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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11)화 (111/500)

111화. 때 아닌 눈(4)

한태극 의원의 세쌍둥이 손주 중 첫째와 둘째인 단이와 단예.

둘의 등장에 교실을 박차고 나갔던 우신우는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야 교실로 들어왔다.

앵무새를 닮은 마수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지? 선생님께 걸리면 혼날까 봐 자신만 아는 비밀 장소에 숨겨 놓기라도 했나?

하지만 나는 수업이 끝난 후 찾아온 점심 시간에서 그런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신우! 얘를 갑자기 나한테 맡기면 어떻게 해?!”

쾅!

우성운이 교실 문을 시끄럽게 열며 들어왔다.

우신우의 사촌이기 전에, 자라나리 유치원에서 나를 그렇게나 놀려댔던 우성운이었다.

단아가 유치원에 나오지 않을 때를 노려서 말이지.

그런 우성운과는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 만날 일이 없었다. 옆 반인데도 그랬다.

“야, 우성운. 여기가 너희 반이야? 왜 그렇게 시끄럽게 들어와?”

“윽…….”

아무래도 단아 때문인 것 같았다.

우성운이 단아를 보고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우성운의 어깨에는 우신우의 마수가 앉아 있었는데, 정황상 우신우가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그에게 맡긴 것 같았다.

우신우는 나와 저세상을 흘긋거리더니 사촌의 어깨에 앉아 있던 작은 마수를 우악스레 잡아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암만 인간을 해치지 않는 마수라고 해도, 일반인이 저런 식으로 다뤄도 되나?

마수가 들어가기 싫다는 듯이 격하게 날갯짓했지만…….

“좀 들어가! 시끄럽게 굴지 말고 얌전히 있어야 해!”

우신우가 우악스레 제 마수를 가방 안에 넣고는 지퍼를 잠궈 버렸다.

물론, 마수가 호흡할 수 있게 조금 틈을 열어 준 것 같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한 것 같았다. 자기가 데리고 왔으면서 저런 식으로 마수를 대하다니.

“너무해.”

“맞아, 너무해.”

도윤이가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우신우가 우리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매섭게 노려봤다.

“뭘 봐?”

단아의 으름장에 곧장 눈을 내리깔았지만.

그 모습에 단아가 쯧쯧 혀를 차면서 말했다.

“우신우, 쟤는 가방 안에 든 게 없나 봐? 마수를 가방에 그냥 넣어 두다니. 넣을 자리가 있었냐? 나도 필통은 넣고 다니는데.”

단아야, 교과서는? 필통 말고 다른 건 안 들고 다니는 거야?

어쨌든 간에.

“새가 불쌍해.”

“새가 아니라 마수.”

저세상이 내 말을 고쳐 주고는 교과서를 펼쳤다. 곧 오후 수업이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우신우는 가방을 열지 않았다.

***

빛나리 초등학교, 1학년 2반.

출석 번호 13번 우신우는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우신우! 야! 같이 가!”

제 사촌이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우신우는 무시했다.

그만큼 여덟 살 아이는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로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랑하려고 꺼낸 마수로 오히려 망신을 당해 버렸다.

‘쪽팔리게!’

우신우가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입술을 씰룩였다.

그러는 사이 그의 사촌인 우성운이 우신우의 곁에 달라붙었다.

“우신우, 새는 어디 있어?”

“가방에.”

저세상이 있었더라면 이번에도 새가 아니라 마수라고 아이의 말을 정정해 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저세상은 없었고, 그렇기에 우성운은 이번에도 마수를 새라고 칭했다.

“설마 점심부터 지금까지 계속 가방에 넣어 둔 거야?”

“응.”

“야! 그러다 새가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우신우는 콧방귀를 뀌었다. 사람은 해치지 않는 작고 어린 마수라고 해도 마수는 마수다.

‘이 정도로 다칠 리가!’

하지만 문득 걱정이 되었다.

‘다쳤으면 어쩌지?’

부모님 몰래 학교로 데리고 온 마수였다. 자랑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렇게 데리고 온 마수가 다쳤다면?

엄청 혼이 날 터였다.

우신우가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우성운에게 말했다.

“가방 좀 열어 봐.”

“안 그래도 열 생각이었어.”

우성운이 우신우의 가방을 열었다.

그 순간, 푸드득.

마수가 날갯짓하며 가방에서 날아올랐다.

마수는 저를 가방에 가둔 우신우가 밉지도 않은지, 익숙하게 그의 어깨에 앉았다.

우신우는 그런 마수의 부리를 툭툭 건드렸다.

작고 어린 마수는 우신우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손가락에 얼굴을 비볐다.

마수의 애교에 우신우가 저도 모르게 헤실거리다가 황급히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말했다.

“멀쩡하네.”

하지만 우신우는 이내 말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구구, 구우구.

앵무새를 닮은 줄 알았더니, 실상은 비둘기였나 보다.

우신우의 어깨에 앉은 마수가 목을 길게 빼내고는 구구 울기 시작했다.

“시끄러! 조용히 해!”

우신우가 마수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와 나란히 걷고 있던 우성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고파서 우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때였다.

시끄럽게 울어대던 마수가 우신우의 어깨에서 힘차게 날갯짓하며 날아가 버렸다.

