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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74)화 (74/500)

74화. 메마른 땅에도 꽃은 핀다(3)

“그래, 찾지 못했다고…….”

〖응, 아주 감쪽같이 사라졌어. 10년 전이었나? 네 아드님들께서 사라졌을 때와 똑같아.〗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키즈 카페는 현재 지독히도 고요했다.

아이들 대신 카페 내에 앉아 있는 사람은 윤사해.

이매망량의 주인인 그였다.

그와 계약을 맺고 있는 미지 영역의 거주자, 랑야가 윤사해의 앞에 마주 앉고는 말했다.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고, 그렇기에 자취를 쫓을 수도 없는. 뭐 그런 상태야.〗

윤사해가 얼굴을 찌푸렸다.

10년 전, 쌍둥이 아들들이 납치됐을 때와 상황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서차윤이 가지고 있는 스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지.’

서차윤의 스킬이 해제된 후, 서커스의 붉은 천막을 쫓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었다.

그러나 서차윤은 죽은 지 오래였다.

‘도대체 누가…….’

윤사해가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다. 랑야는 그런 윤사해의 표정을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고, 윤사해. 네 따님의 성격으로 보건대, 무사히 있을 것 같거든.〗

“추측으로는 안 된다만.”

〖그래, 말을 고치지.〗

랑야가 입꼬리를 올렸다.

〖윤사해, 네 따님께서는 다친 곳 없이 무사할 거다. 그러니 표정 좀 풀어.〗

랑야의 지적에 윤사해는 험악하게 구기고 있던 표정을 애써 갈무리했다. 랑야가 그에 만족스러워하며 물었다.

〖그보다 윤사해, 너는 왜 엄한 데 화풀이를 해 놨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뛰놀았던 키즈 카페 내부에는 여러 장정이 곳곳에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윤사해가 미간을 살짝 좁히고서는 말했다.

“화풀이가 아니라 단지 저들의 잘못을 따진 것뿐이라네.”

쓰러져 있는 장정들은 모두 한태극이 세쌍둥이 손주를 위해 붙여 놓았던 경호원들이었다.

오늘만큼은 한단예와 한단아, 그리고 한단이의 경호뿐만 아니라 그들과 만나는 다른 세 아이의 경호 역시 맡은 참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윤사해가 짧게 혀를 찼다. 랑야는 미동조차 않는 경호원들을 보고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너무 과하게 따지셨는데?〗

“랑야.”

〖그래, 입이나 다물고 네 따님이나 한 번 더 찾으러 나가보지.〗

랑야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참이었다.

“길드장님.”

“사야.”

엉망이 된 키즈 카페 안으로, 랑야의 붉은 눈을 꼭 빼닮은 여자가 들어섰다.

사야는 그대로 자리에 멈춰선 랑야를 쳐다도 보지 않고 윤사해에게 말했다.

“세상 도련님을 댁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고 왔습니다.”

“세상이는 좀 괜찮던가? 애가 많이 놀란 것 같았는데.”

하나뿐인 딸아이, 윤리사가 사라졌음을 가장 먼저 알린 사람이 바로 저세상이었다.

제게 전화를 걸던 아이의 목소리가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는 것을, 윤사해는 기억하고 있었다.

윤사해의 걱정 가득한 물음에 사야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기는 했습니다만, 댁에 도착하고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행이었다.

윤사해가 한 시름 놓았다는 얼굴로 다른 것을 사야에게 물었다.

“리오와 리타는 어떻던가?”

“길드장님께 데려가 달라고 하시더군요. 그것도 안 되면 밖으로 나가 리사 아가씨를 찾게라도 해 달라며 우셨습니다.”

윤사해가 자괴감으로 얼룩진 얼굴을 한 손으로 덮었다.

“길드장님,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리오 도련님과 리타 도련님께서도 이해하실 겁니다.”

윤사해의 보라색 두 눈이 사야에게로 향했다. 사야는 제게로 향한 시선에 여전히 미소를 지은 낯으로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께서 두 분의 안전을 위해 댁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을요. 그러니 아버지.”

그녀의 붉은 눈이 표정을 굳힌 채 서 있는 랑야에게로 향했다.

