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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87)화 (87/500)

87화. 축축하게 젖어가는(1)

장천의를 만나기로 한 곳은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제2 CW 테마 파크로, 국내 최대 규모의 놀이 공원이라고 했다.

놀이 공원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겠지만, 테마 파크 내에는 온갖 놀이 기구가 즐비했다.

윤리타의 말로는, 놀이 기구뿐만이 아니라 유명 각성자들 간에 일어난 전투를 VR로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도 있다고 했다.

“우와! 전투라면 어떤 거야?”

“예를 들면, 아래아의 최설윤 길드장님께서 인신매매로 악명을 떨쳤던 지하 길드인 아드리체를 제압하던 광경을 볼 수 있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현재 AMO를 이끄는 강산에 본부장님께서 현역으로 계실 때, 지하 길드원들을 잡았던 순간의 상황을 보여 준다거나 그렇다고 해.”

윤리오와 윤리타가 신난 얼굴로 주거니 받거니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윤리오와 윤리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최애님의 이름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빠! 리사는 놀이 기구 대신 VR 체험장에 가고 싶어.”

“안 된단다, 리사.”

“왜? 왜 안 되는데!”

체험관이란, 자고로 아이들의 성장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리오와 리타가 말한 체험관은 15세 이상의 아이들만 입장이 가능한 터라.”

……곳이 아니었나 보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어떤 광경을 보여 주기에 15세 이상의 청소년들만 입장이 가능한 걸까?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이곳에 가 보자꾸나.”

윤사해는 그렇게 말하면서 제2 CW 테마 파크의 안내 책자를 펼쳤다.

그가 가리킨 곳은.

[뽀쟉뽀쟉 볼 풀존]

알록달록한 볼(Ball)이 잔뜩 깔려있는 풀존이었다.

입장 가능한 나이는 9세까지.

오직, 아이들만을 위한 놀이 기구였다.

윤사해가 가리킨 놀이 시설에 저세상이 영혼이라고는 하나도 담겨 있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아저씨. 어디든 좋아요.”

말 한 번 잘한다 싶었다.

그나저나 저세상, 따라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장천의라는 이름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한 것치고는 오늘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어쨌든 간에 우리는 제2 CW 테마 파크에 입성했다.

가을 장대비가 억수와 같이 내리고 있는 짓궂은 날씨였지만, 테마 파크 내부는 평화로웠다.

국내 최대 규모의 놀이 공원이라는 제2 CW 테마 파크는, 모든 시설이 실내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우와! 윤리오, 저기 봐!”

윤리타가 높디 높은 천장을 가리키며 감탄했다.

은은하게 푸른빛을 내는 돔 형태의 천장에는 온갖 종류의 물고기들이 떠다니는 중이었다.

나는 천장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이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것들이란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구현된 이미지라고 해도 마치, 바다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윤리오가 천장을 빤히 쳐다보며 신기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천장에 도대체 뭘 설치해 놓은 거지? 평범한 LED 조명을 깔아 둔 것 같지는 않은데.”

“던전에서 채굴한 광석 아닐까? 유리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고 배웠잖아.”

윤리오와 윤리타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써먹으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윤사해는 그런 아들들이 흐뭇한지,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윤리오와 윤리타의 지식 탐구는 오래가지 않았다.

“헐, 대박! 저거 홍콩 네버랜드에서만 탈 수 있는 거라고 했는데!”

“저기도 봐봐, 윤리타. 일본이랑 중국에만 있다는 데자드도 있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놀이 기구에 둘 다 눈이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윤사해가 그런 아들들의 모습에 웃으며 말했다.

“리오, 리타. 리사랑 세상이는 내가 보고 있을 테니 신나게 놀고 오렴.”

그 말에 윤리오와 윤리타가 동시에 윤사해를 쳐다봤다.

“아버지, 안 힘드시겠어요?”

“맞아요, 힘드실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윤리오와 윤리타는 당장에라도 놀이 기구가 즐비한 곳으로 뛰어갈 기세였다.

다른 게 아니라, 둘의 다리는 이미 놀이 기구가 모인 방향으로 향해 있었다.

윤사해도 그것을 본 모양인지,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리사랑 세상이가 얼마나 얌전한지 알잖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윤리타가 곧장 내달렸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인사를 남기고서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

윤리오는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지, 쉽사리 걸음을 떼지 못했지만.

“윤리오! 아빠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와!”

윤리타의 재촉에 윤리오는 쭈뼛거리다가 몸을 돌렸다.

“아버지,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셔야 해요! 애들 손 꼭 잡고 다니고요! 아셨죠?”

“그래, 리타랑 사이좋게 놀다 오렴.”

윤리오는 그렇게 윤리타와 함께 놀이 기구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두 사람이 멀어지고, 나는 윤사해의 손을 꼭 끌어 잡고서 그에게 물었다.

“아빠, 천의 삼촌은?”

“저녁에나 볼 수 있을 거란다. 지금은 좀 바쁘다는 구나.”

하긴, 가오픈이라고 하더라도 엄연히 개장 첫 날이었다.

장천의는 제2 CW 테마 파크의 실소유자라고 했으니, 지금쯤 각계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 테지.

“그럼, 우리는 조금 전에 말했던 곳으로 가 볼까?”

