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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97)화 (97/500)

97화. 찬 이슬이 맺히기 전에(2)

신나는, 아니. 광란의 율동 타임이 끝난 후 찾아온 휴식 시간.

“아빠! 시진이 삼촌이 뭐래? 나 춤 잘 췄대?”

“응, 우리 도윤이 언제 그렇게 춤 실력이 는 거냐고 묻던데?”

“히힛! 엄청 열심히 연습했거든! 그치, 리사?”

“응! 시준이 삼촌, 도윤이가 삼촌한테 춤추는 거 보여 주겠다고 엄청 열심히 연습했었어요!”

나는 도윤이네와 함께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도윤이네가 내 곁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참고로 백시진과 제인 아일리는 자리에 없었다.

주말 출근했다나 뭐라나.

한태극과 그의 세쌍둥이 손주들과는 율동 타임이 끝나기 무섭게 헤어지고 말았다.

한태극이 애들 관절이 걱정된다면서 데려갔기 때문이다.

그 할아버지도 은근히 과보호가 심하다니까? 그보다 춤이 격렬하면 얼마나 격렬했다고!

덕분에 단예와 단아, 단이와는 헤어지고 말았다.

괜히 부루퉁해서 두 뺨을 부풀리는데, 도윤이가 잔뜩 들뜬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엄청 신기했어! 갑자기 몸이 막 이렇게 움직이는 거 있지?”

“백시준, 네 아들 몸치군.”

여기서 한 가지 제대로 말하자면, 우리 가족 모두와 함께 도윤이네가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백시준의 말로는, 우리가 자리잡은 이곳이 아주 명당자리라고 했다.

‘운동장이 한눈에 보여서 좋거든. 신세 좀 질게?’

그렇게 백시준은 우리 옆에 돗자리를 깔게 됐다. 하지만 윤사해는 꽤나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방금 전에 웬 지렁이 한 마리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우리 옆에서 이러고 있지 말고 아들 춤 학원 좀 알아보지 그래?”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저리 말하니 말이다.

윤사해의 말에 도윤이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빠! 도윤이한테 왜 그래!”

“리사, 아빠는 사실을…….”

사실이고 자시고!

“어서 도윤이한테 사과해! 안 그러면 리사는 시준이 삼촌한테 가 버릴 거야!”

“도윤아, 미안하구나. 지랑이가 아니라 나비 같았단다. 마치 한 마리의 나비가 날개짓하는 것처럼 무척이나 우아한 몸짓이었어.”

태세 전환 한 번 굉장히 빠른 우리 아버지였다.

윤사해의 영혼 없는 칭찬에 도윤이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거렸다.

“가… 감사합니다……?”

“아니야, 도윤아. 사해 아저씨한테 그렇게 말할 필요 없어.”

백시준이 그런 도윤이를 허벅지에 앉히고는 방긋 웃었다. 윤사해는 그 모습에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고.

지금 상황이 꽤나 못마땅한 듯 했다. 그때 저세상이 쿠키를 우물거리며 내게 말했다.

“윤리사, 아저씨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도윤이가 상처 받으니까 그러지! 그리고 세상이 오빠!”

나는 저세상을 삿대질하며 말했다.

“오빠는 춤 잘 추는 줄 알아? 절대 아니거든?”

“백도윤보다는 잘 춰.”

“거짓말.”

내 말에 저세상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거짓말 아니거든? 너도 테마 파크에서 봤었잖아!”

“리사는 모르겠는데.”

심드렁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자, 저세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봐봐, 윤리사!”

그러고는 운동회의 흥을 돋우겠다면서 흘러나오고 있는 뽕짝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니, 왜 저래?

갑작스런 저세상의 재롱 잔치에 놀라 입을 벌리는데, 도윤이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우와! 세상이 형 잘 춘다!”

도윤이의 말대로 잘 추기는 잘 췄다. 윤리오와 윤리타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세상아, 한 번 더 춰 봐. 못 찍었거든.”

“맞아, 세상아. 앙코르~!”

저세상이 뒤늦게 부끄러움을 느낀 모양인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푹 숙였다.

윤사해가 그런 저세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잘 췄단다, 세상아. 부끄러워하지 마렴.”

“네에…….”

안타깝게도 윤사해의 칭찬에 저세상은 더욱 부끄러워했다.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어 버린 것이다.

그러게, 춤을 갑자기 왜 춰서.

쯧쯧, 짧게 혀를 차는데 운동장을 울리는 방송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은 아빠 장애물 달리기가 있겠습니다. 참가하실 분께서는 운동장 단상 앞으로…….

운동회의 인기 이벤트 중 하나!

부모님 참가 프로그램을 알리는 방송이었다.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윤사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아빠, 참가하시려고요?”

윤리오와 윤리타가 놀란 눈으로 윤사해에게 물었다. 윤사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리오, 리타. 애들 잘 보고 있으렴. 백시준, 너는.”

“당연히 나가야지. 얘들아, 우리 도윤이 좀 부탁할게.”

백시준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이혼남과 사별남이 운동회를 제패하기 위해 나섰다.

