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때 아닌 눈(5)
우신우와 우성운이 울고 있다고 해도 둘과 우리의 사이는 친구라고 하기에는 뭣한 사이였다.
그렇기에 울든 말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쾅! 콰광-!
불이 난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부터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폭발음이라고 하기에는 분명한 전투의 소리였다.
“윤리사.”
저세상이 표정을 굳히고는 나를 불렀다.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자는 뜻이리라.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으니.
나는 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 있는 도윤이의 손을 꼭 잡고서 말이다.
그렇게 향한 곳은.
“우신우, 우성운.”
사촌 지간인 두 아이가 울고 있는 골목길이었다.
나의 부름에 우신우와 우성운이 움찔거리고는 나를 쳐다봤다.
“유… 윤리사……!”
“뭐,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나는 둘의 목소리를 무시하고서 입을 열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
내 말에 우신우와 우성운이 입을 꼭 다물었다.
이상하네?
우신우와 우성운의 성격을 보았을 때 네가 무슨 상관이냐면서 시침을 떨 텐데 조용하다니.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다 발견했다. 우신우의 가방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우신우가 분명 저 가방 안에 마수를 집어넣었지……?
“설마 잃어버린 거야?”
주어가 분명치 않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우신우는 기가 막히게 내 말을 알아듣고는 말을 더듬거렸다.
“아니야! 그, 그냥…! 걔가 멋대로 날아가 버린 것뿐이야……!”
“결국은 잃어버렸다는 거잖아?”
저세상이 내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콕 집어서 해 줬다.
하지만 그게 우신우한테는 상처였나 보다. 우신우가 엉엉 목 놓아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으아앙! 어떡, 어떡해! 나는 이제 엄마랑 아빠한테 죽었어! 흐어엉!”
세상이 떠나가라 우는 우신우의 목소리 사이로 전투의 소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왜인지 모르게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나는 울고 있는 우신우와 우성운를 향해 말했다.
“뚝 해! 여기 위험해. 어서 벗어나야 한다고!”
“그, 그치만……!”
잃어버린 마수가 걱정이 되나 보다. 아니면 마수를 잃어버려서 부모님께 혼이 나는 게 걱정이 되거나.
우신우와 우성운의 두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안 그래도 마수를 잃어버려서 서글픈데, 저 멀리서 굉음까지 들리니 겁에 질린 것 같았다.
골치 아프네.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너희 다치면 더 혼날 걸? 그러니까 어서 벗어나자.”
우신우와 우성운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눈치 볼 게 뭐 있다고!
잔뜩 겁에 질린 두 아이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와줄게.”
물론, 마수를 찾는 걸 도와주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물론,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었다고 해도 마수를 찾는 걸 도와주지는 않았을 거다.
우리 사이가 그렇게 친밀하지는 않아서 말이지.
하지만 우신우는 구세주라도 만났다는 듯이 내 말에 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대신, 앞으로 나랑 세상이 오빠 괴롭히지 않는 게 조건이야.”
“내가 언제 괴롭혔다고……!”
“그러냐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
양심이 있으면 그런 소리가 안 나올 텐데. 그치, 신우야?
우신우는 꿀 먹은 병아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우성운은 제 사촌의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우신우가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 다시는 괴롭히지 않을게. 놀리지도 않을게.”
나이스!
나는 저세상을 보며 활짝 웃었다.
저세상은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괜한 짓 하지 말고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났으면 하는 얼굴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우신우에게 곧바로 말을 쏟아냈다.
“부모님께는 내가 말한 대로 말씀드려. 잃어버린 마수는 금방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우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 뒤 귓속말을 속닥거려 줬다.
내 말이 이어질수록 우신우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의 옆에서 우성운이 궁금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지만……!
너에게는 알려 주지 않을 거야.
나는 귓속말을 끝낸 후 우신우를 달랬다.
“그러니까 뚝 하고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윤사해가 붙여 준 경호원 분들의 눈초리가 무척이나 따가웠다.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이지!
***
해가 저문 늦은 저녁.
우신우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엄마랑 아빠가 늦게 돌아오셨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현관문이 열렸다.
“신우야, 우리 왔다.”
“학교에서는 별 일 없었니? 빛나리 초등학교 근방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는데. 신우야?”
우신우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방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음? 잠깐만. 수치노, 이 녀석 어디로 간 거야? 당신 혹시 새장 문을 열어뒀었어?”
“그럴 리가.”
수치노(Suchino).
우신우가 학교에 데리고 간 마수의 명칭이었다.
