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맞이한 봄에서(2)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우신우라고 했지? 그 자식 집 주소가 어떻게 돼? 지금 당장 찾아가야겠어!”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말한 사람은 윤리타였다.
저녁상이 차려지기 무섭게 나는 윤리오와 윤리타에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재잘거렸다.
저세상이 몇 번이나 나를 말리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신우는 아무런 혼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사해가 지그시 쳐다보자 자지러지게 우는데…….
암만 윤사해라도 우는 애를 다그쳐 혼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쯧쯧 혀를 차고는 우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윤사해는 길드에 급한 일이 생겨 나간 상태고, 우리는 식탁에 둘러 앉아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저기, 형들. 저는 괜찮아요. 그런 애들이야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윤리오와 윤리타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나는 급격히 어두워지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테이블을 탕, 두드리고는 말했다.
“오빠들, 걱정하지 마! 리사가 세상이 오빠 잘 지킬게! 그리고 우신우 말고 다른 애들은 다 좋았어!”
“그랬어?”
“응!”
윤리오가 옅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 리사, 초등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세상이도 참 걱정이네…….”
“괜찮아. 얘네라면 잘 적응할 수 있을 거야. 우신우인지 뭔지 싹수가 노란 그 자식은 한 번 지켜보자고.”
우신우, 너는 밤길 조심해라. 윤리타가 너 만나기만 하면 가만 안 둘 것 같거든.
그래도 분위기가 전환돼서 다행이다. 나는 방긋 웃으며 윤리오와 윤리타에게 물었다.
“리오 오빠, 리타 오빠. 오빠들은 초등학생 때 어땠어? 1학년 때 가장 중요한 건 뭐야?”
초등학교 입학 전에 물어봤어야 했던 질문인데 말이지! 이렇게라도 뒤늦게 물어본다.
그런데 이상하게 윤리오와 윤리타가 내 질문에 답하지 않고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왜 저러나 했더니, 나는 금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윤리오가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미안해, 리사. 그건 우리도 잘 모르겠어. 우리는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았거든.”
“응……?”
초등학교를 안 나왔다고?
저세상도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때, 윤리타가 윤리오의 말을 뒤이어 설명을 덧붙였다.
“그때는 리사, 네 큰 오빠도 나도 사람이 무서웠을 때라서. 하하.”
서커스 때문이었다.
윤리오와 윤리타가 서커스에 납치를 당했을 나이, 일곱 살.
어린 나이에 꽤 충격을 받은 아이들은 바깥으로 나가기 무서웠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공기는 다시 무겁게 가라앉았다.
‘망할! 괜히 물어봤어! 초등학생 때 어땠냐고는 왜 물어봐서!’
그렇게 스스로 자책하는데 저세상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형들, 지금은 어때요? 청해진 형이랑 엄청 친하잖아요.”
“응? 누가 그 자식이랑 친하다고 그래? 절대로 안 친해.”
윤리오가 단호하게 그리 말했고 윤리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입술을 오므렸다가 이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 거짓말 한다! 해진이 오빠 없으면 친구 없으면서!”
“아니야, 리사! 윤리오라면 몰라도 나는 친구 많아!”
“뭐라는 거야, 윤리타!”
윤리오가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이 빼액 소리를 질렀다. 윤리타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잠시 적막이 찾아왔던 저녁 식사 자리는 왁자지껄하게 끝이 났다.
***
다음날 아침.
나와 저세상은 나란히 책가방을 매고 윤리오와 윤리타의 손을 잡았다.
윤사해는 아침 일찍부터 길드로 나간 터라 없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아빠가 많이 바쁘신 것 같네.”
“아버지는 항상 바쁘셨어. 우리 때문에 억지로 시간을 내고 계셨던 거지. 그러니까 아버지 말씀 좀 잘 들어, 윤리타.”
윤리오,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윤리타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아빠 말 안 들은 적 없거든? 아빠 말은 리사가 제일 안 듣지!”
아니, 불똥이 이렇게 저한테 튄다고요?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리사도 아빠 말 잘 들어!”
“풉!”
작게 웃음을 터트린 사람은 저세상이었다. 이 자식이?
정강이를 한 대 걷어찰까 하는데, 어느새 빛나리 초등학교의 교문 앞에 도착했다.
윤리오와 윤리타는 교문 앞에 멈춰 서서는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리사, 세상아. 학교 잘 다녀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응!”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형들.”
나는 윤리오와 윤리타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저세상은 고개를 꾸벅거렸다.
윤리오와 윤리타는 우리가 교실에 들어갈 때까지 가지 않으려는 듯,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빨리 들어가자.”
“좋아.”
윤리오와 윤리타의 등교를 방해할 수는 없기에 우리는 빠르게 교실로 올라가려고 했다.
“리사야! 세상이 형!”
“도윤이? 도윤아!”
반가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뛰어 올라갔을 거다.
도윤이가 밝은 갈색 책가방을 메고서 우리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교문 뒤로 보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도윤아, 혼자서 등교한 거야?”
“응! 아빠가 오늘부터 혼자 학교 가 보라고 했거든!”
