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98)화 (98/500)

98화. 찬 이슬이 맺히기 전에(3)

“리사! 곧 우리 차례야! 뛰다가 넘어지면 어떻게 하지?”

“으, 응?”

고개를 돌리니 도윤이가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윤이는 그대로 제 심장 부근을 움켜쥐며 울먹였다.

“나 때문에 우리 팀이 지면 어떻게 해? 단아가 가만 안 둘 텐데!”

“괜찮아, 도윤아! 도윤이는 잘 할 거야!”

그리고 도중에 뛰다가 넘어진다고 해도 리사가 역전시켜 주겠어!

“그러니까 긴장 풀어, 도윤아!”

나는 도윤이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서차윤을 봤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어……?”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는, 사진기나 캠코더 등을 들고 있는 학부모들만 있었다.

‘잘못 본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서차윤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마주친 윤사해의 두 눈에 서차윤을 찾는 것을 그만뒀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윤사해가 눈웃음을 지으며 캠코더를 들었다. 나는 그에 방긋 웃어 주었다.

그러는 사이 도윤이에게 바톤이 넘겨졌다.

“도윤아, 파이팅!”

나는 도윤이의 뒷모습을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 질렀다.

“도윤아! 조금 더 빨리!”

“잘 달린다, 백도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윤리오와 윤리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도윤! 조금만 더 달려 봐!”

저세상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저걸 응원이라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도윤이는 응원이라고 여겼나 보다.

백팀에게 살짝 뒤쳐졌던 도윤이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와아아!”

도윤이는 기어코 백팀의 계주 선수를 추월하고 말았다.

나는 좋아라 하며 손뼉을 치다가 황급히 달릴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도윤이에게 바톤을 넘겨받을 찰나.

“아야……!”

“도윤아!”

도윤이가 넘어지고 말았다. 도윤이와 함께 달리던 백팀의 계주 선수가 도윤이를 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윤이는 까진 무릎이 아프지도 않은지 곧장 내게 팔을 뻗었다.

“리사! 여기, 이거!”

도윤이가 넘긴 것은 그가 손에 꼭 쥐고 있던 바톤이었다.

나는 그대로 도윤이에게서 바톤을 넘겨받고 있는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도윤이가 넘어진 틈을 타서 백팀이 우리를 또 추월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도윤이를 일으켜 주고 싶었지만…….

“도윤아, 괜찮니?! 다친 곳은!”

그건 백시준에게 맡기고 나는 저 망할 백팀의 계주 선수를 따라잡아야겠다.

저 비겁한 자식들, 스포츠 정신은 어디에 내다 버린 거야!

나는 멀리 앞서가는 백팀의 마지막 계주 선수를 향해 소리 질렀다.

“야! 거기서!”

“히익……!”

나의 위협에 백팀의 마지막 계주 선수가 죽으라고 뛰기 시작했다.

아니, 저 자식이? 질 수야 없지.

나 역시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백팀 친구와의 사이는 점점 좁혀졌고.

“우와아! 윤리사!”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백팀을 추월했다.

나는 결승선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뛰어 들어갔다. 그러기 무섭게 꽃님반 친구들이 나를 에워쌌다.

“백도윤 때문에 질 줄 알았는데!”

“리사 덕분에 우리 팀이 이겼어!”

“윤리사, 최고! 진짜 멋졌어!”

하하, 이거 쑥스럽구만.

나는 괜히 코 밑을 손등으로 스윽 닦고는 말했다.

“도윤이도 잘 해 줬는걸? 도윤이는 어디 있어?”

“나 여기.”

도윤이가 절뚝거리면서 아이들 틈에서 얼굴을 보였다.

“도윤아, 괜찮아?”

“응! 괜찮아!”

나는 그리 말하는 도윤이의 무릎을 빤히 쳐다봤다. 까진 무릎 위에는 밴드가 크게 붙여져 있었다.

도윤이가 내 시선이 향한 곳을 알아차리고는 배시시 웃었다.

“리사, 나 진짜 괜찮아. 밴드 붙일 때 조금 아팠는데, 바로 멀쩡해졌어! 진짜야!”

“거짓말! 백도윤, 너 리사가 쟤 역전할 때까지 계속 울었었잖아!”

단아가 백팀의 마지막 계주 선수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는 도윤이를 놀렸다.

“백도윤은 울보래요.”

“아니거든!”

도윤이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빼액 소리를 질렀고 모여 있던 아이들은 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팀 역전시키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그러지 않았다면 친구들은 지금 울고 있었겠지.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에 몸을 부르르 떠는데,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거렸다.

“리사.”

“아빠!”

나는 윤사해에게 한달음에 달려가서는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리사 어땠어? 멋졌지?”

“응, 정말 멋졌단다.”

윤사해가 흐뭇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윤사해의 뒤로 윤리오와 윤리타가 모습을 드러내며 재잘거렸다.

