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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69)화 (69/500)

69화. 대신 온 것은 가뭄인지라(2)

일흔두 개의 조각으로 나누어진 레메게톤.

그것의 다른 이름은 ‘솔로몬의 열쇠’였다. 솔로몬이 누구를 가리키는 건지 모른다.

그저 미지 영역에 거주하고 있는 누군가의 이름이라고 추정할 뿐.

최설윤이 로저 에스테라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일흔두 개의 조각을 모두 모으면 일흔두 가지의 신비로운 힘을 다룰 수 있게 된다지만 말이야.”

로저 에스테라가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최설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최설윤이 그런 로저 에스테라를 보며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실, 그 힘은 ‘열쇠’가 있어야만 다룰 수 있을 거라지?”

“꽤 재미난 이야기군요.”

“그렇게 말하기는? 이미 다 알고 있었으면서.”

최설윤이 로저 에스테라를 비아냥거리고는 말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것만 확인해 볼 거야.”

“진짜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훔칠 수는 없느니 바티칸 밖으로 유출되도록 해 볼까? 내 손으로 떨어지게끔.”

“자매님, 제발 그것만은.”

로저 에스테라가 앓는 목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어쨌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오, 진짜?”

로저 에스테라가 상냥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희 쪽 사람들이 자매님의 기분을 상하게 해 드렸으니 보상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쪽입니다.”

최설윤이 좋아라하며 로저 에스테라의 뒤를 따랐다.

“아, 진주.”

“진주요?”

“응, 장천의 회장한테 진주 팔찌를 선물 받았는데 너네 쪽 신부들이 망가뜨렸어.”

그러니까 보상해 달라는 소리였다.

이를 찰떡같이 알아들은 로저 에스테라가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장천의 회장께서 선물해 주신 것 그대로 다시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최설윤 길드장님.”

최설윤이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를 걸쳤다.

***

“가짜라고?”

“그건 아니야, 도윤아. 양식 진주라고 해도 진주는 진주거든.”

단이가 깨물었던 진주알을 자신의 옷으로 깨끗하게 닦고는 도윤이에게 넘겨주었다.

“천연 진주보다는 값어치가 덜하지만 그래도 가짜는 아니니까 소중하게 간직해.”

“응! 알려 줘서 고마워, 단이야!”

도윤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자라나는 보석 감별사인 단이에게 물었다.

“단이야, 진짜 진주랑 가짜 진주랑 느낌이 많이 달라?”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양식 진주라고 해도, 단이는 진주는 진주라고 했다.

보석으로 취급한다는 말이겠지.

내 질문에 단이가 눈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많이 다르지는 않고, 느낌이 살짝 달라.”

“어떻게?”

“핵진주라고, 쉽게 말해서 모조인 건 앞니로 살살 긁으면 매끄러운 느낌이 들거든. 하지만 저건 달라.”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건지 모르겠다. 미간을 한껏 좁히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단예가 도윤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윤아, 진주를 한 번 더 빌려 줄 수 있겠니?”

“응? 응!”

단예가 도윤이한테서 진주를 받아 들고는 내게 내밀었다.

“리사야, 한 번 물어 보렴. 너무 세게는 말고.”

나는 단예가 하라는 대로 앞니로 살짝 물고는 굴려 보았다.

“리사야, 어떠니?”

“까슬까슬한 것 같아!”

나는 진주를 뱉고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말에 단이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받은 진주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고 싶을 때 한 번 써 봐.”

글쎄, 과연 쓸 데가 있을까?

그렇지만 나는 단이에게 고맙다면서 방긋 웃었다. 그러고 보니 단이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게 처음인 것 같다.

단이가 자라나리 유치원을 다니게 된 지, 어느새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말이야.

그렇게 단이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내 시선이 너무 끈질겼나 보다.

“리사?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응? 아니! 그냥…….”

나는 배시시 웃어 주고는 말했다.

“단이랑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단이가 내 말에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도 잠시, 단이는 단예와 닮은 푸른 눈에 웃음기를 담고서 입을 열었다.

“나도 리사랑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 단예랑 단아만큼이나.”

단이의 말에 단예가 웃음을 터트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단이를 같잖게 여기는 것 같았다.

착각이겠지? 암, 착각이고말고. 단이가 언짢다는 듯이 단예를 쳐다보고 있으나 착각일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단아가 도윤이를 툭툭 건드리고는 말했다.

“가짜라는데 그냥 버려.”

“단아는 바보! 단이가 가짜 아니라고 했잖아!”

“이게 누구한테 바보래?!”

단아가 주먹을 높이 들자, 도윤이가 재빠르게 내 뒤로 몸을 숨겼다.

“치사해, 백도윤!”

“아니야, 안 치사해!”

친구들아, 나를 사이에 두고 싸우지 말아 줬으면 한다.

단아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두 손을 드려는 순간, 내 뒤에 숨어 있던 도윤이가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리고는 말했다.

“곧 엄마 돌아가신 날이니까 아빠랑 같이 엄마 찾아가서 이거 줄 거야! 가짜가 아니라고 했으니까 엄마가 좋아하겠지?”

“가짜라고 해도 도윤이네 엄마는 엄청 좋아하실 거야!”

내 말에 도윤이가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도윤아! 커서도 나한테 그렇게 웃어 줘야 한다? 알겠지?!

도윤이가 자란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기분이 흐뭇해졌다.

세월아, 빨리 가라. 내 친구들이 얼마나 참하게 자라는지 좀 보게.

