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마냥 평화롭지는 않은(3)
키 110cm 미만의 아이들은 타지 못하는 놀이기구.
그건 바로 CW 테마 파크의 마스코트 모양을 하고 있는 대관람차였다.
하늘 높은 곳에서 보이는 테마 파크의 전경에 절로 입술이 벌어졌다.
그렇게 멋진 풍경을 구경 중인데, 저세상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내게 물었다.
“아저씨랑 한태극 의원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중일까?”
“한태극 의원님.”
우리 주인공님께서 여기에 나만 있는 줄 아나 보다.
저세상이 몸을 움찔거리고는 말을 고쳤다.
“그래, 한태극 의원님. 저 두 사람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중일까? 아는 거 있어, 윤리사?”
“리사는 몰라.”
짐작 가는 건 있었지만 말이다.
저세상의 의문에 답해 준 사람은 단예였다.
“던전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중일 거예요.”
“던전?”
“네, ‘팔라크의 둥지’라고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 나타난 S급 던전인데…….”
“나도 알아.”
그런데 망할 주인공님께서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가던 단예의 말을 끊어 버렸다.
“그런데 그게 왜? 그 던전은 청 가문의 소유가 됐다고 했잖아.”
“어른들의 사정이라는 거겠죠.”
그리 말한 사람은 단이였다.
단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옆에 앉아 있던 단아가 재잘거렸다.
“맞아! 그러니까 어려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놀자!”
“여기서 어떻게 놀자는 거야?”
“놀이 기구에서 내린 다음에 놀자는 거지! 저세상, 너는 척하면 척이란 말도 몰라?”
당연히 알고 있는 저세상은 불만 어린 얼굴을 보였다. 단아가 자신에게 계속 반말을 사용하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저세상을 단예와 단이가 달랬다.
“세상이 오빠가 너그럽게 봐주세요. 셋째가 아직 철이 없으니까요.”
“맞아요, 세상이 형. 단아를 귀엽게 봐주시기를 부탁드릴게요.”
단예와 단이가 저렇게 나오니 저세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내게 속닥거렸다.
“나는 쟤가 정말 마음에 안 들어.”
“괜찮아, 세상이 오빠. 단아도 네가 마음에 안 들 거야.”
저세상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하하! 내가 네 편을 들어줄 줄 알았냐, 저세상?!
그러는 사이 대관람차의 운행이 끝났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려 달려갔다.
“아빠!”
“아저씨!”
나는 윤사해에게로.
“할배!”
단아를 비롯한 세쌍둥이는 한태극에게로 말이다.
윤사해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리사,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았니? 세상이도?”
“네, 아저씨. 재미있었어요.”
영양가 없는 목소리였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빠, 있잖아? 저거 타고 높이 올라가는데……!”
“윤리사!”
윤사해에게 내가 본 것을 말해 주려는데 단아에게 손이 덥석 붙잡혔다.
“다음은 저기! 저거 타러 가고 싶어! 가자, 윤리사!”
“어엇?”
그러고는 내달리는데, 내 손을 붙잡은 힘이 얼마나 강한지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단아야! 리사를 그렇게 데리고 뛰어가면 어떻게 해!”
단아는 자신을 부르는 단이를 향해 혀를 날름거려 줄 뿐, 달리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나는 뒤를 흘긋거렸다가 단아의 손을 꼭 끌어 잡았다. 윤사해가 타오르는 시선으로 단아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러다 눈빛만으로 우리 단아의 둥근 뒤통수를 뚫어 버릴 것 같아 나는 친구의 손을 꼭 잡고는 내달렸다.
“어라? 윤리사! 천천히!”
단아가 천천히 가 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아주 힘껏 말이다.
열심히 달려 도착한 곳은 회전목마의 앞이었다.
“우와, 윤리사! 진짜 빨라! 지금까지 느림보인 줄 알았는데!”
느림보인 줄 알았다니! 나는 달리기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뿌듯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리사가 좀 빨라.”
“흥! 두고 봐! 다음번에는 내가 이길 테니까!”
단아야, 우리 달리기 시합 했던 거 아니지 않니?
애매하게 웃는데 단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단예랑 한단이는 아직도 안 왔어? 저세상도?”
“나는 왔어. 그리고 한단아, 너 자꾸 이름으로 부를래?”
“히익!”
가까이서 들려온 저세상의 목소리에 단아가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뭐, 뭐야! 저세상, 너 언제 온 거야?! 오는 거 못 봤는데!”
“당연히 못 봤겠지.”
저세상의 말대로 단아는 그가 우리에게 오는 것을 보지 못했을 거다.
“리사.”
“아빠!”
아무래도 윤사해가 자신의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움이는 스킬인 <[S, 숙련 불가] 부리는, 영(影)>.
그 스킬을 사용해 내가 있는 곳까지 단숨에 이동한 것 같았으니까 말이지.
