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태풍이 온다더니(5)
“아아아악! 빌어먹을, 빌어먹을!”
시간의 흐름이 불분명한 곳.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할미는 어둠을 밝히고 있던 청사초롱 하나를 마구 짓밟고 있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질색하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 있었으니.
“할미께서 드디어 돌아 버리셨나 봅니다? 왜 저렇게 발광이신지.”
“바깥에서의 일이 잘 안 풀리신 것 같더라고요.”
“저런.”
바로 선비와 이매였다.
둘의 태연한 대화 소리에 할미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오늘이 가장 적합한 날이었는데!’
제인 아일리의 영혼을 끄집어내어 사령의 숲에 밀어 넣기에 말이다.
‘그런데……!’
윤사해의 등장으로 계획이 어그러지고 말았다.
윤사해, 그라면 제인 아일리의 실종이 알려지는 즉시 자신을 쫓을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았으니.’
할미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윤사해에게 얼굴이 드러난 건 상관이 없었다.
지닌 탈을 덮어쓰면 제 존재는 남들의 기억 속에서 흐려질 테니.
그러나 윤사해는 자신이 다룰 수 없는 것들까지 수족처럼 부리는 자였다.
어떻게, 어떤 식으로 제 목을 노릴지 모르니 할미는 제인 아일리를 노렸던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령(靈)들이 왜 그렇게 난리인가 했더니!’
할미가 자신의 귓가에 재잘거리던 목소리들을 떠올리고는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다.
“짜증나, 짜증난다고!”
그녀가 그렇게 청사초롱을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내리 밟을 때였다.
스러져가고 있는 청사초롱의 붉은 빛에 누군가를 떠올린 듯, 할미가 환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할미.”
그 앞을 선비가 막아섰다.
제 앞을 막아선 선비에게 할미가 이를 드러내며 경고성 짙은 목소리를 내었다.
“비켜.”
“어디를 가시려고요?”
“네가 알 바야?”
“알 바는 아니지마는.”
선비가 덮어쓰고 있는 탈 안쪽으로 얄궂게 눈웃음을 지었다.
“제가 당신 비밀 하나를 눈감아 주고 있다는 것을 잊지는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공양에 바쳤던 아이를 빼돌린 것도 모자라, 그 아이를 놓쳐 버린 것.
선비가 지난날을 언급하자 할미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수장님께 말하려면 말해. 나는 지금 당장 이분을 풀고 싶거든. 죽어가는 각시 님께.”
할미는 그렇게 말하고는 선비의 어깨를 강하게 쳤다. 그렇게 할미가 어둑하게 그림자 진 곳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양반이 함께 있을 겁니다.”
들린 이름에 각시는 자리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선비가 그녀의 뒤를 향해 가식적이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각시를 건드리면, 양반이 굉장히 화를 낼 텐데 말입니다. 그 자식의 화를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다분히 저를 놀리는 목소리였다.
할미가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리고는 욕설을 내뱉었다.
“개 같은 새끼.”
“에이, ‘개보다도 못한 새끼’가 맞는 말 아닐까요?”
가만히 둘의 대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매가 웃으며 그리 말했다.
“선비 새끼가 개보다 못한 새끼면, 너도 개보다 못한 새끼야, 둘이 유유상종이니까.”
할미는 그 말을 남기고선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이매는 할미가 남긴 말에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선비에게 물었다.
“선비 씨, 할미 씨가 가지고 계신 비밀이 뭐예요?”
“알 것 없습니다.”
선비가 매몰차게 이매의 궁금증을 차단했다. 이매가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흐음, 제가 아는 할미 씨의 비밀과 서로 같은 것을 알고 있나 비교해 보려고 했더니 아쉽네요?”
“……?”
선비가 의문에 가득 찬 시선을 이매에게로 보냈다. 그 시선에 이매가 얄궂게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봐도 안 말해 줄 거예요.”
“물을 생각도 없습니다만.”
선비가 불쾌하다는 얼굴로 이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이매는 그런 그를 보며 히죽거리다가 할미가 가진 붉은 눈을 떠올리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이 세상에 붉은 눈을 가진 사람은 많았다. 당장, 자신만 하더라고 감추고 있는 왼쪽 눈이 붉지 않은가?
하지만.
‘할미 씨처럼 온갖 것을 볼 수는 없는지라.’
그렇기에 이매는 언제나 그 눈을 조용히 탐내고 있었다.
자신의 붉은 눈을 대신할 것으로.
***
“특별하게 여길 만한 게 붉은 눈밖에 없네. 검은 머리카락은 너무 흔하고.”
밤 열한 시가 넘어간 어둑한 시간. 나는 두 눈을 말똥말똥 뜬 채로 침대에 누워 있는 중이었다.
“윤설아, 설아…….”
제인 아일리의 친구.
할미가 분명해 보이는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느라 말이다.
“저세상처럼 오른쪽 눈 아래에 점이 있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 서술이 됐다면 알아보기 쉬울 텐데.”
안타깝게도 할미의 외모에 대한 묘사는 『각성, 그 후』에서 한 줄이 다였다.
윤설아가 정말 ‘할미’라면 억울할 정도로 간단한 묘사였다.
