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때 아닌 눈(3)
나는 당황했다.
랑야가 보인 행동은 분명 제 자식을 무척이나 걱정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사야는 랑야를 불편해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존재를 거북해하고 있는 듯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사야의 품에 안겨 있는 금강호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릴까?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중에 손등에서 톡톡, 가벼운 두드림이 느껴졌다.
이만 나가 보자는 저세상의 신호였다. 나는 이를 알아듣고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언니, 푹 쉬세요! 저희는 이만 나가 볼게요.”
“몸조리 잘하세요, 누나.”
하지만 광혜원은 사야와 할 말이 있는 눈치인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방긋 웃으며 말했다.
“혜원이 언니,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사야 언니랑 이야기 나누고 와요! 놀이방에 가 있을게요!”
“하지만…….”
“어차피 저랑 세상이 오빠는 무서워서 길드 바깥으로 나가지도 않을 건데요, 뭐!”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광혜원을 안심시켜 주고는 병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마자 나는 크게 한숨을 토해냈다.
“세상이 오빠. 랑야가 그랬지? 사야 언니가 자기 딸이라고.”
“그랬지.”
“그런데 언니는 랑야가 싫나 봐.”
“그럴 수도 있지.”
저세상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자식이라고 꼭 부모를 좋아해야 하는 법은 없어, 윤리사. 거주자의 후손이라고 그게 다를까?”
왜인지 모르게 저세상의 목소리가 날서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있잖아, 이건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거든?’
‘그 사람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란 작자에게 학대당하다가, 지하 길드에 팔려가게 됐어.’
『각성, 그 후』에는 적혀 있지 않던 저세상의 가정사.
그런 일을 겪었는데 제 부모를 좋아할 리가.
“더군다나 거주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미지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지.”
하지만 거주자의 후손은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미지 영역이 아닌 세상 밖에서 살아가는 존재.
저세상은 사야가 랑야의 이름에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 둘이 서로 오래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이런 내 대답을 내뱉을 새도 없이 저세상이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대답 대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였다.
“음? 아가씨? 도련님?”
처음 윤사해의 손을 잡고 이매망량에 왔을 때, 마주친 적이 있는 길드원이 우리에게 알은 척을 해 왔다.
어디 던전이라도 공략하고 왔는지, 꼴이 아주 가관이었는데 남자의 얼굴만큼은 환했다.
“태운, 아가씨와 도련님이 어디 계시다고…… 허억!”
태운의 뒤로 여럿의 길드원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숨을 들이마셨다. 곧, 우리를 제일 먼저 발견한 태운이 활짝 웃으며.
“아가씨! 도련님! 여기 던전을 공략하면서 획득한 A급 아이템이 있습니다! 가지십시오!”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잠깐만요, 그거 아빠한테 줘야하는 거 아니에요?
***
오싹.
윤사해는 갑작스레 돋는 소름에 팔을 북북 문질렀다.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윤사해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피 한 방울 없이 아주 깔끔하군.”
그의 말대로였다.
사야가 금강호에게 습격을 당했던 장소는 정적만이 내려앉아 있을 뿐.
누군가 이곳에서 제 마수에게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모를 만큼 공원은 조용하기만 했다.
랑야가 늑대의 모습으로 이곳저곳을 킁킁 거리다가 짜증스레 말했다.
〖윤사해, 여기 맞아? 피 냄새도 배어 있지 않은데.〗
“맞다네, 랑야. 사야가 귀수산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에 머무른 장소가 이곳이라고 명패가 말해 주고 있으니.”
윤사해의 손에는 피 묻은 명패가 들려 있었다. 사야의 것이었다.
윤사해가 이를 꼭 쥐고는 말했다.
“이상해. 정말 중 녀석이 맞다면, 현장을 이리 깔끔하게 치워 놓지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윤사해는 알고 있었다.
사야를 공격한 것은 ‘중’이 맞는다는 것을. 그러나 정황상으로 그렇다고 여길 뿐, 확실한 물증이 없었다.
조금 전, 서차웅에게 받은 연락도 그랬다.
‘사야 님께서 마지막에 만난 사람은 주정뱅이였답니다. 그가 진주와 같은 물건을 떨어뜨렸고, 금강호가 그것을 보고는 흥분했다는군요.’
‘탈을 쓰고 있지는 않았고?’
‘네, 그렇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외모는 기억하고 계십니다.’
탈이라면, 진작 그 얼굴이 흐릿해졌을 거다.
‘정말, 중 녀석이 아니라면…….’
윤사해가 미간을 좁히는 순간이었다. 낭랑한 목소리가 그에게 인사를 해 왔다.
“어머, 윤사해 길드장? 안녕!”