윤사해는 그대로 나를 안아들고는 말했다.
“그렇게 뛰어가면 어쩌니? 길이라도 잃으면 어쩌려고.”
“히힛! 아빠도 저거 같이 타자!”
단아와 함께 도착한 곳은 회전목마의 앞이었다.
윤사해가 운행 중인 회전목마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같이 타고 오빠들 데리러 가자꾸나. 그렇게 퍼레이드를 보고.”
“집에 돌아가자고?”
“그래.”
한태극과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끝난 모양이었다.
문득, 단예의 말이 떠올랐다.
‘던전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중일 거예요.’
윤사해는 팔라크의 둥지와 관련하여 한태극과 이야기하기를 꺼려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와 던전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니…….
‘이유가 뭘까?’
그런 궁금증이 들었지만 나는 그저 윤사해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빠.”
“음?”
“무리하지 마.”
윤사해가 몸을 작게 움찔거리더니 이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무리하지 않으마.”
나는 윤사해가 내뱉은 말에 안심하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그러는데 아래쪽에서 불퉁한 목소리가 들렸다.
“윤리사, 아저씨가 무리하는 게 싫으면 아저씨 좀 걱정시키지 마.”
저세상이었다.
나는 눈가를 찡그리고는 저세상에게 빼액 소리를 질렀다.
“세상이 오빠는 한글 공부나 제대로 해! 아직도 받아쓰기 50점이지? 리사는 다 알아!”
“50점 아니거든?! 70점 넘었거든!”
50점이나 70점이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저세상과 서로 으르렁거리는데 윤사해가 우리 둘을 말렸다.
“자자, 둘 다 그만. 회전목마 타러 가자꾸나. 의원님도 손주 분들과 함께 타실 겁니까?”
어느새 한태극이 도착해 있었다.
한태극은 단예와 단이의 손을 잡고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윤리사랑 타고 싶은데!”
단아는 한태극을 거부했다.
“한단아, 이 녀석아! 잔말 말고 이리 오거라!”
곧바로 한태극에게 붙잡혔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사이좋게 회전목마에 탑승했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 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회전목마에서 내린 뒤에 향한 곳은 퍼레이드가 열린다는 장소였다.
“윤리사~! 세상아~!”
“아버지는 안 보이나 봐?”
“보이거든?! 아빠! 여기요!”
윤리오와 윤리타는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곧장 윤사해의 품에서 내려가 윤리오와 윤리타에게로 달려갔다.
“리오 오빠! 리타 오빠!”
“리사, 재미있게 놀았어?”
“응!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는?”
“우리도 재미있게 놀았어.”
윤리오가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곧 퍼레이드가 열린다니까 오빠랑 같이 보자.”
그러고는 목마를 태우는데, 나는 까르르 웃으며 윤리오의 머리를 꼭 끌어 잡았다.
“리오, 조심하렴.”
“걱정마세요, 아버지.”
윤리오가 그렇게 말하고는 함박웃음을 걸었다.
“나는 세상이 목마 태워 줘야지.”
“네? 리타 형, 저 괜찮은데……!”
하지만 윤리타는 기어코 저세상을 목마 태워 줬다. 그 모습을 단아가 부럽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단아야, 리사가 빨리 커서 목마 태워 줄게.
그런 다짐을 할 때였다.
“퍼레이드가 여기서 열릴 거란 말인가, 윤사해 길드장?”
“네, 그리고 장천의 회장이 여기가 명당자리라고 하더군요.”
“그 뺀질이 놈을 만났나 보군.”
“뺀질이…….”
윤사해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가 한태극에게 물었다.
“의원님은 장천의 회장을 만나지 못하셨나 봅니다? 진작 만났을 줄 알았는데.”
“안 그래도 오늘 만날 예정이라네. 예의, 자네와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란 말씀이시군요. 잘 알겠습니다.”
윤사해가 한태극의 말을 끊은 순간이었다.
펑! 퍼벙!
“우와……!”
퍼레이드가 화려한 막을 올렸다.
***
푸른 빛을 내던 제2 CW 테마 파크의 돔 형태의 천장이 맑기 그지없는 하늘을 비추었다.
장천의는 그 하늘 아래 펼쳐지는 퍼레이드의 행렬에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제2 CW 테마 파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의 최고층.
그곳에서 그는 퍼레이드를 구경 중이었다.
시야 앞에 여러 개의 윈도우 창을 펼쳐 놓은 채로 말이다.
장천의가 윤사해에게 알려 준 명당자리는, 테마 파크 내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에 선명하게 얼굴이 잡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즐거우신 것 같아 다행이군.’
장천의가 윤사해가 가족과 함께 퍼레이드를 구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잔을 들던 순간이었다.
“안녕, 장천의 회장.”
소리 없이 다가온 누군가가 장천의에게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