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때 아닌 눈(4)
[검색 대상] : 사야
[↳연관 검색어 : 랑야 | 금강호 | � | 유랑단 | … ]
사야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텍스트 문구는 없었다. 즉, 『각성, 그 후』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은 엑스트라였다는 말.
그리고 그건 랑야 역시 마찬가지.
[검색 대상] : 랑야
[↳연관 검색어 : 사야 | 윤사해| � | 유랑단 | … ]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개의 시스템 창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일단, 부녀(父女) 지간인 것은 확실한 것 같고.”
그리고 저 둘이 『각성, 그 후』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의 존재에 의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높은 확률로 중 새끼겠지.”
나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었다.
“사야는 『각성, 그 후』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중에 의해 죽었을 거야. 그래서 등장이 없었던 거겠지.”
하지만 랑야는?
사야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랑야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왜 『각성, 그 후』에서 등장하지 않은 거지? 강호한테 한 말들을 보면 복수심에 아주 활활 타올랐을 것 같은데.”
랑야도 중에 의해 죽어서 그런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거주자는 쉽게 죽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랑야와 사야.
눈앞에 나타난 두 개의 시스템 창과 마찬가지로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사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각성, 그 후』에서 이매망량은 곳곳에 국화꽃이 만발해 있던 길드였다. 암울하고, 우중충하기 짝이 없던 곳.
「“아버지 나름대로의 추모야.”」
이매망량은 오늘과 같이 언제나 떠들썩해야 했다. 그게 어울리는 길드였다.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중 새끼를 족치는 것.”
물론, 내가 직접 나설 수는 없겠지. 나서 봤자 뺨 때리기밖에 더 하겠어?
***
자정이 훌쩍 지난 시간.
랑야는 창가에 비스듬히 앉아 과거에 잠겨 있는 중이었다.
‘왜 엄마를 지켜 주지 않았어요?’
저와 똑같은 붉은 눈은 원망을 가득 안고서 자신을 노려봤었다.
그때, 뭐라고 답했더라?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켜 주지 못한 것이 맞기에.
그래서 외면했다. 어린 딸아이의 시선을.
그렇게 미지 영역으로 돌아가서는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계약자가 부르는 대로 바깥으로 나오면, 제 연인을 죽인 자만 쫓을 것 같아서.
어떻게든 그 자식을 찾아 죽일 것 같아서.
랑야가 스멀스멀 차오르는 분노에 깊은 숨을 토해내는 순간이었다.
“랑야.”
늦은 밤까지 제 집무실에 앉아 있던 윤사해가 나지막하게 그를 불렀다.
“이만 돌아가지 그래.”
〖싫어.〗
그 말에 윤사해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럼, 감정이라도 추슬러 주는 건 어떻겠나? 자네 때문에 오늘 내 기분이 몇 번이나 나락으로 떨어지는지 모르겠네.”
거주자를 불러낸 그의 계약자는, 그와 모든 것을 공유하게 된다. 그것이 감정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윤사해의 말에 랑야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윤사해, 이제 와 내색하는 거야? 아무렇지 않은 것 같더니.〗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나뿐인 딸아이와 자식처럼 여기는 아이 앞에서 감정이 널뛰는 모습을 그대로 보일 수 없었다.
지금에야 아무도 없으니 이러는 것이었다.
“사야는 걱정하지 말게. 회복이 빨라서 내일이면 자리를 털고 일어날 거라고 하더군.”
〖벌써?〗
“자네, 사야를 너무 평범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사야는 거주자의 후손이었다.
그것도 거주자의 피를 직접 타고난 직계 후손.
웬만한 인간보다 회복이 빨랐다.
랑야 역시 이를 모를 리가 없을 터. 하지만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더 누워 있게 해. 그리고 아예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어.〗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라네. 그러니 어서 돌아가게.”
랑야가 윤사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 빌어먹을 새끼 찾으면 곧장 나를 불러.〗
자네가 뭘 어떻게 하겠다고.
윤사해가 치밀어 오르는 말을 가까스로 집어 삼켰다.
거주자는 인간을 해할 수 없다. 그런 제스쳐조차 취할 수 없는 것이 거주자였다.
윤사해는 랑야의 시선을 묵묵히 받아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그러도록 하지.”
랑야는 그 대답에 그제야 미지 영역으로 돌아갔다.
***
사야가 부상을 입고 쓰러진 지 며칠이 지났다.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녀를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나와 저세상이 그날 이후로 이매망량에 방문하지 않았거니와, 사야가 귀수산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기도 했다.
듣기로는 사야의 명패를 윤사해가 거뒀다는데…….
‘아무래도 랑야의 압박이 들어간 조치인 것 같단 말이지.’
그래도 덕분에 사야는 귀수산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중이란다.
그 시간 동안 바깥은 난리였다.
아래아와 AMO 측이 충돌했기 때문인데, 언론에서 앞다투어 말하기를 최설윤 길드장이 AMO의 요원을 공격했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공격당한 AMO의 요원은.
“백도윤, 시진이 삼촌은 좀 어때?”
바로 백시진이었다.
