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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18)화 (118/500)

118화. 그리 편하지 않은(1)

이매망량에 실습을 나온 첫 날.

윤리오와 윤리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서 사야의 뒤를 따르는 중이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귀수산 바깥, 서울특별시 유영구의 번화한 거리.

윤사해의 쌍둥이 아들들은 한숨을 푹 내쉬며 눈에 익은 풍경을 본체만체했다.

몸집을 줄인 금강호를 품에 안고윤리오와 윤리타보다 앞서 걷고 있던 사야가 둘을 흘긋거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도련님들, 많이 실망하신 것 같군요.”

그 말에 윤리오와 윤리타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A급 던전을 공략하거나, 지하 길드원의 지명 수배를 처리하거나 뭐 그런 일을 맡는 줄 알았거든요.”

“맞아요. 이렇게 시시한 일을 맡은 줄은 몰랐는데.”

청해진과 따로 움직이게 돼서 좋아라 했는데, 이렇게 되다니.

상상과는 다른 현실에 쌍둥이가 입술을 삐죽였다. 사야는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도련님들, 도시의 순찰을 도는 일도 꽤 중요한 일이랍니다.”

가령, 현재 그들이 걷고 있는 이 거리는 최근 범죄율이 급격하게 증가했다고 알려진 곳.

AMO에서 특별히 이매망량 측에 순찰해 주기를 부탁해 준 곳이었다.

AMO는 언제나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었으니.

사야가 잔뜩 실망한 얼굴을 하고 있는 윤리오와 윤리타에게 말했다.

“가령…….”

아니, 말하고자 했다.

햇빛이 환한 아침이나 빛이 들지 않는 좁은 골목길 사이에서 사야가 멈췄다.

“읍! 으읍!”

그녀와 눈을 마주친 여자가 살려 달라듯이 사야에게 손을 내뻗었다.

여자를 담벼락 아래로 난 문으로 끌고 가려던 남자가 짧게 혀를 찼다.

사야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선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범죄 현장을 맞닥뜨리는 일이 종종 발생하거든요.”

갑작스레 마주친 상황에 윤리오와 윤리타의 두 눈이 흔들렸다.

그러나 사야는 익숙하다는 듯이 태평한 얼굴로 품에 안고 있던 금강호를 놓아주었다.

-크릉!

“뭐, 뭐야? 마수? 마수 새끼가 지금 누구한테 이를……!”

-크아아앙!

순식간에 몸집을 부풀린 금강호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그 사이, 사야는 발 빠르게 움직여 남자에게 붙잡혀 있던 여자를 구해냈다.

“아윽…! 아아악……!”

금강호의 커다란 앞발에 어깨가 짓눌린 남자가 고통에 찬 신음을 내질렀다.

-크르릉.

날카로운 발톱이 남자의 어깻죽지를 파고들며 붉은 피를 흘리게 만들었다.

금강호는 남자를 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기도 했다.

“강호, 그만.”

그러나 사야의 말 한 마디에 금강호는 남자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손을 치웠다.

대신 마수는 남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의 위에 올라앉았다.

남자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뱉었지만 그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흑, 으… 흐윽…….”

사야는 범죄의 희생양이 될 뻔 했던 여자를 달래며 윤리오와 윤리타에게 말했다.

“도련님들, AMO에 연락을 넣어주시지 않겠어요?”

마주친 상황에 당황하던 윤리오와 윤리타가 두 눈을 멍하니 끔뻑이기만 했다.

사야가 그런 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각성자인 범죄자는 AMO로 인도해야한다.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아, 안 잊었어요!”

윤리타가 허겁지겁 AMO에 범죄자를 한 명 잡았음을 알렸다.

“사야 님, 저런 자식을 실수로 죽이거나 그러면 AMO에서 책임을 묻나요?”

“그러지는 않는답니다. 하지만 유랑단의 아홉 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네요.”

“왜요?”

“그들은 AMO의 본부장께서 직접 관리 중이라고 들었거든요.”

사야의 말에 윤리오가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시선은 금강호의 아래에 깔려 있는 남자에게 고정된 채.

“그럼, 유랑단의 아홉 탈만 아니면 저딴 새끼들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거네요?”

그는 냉기가 뚝뚝 나오는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

윤리오, 사야한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거지?

눈앞에 뜬 화면은 내가 보고자 하는 사람만 보여 줄 뿐, 목소리는 들려주지 않았다.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으로 살펴 본 사야는 윤리오와 윤리타와 함께 유영구의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범죄자를 마주치지 않나, 금강호와의 연계로 그 범죄자를 한 번에 제압하지를 않나.

윤리오와 윤리타는 나설 틈도 없었다. 하지만 이후, 사야는 윤리오와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표정을 굳혔다.

아주 잠시뿐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당혹감을 읽을 수 있었다.

도대체 윤리오가 무슨 말을 했기에 저러는 거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리사? 윤리사!”

“네? 네!”

황급히 스킬을 끄고는 선생님을 쳐다봤다.

우리 반의 담임 선생님인 백장미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리사는 선생님이 말한 문제의 답이 뭐라고 생각하니?”

죄송하지만, 선생님. 문제를 한 번 더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하다못해 칠판에 써 주기라도 하지!

잘 모르겠다고, 정신이 잠깐 다른 곳에 팔려 있었다면서 이실직고해야 하나 싶은데 저세상이 내게 속닥거려 주었다.

“7 더하기 2가 뭐냐고 그러셨어.”

그 말에 나는 곧장 대답을 외쳤다.

“9요!”

“그래, 정답이야.”