아니다, 세월이 빨리 가면 윤사해가 늙기 시작할 텐데? 그렇지만 중년미가 물씬 풍기는 것도 보기 좋을 것 같고…….

그런 실없는 고민에 나 혼자 심각해질 때였다.

“하지만, 백도윤. 죽은 네 엄마가 어떻게, 웁!”

나는 황급히 단아의 입을 틀어막았다. 도윤이가 그런 나를 보고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단아도 부모님께 진주를 선물해 주고 싶은가 보구나? 단예야, 단아야! 들었지? 단이도 부모님한테 진주를 선물해 주고 싶대!”

내 말에 입술을 잔뜩 오므리고는 말했다.

“단아야, 이거 가지고 싶어?”

“웁! 우우웁!”

“그렇구나. 그치만 이건 내 거야.”

“우우웅!”

단아는 당장에라도 도윤이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다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런 단아의 입을 조심스레 떼어내었다.

“야! 윤리사!”

단아의 쨍한 목소리가 곧장 내 고막을 때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를 향해 아이의 작은 주먹이 날아올 일은 없었다.

“단아야, 우리 저기 가서 퍼즐 맞추면서 놀까?”

“퍼즐은 무슨!”

그러기도 전에 단이가 단아를 끌고 갔기 때문이다. 단이는 단아가 도윤이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물론, 단예도.

단이가 싫다는 단아를 억지로 끌고 가면서 재잘거렸다.

“그럼, 퍼즐 말고 단어 맞추기 놀이하자.”

“싫어! 한단이, 야! 싫다니까?!”

“그래, 그럼 우리 바르고 고운 말을 쓸 수 있도록 동화책이나 읽자. 내가 읽어 줄게.”

“한단이, 야!”

단아의 힘이라면 단이의 손을 쉽게 쳐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단아는 그러지 않았다.

단이가 다칠까 봐 걱정되는 거겠지.

“리사야, 단예야. 우리는 뭐하고 놀까? 퍼즐은 맞추기 싫은데. 단어도 맞추기 싫고.”

단아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꿈에도 모를 도윤이가 물었다.

“글쎄, 우리도 동화책이나 읽을까? 어떻게 생각하니, 리사?”

“리사는 좋아! 대신 단예가 읽어 주기!”

단예가 눈웃음을 짓고는 동화책을 집어 들었다.

동화책의 제목은 『조개야, 울지 마』로, 품고 있던 진주를 잃어버린 조개에 대한 이야기였다.

단예야, 꼭 그 책을 읽어 줘야겠니?

***

“히잉, 슬펐어.”

『조개야, 울지 마』에 대한 도윤이의 짤막한 감상이었다.

우리 도윤이, 감수성이 풍부하기도 하지.

“이거 버릴까 봐. 조개가 지금 슬퍼하고 있을 것 같아.”

너무 풍부하잖아!

나는 진주를 버리려는 도윤이의 손을 꼭 끌어 쥐고선 말했다.

“아니야, 도윤아. 조개는 지금 무척이나 뿌듯해하고 있을 거야.”

“뿌듯해하고 있을 거라고? 왜?”

“그야, 도윤이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한테 진주가 갔으니까!”

도윤이가 내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로 그럴까?”

“응! 꼭 그럴 거야. 그러니까 이건 도윤이네 엄마한테 주기야!”

“알았어, 리사! 아빠랑 같이 엄마한테 꼭 주고 올게!”

휴우, 도윤이의 동심에 상처 입히지 않고 진주를 지키기 성공했다.

그렇게 안심하고 있는데, 낭랑한 목소리로 『조개야, 울지 마』를 읽어 준 단예가 나를 불렀다.

“리사야,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

“응? 응! 물론이지!”

도윤이와 함께 단아와 단이가 있는 쪽으로 가려던 나는 걸음을 멈췄다.

절대로 단아가 단이에게 『어린이를 위한 간단한 철학 상식』을 읽어 주고 있어서 멈춘 게 아니다.

내게 다가온 단예가 눈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너랑 만나고 싶다면서 약속을 잡아 줄 수 있겠냐고 물으셨거든.”

“단예네 할아버지가?”

“응,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셨어.”

“리사한테……?”

한태극 의원이 나한테 고마워할 일이 뭐가 있다고?

잠깐만, 혹시.

“리사가 저번에 말해 줬던 던전 때문이야?”

단예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할아버지께 던전에 관해 말씀드릴 때, 리사 네 이야기를 조금 언급했었거든.”

아하, 그래서 그렇구만.

한태극 의원과의 대화라, 언젠가는 만나 볼 인물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다.

하지만.

“단순히 네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았어.”

“아닌 것 같다니?”

저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단예의 이어진 말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너를 핑계로 네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가 봐.”

“우리 아빠랑?”

“응, 리사가 나한테 알려 준 던전과 관련해서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시는 눈치였어.”

병약했던 한단이의 건강을 단숨에 회복시켜 준 팔라크의 영약.

L급의 아이템인 팔라크의 영약을 획득할 수 있는 던전, ‘팔라크의 둥지’는 진작 청 가문의 소유로 넘어갔다.

여기에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이 한태극이란 소문이 암암리에 도는 중이었고.

그런데 인제 와서 그 던전에 관해 윤사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알았어! 아빠한테 물어 볼게!”

윤사해라면 흔쾌히 허락해 줄 것 같았다.

***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윤사해의 대답은.

“거절하렴.”

매몰찬 거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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