“아… 안 돼! 돌아와……!”

우신우가 뒤늦게 마수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다.

***

우신우에게서 벗어난 마수는 머리칼이 붉은 웬 여자의 머리에 앉아 있었다.

여자의 정체는 아래아의 길드장, 최설윤.

최설윤은 제 머리 위에서 깃털을 고르고 있는 마수를 보고는 피식거렸다.

“친구 찾아 왔니?”

최설윤의 어깨에는 그녀에게 날아온 마수와 똑 닮은 마수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빈 주택의 지붕 위에 앉아 있던 최설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눈가를 찡그렸다.

“설마 쟤네가 네 주인이니?”

-구구!

마수가 맞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설윤이 마수의 주인으로 가리킨 사람들은 아이 두 명.

바로 우신우와 우성운이었다.

마수의 울음에 최설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모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람? 암만 어려도 마수인데 애들이 데리고 다니게 하다니.”

우신우와 우성운의 속사정을 모르는 최설윤은 마수를 애타게 찾는 아이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그래도 주인에게는 돌려줘야 한다.

최설윤이 아이들에게 가고자 걸음을 내딛으려고 할 때였다.

우웅, 울리는 진동에 그녀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응, 화백아. 왜?”

-고모, 지금 어디야?

“비밀.”

상대방으로부터 한숨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고모! 몸 사려야 할 때인 거 몰라? AMO 공격한 건으로 시끌시끌한 거 겨우 잠재워 놨는데!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 아니겠니? 그리고 웬만한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못 알아볼걸?”

빌어먹을 중 새끼를 불러들이고자 장천의에게서 힘을 빌려 외모를 바꾼 상태였다.

수화기 건너의 상대방, 최설윤의 유일한 가족인 그녀의 조카.

최화백 역시 이를 알고 있었지만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모!

“알지, 알지. 우리 화백이가 이 고모를 얼마나 생각해 주는지 충분히 알고 있지.”

-아, 진짜!

“잠깐만, 손님이 찾아왔네?”

-고모한테 무슨 손님이……!

뚝.

최설윤이 전화를 끊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손에 쥔 스마트폰이 다시 우웅 울리기 시작했지만 최설윤은 이를 무시하고서 웃었다.

“어휴, 진짜 손님이 찾아왔다니까 얘는 왜 내 말을 못 믿어?”

최설윤이 붉게 변한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 올리고선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에 취기가 잔뜩 오른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허름한 차림새를 하고 있던 남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이고, 저를 아시나 봅니다?”

아주 잘 알지.

너 때문에 몇 년을 동고동락한 우리 길드원이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잘 알아야지.

최설윤은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는 대신 손가락을 맞부딪쳤다.

***

퍼엉-!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폭발음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나와 함께 나란히 걷고 있던 저세상과 도윤이도 제자리에 섰다.

“어떡해! 불났나 봐! 신고해야하는 거 아니야?”

도윤이가 호들갑을 떨며 걱정된다는 듯이 울상을 지었다. 그에 저세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 큰 불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미 신고했을 거야. 집에나 가자.”

저세상의 말대로 멀지 않은 곳에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윤이는 여전히 걱정된다는 얼굴이었다. 때문에 나는 도윤이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방긋 웃었다.

“도윤아, 세상이 오빠 말대로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말고 어서 가자!”

“우웅.”

도윤이가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부터 나와 저세상은 도윤이와 함께 하교하기 시작했다.

원래 우리의 하굣길은 류화홍이 담당했지만, 언제까지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

나와 저세상은 큰마음을 먹고 윤사해를 찾아가 말했더란다.

“아빠! 내일부터 세상이 오빠랑 스스로 집으로 돌아올래!”

“맞아요, 아저씨. 언제까지고 화홍이 형과 리오 형, 그리고 리타 형의 보호를 받을 수는 없잖아요.”

내가 벌인 일이 워낙 많아서 윤사해가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는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대신 윤사해는 우리에게 온갖 호신 용품을 선물해 줬다.

그리고 추측컨대, 지금 우리 뒤를 이매망량의 길드원들이 열심히 따르고 있을 거다.

윤사해가 호위를 붙이지 않았을 리가 없지.

그렇게 걱정이 가득한 도윤이를 달래서 집으로 향할 때였다.

“어? 신우랑 성운이다.”

도윤이의 말에 저세상의 얼굴이 와락 찌푸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탈쟁이들 다음으로 꼴불견인 우리 친구님들께서 뭐하고 계신 거래?

“세상이 오빠, 도윤아. 우리 다른 길로 돌아가지 않을래?”

“나는 좋아.”

“그치만, 길을 돌아가면 저기 불난 곳으로 가야하는데?”

도윤이의 말에 나와 저세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넓은 동네에 길이 왜 이렇게 없는 거야!

어쩔 수 없지. 무시하고 갈 길 가는 수밖에.

우신우와 우성운을 가장 먼저 발견한 도윤이가 두 눈을 가늘게 뜨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신우가 울고 있어.”

오늘 당했던 일이 많이 쪽팔렸나 보다. 쯧쯧, 혀를 차는데 도윤이가 놀란 눈을 하며 말했다.

“어? 성운이도 울고 있네?”

걔는 또 왜 울고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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