“응!”

“네에.”

저세상이 말끝을 길게 늘어뜨렸다. 볼 풀존에서 정말 더럽게 놀기 싫나 보다.

하지만 너는 아홉 살이란다, 주인공님. 내년이면 거기서 못 놀 텐데, 이번에 신나게 놀아야지.

나는 저세상을 향해 조소를 보내며 윤사해와 발맞추어 걸었다.

저세상이 내 얼굴에 가득 그려진 비웃음을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는 게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저세상을 향해 더욱 환하게 웃어 줄 뿐이었다.

그때였다.

“네! 이제 남은 경품은 단 두 개입니다! 추첨으로 뽑을까 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가 볼까 해요!”

무대가 조성되어 있는 넓은 광장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듣기로는 경품 추첨 행사가 한창이었나 보다.

“무대 위로 올라와서 저를 즐겁게 해 주신다면 두 가지의 경품 중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무대에 남은 경품은 총 두 개였다.

하나는 ‘CW-참 좋은 사진관’의 가족사진 이용권이었고, 다른 하나는 ‘제2 CW 테마 파크 연간 이용권’이었다.

전자는 모르겠지만, 후자는 가지고 싶었다. 윤리오랑 윤리타가 굉장히 좋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을 위해 무대 위로 올라갈 용기는 없었다.

그렇기에 가던 길을 계속 가려는데, 윤사해가 걸음을 멈췄다.

“흐음.”

윤사해의 시선이 향한 곳은, ‘CW-참 좋은 사진관’의 가족사진 이용권이었다.

최대 5인.

우리 가족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경품이었다. 나는 윤사해를 한 번, 사회자가 들고 있는 경품을 한 번.

그렇게 두 번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는 윤사해에게 물었다.

“아빠, 저거 가지고 싶어?”

“응? 아니, 괜찮단다.”

윤사해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순간 사회자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없나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다시 추첨을…….”

“저요! 나 할 거야!”

나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었다.

“리사?”

물론 무대 위로 올라갈 용기는 없었지만!

하지만 나의 차애님께서!

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아빠가 가지고 싶다는데!

이 소녀, 효도 한 번 제대로 해 보겠습니다.

“네, 거기 친구 올라와 주세요!”

사회자가 나를 지목했다. 나는 곧바로 무대 위에 올라가는 대신, 저세상의 손을 꼭 끌어 잡았다.

“나는 왜?! 너 혼자 올라가!”

그래,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나는 윤사해가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저세상에게 속닥거렸다.

“세상이 오빠, 아빠가 저게 가지고 싶대.”

나는 ‘CW-참 좋은 사진관’의 가족사진 이용권을 가리켰다. 저세상이 내가 가리킨 것을 보고는 웅얼거렸다.

“그… 그래서 뭐 어쩌라고…….”

오호라, 그리 나오시겠다?

나는 얼굴 가득 울상을 지었다.

“세상이 오빠는 리사랑 같이 아빠를 즐겁게 해 주기 싫나 보구나? 그래, 알았어. 리사 혼자 올라가야지.”

저세상이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것도 잠시.

저세상이 내 손을 꼭 잡고선 먼저 걸음을 옮겼다.

“좋아! 가자, 가!”

나이스.

“세상아! 리사!”

“아빠, 다녀올게!”

윤사해가 우리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나와 저세상은 날래게 다리를 움직여 무대 위로 올라갔다.

“우와! 귀여운 친구들이 올라왔네요! 여러분, 박수 주세요!”

짝짝짝!

광장을 가득 채웠던 박수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사회자가 우리에게 물었다.

“친구는 이름이 뭐에요?”

“리사요, 윤리사!”

“옆에 있는 친구는요?”

“……세상이요.”

“세상이! 두 친구 모두 이름이 정말 예쁘네요!”

저세상의 성씨를 알게 된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걸요.

어쨌거나 이미 벌어진 일.

“친구들, 아저씨를 즐겁게 만들 수 있겠어요?”

“네!”

자라나리 유치원에서 그간 배워 온 율동으로 무대를 휘어잡아 보련다.

안 되면 사람들 몰래 사회자의 뺨이라도 때려 버려야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F, 숙련 가능] 두근거리는 내 심장의 바운스를 느껴 봐!>가 활성화됩니다.】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창에 나도 모르게 말했다.

“시바?”

“네? 뭔 봐요?”

아니, 그게.

【<[F, 숙련 가능] 두근거리는 내 심장의 바운스를 느껴 봐!>】

-원하는 대상 혹은 집단과 함께 무대를 장악합니다.

※ 발동 조건: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기십시오.

뭐, 이딴 스킬이 다 있어……?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혔다. 아니, 그보다 스킬이란 게 원래 이딴 식으로 얻을 수 있는 거야?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얻었을 때와는 상황이 너무 다른데?

하지만 당혹감에 사로잡혀 있을 여유는 없었다.

“리사 친구, 지금 뭘 보라고 한 거예요?”

“자기를 제대로 봐 달라고 한 거예요. 엄청난 걸 보여 주겠다고.”

망할 저세상.

그렇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이제부터 한 마리의 위험한 짐승이 돼서 이 무대를 장악해 보겠다.

물론, 저세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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