도윤이가 백시준을 향해 있는 힘껏 손을 흔들어 준 뒤 내게 물었다.

“리사. 우리 아빠가 이길까, 너희 아빠가 이길까?”

“우리 아빠!”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와! 아빠 최고!”

윤사해가 압도적인 격차로 결승선에 골인했다.

스킬을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윤사해에게는 무용지물인 것 같았다.

나는 곧장 윤사해에게 달려가 품에 안기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윤사해의 뒤를 이어 2등으로 들어온 백시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해야, 좀 살살하지 그랬니.”

“흠.”

윤사해는 못 들은 척 무시하고는 나를 안아 들었다.

“리사, 아빠 어땠니?”

말해, 뭐해.

“세상에서 제일 멋졌어! 아빠 진짜 최고!”

나는 윤사해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어 줬고, 윤사해는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맞아요, 아빠! 진짜 멋졌어요!”

윤리타의 말에 저세상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윤리오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말했다.

“결승선 들어오시는 거 찍어 놨어요. 나중에 확인해 보세요.”

“그래, 고맙구나.”

윤사해가 눈웃음을 짓고는 나를 안고서 자리로 돌아왔다.

뒤이어 엄마 장애물 달리기가 이어졌고, 아이들이 참가하는 박 터트리기가 진행됐다.

-네! 청팀의 승리로 게임이 끝났습니다! 여러분, 이제 즐거운 점심시간을 가져보아요!

박 터트리기는 아슬아슬하게 우리 팀의 승리로 끝났다.

“마지막에 단아 진짜 멋졌어! 한꺼번에 네 개를 던지다니!”

“그리고 그걸 다 맞췄잖아? 단아 진짜 대단해!”

단아 덕분이었다.

나와 도윤이의 칭찬에 단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훗! 줄다리기도 기대하라고! 내가 다 쓸어 버릴 테니까!”

백팀 친구들이 불쌍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정답게 운동장을 나오다가 도중에 헤어졌다.

“얘들아, 그럼 점심 맛있게 먹어!”

“리사랑 도윤이도 맛있게 먹어.”

각자의 자리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헤어지기 직전, 단아가 같이 먹고 싶다면서 칭얼거렸지만.

“셋째야, 할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손수 음식을 싸 오셨는데 그걸 거절할 생각이니?”

“그건 아닌데……!”

단예의 나긋한 목소리에 결국 불퉁한 얼굴로 떠나갔다.

나와 도윤이는 단아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다가, 자리로 돌아왔다.

돗자리에는 윤리오가 아침부터 준비한 음식들과 백시준이 가져 온 음식으로 한껏 차려져 있었다.

윤사해가 백시준이 들고 온 김밥 하나를 입에 물고는 말했다.

“백시준, 이거 네 솜씨는 아닌 거 같은데.”

“시진이 솜씨야. 출근 전에 만들어 놓고 갔더라고.”

백시준이 그렇게 말하고는 내 손에 김밥 하나를 쥐여 줬다. 그에 나는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삼촌도 하나 드세요!”

나는 백시준의 손에 유부 초밥을 하나 쥐여 주고는 김밥을 입 안에 넣었다.

헐, 맛있어. 백시진, 너를 윤리오 다음가는 요리사로 임명한다.

백시진의 요리는 윤사해의 입맛에도 맞는 모양이었다.

윤사해가 백시준의 김밥을 끊임없이 입에 넣으며 그에게 물었다.

“백시준, 꽃님반은 청팀이지?”

“응, 청팀이야. 지금 백팀에 50점가량 지고 있어.”

“남은 경기를 모두 이기면 손쉽게 우리 리사의 팀이 이기겠군.”

“보자, 남은 경기가 이제…….”

저기요, 애들 운동회에 너무 진심이신 것 아닙니까?

윤사해와 백시준이 ‘어떻게 하면 남은 경기를 모두 청팀의 승리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하여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윤리오와 윤리타가 철들지 못한 어른들을 좀 말려 주면 좋으련만.

“아버지, 사회자 몰래 스킬을 사용해서 백팀의 발목을 붙잡는 건 어떨까요?”

“심판 매수는 어때요?”

함께 토론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신성한 운동회를 망치려고 한다. 나는 질색하는 얼굴로 저세상에게 속닥거렸다.

“세상이 오빠, 좀 말려 봐.”

“말릴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없을 것 같아.

***

엎치락뒤치락하던 점수는 줄다리기에서 동점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남은 경기는 계주 하나.

나는 도윤이와 함께 청팀의 마지막 계주 선수로 운동장에 나섰다.

“리사,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단다. 질 것 같으면 아빠가 알아서 처리해 주마.”

도대체 뭘……?

윤사해에게 그냥 얌전히 내가 뛰는 거나 구경하고 있으라고 할까 하다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하지만, 아빠. 아빠가 나서는 일은 없을 거야.

내가 다 이겨먹을 거거든!

그렇게 다짐하며 출발선에 섰을 때였다. 운동장의 라인 밖으로 모여 있는 사람들 중 익숙한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운동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

서차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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