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녹아내린 봄(5)
비나리 고등학교와 빛나리 초등학교의 휴교가 있고 나서 며칠 후.
윤리오와 윤리타는 윤사해와 함께 이매망량에 출근하게 됐다.
출근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참고로 청해진도 함께였다.
쌍둥이가 몇 번이고 윤사해에게 그의 탈락을 종용했지만, 안타깝게도 둘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리사, 세상아. 정말 누가 안 데려다줘도 되겠어?”
“불안하면 말해. 지금에라도 화홍이 형 부르면 되니까.”
윤사해는 아침 일찍 길드로 나섰고, 윤리오와 윤리타가 청해진과 함께 명패를 이용해 귀수산으로 향할 차례였다.
청해진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윤리오와 윤리타를 보며 웃었다.
“윤리오, 윤리타. 리사랑 세상이 벌써 여덟 살이야! 애도 아닌데 왜 그렇게 걱정해?”
윤리오와 윤리타가 그 입 닥치라는 듯이 청해진을 노려봤다.
여기서 나는 청해진의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해진이 오빠 말이 맞아! 리사랑 세상이 오빠는 다 컸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
“맞아요, 저희는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세요.”
오늘은 윤리오와 윤리타가 청해진과 함께 이매망량으로 실습을 나가는 첫 날.
이러다 늦으면 암만 윤사해의 자식들과 그들의 친구라고 해도 눈치가 보일 판국이었다.
‘음, 아닌가?’
지금까지 봐 왔던 이매망량의 길드원의 행동으로 보건대, 그들은 윤리오와 윤리타가 뭘 하든 흐뭇하게 웃을 것 같았다. 청해진은 모르겠다.
어쨌든 간에 나와 저세상 때문에 오라버니들의 출근이 늦어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윤리오와 윤리타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빨리 가라니까?! 가서 아빠 말 잘 듣고! 저번처럼 말썽 피우면 안 돼! 알겠지?”
청해진이 내가 하는 양을 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리사가 오빠들보다 낫네.”
윤리오와 윤리타의 매서운 눈초리가 청해진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이내 쌍둥이는 순순히 이매망량으로 향했다.
물론, 떠나기 전에 나와 저세상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뭐야, 갔어?! 야! 윤리오, 윤리타! 나도 같이 가야지!”
청해진이 뒤늦게 명패를 이용해 이매망량으로 향했다.
달칵, 닫힌 현관문에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저세상과 단둘이서만 하는 등굣길이다.
보이지 않는 이매망량의 길드원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겠지마는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그대로 돌아가면 되잖아. 그치, 세상이 오빠?”
“그렇지. 그리고 리오 형이랑 리타 형이랑 수십 번도 더 같이 다닌 길이잖아.”
그러니까 길을 잃으면 바보라고, 저세상은 그리 말하는 것 같았다.
누가 그걸 몰라?
나는 저세상을 한 번 째려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저세상은 내 눈초리가 우습다는 듯이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나와 발맞추어 걸었다.
저세상의 말대로 바보같이 길을 잃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점점 빛나리 초등학교로 가까워지는 걸음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누구의 도움 없이 학교에 오다니! 오늘 아빠한테 자랑할 일이 하나 생겼다. 그렇게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리사! 세상이 형!”
“도윤아!”
도윤이가 반갑게 웃으며 우리에게 달려왔다.
“리오 형이랑 리타 형은? 오늘 아무도 안 보이네?”
“오늘부터 우리 둘이서만 학교 가기로 했어!”
내 말에 도윤이가 시무룩한 얼굴을 보였다. 나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도윤이도 같이!”
도윤이의 얼굴에 눈에 띄게 밝아졌다.
“아, 맞아! 우리 삼촌 드디어 퇴원하셨어!”
“정말?”
“응! 아빠가 멀쩡해졌다면서 일하러 가라고 퇴원시켰어!”
백시준, 보기와 다르게 잔혹한 사람이구나. 동생이라서 그런 건가?
그때, 고급 세단이 우리 옆을 지나가다가 급히 멈춰 섰다.
“윤리사!”
단아가 창문 밖으로 우리를 향해 인사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저세상이랑 백도윤도 안녕.”
“안녕, 단아야! 단예하고 단이는 어디 있어?”
“여기 있단다, 도윤아.”
단아의 뒤를 이어 단예와 단이가 나타났다.
단이가 저세상을 보고는 고개를 꾸벅거렸다.
“안녕하세요, 세상이 형. 리사랑 도윤이도 안녕.”
“안녕, 단이야!”
우리가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단예는 운전기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까지 금방이니까 저희끼리 갈게요. 이만 가셔도 되요.”
“하지만, 아가씨…….”
“할아버지께는 제가 잘 말씀 드릴 테니 가 보세요.”
한태극네 세쌍둥이 손주의 수행 기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빛나리 초등학교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겠습니다.”
단예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학교로 가는 길은 평화롭기만 했다.
