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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03)화 (103/500)

103화. 찾아온 겨울(4)

그런데 내 졸업식인데 윤리오와 윤리타가 더 신난 것 같은 기분이다.

내 양옆으로 앉아 있는 단예와 단이도 나랑 똑같이 생각한 모양인 듯, 웃으며 말했다.

“리사네 오빠들께서 많이 신나신 것 같네.”

“그러게. 리사보다 더 신나신 것 같아.”

“하하.”

나는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그때였다.

자라나리 유치원 꽃님반 선생님께서 단상에 오르시더니 낭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자라나리 유치원의 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일곱 살과 작별을 고한 지는 진작 됐지만, 이제는 정말 안녕이다.

***

윤리사가 졸업장을 받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있을 때였다.

자라나리 유치원이 있는 유영구에서는 꽤 떨어진 곳.

아니, 무척이나 거리가 있는 곳에서는 누군가의 유골함이 봉안당에 안치되는 중이었다.

중에 의해 마수를 잃은 아래아의 길드원.

그의 유골함이었다.

최설윤은 제 길드원의 유골함이 안치되기 무섭게 바깥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설윤 씨, 여기.”

“아…….”

그녀에게 불쑥 불이 들이밀어졌다. 최설윤은 잠시 놀란 눈을 하였다가 상대를 확인하고는 인사했다.

“고마워, 장천의 회장. 굳이 안 와도 됐는데 말이야.”

“섭섭하게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장천의는 귀국하기 무섭게 최설윤의 길드원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전 세계에서는 그래도 삶을 이어갔었는데.’

이번 세계에서의 상실감은 감당하기 버거웠나 보다.

“중 녀석은 아직 소식이 없지요?”

“응,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최설윤이 담배 연기를 한 번 뱉어내고는 비딱하게 웃었다.

“지금 중 새끼와 관련된 일을 백 팀장이 맡고 있다던가? 백 팀장이 일을 잘 해 주고 있는 모양이야.”

칭찬이라기보다는 비아냥에 가까운 어조였다.

“하지만 암만 일을 잘 해 주고 있다고 해도 거기까지지.”

AMO는 유랑단의 아홉 탈의 활동을 방해할 뿐, 그들을 잡고자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한국의 4대 길드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직접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응, 어차피 그러려고 했어.”

길드에 직접적인 해를 가하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최설윤이 반쯤 태웠던 담배를 재떨이에 버리고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미끼를 풀고 기다려야지. 마수는 나도 다룰 수 있어.”

“너무 위험한데요. 그리고 중 녀석이 생각이 있다면 최설윤 길드장님께는 접근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역을 세울 거야. 나는 화백이한테 부탁해서 얼굴 좀 고치고. 물론 일시적으로.”

최설윤이 붉은 눈을 빛냈다.

“우리 길드원님께서 당하신 고통만큼 되돌려 줘야지.”

추모 공원에 내리는 눈이 소복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떠나가기에는 참으로 안성맞춤인 날이었다.

***

“이것으로 자라나리 유치원의 졸업식을 마치겠습니다! 모두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와아아아!”

친구들이 환호하며 일어났고, 곧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찾아 바쁘게 오가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내 곁에 서 있었기 때문에 나를 금방 찾았다.

“아빠! 제인 누나!”

도윤이도 마찬가지였다.

백시진은 보이지 않았다.

최근 일이 바빠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도윤이가 울상이더니, 오늘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것 같았다.

단예와 단아, 단이는 한태극을 찾아 쪼르르 달려갔다.

워낙에 바쁜 양반이라 애들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다행이었다.

그렇게 친구들을 하나씩 살피는 중이었다. 윤사해가 나를 번쩍 안아 들고는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리사, 졸업 진심으로 축하한단다.”

나는 윤사해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그의 어깨에 이마를 비비적거렸다.

“히힛! 리사도 이제 초등학생이야! 어린애 아니라고!”

내 말에 윤리타가 키득거렸다.

“하는 짓은 여전히 어린아이인데? 그치, 윤리… 오? 야, 윤리오. 왜 울려고 그래……?”

윤리오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윤리오가 황급히 눈가를 세게 누르고는 울먹였다.

“우리 리사가 초등학생이라니.”

“나참, 초등학교 졸업식에는 아주 대성통곡을 하겠네. 그치, 세상아?”

“하하…….”

저세상이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때였다.

“윤리사! 여기!”

“나도 준비했어! 여기 리사 거!”

단아와 도윤이가 내게 다가와 꽃다발을 내밀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둘의 뒤로 단예와 단이가 다가와서는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랑 첫째도 준비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리사의 손이 남아나지를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다행히도 준비하지 않기를 잘한 것 같네.”

단예와 단이도 나를 위한 꽃다발을 준비했다면, 나는 지금쯤 손이 남아 있지를 않을 거다.

나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고는 윤사해에게 말했다.

