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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01)화 (101/500)

101화. 찾아온 겨울(2)

2월이 됐다.

사실 되기는 진작 됐고, 어느새 2월의 막바지에 접어든 참이었다. 그동안 눈이 열 번도 넘게 내렸고, 저세상의 받아쓰기는.

“100점! 윤리사, 이것 봐봐! 나 100점 받았어!”

일취월장하여 기어코 백 점을 받았다. 나는 손뼉을 작게 쳐주며 감탄했다.

“우와! 세상이 오빠, 대단해! 이제 구구단만 떼면 되겠다!”

“…….”

저세상이 꼭 그걸 지금 말해야 되겠냐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세상이 오빠, 리사가 이렇게라도 해야 자극받아서 구구단을 빨리 떼지 않겠어?

그렇게 어깨를 으쓱이는데, 윤사해가 우리를 불렀다.

“리사, 세상아. 나갈 준비 하렴.”

“어디 가려고?”

“백화점.”

윤사해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초등학교 입학 준비 해야지.”

그 말에 나는 후다닥 내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저세상도 마찬가지.

참고로 윤사해는 주말이란 것을 빌미로 길드 일을 내팽개치고 우리와 함께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길드장님! 지금 길드장님께서 봐주셔야 할 게……!’

‘급한 게 아니면 내일로 미루겠네. 그리고 지금 리오랑 리타도 없어서 말이지. 잘 좀 부탁하네, 서 비서.’

서차웅의 우는 소리는 가볍게 무시하고서 말이지.

훗날, 서차웅은 퇴직금을 두둑하게 챙겨서 이매망량을 나갈 게 분명했다.

상사가 맨날 일을 냅다 던져 버리고 도망가 버리니, 나라도 그러겠다.

하지만 그 상사가 우리 아빠라면 말이 달라지지. 나도 던져 버리면 되니까. 히힛.

나는 숏 패딩을 차려 입고는 문을 열어젖혔다.

“아빠! 리사는 준비 다 했어!”

“아저씨, 저도 다 했어요!”

때맞침 저세상도 거실로 나왔다.

윤사해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저세상의 목에 목도리를 둘러 주고는 우리의 손을 잡았다.

“아빠, 우리 어느 백화점 갈 거야?”

“CW 백화점.”

거기는 싫은데.

나는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렸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장천의가 ‘고객님!’을 외치면서 달려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장천의는 외국으로 출장을 간 상태라고 했다.

백화점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버선발로 뛰쳐나온 CW백화점 유영점의 지점장이 말해 준 사실이었다.

“그럼, 윤사해 길드장님. 자녀분들과 함께 편안한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원하시는 상품이 있거나,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어련히 알아서 하겠네.”

그러니 이만 가 보라는 윤사해의 듯을, 지점장은 눈치 빠르게 알아듣고는 사라졌다.

나는 고급스러운 백화점 내부를 둘러보며 환하게 웃었다.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내 말에 저세상도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형들은 시험 준비 때문에 바쁘잖아. 어쩔 수 없지.”

저세상의 말대로 윤리오와 윤리타는 내일 있을 시험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중이었다.

비나리 고등학교에서는 2학년이 되면 원하는 길드에 실습을 나갈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각 길드에서 낸 필기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 때문에 윤리오와 윤리타는 지금 한창 시험공부 중이었다.

“오빠들은 공부 안 해도 통과할 수 있을 텐데!”

윤리오와 윤리타가 원하는 길드는 바로 이매망량.

윤사해라면, 제 아들들을 아주 손쉽게 길드로 들여보낼 터였다. 하지만 그러지 않겠지.

애초에 윤리오와 윤리타도 이런 특혜를 원하지 않을 거다.

윤사해가 내 말에 뜻 모를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책가방부터 사러 가자꾸나.”

***

책가방을 고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새 학기를 위한 이벤트 관에서 내 머리카락 색과 어울리는 책가방 하나를 골랐다.

“리사는 이거.”

“저는 아무거나 괜찮아요.”

저세상이 뒤이어 말했다.

윤사해가 곤란하다는 듯이 애매하게 웃었다. 저세상은 이를 보지 못한 듯했다.