“우리 리사가 이렇게 빠른 줄 몰랐는데. 아버지, 리사 육상 선수 시켜야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심장 졸려 죽는 줄 알았어! 저렇게 뛰다 넘어지면 어쩌나하고! 그리고 육상 선수라니!”

윤리타가 두 팔로 ‘X’를 그리고는 말했다.

“합숙이다 뭐다 하면서 집에 안 들어올 텐데, 절대로 안 돼! 우승 트로피를 수십 개 받을 거라고 해도 절대로 안 된다고!”

둘째 오라버니, 김칫국도 적당히 마시세요.

나는 질린 얼굴로 윤리타를 쳐다봤다. 그의 손을 잡고 있는 저세상도 나랑 똑같은 얼굴로 윤리타를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곧 우승팀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자라나리 유치원 어린이 여러분들은 각 반에 맞추어…….

운동회의 폐회식을 알리는 소리가 운동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리사야!”

선생님이 나를 부르며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선생님을 향해 곧 가겠다는 뜻으로 한 손을 번쩍 들어 주고는 윤사해에게 말했다.

“아빠! 오늘 고기 먹기! 리사 열심히 뛰었으니까 꼭 고기 먹어야 해!”

“그래, 그러자꾸나.”

윤사해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웃음을 지었다.

나 역시 윤사해를 향해 활짝 웃어 주고는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운동장에 도착한 나는 친구들과 함께 나란히 줄을 맞춰 섰고, 우승 팀이 발표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백팀 380점, 청팀 430점. 여기에 백팀 응원 점수 50점을 추가하겠습니다.

아니, 저기요?

우리 팀의 우승을 위해 열심히 달린 보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청팀이 질서 점수 30점을 가져갔기에 승자는 청팀입니다!

곳곳에서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망할 사회자가! 꼼짝없이 우리 팀이 지는 줄 알았잖아!

나는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리며 사회자를 노려봤다. 그것도 잠시.

“우와! 윤리사, 우리가 이겼어!”

“리사 덕분에 우리가 이긴 거야!”

단아와 도윤이가 나를 꼭 끌어안는 통에 나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단아야, 도윤아. 리사 그러다 숨 막히겠다.”

“맞아, 셋째야. 리사 좀 놓아 주렴. 도윤이, 너도.”

단이와 단예가 단아와 도윤이를 말리려고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애들을 안 놓아 주려고 했다.

너무 즐거운 걸 어떻게 해!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꼭 끌어안고는 웃어댔다.

***

윤사해는 약속대로 고기를 사 줬다. 그것도 소고기를.

그 자리에 백시준과 도윤이가 함께였고 또 한태극 의원과 그의 세쌍둥이 손주가 함께였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하지만 나름대로 좋은 분위기에서 저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리사, 오늘은…….”

“일찍 잘 거야! 피곤하니까!”

나는 윤사해의 말을 끊고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풀썩 누웠다.

그런 나의 두 눈에 저세상과 함께 심어 놓은 꽃들이 창 바깥으로 보였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였지만, 저세상과 함께 화단에 심어 놓은 꽃들은 생기가 넘쳤다.

윤사해가 이매망량에서 이것저것 가져와 내 방 바깥에 온실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 놓은 덕분이었다.

나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넓은 창을 열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찍 잘 거라며.”

“으악! 깜짝아!”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심장 부근을 꼭 끌어 잡고는 옆을 쳐다봤다.

“노, 놀랐잖아요!”

“하하.”

서차윤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가를 가렸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더니, 지금이 딱 그 꼴이었다.

나는 얼굴을 와락 찌푸리고는 짜증스레 말했다.

“평생 거기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있을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서차윤의 손에는 내가 건네줬던 우산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리사 운동회에 왔었죠?”

“응.”

서차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보며 애달프게 웃었다.

“미안해.”

운동회에서 금방 모습을 감춘 것에 대해 사과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가 이내 입술을 벌렸다.

‘서차윤이 어떤 존재인지는 정확히 몰라. 하지만.’

그는 죽어서도 이 세상을 떠돌고 있는 중이었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채로.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내 눈에는 잘만 보였지만 말이다.

‘저세상도 자신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었지.’

그리고 그에게 알 수 없는 적대감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어찌됐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나는 미간을 좁히고는 서차윤에게 물었다.

“아저씨, 할미가 리사한테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죠?”

서차윤은 말없이 미소를 그렸다. 그것만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그렇기에 나는 뚱한 얼굴로 말했다.

“괜찮아요. 리사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정말?”

“네, 정말요.”

거짓말이었다.

한 달이 훌쩍 넘어 버린 시간이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이따금씩 떠올라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 감정에 잡아먹힐 수는 없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애써 웃었었다.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남몰래 힘을 키울 것을 다시 한 번 더 다짐하면서.

그러니까 나는.

“리사는 정말 괜찮아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