“아빠! 뭐하고 있어? 어서 리사 친구들한테 리사가 준비한 거 줘야지! 어서!”

윤사해가 나의 재촉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이내 내가 친구들을 위한 꽃다발을 하나씩 아이들의 손에 쥐여 주었다.

“우와! 리사,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리사야.”

“이럴 줄 알았으면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하는 건데.”

에이, 단이야. 우리 사이에 선물은 무슨 선물이야! 그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만 준다면 이 누나는 기쁠 거란다.

내가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꽃다발은 아이들의 눈과 꼭 닮은 색의 것들이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잘 어울렀다.

괜히 뿌듯해지네.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 두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한태극이 말했다.

“다들 저기 서 보거라. 마지막으로 사진 한 번 찍게.”

“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윤사해의 품에서 내려와 한태극이 가리킨 곳에 섰다.

내 양옆으로 도윤이와 단아가 섰고 그 옆으로 단예와 단이가 섰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뭐가 허전한가 싶었더니.

“저세상! 너도 와야지!”

“아니, 나는 괜찮아.”

그렇게 말했지만 저세상은 결국 윤리오와 윤리타의 손에 떠밀려 우리 곁에 서게 됐다.

단아가 제 옆에 선 저세상을 곁눈질하며 그에게 물었다.

“저세상, 아홉 살. 아니지, 이제 열 살이지? 그런데 열 살 맞아? 너 왜 아직 난쟁이 똥자루 만해?”

“누구보고 난쟁이 똥자루 만하다는 거야!”

저세상이 빼액 소리를 지르기 무섭게 찰칵, 사진이 찍혔다.

“어, 어엇?”

설마 그 타이밍에 사진을 찍을 줄 몰랐는지, 저세상이 크게 당황한 눈으로 한태극을 쳐다봤다.

“음, 잘 나왔군.”

“잠시만요! 다시 찍어 주세요! 저 이상하게 찍혔을 거란 말이에요!”

저세상의 말에 백시준이 사진을 확인하고는 웃었다.

“잘 나왔는데, 세상아?”

거짓말!

저세상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윤사해마저 사진을 확인하고서 그리 말하자 저세상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신다면야.”

뭐든 좋다는 저세상이었다.

***

졸업식을 끝마친 우리가 향한 곳은 근처 짜장면집이었다.

“리사랑 세상이 초등학교 입학 준비는 잘했어?”

“아주 잘했지. 너는?”

“어떨 것 같아, 사해야?”

물론, 이 자리에는 도윤이네도 함께였다.

윤사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을 뿐이다.

“우리 애들이 네 아들 녀석과 같은 반이 안 되기를 바라야겠군.”

“하하! 나는 같은 반이 됐으면 좋겠는데.”

백시준이 그렇게 너스레를 떨고는 말했다.

“한태극 의원님과는 아쉽게 됐네요. 애들끼리 사이가 좋아서 초등학교도 같이 다녔으면 했는데.”

“음?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어…… 한태극 의원님의 손주분들께서는 저희 애들과 다른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나요?”

그 말에 한태극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네. 우리 애들도 빛나리 초등학교에 입학할 걸게.”

빛나리 초등학교.

나와 저세상, 그리고 도윤이가 함께 입학할 초등학교였다.

한태극의 말에 나는 얼굴을 활짝 폈다. 도윤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와! 단예랑 단아, 단이도 우리랑 같은 초등학교 다니는 거야? 정말? 진짜로?”

“응.”

“잘됐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와 도윤이뿐인 것 같았다.

저세상은 한숨을 푹 내쉬었고 백시준과 윤사해는 떨떠름한 얼굴로 한태극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의원님 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립 초등학교가 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곳에 보낼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나 역시 윤사해와 똑같이 생각했다. 윤사해의 말에 한태극이 끙 앓는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자네들 말처럼 애들끼리 워낙 사이가 좋아야지. 헤어지는 걸 무척이나 아쉬워하기에 그쪽으로 보내기로 했네.”

서로 사는 거주지가 달라서 한태극의 세쌍둥이 손주와 만나는 건 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우리 애들, 초등학교에서도 잘 부탁하네.”

그리 말하는 한태극의 눈은 윤사해에게로 향해 있었다. 윤사해는 그 시선을 간단히 무시했다.

그래도 식사 자리는 별 문제 없이 화기애애하게 마무리 됐다.

바깥은 내린 눈으로 온통 하얗게 칠해져 있었다. 백시준이 도윤이에게 목도리를 둘러매 주고는 말했다.

“입학식 날에는 눈이 안 왔으면 좋겠네요.”

“그보다 입학식은 주말로 변경됐으면 좋겠군. 평일은 영 시간이 나지를 않아서.”

저기요, 할아버지! 애들 입학식은 곧 개학식일 텐데 주말에 하자니요! 재학생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다행히도 빛나리 초등학교의 입학식이 주말에 열리는 일은 없었다.

볕이 따뜻하게 내리쪼이던 3월 2일,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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