에휴, 어쩔 수 없지.

나, 윤리사. 윤사해가 곤란해하는 건 두고 볼 수 없는 그의 효녀다.

나는 저세상에게 다가가 속닥거리며 물었다.

“세상이 오빠, 그거 알아?”

“뭐를?”

“한국인이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아무거나’래.”

그리고 우리 아빠는 한국인이지.

저세상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단번에 알아듣고는 말했다.

“저거 해도 돼요?”

“흐음.”

저세상이 고른 것은, 이벤트 관에서 가장 값싼 가격에 전시되어 있는 책가방이었다.

윤사해가 저세상이 고른 것과 비슷한 디자인의 책가방을 살펴보고는 말했다.

“이게 더 좋을 것 같구나.”

저세상이 고른 책가방과는 배로 차이가 나는 가격이었다.

윤사해는 저세상이 거절이라도 할 새라, 내가 고른 책가방과 함께 누구보다도 빠르게 값을 치렀다.

결국 저세상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책가방을 받았다.

“학용품도 사야지?”

“응! 그치만 리사는 친구들 줄 꽃을 먼저 사고 싶은데! 이제 곧 졸업식이니까!”

“꽃은 졸업식 때 사자꾸나. 지금 샀다가 망가지면 큰일이니.”

하긴, 그건 그렇지.

나는 윤사해의 말에 빠르게 수긍했다. 윤사해가 그런 나를 안아 들고는 물었다.

“학용품 사러가기 전에 저기 먼저 들를까?”

윤사해가 가리킨 곳은 온갖 무기가 진열된 곳이었다.

저기는 왜……?

윤사해가 내 시선에 방긋 웃으며 말했다.

“학교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몸을 지킬 만한 무기는 있어야지.”

아버지, 초등학교가 위험하면 얼마나 위험하다고!

나는 조용히 윤사해의 품에서 내려왔고, 그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윤사해가 가고자 했던 무기 브랜드 점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그때였다.

“윤사해 길드장?”

낭랑한 목소리가 우리를 붙잡았다.

***

윤리사가 윤사해의 손을 잡고 저세상과 함께 CW백화점으로 간 시간.

윤리오와 윤리타는 도서관 구석에서 모의시험 결과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어때, 윤리타? 나 합격점이야?”

“응, 내일 이대로만 보면 합격할 것 같은데.”

“휴우, 다행이다.”

“나는 어때, 윤리타?”

둘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청해진의 물음에 윤리타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는 말했다.

“너는 불합격.”

청해진이 윤리타의 손에서 제 시험지를 빼앗아 확인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아니잖아! 나도 합격점이구만!”

“쉿! 여기 도서관이야!”

윤리타가 주의를 주자 청해진이 황급히 입을 가렸다.

그 사이 윤리타에게서 제 시험을 받아든 윤리오가 자신의 점수를 확인하고는 싱글벙글 웃었다.

“벼락치기 한 보람이 있네. 내일 이대로만 나오면 좋겠다.”

“꿈 깨셔. 이매망량은 단 한 번도 문제가 겹친 적 없대.”

“청해진, 용케도 그걸 알고 있네?”

윤리타의 말에 청해진이 뿌듯하게 웃었다.

“이것저것 열심히 조사했거든!”

공부는 하지 않고서 말이다.

이를 알고 있는 윤리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고, 윤리오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고는 청해진에게 물었다.

“그보다 청해진, 너는 청가 쪽 길드에서 컨택 오지 않았어? 그런데 왜 굳이 이매망량에 가려는 거야?”

비나리 고등학교는 2학년부터 원하는 길드 혹은 기관으로 실습을 나갈 수 있었다.

단, 그곳에서 내는 필기시험을 통과한 후에.

하지만 이를 무시할 수 있는 절차가 있었으니, 바로 길드 혹은 기관의 컨택을 받았을 때였다.

윤리오의 질문에 청해진이 손가락을 펼쳤다.

“첫 번째는 누나가 가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둘째는 나 역시 가고 싶지 않으니까.”

윤리오와 윤리타는 잠시 서로를 쳐다봤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자기가 가고 싶지 않다는데, 뭐.’