“리사 아가씨를 찾으러 다녀오시지요. 그러겠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만.”

〖허어…….〗

랑야가 기가 차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리고는 단번에 사야가 있는 곳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사야 앞에 멈춰선 랑야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선 말했다.

〖나를 아직 ‘아비’ 취급해 주어서 고마워, 따님.〗

“천만의 말씀을요.”

사야는 고개를 살짝 내려, 랑야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저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랑야는 사납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뿐, 그는 자신의 딸에게 아무 말도 않고 곧장 키즈 카페를 나가 버렸다.

사야는 랑야의 인기척이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에 윤사해에게 고개를 살짝 꾸벅이며 말했다.

“못 볼 꼴을 보여 드려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하지만 아버지 말씀대로 리사 아가씨는 무사하실 겁니다.”

“랑야와 내가 이야기하고 있던 것을 듣고 있었나 보군, 사야.”

“네, 듣기 싫어도 들리더군요. 일부러 엿들으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사야가 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어쨌든, 아버지가 괜히 저런 말을 하신 건 아닐 겁니다. ‘감’ 하나는 좋으신 분 아닙니까?”

윤사해 역시 공감하는 바였다.

“그러니 길드장님께서는 마음을 추스르시고 리사 아가씨를…….”

“찾으러 가야지. 랑야에게만 맡겨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윤사해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아이의 실종과 관련하여 일을 벌였을 거라고 추측되는 여러 곳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하나.

“유랑단의 녀석들을 쫓게. 탈쟁이 놈들은 건드리지 말고.”

윤사해는 사야에게 그 말만을 남기고선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

저기서 윤사해가 모습을 드러내면 좋겠다. 낡은 문을 열면서 나를 데리러 왔다고 하는 거야.

나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장지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각시는 내 손등의 표식을 지우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자신 이전의 각시들의 기억을 통해 방법을 찾아볼 거라고 하는데, 혼자여야만 그럴 수 있단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밖에 뭐 있어? 뭐 없으면 빨리 문 닫아, 꼬마. 볼 것도 없는데 문은 왜 연 거람?”

양반과 단둘이 남겨진 상태였다.

나는 뚱한 얼굴로 장지문을 닫고는 양반에게 말했다.

“아빠는 지금쯤 여기 치려고 준비 중일 거예요.”

“뭘 쳐?”

“유랑단이요, 유랑단! 오빠나 다른 탈쟁이들 목을 치려고 움직이고 있을 거라고요!”

“글쎄다, 과연 그럴까?”

양반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윤사해라면 우리를 충분히 노릴 수 있는 강자지. 윤사해뿐만 아니라, 아래아의 최설윤도. 그리고 장천의와 로저 에스테라까지.

윤사해와 최설윤, 장천의, 로저 에스테라.

이들은 4대 길드라고 하여, 모두가 우러러보는 길드를 이끄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윤사해와 최설윤은 국내에 몇 없는 S급 각성자이기도 했고.

“하지만 봐봐. 내가 이곳에서 나고 이렇게 자랄 때까지 ‘유랑단’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았어.”

양반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내게 물었다.

“왜 그런 것 같아, 꼬마?”

“으음, 아빠가 봐주고 있어서?”

사실, 양반이 내게 던진 질문은 『각성, 그 후』에서 저세상이 이매한테서 받은 질문이기도 했다.

「“우리의 명맥이 왜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을까요? 4대 길드의 사람들은 왜 저희를 소탕하지 않고요.”」

무작정 유랑단을 엎으려던 저세상이 그들의 존재에 관해 처음으로 혼란을 느끼던 순간이었을 거다.

저세상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는지는 모른다. 『각성, 그 후』에서는 서술된 적이 없거든.

이곳을 빠져나간 후에 저세상에게 슬쩍 그에 관해 떠볼까 싶었다.

작중에서 저세상은 내 최애님에게 저 질문의 답을 구한 것 마냥 이매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내 최애님께서는 저세상에게 아무런 답을 해 주지 않고, 그 직후에 실종되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꼬마야, 너는 네 아버지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아.”

“언제는 우리 아빠가 강자라면서요? 오빠랑 다른 탈쟁이들 목을 충분히 칠 수 있는.”