붉은 머리칼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채, 어깨에 앵무새 한 마리를 데리고 있는 여자였다.
하지만 윤사해는 낯선 얼굴의 본모습을 금방 파악했다.
“최설윤 길드장?”
“지금은 유레카야.”
윤사해의 옆에 있던 랑야가 코웃음을 쳤다. 그것도 가명이라고 지었냐는 듯한 태도였다.
최설윤은 윤사해 곁에 있는 랑야를 보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거주자 분과 산책 중? 그건 아닐 테고.”
그녀가 윤사해 앞으로 성큼 다가와서는 입꼬리를 올렸다.
“사야가 당했다는 게 맞구나? 중 새끼, 이대로 잠적 타나 했더니.”
최설윤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윤사해가 눈가를 찡그렸다.
‘사야가 당했다는 정보는 어디서 듣고 온 건지.’
하지만 물어봤자 눈앞의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너스레를 떨며 제 속을 살살 긁을 테지.
그렇기에 윤사해는 그에 관해서는 묻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아직 중이 맞는지는 모른다네.”
“맞아, 그 새끼. 뭘 아니라고 하는 거야?”
최설윤이 윤사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윤사해 길드장, 아이들이랑 관계가 풀리니 너무 조심스러워졌어?”
“하지만 최설윤 길드장. 10년 전과는 보이는 행보가 너무 다르네.”
“그렇기는 하지.”
최설윤이 순순히 그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태도를 바꾸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자식이 아니면, 누가 겁도 없이 그런 짓을 벌이겠어? 이제와 모방범이 나타났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하잖아.”
아래아의 길드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허리를 살짝 숙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질문이 향한 곳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랑야였다. 닿은 목소리에 랑야가 입꼬리를 올렸다.
〖내 계약자가 윤사해, 이 녀석이 아니라 너였다면 좋았을 것 같군.〗
최설윤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윤사해는 그것이 불만이라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
태운이 나와 저세상에게 주려던 A급 아이템은 다행히도 윤사해의 손에 무사히 넘겨졌다.
혼란이 가득한 그때에 때마침 서차웅이 나타난 덕분이었다.
그래도 서차웅은 그들이 우리에게 용돈을 주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주머니가 두둑해진 건 좋지만.’
그렇지만 곧 이 돈은 통장에 고스란히 모셔질 예정이었다.
“도대체 애들한테 얼마를 주신 거야? 윤리타, 다 셌어?”
“아직 세는 중.”
윤리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리사, 세상아. 주는 대로 받으면 안 되지.”
“하지만 안 받으면 아저씨들 울 것 같았단 말이야!”
“누나들도요.”
우리의 대답에 윤리오가 못 말린다는 듯이 말했다.
“감사하다는 인사는 제대로 했지?”
“응!”
“네!”
“그래, 그거면 됐어.”
윤리오는 나와 저세상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사이 윤리타가 우리가 받아온 용돈의 계산을 끝마쳤다. 두툼한 지폐 뭉치가 이내 윤리오의 손에 떨어졌다.
윤리오는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타이르듯이 말했다.
“이건 너희 통장에 넣을 거야. 알겠지?”
역시나.
태운을 비롯한 길드원들에게 받은 용돈은 통장으로 직행하게 됐다.
“아버지는 오늘 늦으신다고 했지?”
“응, AMO 쪽에 볼 일이 있어서 거기 들렸다가 오신대.”
“화홍이 형은?”
“진작 가셨지.”
류화홍은 윤사해를 대신하여 우리를 집에 데려다줬다.
기절해 있더니, 도대체 언제 깨어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간에 나와 저세상은 류화홍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왔다.
“저녁은 우리끼리 먹어야겠네. 윤리타, 불 좀 올려 줘.”
저녁은 금방 차려졌고, 그렇게 우리는 윤사해 없이 저녁 식사를 끝마쳤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쌍둥이는 나와 저세상이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윤사해가 사야의 일로 정신이 없어서 알리지 못한 것 같았는데,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비록, 식사 중간중간에 윤리오와 윤리타가 내 뺨의 상처와 함께 우리에게 어떻게 이매망량에 가게 된 것인지 물었지만.
“이건 교실에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긁혀서 그래! 그리고 세상이 오빠가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엉엉 울었었거든!”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울었던 건 너잖아!”
우리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을 보니, 윤리오와 윤리타가 어릴 적에 그런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식사는 화기애애하게 끝났고, 나는 잘 준비를 끝내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안 되지, 안 돼.”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잠들면 안 되지, 윤리사. 오늘 알아 볼 게 좀 많잖아?
나는 망설임 없이 검색 스킬을 사용했다.
“대상은 사야.”
그리고 랑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