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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16)화 (116/500)

116화. 녹아내린 봄(4)

중은 마수와 그 사육사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사야는 ‘금강호’라고 이름 붙여진 마수를 데리고 있는 사육사였다.

즉, 중의 표적이라는 말씀.

실제로 그에게 호되게 당하고 왔기도 했다.

‘정말로 중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세상은 중을 범인이라고 했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나 역시 중이 사야를 그렇게 만든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윤사해 역시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텐데, 사야를 윤리오와 윤리타에게 붙여 주겠다니?

귀수산 안에만 머무르게 하는 게 안전하지 않나?

나는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윤리오와 윤리타가 이매망량에 실습생으로 있는 동안, 둘은 귀수산의 안팎을 좋아라고 돌아다닐 것이 분명했다.

그런 둘을 사야가 따라다닐 테고.

‘위험할 텐데. 아, 혹시.’

윤사해는 사야가 자신의 아들들과 함께라면, 중이 그녀를 건드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일리 있어.’

윤리오와 윤리타는 윤사해의 자식들이었지만, 대중에게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유랑단의 아홉 탈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일 거다.

일례로, 선비는 내 얼굴을 단번에 알아봤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공양으로 바치고자 했던 이매에게 말했었다.

‘당신도 그 아이가 윤사해의 딸이라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이매망량과 전쟁이라도 벌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조용히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들 사이에 윤사해의 자식들은 건드리지 말자는 암묵적인 룰이라도 있던 거겠지.

물론,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해치려는 탈쟁이들도 있었지만 볼 수 없게 된 지 오래였다.

문득, 하얀 눈과 붉은 꽃을 닮았던 사람들이 생각나 씁쓸해졌다.

‘그러나 동정하지 말거라.’

아주 잠시뿐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양반과 각시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지우고는 윤사해를 보았다.

“아빠! 언제부터 이매망량에 나가게 돼요? 따로 준비할 건 없죠? 네?”

“윤리타, 어차피 학교에서 다 알려 줄 텐데 아버지 귀찮게 하지 마.”

윤사해가 아들들의 목소리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과거를 보는 듯한 눈빛.

그는 우리가 아닌 지난 기억을 더듬고 있는 듯했다.

***

윤리사의 생각대로 윤사해는 과거의 한 구석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그는 AMO와 아래아에게서 공문을 받은 후, 랑야를 불러 그에게 말했었다.

‘사야를 리오와 리타에게 붙이려고 하네.’

‘뭐?’

‘리오와 리타가 실습생으로 이매망량에 오게 되네. 두 아이 말고도 실습생으로 오는 비나리 고등학교의 아이들이 더 있지마는…….’

‘아니, 잠깐. 윤사해.’

굳이 랑야를 불러 알리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윤사해는 그렇게 했다. 랑야는 자신과 계약한 거주자이기 이전에 사야의 아버지이니.

랑야는 황급히 윤사해의 말을 끊고는 얼굴을 찌푸렸었다.

‘그러니까 지금 사야를 귀수산 바깥으로 내보겠다는 말이지?’

제정신이냐는 듯이 저를 쳐다보는 시선에 윤사해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었다.

‘사야를 계속 귀수산에 가둬 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아니면, 랑야. 자네는 그러기를 바라는 건가?’

‘…….’

‘그리고 랑야, 내 아이들과 함께라면 그 누구도 사야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거라네.’

자신의 손에 죽고 싶지 않다면 그럴 것이라고, 윤사해는 랑야에게 덧붙여 말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빌어먹을 탈쟁이 새끼가 내 따님을 건드린다면?’

‘랑야.’

‘그에 네 아드님들께서도 휘말린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윤사해?’

‘……죗값을 치르게 해야지.’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랑야는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트렸으나, 그도 잠시.

‘그래, 내 한 번 믿어 보지.’

미지 영역의 거주자는 제 계약자에게 으르렁거리며 경고하고는 모습을 감췄다.

랑야와 대화를 끝낸 윤사해는 곧장 사야를 불렀고, 그녀에게 윤리오와 윤리타의 소식을 알렸다.

사야는 옅게 미소를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해도 좋으련만, 하다못해 자신이 왜 그러는지 이유라도 물으면 좋으련만 사야는 그러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그저 순종할 뿐.

지난 기억을 떠올리던 윤사해가 피곤하다는 듯이 눈가를 문질렀다.

그때였다.

“아버지, 청해진은요?”

“응?”

되묻는 목소리에 윤리오가 두 눈을 반짝거렸다.

“청해진도 같이 시험 쳤는데, 걔는 어떻게 됐어요? 통과됐어요?”

그 말에 윤리타가 간절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안 됐다고 해 줘요, 아빠! 됐다고 해도 아빠 권한으로 떨어뜨려 주면 안 돼요?”

“리타 오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맞아, 윤리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치, 세상아?”

“네? 어… 음…….”

