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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96)화 (96/500)

96화. 찬 이슬이 맺히기 전에(1)

나를 꼭 이기고 말겠다는 단아의 호언장담과는 다르게 승리자는 나였다.

그리고 나는.

“윤리사, 네가 계주 선수로 뽑혔다고? 거짓말.”

“거짓말 아니거든?”

자라나리 유치원 꽃님반의 계주 선수로 뽑혔다.

그런데 저세상, 저 망할 주인공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그렇다면 내 실력을 보여 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어때, 세상이 오빠? 리사랑 달리기 시합 해 볼래?”

“아니, 싫어.”

저세상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을 때였다. 나와 저세상의 간식을 챙겨 주던 윤리오가 물었다.

“리사, 운동회가 언제라고?”

“10월 6일! 그리고 이거!”

내가 윤리오에게 준 건, 유치원에서 받아 온 운동회 안내문이었다. 윤리오가 안내문을 받아 읽고는 활짝 웃었다.

“토요일에 하네? 다행이다. 평일에 했으면 아버지만 참석했을 텐데.”

“아빠는 오늘 늦게 와?”

“응, 그렇다고 하시네.”

윤리오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와 저세상의 잔에 우유를 가득 따라 줬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영양가 높은 우유를 단숨에 비웠다.

안 그래도 또래 애들보다 작은 키, 어서 쑥쑥 자라야했다.

옆에 있는 저세상보다 더!

그렇기에 나는 입가를 닦고는 윤리오에게 잔을 내밀었다.

“오빠, 한 잔 더!”

“저도요!”

저세상이 나를 따라 자신의 잔을 윤리오에게 내밀었다.

윤리오는 이상한데서 승부욕을 발휘 중인 우리들의 모습에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였다.

“윤리오, 나 왔어! 리사는 제대로 데리고 왔어?”

윤리오의 심부름을 갔다던 윤리타가 돌아왔다.

“리타 오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윤리타에게로 달려갔다.

“리사 오늘 꽃님반에서 달리기 시합 1등해서 계주 선수로 뽑혔다?”

“정말? 윤리사, 네가?”

윤리타가 나를 번쩍 안아 들고는 윤리오에게 물었다.

“운동회 하나 보네? 언제 한대?”

“다다음주 토요일. 아버지한테 말씀드려야겠어.”

“이번에는 아빠도 참석하겠지?”

“응, 주말에 해서 다행이야.”

윤리오의 말에 윤리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하긴, 작년에는 평일에 해서 우리 못 갔었잖아. 그때 서 비서님이랑 혜원이 누나가 리사 보러 갔었지?”

“응, 그랬을 거야.”

아니, 잠깐.

“아빠는 작년에 리사 운동회에 안 왔었어?”

“응, 리사. 기억 안 나……?”

“아니, 나. 깜빡했어!”

안 난다고 하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내 말에 윤리오가 내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미소 지었다.

“올해만큼은 아버지도 리사 운동회에 참석하실 거야. 꼭.”

그러지 않는다고 하면, 억지로라도 윤사해를 내 운동회에 참석시키게 만들 생각인 것 같았다.

아니야, 리오 오빠. 괜히 힘 쓸 필요 없어. 윤사해가 참석 못 하겠다고 하면 뺨 때릴 생각이거든.

다행히도 윤사해는 내 운동회 소식을 듣고는 흔쾌히 말했다.

“당연히 참석해야지. 일은 서 비서에게 맡기면 된단다.”

윤사해의 뺨을 때릴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서차웅이 굉장히 불쌍해지는 순간이었다.

서 비서님, 주말 출근 미리 화이팅이에요!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운동회를 코앞에 두게 됐다.

그리고 우리 자라나리 유치원의 아이들은.

“선생님! 백도윤 그냥 빼면 안 돼요? 춤 엄청 못 추는데!”

“맞아요! 백도윤 계속 틀리고 있단 말이에요!”

운동회 날에 부모님께 선보일 율동을 연습 중이었다.

아이들의 외침에 도윤이가 울상을 지었다. 나는 그런 도윤이를 보호하며 아이들에게 외쳤다.

“다들 왜 그래? 도윤이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 중인데!”

비록, 아무리 연습해도 도윤이의 두 팔과 두 다리는 따로 움직이고 있지만 말이야!

그래도 우리 도윤이는 지금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고!

“그래, 얘들아. 도윤이도 몸이 안 따라 줘서 얼마나 속상하겠니?”

단예가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도윤이의 옆에 섰다.

단아와 단이도 단예의 양 옆에 서서는 도윤이에게 손가락질하던 아이들을 째려보았다.

잘한다, 우리 세쌍둥이들!

“아니… 우리는 그냥…….”

“거기서 한 마디만 더 해 봐. 춤을 아예 못 추게 만들어 줄 테니.”

“히익!”

단아야, 너무 무섭잖아.

그래도 효과는 좋았다. 아이들이 다시는 도윤이를 놀리지 않게 된 거다.

하지만 도윤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코를 훌쩍였다.

같은 반 친구들의 말에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우리 도윤이, 뚝! 저런 말에 상처받을 거 없어!