저세상의 걱정에 도윤이가 방긋 웃었다.
“많이 괜찮아 지셨어! 제인 누나 매일 봐서 좋으신가 봐!”
“뭐야, 백도윤. 네 삼촌 어디 다치셨어?”
“응! 지금은 많이 나아지셨어, 단아야.”
최설윤은 자신을 졸래졸래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굴던 남자가 AMO의 요원이었다면 공격하지 않았을 거란 성명문을 발표했다.
최설윤과 백시진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단순한 오해로 백시진을 공격한 것 같지는 않았다.
중과 관련된 소식은 잠잠했다.
마수의 시체가 발견되었다거나, 마수 사육사가 죽었다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여기서 생각나는 사자성어가 하나 있었다.
‘폭풍전야(暴風前夜).’
너무나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 상황이 오히려 불안했다.
하지만 교실 안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우와! 신우야, 그거 뭐야?”
“장난감이야? 와악! 움직였어!”
교실 뒤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가 짧게 혀를 찼다.
요 며칠, 조용히 지내던 우신우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꼴 보기 싫어.”
“동감.”
저세상도 그 모습을 봤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단아는 우리의 말을 듣고는 서늘하게 물었다.
“가서 때려 줄까?”
“아니야, 단아야.”
그러다 너 또 교장실 직행이야.
도윤이는 감탄했다.
“신우가 마수를 데려왔나 봐!”
아하, 그래서 저렇게 시끄러웠구나?
잠깐, 뭘 데리고 왔다고?
“마수를 데리고 와?”
저세상도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정신이야?”
“맞아, 제정신이니. 신우야?”
그리 말한 건 단예였다.
언제 우리 교실로 왔는지 모를 단예가 우신우를 향해 다가가서는 눈웃음을 지었다.
“암만 어린 마수라고 해도, 사육사가 아닌 이상 마수를 함부로 데리고 움직이면 안 된단다. 신우야.”
“나, 나도 그 정도는 알거든?!”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는지, 우신우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엄마랑 아빠가 괜찮다고 했단 말이야! 얘는 사람을 해치는 애가 아니라고!”
우신우가 데리고 온 마수는 앵무새를 닮은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잘난 척 하지 마, 한단예!”
그 말에 단아가 소매를 걷었다.
어허, 단아야. 스탑. 네가 나서지 않아도 단예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아니나 다를까?
단예가 입꼬리를 올리고선 말했다.
“그래, 신우야. 네 말대로 그 아이는 사람을 해치는 아이가 아닌 것 같구나.”
하지만.
“학교에 마수를 데려오는 건 엄연한 교칙 위반. 너도 그걸 아니까 쉬는 시간에 애들한테 보여 주고 있는 거겠지?”
정답이었나 보다. 우신우가 새빨개진 얼굴로 입을 뻐금거렸다.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연신 금붕어처럼 입술만 달싹이고 있는 우신우를 향해 단예가 예쁘장하게 미소를 그렸다.
“오늘은 모르는 척 해 줄게, 신우야. 하지만 다음에는 데려오지 마렴.”
데리고 오는 순간, 선생님께 호되게 혼날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야.
단예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와 저세상은 단예가 선사하는 사이다에 작게 손뼉을 쳤다. 도윤이와 단아는 그런 우리를 빤히 쳐다보다가 함께 손뼉을 쳐 주었다.
교실을 잔잔하게 울리는 우리의 박수 소리에 우신우의 얼굴이 터질 것만 같이 달아올라 버렸다.
“이… 이익……!”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우신우는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그의 손등에 앉아 있던 앵무새를 닮은 마수는 파드득, 날갯짓하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우신우의 패거리는 그의 눈치를 보다가 뒤늦게 교실을 나섰다.
휴우, 이제야 조용해졌네.
“단예야, 멋졌어!”
나는 단예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저세상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단예를 보며 물었다.
“교칙은 언제 외운 거야?”
“학교 들어오기 전에요.”
단예가 방긋 웃었다.
“그리고 단순히 교칙 때문에 나선 건 아니에요.”
“그럼?”
저세상의 말에 답해 준 건 단이였다. 단이 너는 또 언제 온 거야?
“최근, 떠들썩한 사건 있었잖아요. 유랑단의 아홉 탈에 속하는 ‘중’이 마수와 그 사육사를 노린다는.”
“그것 때문에 그런 거야?”
나는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중과 관련된 소식이 다뤄진 건, 최근이라고 말할 수 없는 옛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내 말에 단예와 단이가 푸른 눈을 반달로 접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아래아와 AMO가 부딪친 이유도 중과 관련된 일에 AMO가 사사건건 방해해서 그런 거라는 말도 있고 말이지.”
“만약 그렇다면, 아래아의 길드장님께서는 중이 여전히 활동 중이라는 믿음으로 AMO와 부딪치신 거겠지.”
“그리고 조사해 봤는데, 중은 연령을 불문하고 마수를 데리고 있는 자들을 공격했다고 했어.”
저기, 얘들아.
너희 여덟 살 맞지? 인생 2회차 어린이들 아니지?
앞을 내다보는 단예와 단이의 말에 나와 저세상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