“우와……!”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안 되겠지. 저기 서 있는 팔불출들은 나와 저세상이 6학년이 되어도 학교에 직접 데려다 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또한 지은 죄가 많지.’
납치만도 여러 번 당했던 몸.
암만 생각해도 혼자서 등교하는 건 어림도 없을 일일 것 같았다.
“윤리사, 백도윤. 어서 올라가자.”
“응!”
나머지 인사는 교실에서 하기로 하고, 우리는 저세상의 재촉에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선 교실.
나와 저세상은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우신우가 우리 옆자리에서 친구들과 무리지어 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친구들을 사귀었다니, 친화력 한 번 좋네.
저 새끼들을 어떻게 족쳐야 할까, 두 눈을 가늘게 뜨는데 저세상이 속닥거렸다.
“무시해, 무시.”
“그게 쉬워야지.”
“쟤네 아직 아무 짓도 안 했어. 일단은 무시해.”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자리로 향했다. 하지만 우신우는 그런 우리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어? 고아 왔다.”
“…….”
정확히는 저세상만 건드렸다.
우신우가 저세상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키득거렸다.
“야, 저세상. 그거 알아? 엄마도 아빠도 없는 애를 고아라고 한다더라? 그리고 형이라고 안 불러도 되지? 우리보다 멍청하니까.”
못 들어주겠네.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도윤이가 말했다.
“야, 그만해.”
하지만 그 말을 들을 우신우가 아니었다.
“싫은데? 네가 뭔데 그만해라, 마라야? 같은 멍청이라고 지금 편 들어주는 거야?”
후우, 저게 계속 열 받게 하네.
도윤이는 우신우의 말에 큰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뻐금거리는 중이었다.
나는 도윤이를 내 뒤로 보내고는 우신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멍청한 건 너야, 우신우.”
“뭐?”
“멍청한 건 너라고. 어제 우리 아빠보고 놀라서 울었던 주제에 그러고 싶어?”
우신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를 향해 입을 놀려댔다.
“누가 우성운이랑 사촌 아니랄까봐, 멍청한 것까지 꼭 닮았네. 놀라워라!”
“너어……!”
“왜? 때리게? 한 번 때려 봐. 우성운이랑 사촌이면 내가 걔를 어떻게 했는지도 다 들었을 텐데, 똑같이 해 줄게.”
씨익 입꼬리를 올리자 우신우가 몸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나한테서 뭔가 약점이라도 잡았다는 듯이 웃으며 물었다.
“윤리사, 너 저세상 좋아하냐?”
저게 뭔 개소리지.
“저세상 좋아하니까 지금 이러는 거지? 얘들아! 윤리사가 저세상 좋아한대!”
미치겠네, 정말.
저세상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입을 뻐금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퍼억―!
파란 책가방이 우신우의 안면을 강타했다. 우신우가 얼굴을 감싸고 우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악! 누구야? 누가 나한테 책가방을 던진 거야!”
“나.”
범인은 단아였다.
단아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우신우에게 다가와서는 말했다.
“다시 한 번 더 말해 봐.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거야?”
“어… 어엇…….”
단아는 당장에라도 우신우를 향해 달려들 기세였다. 아니, 달려들고 있었다.
“마, 말려! 단아야, 잠깐만!”
“놔 봐, 윤리사! 우신우인지 우산인지가 너를 놀렸잖아!”
내가 아니라 저세상을 놀렸는데!
우당탕! 요란한 소리가 1학년 2반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앙! 선생님!”
“선생님! 애들이 싸워요!”
“흐어어엉!”
빛나리 초등학교 사상 최단기간 내에 학부모 호출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
사시사철 안개가 자욱한 귀수산.
그곳에 위치한 이매망량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조용했다. 다수의 길드원이 던전 공략에 들어간 탓이었다.
이에 모종의 이유로 함께하지 않은 길드원, 사야는 윤사해의 집무실 앞을 서성이는 중이었다.
“사야 님?”
“아, 서 비서님.”
서차웅이 피곤한 낯을 문지르고는 사야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뭐하고 계십니까?”
“길드장님께서 안 계셔서요. 기다리고 있으면 오실까하여 이러고 있었답니다.”
“길드장님께서는 아가씨와 세상 도련님께 문제가 생겨서 잠시 나갔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제가 전해드리겠습니다.”
사야가 고개를 저었다.
“별 일은 아니랍니다. 그저 강호가 답답해하고 있어 바깥으로 산책이라도 잠깐 다녀올까 해서요.”
“으음.”
사야는 현재 귀수산 바깥의 출입을 되도록 하지 않을 것을 당부 받은 상태였다. 중의 위협 때문이었다.
‘잠깐이라면 되겠지. 그리고 사야 님이니까.’
큰일은 당하지 않으실 거다.
서차웅은 그리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편하게 다녀오십시오. 길드장님께는 제가 말해 놓겠습니다.”
그 말에 사야가 고개를 살짝 꾸벅거렸다.
“그럼.”
“네, 몸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서차웅이 자신이 한 말을 후회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