“그렇게는 말 안 했거든?”

양반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구시렁거렸다.

“됐다, 내가 너한테 뭘 말해 주겠냐? 말해 줘 봤자 내 입만 아프지.”

확, 뺨을 때릴까 보다.

자고로 생각한 것은 실행으로 옮겨야하는 법.

양반의 뺨을 향해 슬그머니 손을 올리는데, 그가 제 앞에 놓여 있던 호박엿을 내게 내밀었다.

“이거나 먹어, 꼬마.”

“자꾸 꼬마라고 하지 마세요! 리사한테는 ‘윤리사’라는 예쁜 이름이 있거든요?”

“어쩌라고. 그리고 네 이름보다 향화의 이름이 더 예뻐.”

나는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리고는 호박엿을 입에 넣었다.

저세상이 옆에 있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먹을 게 넘어가느냐고 타박했을 것 같지만…….

어떻게 해, 배가 고픈 걸?

양반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향화도, 그리고 나도. 네 이전의 아이들을 모두 구하고 싶었어.”

내 이전의 아이들이라고 함은, 탄생목이란 것에 산 제물로 바쳐진 두 명의 아이들을 말하는 걸 거다.

나는 입에 물고 있던 호박엿을 까드득 깨물고는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요. 향화 언니라면 몰라도 오빠는 아니었을 거잖아요?”

나를 보자마자 죽인다니 뭐니 했던 양반이었다. 아이들을 구하고 싶었을 리가 있나.

나의 물음에 양반이 놀라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웃었다.

“그래, 맞아.”

웃음 끝에 들린 것은 분노였다.

“애새끼들을 구하기는 무슨, 그냥 죽이고 싶었어. 산 제물을 데리고 오는 게 선비 새끼만 아니었더라면 진작 다 죽여 버렸을 거야.”

일곱 살 아이가 듣기에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말들이었다.

양반이 굽힌 무릎에 팔을 괴고서는 자괴감 어린 목소리로 말을 끝마쳤다.

“그게 걔들한테 더 좋았을 거고.”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두 눈을 찡그리고선 말했다.

“리사처럼 향화 언니한테 데려와 표식을 지울 수도 있었잖아요.”

“그래, 그럴 수도 있었겠지. 선비 새끼가 애새끼들을 곧바로 탄생목에 바치지만 않았어도 말이야.”

양반이 생각만으로도 부아가 치민다는 얼굴로 이를 으득 갈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해도, 난 기회를 엿보아 죽였을 거다.”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그런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어진 양반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어차피 부모가 버리거나 팔아 버린 애새끼들이었어! 표식을 지워 바깥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좋았을 거예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빼액 소리를 질렀다.

“죽는 게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리사 같은 아이도, 오빠 같은 어른도 그 누구도 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요.”

물론, 죽어도 싼 놈이 존재하기는 했다. 예를 들면 서커스의 모자 장수 같은 놈.

그러나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나는 말없이 양반을 노려보았고, 양반 역시 말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내가 자신의 말에 반박하여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양반은 그저,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마냥.

“허어…….”

그렇게 헛웃음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대치 상황을 이어가고 있을 때.

드르륵, 장지문이 열렸다.

“설은, 내 분명 아이와 친하게 지내고 있으라고 했었을 텐데.”

“친하게 지내고 있었어, 향화. 그렇지, 꼬맹아?”

‘그렇지?’는 개뿔이다.

나는 미간을 좁히고선 양반을 노려봤다. 양반은 그런 나의 눈초리가 우습다는 듯이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각시가 나와 양반 사이에 흐르는 날선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 설은 저 녀석과 단둘이 남겨 두고 가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나 이전의 각시들의 기억을 엿보려면, 아무도 없는 곳에 있어야 했단다.”

“괜찮아요, 언니. 그래서 리사는 이제 집으로 갈 수 있어요?”

“그래, 돌아갈 수 있을 것 같구나. 다만.”

“다만……?”

“리사, 네가 ‘각성자’라는 가정 하에서 말이지.”

각시가 내 앞에서 무릎을 굽혀 앉고는 물었다.

“아가, 너는 각성자인 게냐?”

묻는 말이었으나, 확신하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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