마수를 찾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우신우는 마른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신우는 다시 한 번 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방문을 열었다.
“죄… 죄송해요…….”
“신우야?”
우신우의 부모님이 아들의 갑작스런 사과에 어리둥절한 얼굴을 보였다. 그에게 마수의 행방을 물어보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우신우는 두 눈을 질끈 감고서 윤리사가 제게 속삭여 줬던 말을 떠올렸다.
“그, 그게…. 마수가 있던 곳을 청소해 주고 싶어서 문을 살짝 열어 뒀었는데…….”
DMO에서 근무하는 우신우의 부모님이 탄식했다.
뒤이어 나올 이야기가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갔다.
살짝 열어 둔 문을 통해 마수가 탈출하고 말았다는 그런 이야기겠지.
우신우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그의 부모가 우신우를 안았다.
“괜찮아, 신우야. 수치노는 알아서 돌아올 거야. 귀소 본능이 있는 마물이거든.”
“귀소요……?”
“쉽게 말해서 자기 집으로 돌아오려고 한다는 거지.”
“맞아.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렴. 수치노는 이곳을 제 집으로 인식하고 있을 테니까.”
부모의 말에 우신우가 두 눈을 끔뻑였다. 수치노에게 그런 본능이 있다니, 다행인 일이었다.
어쨌거나.
‘윤리사가 말해 준대로 말하니까 부모님께 안 혼났어!’
혼나지 않았다.
우신우는 부모 몰래 환하게 웃으며 윤리사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
뭐지? 갑자기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럽지?
나는 미간을 좁히고는 귀를 만지작거렸다. 누가 내 욕이라도 하고 있나? 그럴 사람 없는데.
그때 나와 저세상의 알림장을 보고 있던 윤리타가 몸을 일으켰다.
느닷없이 울린 스마트폰의 진동 때문인 것 같았다.
“윤리오, 내일 휴교래.”
“그래?”
“응, 이것 봐봐.”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윤리오가 고무장갑을 벗고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금일 비나리 고등학교 부근에서 일어난 화재의 피해가 막심한 바, 학생들의 안전을 고려하여 휴교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윤리오가 메시지를 읽고는 눈가를 찡그렸다.
“화재는 무슨 화재야? 누가 봐도 각성자 간의 싸움이었는데.”
“그래도 불난 건 맞았잖아.”
비나리 고등학교는 빛나리 초등학교와는 세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즉, 나와 저세상이 하굣길에 들었던 굉음을 윤리오와 윤리타도 들었을 거란 말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학교가 그 싸움에 휘말릴 뻔했는데, 단축 수업도 안 하고.”
“어쨌든 휴교하잖아? 그러면 된 거지.”
윤리타의 말에 윤리오가 불만을 가라앉혔다.
“그래, 휴교해서 다행이야. 안 그래도 하굣길에 부서진 건물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내일 밀린 집안일이나 해야겠어.”
그 말에 윤리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휴, 모처럼 학교 쉬는 날에 그러고 싶어? 그보다 청해진한테 지금 톡 왔어. 내일 놀자는데?”
“싫다고 해. 집안일 끝내고 리사랑 세상이하고 놀 거야. 그러고 보니 빛나리 초등학교는 휴교 안 한 대? 그런 이야기 없어?”
“없는데.”
윤리오가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도 휴교하는데, 빛나리 초등학교는 뭐하는 거야?”
“아빠한테 연락 넣어 볼까?”
윤사해는 지금 부재중이었다.
정확히는, 서차웅에게 붙잡혀 급한 서류를 처리 중이라고 그랬다.
윤리오는 윤리타의 말에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말했다.
“아니야. 생각이 있다면 빛나리 초등학교도 휴교하겠지. 만약 등교 감행하면 애들 안 보내면 돼. 아버지도 그러실 거야.”
그랬으면 좋겠네.
윤리오와 윤리타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나는 저세상을 흘긋거렸다.
저세상은 두 손을 간절히 모으고 있었다. 내일 학교가 휴교하기를 비는 것 같았다.
그래, 우리 주인공님도 평일마다 학교 가는 거 힘들지?
그 기도가 통했는지는 몰라도 맞이한 다음 날.
빛나리 초등학교도 결국 휴교가 결정됐다.
이유는 비나리 고등학교와 같았다.
그러나 여기에 또 하나.
“와아! 눈이다! 눈! 아빠! 밖에 눈 왔어! 리오 오빠, 리타 오빠! 어서 일어나 봐! 세상이 오빠도 어서!”
벚꽃이 필 계절에 내린 폭설 때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