저세상이 우물쭈물하며 말을 삼켰다. 윤리타는 그 모습을 보고는 빼액 소리를 질렀다.

“세상아! 너는 내 편 들어줘야지!”

“그, 그게……!”

저세상이 화들짝 놀라 뭐라고 외치려고 했지만.

“윤리타! 세상이한테 큰 소리 내지 마!”

그러기도 전에 윤리오가 저세상을 꼭 끌어안았다. 그 앞을 윤리사도 막으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맞아, 리타 오빠! 세상이 오빠는 리사만 괴롭힐 수 있어!”

윤사해는 정답기 그지없는 아이들의 모습에 상념에서 벗어나 미소를 지었다.

***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던 윤사해의 눈빛이 또렷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리오와 윤리타는 여전히 투닥거리는 중이었다.

“세상아! 이렇게 된 거 말해 줘! 내가 좋아, 윤리오가 좋아?!”

“네……?”

“윤리타, 너 진짜 유치한 거 알지? 네 나이가 몇인데 애한테 그런 걸 물어?”

저세상을 두고서 말이다.

청해진은 안중에 없어진 지 오래인 것 같았다.

“이익……! 에잇, 몰라! 어쨌든, 아빠! 말해 줘요! 청해진은 어떻게 됐어요?”

“맞아요, 아버지. 떨어졌죠? 떨어진 거 맞죠?”

아니었네.

윤사해가 난처하다는 듯한 웃음을 보였다.

아무래도 청해진은 윤리오와 윤리타와 같이 이매망량의 실습생으로 합격한 모양이었다.

윤리오와 윤리타가 돌아오지 않는 답에 윤사해를 동시에 불렀다.

“아버지!”

“아빠!”

윤사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떤 대답을 내놓아도 곤란한 상황. 이럴 때 내가 나서 줘야지!

“리오 오빠, 리타 오빠! 이제 그만해! 리사 배고프단 말이야! 빨리 들어가고 싶어!”

그리고 추웠다.

눈은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밖에 있기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코를 한 번 훌쩍이자, 윤리오가 황급히 나를 안아 들었다.

“미안해, 리사. 오빠들끼리 너무 들떴었네.”

윤리타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칭얼거렸다.

“좀 봐줘라~! 윤리사, 너는 지금 어려서 뭘 모르겠지만…….”

“리사 그렇게 안 어리거든?”

“어이구, 그러세요?”

윤리타가 키득거리며 내 뺨을 쿡쿡 누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손가락을 그대로 물어 버렸다.

“악! 윤리사!”

“퉤, 맛없어.”

쩝쩝 입맛을 다시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나를 윤사해가 달랬다.

“리사, 리타 오빠 손을 그렇게 물면 안 되지.”

“하지만 리타 오빠가 먼저 리사를 괴롭혔는걸.”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윤리오의 품에서 내려와 현관문으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문을 열려는 저세상의 손을 가볍게 쳐낸 후, 내가 대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저세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나는 신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며 저세상에게 말했다.

“너도 언젠가 저렇게 될 거야.”

“뭐?”

“저세상, 너도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랑 같이 이매망량에서 못된 놈들 쳐부수면서 싸우게 될 거라고.”

내 말에 저세상이 피식 웃었다.

지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지? 기껏 생각해서 말해 줬더니!

저세상은 윤사해가 두 아들에게 명패를 준 후로, 줄곧 부럽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윤리오와 윤리타가 자신을 두고 유치한 싸움을 시작할 때는 당황한 듯이 보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저런 비웃음이라니!

괜히 뚱해져서 두 뺨을 부풀리는데 저세상이 입을 열었다.

“윤리사, 네가 뭘 모르나 본데. 나는…….”

“비각성자라고?”

“…….”

저세상이 미간을 좁히고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모르는 거잖아. 세상이 오빠는 엄마도 아빠도 모른다며.”

내 말에 저세상이 기가 차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긴, 나라도 그럴 거다.

어떤 마음을 먹고 그런 이야기를 내게 전해 줬는지는 모르나, 저세상은 자신의 가정사를 내게 밝혔었다.

그러나 나는 밝은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비각성자면 어때! 그래도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랑 같이 싸울 수 있는 거 아니야?”

나와 함께 윤사해를 도우면서.

나는 뒷말을 삼키고는 저세상을 향해 활짝 웃어 주었다. 저세상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지만, 내 알 바는 아니지.

나는 그대로 욕실로 달려가며 바깥을 향해 외쳤다.

“아빠! 리오 오빠, 리타 오빠! 세상이 오빠 손 안 씻을 거래!”

“야! 내가 언제!”

저세상이 화들짝 놀라며 내 뒤를 쫓아왔다. 나는 까르르 웃으며 욕실 문을 소리 나게 닫아 버렸다.

꼭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윤리사! 문 열어! 야!”

쿵쿵,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최대한 천천히 손을 씻었다.

정말이지, 완벽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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