‘자세하게 물어볼 이유는 없겠지.’

청해진의 대답에 대한 윤리오와 윤리타의 생각이었다.

“해솔이 누나는 잘 지내고 계셔?”

“우리 누나야 너무 잘 지내고 있어서 탈이지.”

청해진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간 주말마다 청해솔에게 받았던 특훈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매망량에 들어가면 누나의 특훈을 더는 안 받을 수 있겠지…. 영영 안녕이라고…….”

청해진은 음산하게 중얼거리고는 문제집을 펼쳤다.

열의를 불태우는 친구의 모습에 윤리오와 윤리타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그래서 동생은 이매망량에 실습 나가려고 공부하러 갔어?”

“네, 내일 시험이래요.”

청해솔이 찾아온 손님에게 차를 내주고는 그 맞은편에 앉았다.

“언니가 이렇게 찾아오신 걸 보니, 제가 부탁드린 일을 끝마치셨나 보네요.”

“응, 일부만.”

여느 때와 같이 막대 사탕을 입에 굴리고 있던 이운조가 방긋 웃었다.

그러나 청해솔은 이운조의 대답에 얼굴을 찌푸렸다.

“일부만이라니요?”

이운조는 부연 설명 없이 청해솔에게 가지고 온 것을 내밀었다.

청해솔이 이운조에게 맡겼던 청가의 족보였다.

원본이 아닌 복사본.

그러나 원본과 같은 수준으로 보안이 걸려 있어, 청해솔은 이운조에게 이를 풀어 주기를 의뢰했었다.

이운조가 소파에 느긋하게 등을 기대며 말했다.

“너희 시조 대까지는 도저히 못 풀겠더라. 그래도 네 조부모의 조부모 대까지는 풀었어.”

아하, 그래서 일부만 풀었다고 한 거구나.

청해솔이 수긍했다.

그녀는 곧장 족보를 펼쳐 읽을 수 있게 된 가문의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운조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물었다.

“이제 와서 묻기는 좀 그렇지만, 족보의 보안은 왜 풀어 달라고 한 거야?”

“가문에서 제명당한 사람을 좀 찾아보려고요.”

“제명?”

“네, 호적에서는 파였다고 하나 족보에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들었거든요. 밑줄이 그어진 채로.”

하지만 청해솔은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했는지, 한숨을 푹 쉬고는 족보를 덮었다.

그러고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이운조를 위해 설명을 덧붙였다.

“제가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일이 좀 있었는데요.”

“응, 알아.”

“그때 초랭이랑 부딪쳤었어요.”

이운조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탄식하듯이 목소리를 내뱉었다.

“초랭이……?”

“네, 청가의 가보를 가지고 있더군요.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모르겠지만요.”

유랑단의 탈쟁이가 한국에서 제일 유서 깊은 가문의 가보를 가지고 있다니!

이운조가 충격적인 이야기에 입가를 한 번 쓸어내리곤 말했다.

“네 가문의 늙은이들은 알고 있는 사실이야?”

“알고 있으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죠. 가보가 사라진 걸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게 가능해?”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잖아요, 언니.”

청가의 가주.

이운조가 그를 떠올리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에이, 설마.”

하지만 이운조는 ‘그 고지식한 늙은이가 탈쟁이에게 가보를 넘겨줬을까?’에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할 수는 없었다.

이운조가 심각하게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사이, 청해솔은 찻잔을 들며 말했다.

“언니도 아시다시피, 청가의 가보는 청가의 사람이 아니면 사용하지 못해요.”

“그런데 초랭이는 사용했나 보구나? 그것 때문에 족보의 보안을 내게 풀어 달라며 맡긴 거고.”

“네.”

그러나 이운조가 풀어 놓은 부분까지 가문에서 제명당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청해솔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초랭이의 행방을 쫓고 싶어도, 그 날 이후로 잠적해 버렸어요. 다른 탈쟁이들도 마찬가지고.”

“아, 그건 아니야.”

“아니라고요?”

“응, 얼마 전에 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더라고. 아래아의 인간이 한 명 당했대.”

이운조가 비딱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최설윤 길드장님, 지금 속이 많이 끓고 있을 텐데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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