그렇게 단예와 단이와 헤어지고 들어선 우리 반 교실.
“뭐야? 우성운, 왜 우리 반에 있어? 당장 나가!”
단아가 불청객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단아의 외침에 우성운은 흠칫 몸을 떨었지만, 우리 반에서 나가지는 않았다.
옆에 앉아있는 우신우 때문인 것 같았다.
단아가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우신우는 왜 울고 있어?”
단아의 말에 우신우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눈물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였다.
우신우와 어울러 다니던 몇몇의 친구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그가 우는 이유를 말해 줬다.
“신우가 저번에 데리고 왔던 마수가 죽었다나 봐.”
“사고?”
“응, 우리 학교 안 오는 날에 사고가 있었잖아.”
정확히는, 그 전날에 있었다.
“그때 휘말렸다는 것 같았어.”
아하, 그래서 저렇게 울고 있는 거구만?
쯧쯧, 혀를 차는데 우신우가 빼액 소리 질렀다.
“안 울어! 그리고 누가 죽었대!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하지 마!”
“너야말로 소리 지르지 마! 누구한테 소리를 지르는 거야?!”
단아가 당장에라도 주먹을 휘두를 듯이 위협하자, 우신우는 그대로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뒤를 우성운이 따랐다.
“저게……!”
“그만, 단아야.”
그러다가 또 교장실로 직행할라.
나는 단아를 말리고는 우신우의 뒷모습을 쫓았다. 하지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윤리사, 우신우는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자.”
“응? 으, 응.”
단아가 내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섰다.
왜인지 모르게 고개가 계속 우신우가 사라진 교실 밖으로 향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
저세상은 윤리사를 빤히 쳐다봤다. 우신우가 엉엉 울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간 게 신경 쓰인다는 눈치였다.
‘오지랖.’
저세상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교실 밖으로 몸을 돌렸다.
“세상이 형, 어디 가?”
“잠깐 화장실.”
저세상은 백도윤의 물음에 가볍게 대꾸해 주고는 우신우가 향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 안에서 히끅거리며 울음을 애써 참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신우는 저세상의 생각대로 화장실에서 눈물을 참는 중이었다.
아이는 사실 마수를 잃어버렸다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부모님께 혼나면 어쩌나 두려웠을 뿐.
하지만, 오늘 아침.
낯선 사람이 찾아와서는 마수가 죽었다며 알려 주자 갑자기 속에서부터 울컥,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애들한테 자랑하겠다고 데리고 나오지만 않았으면 됐는데.’
마수의 죽음이 자신의 탓인 것 같아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신우야…….”
“나 안 울거든? 너는 네 반으로 돌아가기나 해!”
우성운이 입술을 씰룩였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하지만 우신우가 눈을 부라리자, 우성운은 화장실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용해지나 싶었지만,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우신우가 황급히 눈물을 닦아냈다. 그에게 다가온 저세상이 대충 뜯은 휴지를 넘기며 차갑게 말했다.
“뚝 그쳐.”
“뭐……?”
“윤리사가 신경 쓰고 있거든.”
저세상이 우신우의 손에 휴지를 억지로 쥐여 주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만 울어.”
우신우는 저세상이 나갈 때까지 입만 뻐금거렸다.
***
드르륵, 옆 자리의 의자가 움직였다. 누가 앉았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짜증나는 내 짝꿍.
“신경 쓰지 마.”
주인공님이셨기 때문이다.
저세상의 말에 나는 불퉁하게 뺨을 부풀렸다.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암만 봐도 우신우의 마물이 죽었다는 데에 중이 관련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네가 신경 쓸 게 뭐가 있어.”
나는 진심이냐는 듯이 그를 쳐다봤다.
내가 신경 쓸 게 뭐가 있느냐니?
중은 마수와 그 사육사를 노리고 있고, 사야는 바로 그의 표적이었다.
잠적하는가 싶더니, 모습을 드러낸 그를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가 없었다.
저세상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윤리사, 내가 진짜 계속 묻고 싶었던 건데. 사야는 너랑 어차피 남이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난리냐고, 그는 그렇게 묻고 싶은 것 같았다.
나는 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한테야 남이지.”
아빠한테는 아니잖아.
그리고 나는 『각성, 그 후』에서처럼 누군가의 이야기가 허무하게 끝나기를 바라지 않는단 말이다.
나는 뒷말을 삼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상이 오빠가 뭐라 하든 리사는 신경 쓸 거야! 그 땡중 새끼 잡아서 족칠 거라고!”
“그래, 아저씨한테 네가 한 말 그대로 전해 줄게.”
“야!”
저세상이 얄밉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그를 한 번 노려봤다가 홱 몸을 돌렸다.
***
그렇기에 윤리사는 몰랐다.
저세상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단번에 사라지고.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너 같네.”
나지막하게 읊조린 말이 있었다는 것을.
윤리사는 한단아와 백도윤과 함께 모든 눈이 완전히 녹아내린 봄날의 정경을 살피느라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