「곱슬기가 도는 검은 머리칼을 단정하게 틀어 올린 여자가 붉은 눈을 반달처럼 접으며 인사했다.」
어쨌든 윤설아는 『각성, 그 후』에서 나온 할미에 대한 묘사와 똑같았다.
곱슬기가 도는 검은 머리칼을 단정하게 틀어 올렸으며, 붉은 눈을 지니고 있었으니.
하지만 세상에 검은 머리 짐승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붉은 눈 또한 이 세계에서는 흔하디 흔한 색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붉은 눈을 가진 사람만 하더라도 두 명.
여기에 윤설아를 합치면 세 명이고, 자라나리 유치원에서도 붉은 눈을 가진 아이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즉.
“외모만으로는 윤설아를 할미라고 섣불리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네.”
의심 가는 것은 둘째 치고, 괜히 엄한 사람을 잡으면 곤란해지니까 말이다.
이렇게 된 거, 을 이용해서 ‘윤설아’를 검색해 볼까?
쓰라고 있는 스킬, 나는 마음껏 사용해 보았지만.
<검색 대상을 찾을 수 없습니다.>
“……검색 대상을 찾을 수 없다니?”
나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아니, 저기요?
『각성, 그 후』에서 ‘윤설아’라는 이름이 등장한 적 없다고 해도 찾아 줘야 할 것 아니오!
“청해진도 찾아 줬었잖아!”
청해진 역시 『각성, 그 후』에서 이름 한 번 등장하지 않은 조연이었지만, 은 잘만 그에 관련된 것을 내게 보여 줬었다.
그런데 찾을 수 없다니!
나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입술을 씰룩였다.
“그럼, 할미로.”
문득, 이 스킬에 사용 횟수 제한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횟수 제한이 있었으면 굉장히 빡쳤을 거야. 어디 있는지 모를 작가님을 찾으러 나설 정도로 말이지.
[검색 대상] : 할미
[↳연관 검색어 : 사령의 숲 | 死靈 | 악귀 | 최說� | 제인 아일리 | 백시진 | 유랑단 | … ]
시야에 나타난 것들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說�]
‘최설윤’이 분명해 보이는 이름 때문이었다.
제인 아일리나 백시진은 당연히 할미의 연관 검색어로 등장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설윤은 왜? 할미랑 아무런 접점이 없었을 텐데?”
적어도 내가 읽은 연재분에서는 그랬다는 거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잔뜩 깨져 있는 글자를 눌렀다.
[검색 대상] : 최說�
[“어머, 언니. 이렇게 저를 찾아 주셔서 영광이네요.”
“111 �만 떨고, 100 性格대로 1111 그래?”
“하하.”
할미가 얼굴을 덮고 있던 탈을 벗고서, 최說�과 닮은 두 눈을 찡그렸다.
“나를 왜 찾은 거야! 보고 싶은 마음 꾹 참고 기껏 피해 다녀 줬더니!”]
읽는데 무리가 있을 정도로 텍스트본의 곳곳이 깨져 있었다.
특히 최설윤의 대사로 보이는 문구는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익숙한 한자가 보이기는 했지만…….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네.”
다행히도 할미의 대사는 완벽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텍스트가 왜 이렇게 깨져 있는 거지? 연재분 이후의 내용은 다 이런가?”
나는 금방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알아.”」
윤사해의 죽음 직후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 이야기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떠올리기도 괴로운 이야기였지만, 그때 내 앞에 나타났던 텍스트본은 깨진 글자라고는 없이 멀쩡했었다.
“혹시…….”
완결에 가까워질수록 텍스트 본이 망가져 있는 건가 싶었다.
망할 작가님, 주려면 좀 제대로 주지! 후반부가 이렇게 깨져 있으면 나보고 뭐 어쩌라는 거야?
아니, 그보다.
“최설윤에게 언니라니?”
최설윤에게 혈육이라고는 그녀와 열 살 이상 차이가 났던 오빠가 남긴 조카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에이, 설마.
“예전에 안면을 튼 사이라서 그렇게 부른 거겠지. 친근함의 뜻으로.”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미친 망작 같으니라고.”
할미가 정말 최설윤의 동생이라면, 『각성, 그 후』는 재기 불가의 핵폐기물이 되는 거다.
어떻게 그런 설정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있냐고!
나는 크게 숨을 내쉬고는 할미와 최설윤에 대한 것을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건 할미와 최설윤의 관계성이 아니었다.
[검색 대상] : 제인 아일리
[↳연관 검색어 : 사령의 숲 | 死靈 | 악귀 | 할미 | 백시진 | … ]
도윤이의 삼촌 백시진.
그리고 그의 여자 친구인 제인 아일리.
나는 그녀가 악귀가 되어 사령의 숲을 떠돌아다니는 것을 어떻게든 막을 생각이었다.
‘도윤아, 너는 좋아?’
‘응? 뭐가?’
‘도윤이네 삼촌이랑 삼촌분의 여자 친구분.’
‘응! 좋아!’
미래가 기대되는, 자라나는 어린이.
내 친구 도윤이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우선 하나.
“제인 언니를 의심 가는 사람과 단 둘이서만 두지 않게 하기!”
그러니까, 백시진.
너 나한테 뺨 좀 맞아야겠다.