에 맞닥뜨렸던 일을 우리에게 말해줘도 될 지를 서로에게 묻고 있는 거겠지.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통해 일어났던 상황을 봤던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쌍둥이는 결론을 내렸는지 내게 답해 줬다.
“괜찮았어.”
예상했던 답이었다.
“아버지는 늦게 오신다니까 우리끼리 먼저 저녁 먹자.”
“오늘 치킨 안 됩니까, 윤리오 씨? 이매망량에 입성한 역사적인 첫 날인데!”
그 말에 나는 한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맞아, 첫 날인데! 치킨!”
저세상 역시 두 눈을 반짝거리며 윤리오를 쳐다봤다.
윤리오는 우리들의 말에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안 된다고 하려나?
하지만 그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기분이다. 치킨 시켜.”
“와아아아!”
우리는 사이좋게 환호했다.
***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멈춰 섰다.
옅게 일렁이는 그림자와 함께 이매망량의 주인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윤사해 길드장이 여기는 왜?’
모두가 그런 의문을 가질 때, 그에게 다가가는 남자가 있었다.
“백시진 팀장.”
“오랜만에 뵙습니다, 윤사해 길드장님.”
백시진이 윤사해에게 고개를 꾸벅거렸다.
“다쳤다니 멀쩡하군.”
“걱정해 주신 덕분입니다.”
백시진이 말을 이었다.
“사야 님께서 잡아 오신 녀석 때문에 찾아오신 거겠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백시진이 몸을 돌렸고, 그 뒤를 윤사해가 따랐다. 백시진은 그를 지하로 안내하며 말했다.
“보시는 건 상관없지만,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니란 점을 알아 두십시오.”
“그러니 아침부터 그런 일을 벌인 거겠지.”
제정신이 박혀 있었다면, 누군가를 해칠 생각조차 못했을 거다.
“저기입니다. 사야 님께서 잡아오신 녀석은 저기에 갇혀 있습니다.”
감옥 앞에는 선객이 있었다.
“강산에 본부장님.”
뒷짐을 서 있던 강산에가 눈웃음을 지으며 윤사해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일세, 윤사해 길드장. 백시진 팀장도 어서 오게나.”
백시진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스킬의 사용을 제한하는 수갑이 채워진 남자가 허공을 향해 싹싹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건 특별히 두 명을 갈아 만든 겁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어휴,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미친 게 분명해 보이는 그 모습이었다. 윤사해가 눈살을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
“여러 사람에게 유통시키고 있던 모양이군요.”
AMO 역시 마수를 자극시키는 물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윤사해, 그가 직접 AMO를 찾아와 그것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윤사해의 말에 강산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한 사람이라네.”
단언하는 목소리.
윤사해는 그 까닭에 대해 묻고자 했으나, 그러기도 전에 감옥 안에서 남자가 외쳤다.
“아이고, 또 오셨네요!”
두 눈이 풀린 남자가 제 손바닥을 보여 주며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오늘은 이것밖에 없는데 괜찮을까요? 요즘 저희 애들 먹을 것도 부족해서…….”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분명했다.
강산에가 피식 웃으며 윤사해에게 말해주었다.
“참고로 또 왔냐는 말만 벌써 다섯 번째라네.”
강산에가 ‘한 사람’이라고 단호하게 말한 이유였다.
“왜 저렇게 망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자네가 내게 보여 줬던 그것을 만들면서 저리 망가진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심판받게 될 거다.
‘써먹을 데도 없으니, 원.’
강산에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윤사해 역시 마찬가지.
“본부장님께서는 그 ‘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강산에가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그리고는 말했다.
“중이 아니겠나.”
윤사해가 표정을 굳히고서 강산에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강산에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 녀석을 치는 걸 허락해 달라고 찾아온 거겠지? 자네가 마음먹고 추적하면, 중 따위야 쉽게 잡을 수 있을 테니.”
윤사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산에는 그런 그를 빤히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아래아와 이야기 나눠 보게. 자네보다 설윤이가 먼저 내게 찾아왔었거든.”
허락이었다.
윤사해가 이를 알아듣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강산에로부터 원하던 대답을 얻은 윤사해는 미련 없이 이매망량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리오와 리타가 이매망량에서 실습을 진행하고 있다지.”
들린 말만 아니었다면 그랬을 거다. 윤사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강산에를 쳐다봤다.
강산에가 눈웃음을 지고는 윤사해에게 물었다.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야. 다른 두 아이도 잘 지내고 있나?”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산에는 웃음을 터트렸다.
들린 말이 꼭, 제 아이들에게 신경 꺼 주기를 바란다는 것처럼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윤사해는 마지막으로 강산에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옅게 피어오르는 그림자와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