백장미가 아쉽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우리 리사, 수업 중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하하, ‘사야’라고 계속 신경 쓰이는 언니가 있어서요. 잠깐 그 언니 좀 살펴봤어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헤실거릴 뿐이었다.

다행히도 선생님은 내게 다른 것을 묻지 않았다. 그렇게 수업을 끝내고 맞이한 점심 시간.

나는 저세상 옆에 앉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나에게 저세상이 질책하듯이 말했다.

“윤리사, 수업 중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수업에만 집중해. 안 그러면 아저씨한테 일러바칠 거야.”

“그러는 세상이 오빠야말로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기나 해. 계속 피망 거르면 아빠한테 이를 거야!”

저세상이 몸을 움찔거리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를 향해 혀를 날름거려 줄 뿐이었다.

그때 열심히 식판을 비우고 있던 단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세상, 피망 안 먹어?”

“세상이 형, 우리 아빠가 편식하면 키 안 큰다고 했어.”

“그거 다 거짓말이야.”

『각성, 그 후』에서 나름대로 키가 큰 편으로 나왔던 저세상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에 도윤이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시진이 삼촌도 편식하면 키 안 큰다고 했단 말이야!”

백시진의 이름에 저세상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도윤이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저세상이 열심히 골라내던 피망을 그의 밥숟갈 위해 올려 주었다.

“그러니까 피망 골라내지 말고 열심히 먹어, 세상이 형! 골고루 먹어야 키도 쑥쑥 크고 건강해진대!”

“도윤이 말이 맞아요, 세상이 오빠. 오빠는 우리 중에서 제일 작으니까 골고루 많이 드셔야죠.”

단예도 도윤이를 거들었다. 저세상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여기서 제일 작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윤리사거든?”

“아닌데? 리사는 피망을 열심히 거르고 있는 세상이 오빠보다 큰데?”

나는 보란 듯이 곱게 썰린 피망 하나를 입에 넣어 우물거렸다.

윤리오랑 윤리타도 지금쯤, 사야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겠지?

빨리 점심 다 먹고 봐야겠다.

***

윤리사가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사야는 윤사해에게 오전에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있었다.

“리오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인가, 사야?”

“네, 길드장님.”

윤사해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럼, 유랑단의 아홉 탈만 아니면 저딴 새끼들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거네요?’

양지에서 헌터로서 활동하게 되는 이상, 누군가의 ‘죽음’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의 삶을 빼앗고, 꺾는 행위를 쉽게 말해서는 안 됐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련님께서는 정의감에 그리 말씀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

그런 거라면 좋을 테지만.

윤사해는 오래된 기억 속에서 타인의 죽음을 쉽게 여기던 여자를 떠올렸다.

‘에일린.’

그녀의 성정을 첫째 아들이 닮아 버린 걸까?

아니기를 바라며 윤사해는 사야에게 물었다.

“납치 미수 사건을 막은 것 말고는 별다른 일 없었나?”

“그것이…….”

사야가 목소리의 끝을 흐렸다가, 이내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그 일과 관련해서 AMO에서 곧 공문이 도착할 테지만, 이번에 도련님들과 잡은 지하 길드원에게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문제라니?”

“저희가 잡은 그분께서 마수를 불법적으로 사육하고 유통 중이었다고 하더군요.”

“흐음.”

윤사해가 미간을 좁혔다.

마수를 불법적으로 사육하고 유통하는 일이야 흔하다면 흔히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윤사해는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먹이.”

“먹이?”

사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마수는 본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들이었지요. 옛 문헌에 따르면 그들의 주식은 인간이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왜 갑자기 저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지.

윤사해가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의문을 표하려고 했으나, 이내 그의 두 눈에 경악이 서렸다.

“설마…….”

“네, 길드장님.”

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인간을 먹이로 삼아 마수에게 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형태로요.”

그리고 손을 내밀어 윤사해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었다.

우당탕! 윤사해가 앉고 있던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중이 금강호를 흥분케 만들었던 작은 구슬이 그녀의 손에 있었기 때문이다.

‘왜 금강호와 함께 있지 않나 했더니!’

사야는 쥐고 있던 구슬을 윤사해에게 넘겨주고는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이것이 마수를 흥분케 하는 물건이라고 했습니다만, 저는 그들의 본능을 자극시키는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수의 본능이라면, 사야가 말했듯 인간을 해하고자 하는 욕구일 터.

“자네와 아이들이 잡은 그 녀석, 지금 AMO에 수감 중이겠지.”

“네, 길드장님. 직접 보러 가실 생각입니까?”

“그래야겠군.”

어쩌면 ‘중’과 관련이 있는 녀석일지도 몰랐다.

윤사해는 제 길드원을 건드린 게 분명한 유랑단의 탈을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다.

“서 비서.”

“네, 길드장님.”

“AMO 측에 곧 방문할 거라고 알려 주게. 그쪽에서 날아오는 공문은 자네가 처리하고.”

“네, 알겠습니다.”

윤사해는 곧장 두루마기 코트를 챙겨 있고는 집무실 밖으로 향했다.

그의 집무실 바깥에 서 있던 윤리오와 윤리타가 갑작스레 열린 문에 화들짝 놀랐다.

“아…….”

아버지, 아빠.

윤리오와 윤리타는 튀어나오려는 말을 겨우 집어 삼켰다.

“리오, 리타.”

윤사해가 놀란 눈을 하고 있는 쌍둥이 아들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앞으로도 사야를 따라다니며 열심히 하렴.”

그에 윤리오와 윤리타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윤사해는 둘을 향해 미소를 지어 주고는 AMO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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