나는 금방에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도윤이의 손을 꼭 잡았다.

“도윤아, 괜찮아! 리사가 운동회 날에 도윤이를 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게!”

“어떻게……?”

그건 운동회 당일이 되면 알게 될 거야.

나는 도윤이를 향해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내가 도윤이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도윤이가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리사, 무서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무섭다니. 실례야, 도윤아.

무슨 생각인지는 영업 비밀이라서 가르쳐 줄 수가 없어.

암 쏘 쏘리, 마이 프렌드.

***

10월 6일.

자라나리 유치원의 가을 운동회가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구름 한 점이라고는 없는 맑은 하늘 아래에서 윤사해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운동장에서 가장 앞줄에 서 있는 하나뿐인 딸아이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리사 찍고 올게요!”

“돗자리 펴고 계세요, 아빠! 세상아, 가자!”

“네? 네, 형……!”

쌍둥이 아들들과 아들처럼 여기는 아이가 운동장으로 나간 후, 윤사해는 가지고 온 돗자리를 펼쳤다.

그렇게 그가 딸아이의 운동회를 즐길 만반의 준비를 다했을 때였다.

“오랜만이야, 사해야.”

“백시준.”

윤사해의 오랜 친구가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윤사해는 백시준의 인사에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시준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윤사해에게 안부를 물었다.

“잘 지냈어? 최근 한태극 의원님과 재미난 일을 벌이고 있다며?”

“금이현 본부장과도 함께 하고 있는 중이다만.”

“금이현 본부장님께서도 함께 하고 계시는 거 당연히 알고 있지.”

백시준이 선하게 웃고는 윤사해가 깔아 놓은 돗자리에 자리를 붙이고 앉았다.

“적당히 해 줘. 청 가문을 들쑤시면 안 좋다는 거 알잖아?”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할 거다. 그보다 일어나.”

“싫어. 여기서 운동장 진짜 잘 보이네? 이쪽으로 자리 옮겨야겠다.”

“누구 마음대로.”

윤사해가 오만상을 찌푸리고는 백시준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이었다.

-지금부터 자라나리 유치원 꽃님반 친구들이 준비한 깜찍한 율동이 시작되겠습니다!

윤사해는 반쯤 몸을 일으켰던 백시준을 저도 모르게 밀치고선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윤사해! 야!”

엉덩방아를 찧었던 백시준이 뒤늦게 윤사해를 따라갔고.

-어? 잠깐, 노래가…! 멈추세요! 노래 끊어 주세요……!

눈앞에서 펼쳐지는 아이들의 완벽한 군무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완벽했다.

나는 뿌듯하게 웃으며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고 있던 두 팔을 내렸다.

바운스 스킬, 생각보다 쓸 일이 많네? 은근 유용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게 여기는 건 나뿐인 것 같았다.

음악이 뚝 끊기기 무섭게 곳곳에서 소란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앙! 엄마!”

부모를 찾는 아이들과.

“선생님! 애들한테 이런 춤을 시키시면 어떻게 해요!”

“성운아! 무릎 괜찮아? 선생님! 애들 무릎 다치면 어쩌려고 그런 아이돌 자세를 취하게 만든 겁니까?!”

그런 아이들을 달래며 선생님께 항의하는 부모님들.

음, 아무래도 우리 바운스 스킬이 너무 열심히 일해 줬나 보다.

그래도 뿌듯했다.

“도윤아!”

“아빠! 나 봤어? 나 완전 잘 췄지? 동영상은 찍었어? 빨리 시진이 삼촌한테 보내 줘!”

도윤이가 저렇게 해맑게 웃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 윤사해는 어디 있지? 윤리오랑 윤리타도 안 보이네?

분명 노래 시작하기 전에 저쪽에서 저세상이랑 같이 있는 거 봤는데.

보이지 않는 가족들의 모습에 괜히 두 뺨을 부풀리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리사.”

“아빠!”

윤사해가 저세상의 손을 잡고서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대로 윤사해의 품에 쏙 안기고는 배시시 웃었다.

“아빠, 리사 어땠어?”

“정말 멋졌단다.”

윤사해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웃음을 지었다. 그와는 달리 저세상은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에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저세상에게 물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리사한테 뭐 불만 있어, 세상이 오빠?”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저세상이 흙먼지가 가득 묻어 있는 내 무릎 쪽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여기 애들은 아이돌이 꿈인 건가 싶어서.”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저세상의 개소리를 무시하고서 윤사해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빠.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는 어디 갔어? 분명 저기서 리사 찍고 있었는데 사라졌어!”

윤사해가 말없이 손가락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각종 음향 장비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었는데.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면 동요가 EDM으로 변질돼요?!”

그곳에서 열렬히 항의 중인 윤리오가 보였다. 윤리오뿐만 아니라 윤리타도.

“맞아요! 이런 중요한 날에 장비 점검은 똑바로 하셨어야죠!”

암만 생각해도 우리 바운스 스킬이 너무 열심히 일해 준 것 같았다.

오빠들, 진정해.

리사는 즐거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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